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어린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

배가번드 2023. 4. 2.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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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라도 자신만의 삶에 방식이 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바뀌지 않는 자신만의 기본생각이 있으며 그런 일을 타고난 천성이라 말합니다.

이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의 영향으로 볼 수 있지만 속 깊이 들여다보면 유전자보다 상회하는 본인특유의 품성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맡아야하는 역할로 인해 각자가 태어날 때부터 영혼에 각인된 정보가 따로 있다는 겁니다.

결혼한가지를 보더라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인연이 작용하여 이루어지는 것인데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별개의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본인도 모르는 역할이 주어져있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분명히 내가 좋아하고 바라는 상대는 아닌데 불구하고 어찌하다보니 인연이 엮어져 부부 연을 맺고 살아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모두 이런 연유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은 종교를 선택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납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종교를 선택하게 되겠지만 성장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본인이 가진 고유의 품성이 되살아나 자신에게 맞는 종교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외형적인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와 별개의 종교를 선택했다하더라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겁니다.

의식의 혁명이 내적으로 변화를 일으킨다는 거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내양은 내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말했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

 

우리가 만약 이러한 예수님말씀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예수가 나타나야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2천 년 전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으니 그를 이 시대에 다시 만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 자신을 믿는 제자들에게는 보혜사, 즉 성령을 보낸다 했으니 그를 따르려면 성령을 만나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하는 것은 성령이 어떤 존재인줄을 알아야하는 겁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지요.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11:24절)

Martha saith unto him, I know that he shall rise again in the resurrection at the last day.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절)

Jesus said un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that believeth in me, though he were dead, yet shall he live: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6절)

And whosoever liveth and believeth in me shall never die. Believest thou this?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요11:27절)

She saith unto him, Yea, Lord: I believe that thou art the Christ, the Son of God, which should come into the world.

 

24절에서 말하는 마지막 날은 죽음을 가리킵니다.

마르다가 죽는 날 그가 다시 일어난다했으니 육신이 죽고 영이 살아나는 일을 말하고 있는 거지요.(he shall rise again in the resurrection at the last day)

이 내용이 예수의 부활을 말할 것 같으면 당신이라 말할 것인데 그라고 말하는 것은 육신예수가 아닌 성령이신 예수를 가리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라 말한 것이며 자신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라 한 겁니다.

만약 부활이 영적부활이 아니라 육신의 부활인 것 같으면 죽어도 산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육신이 죽었는데 또다시 육신으로 살아난다면 죽음자체가 없다는 말이 됨으로 이 내용만 보더라도 부활은 영적부활이며 성령이 되살아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25절은 예수께서 성령의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성령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을 가르친 것으로 봐야 됩니다.

이렇게 되어야 26절 말씀대로 예수를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게 되는 겁니다.

육신으로 살아있을 때 내재하는 성령에 대해 깨닫게 되면(믿으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영적부활이 일어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27절을 보게 되면 마르다가 육신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뜻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 축성 받은 자”라는 사실을 볼 때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마르다가 믿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내재하는 성령을 믿는데 있어서 처음에는 표본이 될 무엇인가를 필요로 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 대상이 필요하듯이 내재한 성령을 알려면 반드시 먼저 성령이 깨어난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그러한 이들을 일러 그리스도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아들이라 표현하는 것인데 이러한 일에 대해 마르다가 알고 있었던 겁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선지자들이 바로 그 시대에 이 세상을 왔던 영적스승들이며 내재한 성령을 드러낸 이었음을 마르다가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을 보는 순간 곧바로 알아보고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르다가 세상을 올 때 가지고온 인식으로 예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면에서 깨어났던 것이며 그것이 바로 내재한 성령입니다.

이러한 일은 예수생존당시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으며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이지요.

본인 안에 내재한 성령이 예수님과 같이 내재한 성령이 깨어난 이를 만나게 되면 알아보고 그 말씀을 믿고 따르게 됩니다.

물론 처음에는 마르다처럼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여기고 그리스도라며 섬기게 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본인역시 예수와 같은 인자(人子)가 될 겁니다.

흔히들 우리가 예수님을 가리킬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기도하고 사람의 아들(人子)이라 말하기도합니다.

두 가지 모두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이긴 하지만 쓰임새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사람과는 전혀 관계없이 특별한 존재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지만 사람의 아들이 될 경우에는 하나님이 직접 사람의 몸 안에서 역사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부(聖父)이신 하나님이 성자(聖子)이신 인자의 몸 안에서 성령으로 되살아난다는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정확한 뜻이지요.

우리가 종교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 육신예수를 신처럼 떠받드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믿더라도 성령에 대한 믿음이 커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성령이 깨어나 하나님과 하나 되어 인자가 되는 겁니다.

내말을 믿고 안 믿고는 본인의 자유의지에 달렸겠지만 내재한 품성은 정확히 내말을 알아듣게 되어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엉덩이를 걷어차도 가지 않을 것이며 죽을 때까지 따르게 되어있지요.

이미 세상을 내려올 때 각인된 인식이 있기 때문으로 우리가 내적으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시절(時節)인연(因緣)이 도래(到來)한 이들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