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머리털 하나까지 세신바 되신 하나님.

배가번드 2023. 5. 4.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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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맹이던 내가 컴퓨터를 가까이 하게 된 것이 중국에 살 때였습니다.

지금도 컴맹을 완전히 탈출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인터넷서핑은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처음 내가 인터넷서핑에 나섰을 때 가장 감동 있게 들었던 노래는 대중음악이 아니라 자비송입니다.("Chant of Metta 자비송 - Imee Ooi")

잔잔하게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내 영혼을 흔들어 놓는 것 같았으며 절로 깊은 명상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찬송가를 들을 때 눈물이 나는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이 있었던 겁니다.

인도네시아 가수의 뜻 모를 가사에 감동을 받는 것은 내육신이 아니라 영혼이었나 봅니다.

그때부터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성경연구를 하게 되었지요.

불찬(佛讚)이나 다름없는 노래를 들으면서 성경연구를 했으니 부처님과 예수님이 손을 맞잡고 내안에서 화합을 했던 셈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며 지내던 어느 날 어떤 블로그를 방문했을 때 엄청난 글귀를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세상을 변화시킬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더라도 작은 한부분의 역할이 주어졌음을 말하는 내용이었지요.

부잣집 장식장의 수석은 아니더라도 세상에 널리 깔린 작은 돌멩이는 된다는 글이었는데 무척 감동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이글은 낙엽하나가 떨어져도 신의 뜻이라는 말과 정확히 일치되는 뜻입니다.

크고 작은 것과 귀하고 천하고에 상관없이 다 같은 신의 품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기자(記者)가 글의 뜻을 이렇게 알고 적었는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내게는 동일하게 보였습니다.

삼라만상을 하나님이 지었다는 점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이렇지 않을 수가 없고 손오공이 72가지의 술법과 조화를 부려도 부처님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과도 같은 거지요.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글자가 다르고 말하는 화자(話者)가 다르다여겨 뜻도 다르다 여길지 모르지만 속뜻을 살펴보면 모두가 동일합니다.

성경에도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마10:30)

But the very hairs of your head are all numbered.

 

이 내용을 두고 기독교인과 논쟁 아닌 논쟁을 벌인 적이 있지요.

나는 종교생활을 하든 안하던 상관없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내용이라 했고 그분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적용될 말이라 했던 겁니다.

같은 뜻을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 우리 둘은 모두가 같은 주장을 한거나 다름없습니다.

액면내용을 보게 되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가르침이신지라 성경말씀을 믿는 이들에게만 적용된다고 봐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지었다는 사실에 입각해보면 모든 이들에게 적용될 수밖에 없는 거지요.

믿음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이 말씀의 속뜻을 알 수가 없을 것이고 모르고 살아간다할지라도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지라 이래도 저래도 틀린 것은 아니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문제는 내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것일 뿐 세상 사람들이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문제는 아니지요.

하지만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가르쳐주어야한다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 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하는 사람에게 나는 법을 말해봐야 쓸데없다는 점을 알아야합니다.

본인들조차 아직 종교의 벽을 허물어트리지도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고정관념을 넘어서 시공간이 없는 신의 영역을 가르친다는 말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말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 말하며 하나님이 우리인생의 주관자라 말하고 있지만 실생활에서 그렇게 적용하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아직도 종교의 벽이 허물어지지도 않고 고정관념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면 영의 세계를 정확히 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겁니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문자에 사로잡혀있는 거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다고 말하며 세상만물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 말은 하지만 처처불상사사불공(處處佛像事事佛供)이라는 말과 동일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부처 아닌 것이 없고 하는 일마다 부처의 일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은 낙엽하나가 떨어져도 신의 뜻이라는 말과도 동일하며 머리털하나 세신바 되었다는 예수님 가르침과도 동일합니다.

단어가 하나 틀려져도 다르게 보이고 말하는 사람이 바뀌어도 달라지며 종교가 바뀌어서 달라진다면 그것은 진리라고 볼 수 없는 겁니다.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정점에서 하나로 귀결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법(萬法)이 귀일(歸一)함을 알아야 비로소 영의 세계를 안다 말할 수 있습니다.

만법이란 세상 모든 종교는 물론이고 사람의 사상과 이념모두를 포함한 만물을 뜻합니다.

생명이 담긴 모든 것들은 결국 궁극의 세계인 빛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전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던 거지요.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것이 헛됨이로다(전3:19)

For that which befalleth the sons of men befalleth beasts; even one thing befalleth them: as the one dieth, so dieth the other; yea, they have all one breath; so that a man hath no preeminence above a beast: for all is vanity.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전3:22)

Wherefore I perceive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than that a man should rejoice in his own works; for that is his portion: for who shall bring him to see what shall be after him?

 

동일한 호흡이란 하나님의 숨결이며 빛이신 성령입니다.(befalleth the sons of men befalleth beasts)

결국 정점에서의 하나님은 빛이라는 말이며 만법이 귀일하여 발견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이며 빛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빛은 곧 무한한 빛이라는 뜻의 아미타(무량광)세계와 동일합니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 했는데 무엇인가 다른 게 있다면 진리가 아닌 것이고 하나님은 유일하다했는데 더 이상 무엇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아닌 겁니다.

하지만 빛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며 알파고 오메가인지라 영원 속에서 무한하며 무량광(無量光)의 세계에 존재하는 부처도 항하사(恒河沙) 모래만큼이나 많습니다.

성경 속에 하나님이 복수로 표현된 것도 우리자신이 일귀하처(一歸何處)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하나일 것 같으면 하나님과 하나 될 인생은 어디에도 없으며 부처가 유일할 것 같으면 부처를 이룰 이가 누구도 없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까닭으로 전도자는 자신의 역할을 만족하라 말합니다.(rejoice in his own works)

비록 자신이 지구를 장식하는 하찮은 돌멩이에 불과할지라도 하나로 돌아갔다가 돌아온 귀한 존재임을 깨달아 알라는 겁니다.(만법귀일 일기하처)

이것이 바로 앉은 자리에서 완전해 지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여럿임을 아는 이들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