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목적의식(目的意識)을 바꾸자.

배가번드 2023. 5. 5.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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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벚꽃이 만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봄바람에 눈처럼 흩날리는 꽃을 보려고 학의천에 나갔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방향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이사를 온 후 줄곧 한강을 향해 흘러가는 안양천과 합류하는 지점을 향해 내려갔는데 거꾸로 백운호수방향으로 올라가는 선택을 한 겁니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나도 모르지만 그저 느낌 따라 올라가보니 내 눈 앞에는 지금까지와는 약간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지요.

안양천 방향에 놓인 다리와는 달리 다양한 다리들이 설치되어있었고 징검다리 아래 모여든 물고기들의 모습도 다양했습니다.

아랫방향에서 발견되는 물고기는 잉어가 고작이었는데 상류에는 피라미들과 다른 종류의 물고기들도 보이고 있었지요.

아마 내가 상류 쪽을 와보지 않았더라면 학의천에는 잉어만 산다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형태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내가 본 것과 들은 것, 경험한 것들을 유일한 진리인양 살아가는 겁니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로 가득하며 내가 사는 곳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요즘은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인해 앉아서도 그러한 환경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지요.

그렇지만 앉아서 보는 것과 직접 가서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며 살면서 느끼는 점과 화면을 통해 보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저 위쪽에도 고만고만한 풍경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하다가 직접 가보고 다양한 경험을 한 것과 같은 겁니다.

학의천의 풍경이 별다를 게 뭐있겠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평생을 그런 생각을 하다 인생을 마치겠지만 나 같은 이들은 기회가 주어지면(생각이 일어나면) 주저 않고 경험을 선택합니다.

미지의 세계를 간다는 것이 약간의 두려움을 동반할지라도 결코 주저앉지 않으며 걸어가는 동안 고통을 수반한다할지라도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늘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온지라 이번 산책길에서도 여지없이 이러한 선택을 했던 겁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일은 바뀌지 않았는데 갈 때와 올 때의 길은 별다르지 않았습니다.

포장길로 갔다가 비포장 길로 돌아온 것은 마찬가지였다는 말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비포장 길이 신체에 주는 유익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지요.

우리가 편안하게 걷고 싶을 때는 포장길이 좋겠지만 운동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비포장 길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고른바닥은 발바닥을 편하게는 만들어주지만 다양하게 자극을 주지는 못하기에 운동의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호주사람들은 집밖에서 맨발로 다니기를 좋아하는 겁니다.

나 역시 이점을 아는지라 반드시 시작은 포장길로, 마무리는 비포장 길을 고집하지요.

이러한 점을 영적인 길에 비유하면 자연스럽게 번뇌는 보리라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영적인 길을 선택하고 걸어감에 있어서 편안하고 깨끗한 길을 선호할 수도 있지만 반대방향인 비포장 길을 갈수도 있다는 겁니다.

어디를 선택해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지만 경험치는 다릅니다.

무엇보다도 신체건강 면에 있어서는 많이 차이가 있습니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산책을 나설 때 마다 내 인생을 돌아보곤 합니다.

물질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기구한 인생을 살았다 볼 수 있고 잘못된 선택이라 볼 수 있는 내 인생이지만 영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그야말로 최상의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물질세상을 탐하고 살았고 욕구와 욕망에 충실하며 살았지만 그것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 길을 달리하게 되었지요.

정확하게 말해서 시각을 달리하게 된 겁니다.

산책길에 나선 내 목적이 건강을 위해서라면 방향을 달리한다해서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는 이치를 깨달은 셈입니다.

처음 내가 영적인 길을 선택했을 때 한일은 앉아서 눈을 감는 일이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15분간 눈을 감고 명상을 하기 시작한 후 처음으로 경험한 것은 내전생의 모습이었지요.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지만 95년 당시만 하더라도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진언(眞言)을 내가 하고 있는 겁니다.

 

옴 마니 반메 훔

 

이 말이 우주에 충만하여 있는 지혜와 자비가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그대로 실현되라는 뜻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어째서 그러한 전생의 모습이 내게 보였을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네 인생여정이 육신에만 있지 않고 영의 세계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위한 신의 안배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인생길은 아직도 끝이 나지 않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중입니다.

다만 즐거운 마음으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걸어보니 이런 상황이 펼쳐지고 있으며 저런 길을 가보니 저런 풍경이 펼쳐지더라는 말을 하며 걷고 있는 겁니다.

나를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나는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가장 못난 사람보다 결코 잘나지도 못했으며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잘사는 것도 아닌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최고로 잘난 사람보다 못났다고 생각지도 않고 최고의 부자보다 못산다고 생각지도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못난 사람도 잘난 사람도 결국에는 동일하게 숨을 쉬고 있으며 종국에는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생의 궁극적 목적지를 깨닫고 난후 내게 찾아온 신체적 변화는 달리 없지만 시각이 바뀌었던 겁니다.

과거 현재 미래 속에 녹아든 내 영혼은 시공의 영역을 마음대로 드나들며 과거 현재 미래를 창조하고 있음을 알았던 거지요.

이러한 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전3:22)

 

인생은 만족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만족하는 마음을 갖기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그가 이 세상에서 맡은 역할 때문이라고 합니다.(that is his portion)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가야 함으로 그때가 되면 스스로의 내면에 자리하는 본인의 영혼을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전도자는 이런 말을 남긴 겁니다.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3:21)

Who knoweth the spirit of man that goeth upward, and the spirit of the beast that goeth downward to the earth?

 

영어성경 내용을 가만히 보면 인생의 혼(the spirit of man)과 짐승의 혼(the spirit of the beast)이 동일하게 기록되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같은 인생길을 걸어도 자신의 진정한 영혼을 발견하지 못하면 짐승과 같다는 뜻이지요.

이점을 알고 나면 우리가 목적으로 삼아야할 일이 무엇이라는 점을 깨닫기 마련입니다.

시절인연이 도래한 사람들은 이 말을 듣는 순간 길을 달리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달리하게 될 겁니다.

목적지가 아니라 목적의식이 바뀌게 되면 같은 길을 걸어도 도착지점이 달라짐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목적의식(目的意識)을 바꿀 사람들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