짧은생각 긴여운

성령은 풍랑을 잠재운다.

배가번드 2023. 3. 24. 04:18
728x90

요즘 냉증치료를 받다보니 약을 많이 먹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입이 써서 밥맛이 없으며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지요.

얼마 전에 심하게 아플 때는 밥을 거의 먹지 못했고 마치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았던 겁니다.

이렇게 아플 때는 잠도 안 오며 자도 자는 것 같지가 않고 비몽사몽간을 헤맵니다.

이럴 때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 사정을 말하면 다들 자신의 입장에서 대답을 합니다.

교회 다니는 분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라 말하고 명상하는 이들은 명상을 더욱 열심히 하라고 하지요.

이러한 말을 내게 하는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그들의 말을 통해 과거의 내 모습을 봅니다.

나 역시 그들과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압니다.

사실 아픈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은 통상적인 것으로 별로 많지가 않습니다.

약을 먹거나 병원가라는 말은 일반적인 말이고 그나마 영적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덧붙일 수 있는 말은 자신의 믿음에 따른 위로의 말밖에 할 것이 없지요.

그래서 내 경우에는 아픈 하소연을 하되 해결은 나 스스로가 합니다.

이미 내면의 진아가 깨어나 있는지라 아픈 것은 내가 아픈 것이 아니라 중생인 육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기에 업장을 해소 한다 여깁니다.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상 이런 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육신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의 영향에 따라 본능이 주어져있으며 입력된 정보로 인해 생성된 것이어서 인과응보의 영향력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면이 깨어나게 되면 육과 영이 분리가 되어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들은 내면이 깨어나면 육신으로도 인과를 벗어날 수 있으며 병에 걸리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만약 이렇게 받아들이게 되면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 성령을 깨달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 외에는 성령을 깨닫지 못하게 되는지라 성경을 읽을 필요도 없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예수님과 하나 되어 영생을 얻는 것이 성경을 배우는 목적인 것인데 예수님만이 성령을 드러내고 그에게만 권능이 부여된다면 성경은 불태워져야 합니다.

이런 일에 대해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막4:37)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막4:38)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막4:39)

 

액면대로 보면 예수님처럼 성령이 깨어나면 완전히 기적을 일으키고 세상과는 별개의 존재가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내용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성경은 거짓말을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광풍이 일어나 배에 물이 가득 찰 정도면 제자들이 배에서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에게 구해달라는 말을 할 틈이 없습니다.

가만히 서있기도 힘들 지경인데 배 뒷전에 누워 자고 있는 예수께 다가가 구해 달라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배를 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심하게 흔들리는 배위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쓸려 내려가지 않으려 무엇인가를 붙잡기 급급합니다.

게다가 심하게 요동치는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어있는데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비유의 가르침으로 파도는 세파를 뜻한다고 봐야하며 삶에서 마주치는 고난과 역경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38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같은 내말이 어느 정도 합당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고물은 배의 뒷부분이고 풍랑의 영향을 적게 받는 곳이지요.

그곳에서 예수님이 베개를 베고 누워 잠들었다는 것은 성령이 잠든 것을 비유한 겁니다.

즉, 배는 우리의 육신을 뜻하고 삶에서 마주치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 육신 안에 잠든 성령을 깨우는 것을 풍랑을 만난 배에 비유한거라는 말입니다.

39절에 보다시피 예수께서 깨어나 바다더러 잠잠하고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쳤다고 했습니다.

이는 성령이 깨어나면 세파에 시달림이 적어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비록 고난과 역경 속에 있더라도 성령에 의지하면 편안해 질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바다는 여전히 있고 배는 바다위에 떠있다는 사실입니다.

육신으로 살아가는 동안 언제든지 풍랑을 만날 수 있으며 그때마다 성령에 의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까닭에 종교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다만 종교와 신앙생활이 우상 숭배자가 되게 만든다면 단호히 거부해야하며 자신내면에서 진리를 찾아야하는 겁니다.

이러한 말이 옳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막4:33)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막4:34)

 

이렇게 성경이 명확하게 길을 제시했으므로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 속에 담겨있는 뜻을 헤아려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 몸이 아프면 약을 사먹고 병원을 다니며 누구에겐가 도움을 받기도합니다.

그렇지만 성령이 약사님의 몸에도 의사의 몸에도 또한 나에게 도움을 주는 그 누구에게도 공히 거함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와 내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만물동일체를 오해하지 않는 사람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