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다보면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도대체 사람의 머리에서 어떻게 이런 생각이 나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구약의 내용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인간이 썼다고 볼 수 없는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성경을 하나님이 쓰신 책이라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의 제자들이 남겨놓은 신약이 없었더라면 구약의 내용은 빛을 발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신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구약의 가르침이 녹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신약은 구약의 내용을 예수님이 해석해준 것을 재해석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그만큼 구약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부분이 많으며 혹 해석을 제대로 한다 해도 올곧게 받아들일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조차 비유로서 말씀하셨던 거지요.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점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구약의 내용을 믿는 사람들이 오늘날의 이스라엘 사람들이며 그들의 종교를 유대교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지 또 신약에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구약을 달리 보고 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슥11:12)
And I said to them, "If it is good in your sight, give [me] my wages; but if not, never mind!" So they weighed out thirty [shekels] of silver as my wages.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準價)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슥11:13)
Then the LORD said to me, "Throw it to the potter, [that] magnificent price at which I was valued by them." So I took the thirty [shekels] of silver and threw them to the potter in the house of the LORD.
12절의 고가(高價)는 임금(賃金)을 가리킵니다.(wages)
구약속의 스가랴 선지자가 이스라엘백성들을(양떼, 제자) 향해서 자신의 가격을 묻고 있는 거지요.
달리 표현하면 자신을 목자로 여기며 따르는 제자들이 자신의 값어치를 얼마로 여기는가를 묻고 있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 제자들이 은 삼십을 책정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은 삼십이라 한 것은 빛으로 완전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키기 위해 말해놓은 겁니다.
그 당시 화폐가 은(흰빛)으로 만들어졌기에 이렇게 기록한 것으로 3은 하나님, 0은 완전함을 나타냅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제자들이 스가랴 선지자를 하나님처럼 여겼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그 빛나는 가격(은 삼십)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했던 거지요.(Throw it to the potter, [that] magnificent price)
여호와의 전은 성전을 뜻하며 성전에 사는 토기장이는 하나님을 가리키는지라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라는 뜻에서 13절과 같이 말했습니다.
magnificent price를 준가로 묘사한 것은 최고의 값어치를 말하기 위해서이며 빛이신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구약 속에 담겨진 속뜻인데 신약에서는 이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27:5)
And he threw the pieces of silver into the sanctuary and departed; and he went away and hanged himself.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마27:6)
And the chief priests took the pieces of silver and said, "It is not lawful to put them into the temple treasury, since it is the price of blood."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마27:7)
And they counseled together and with the money bought the Potter's Field as a burial place for strangers.
신약을 읽어본 사람들은 대부분 이 내용을 액면대로 받아들일 겁니다.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긴 후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살한 것으로 볼 거라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앞서 구약의 내용에 입각해서 살펴보면 다른 뜻이 나옵니다.
성소에 은 삼십을 넣었다는 말은 예수님의 값어치가 은 삼십이라는 말인지라 예수님을 하나님처럼 여겼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게 인식했기 때문에 영육이 분리되는 현상이 일어났던 겁니다.(departed)
한글성경은 목매어 죽었다고 했지만 영어성경을 보면 그저 유다 자신을 매달았다고 나옵니다.(departed; and he went away and hanged himself)
예수님을 하나님처럼 여기며 자신스스로를 예수님께 매이게 만들었다는 뜻이지요.(5절)
그러므로 대제사장들은 6절에서 은 삼십을 성전고에 넣어두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not lawful) 말했습니다.
은 삼십으로(예수님의 값어치)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어 이방의 마음을 잠재우는데 써야한다 말했던 겁니다.
토기장이는 하나님을 가리키며 밭은 곡물을 생산하는 곳이니 가르침을 통해 영적각성이 일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보면 위 내용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일을 통해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계기로 삼자는 다짐의 말이 됩니다.
이와 같은 내말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해줄 내용이 요한복음에 나옵니다.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요21:20)
Peter, turning around, *saw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following [them;] the one who also had leaned back on His breast at the supper, and said, "Lord, who is the one who betrays You?"
여기에 예수님과 함께 나타난 것은 가롯 유다입니다.
만약 유다가 목매달아 죽었다면 이렇게 나타나지 못할 겁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예수님의 육신부활을 말하라면 유다의 부활도 말해야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 사람 어느 누구도 유다의 부활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나 유다, 모두는 육신으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영적부활을 한 겁니다.
옛것에서 현재를 찾고 지금에서 과거를 찾을 수 있는 자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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