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예수는 검을 주러왔다.

배가번드 2023. 5. 7.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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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세계를 보다가 놀라운 장면을 보았습니다.

표범끼리 싸움을 한 끝에 한쪽이 죽음을 맞이했던 겁니다.

그런데 서로 싸운 상대가 딸과 엄마였지요.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성장을 하고나면 어미를 떠나 독립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영역이 겹칠 경우가 많으며 그런 가운데 가끔씩 과한 경쟁을 하게 되어 싸움이 벌어집니다.

일반적으로 맹수의 싸움은 적당한 선에서 한쪽이 꼬리를 내리기 마련이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한 치의 양보 없이 싸우다가 한쪽이 변을 당한 겁니다.

보통의 경우 맹수의 싸움은 상대방과 자신에게 치명적 상처를 주게 됨으로 죽을 정도로 싸움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방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으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것도 모녀간의 싸움에서 죽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아무리 동물의 세계라 할지로도 흔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동물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요.

사람사이에서도 이런 일은 심심치 않게 발생합니다.

부모형제 간에 원수지고 사는 일은 의외로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대부분의 경우가 재산다툼이며 성격상의 이유로 원수 되는 일도 있습니다.

언젠가 중국살 때 모녀간에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는 일을 목격한 적이 있었으니 이러한 일이 먼 나라 이웃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기는 어렵다 생각됩니다.

먹이를 두고 다투는 동물이나 재산이나 성격상의 차이를 두고 다투는 사람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거지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여기지만 일단 성장을 하게 되면 어릴 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아이에게 열립니다.

어릴 때는 부모의 말이 절대적 진리라 여기며 순종을 했지만 성장과정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모순적인 일들과 성장 후 자신에게 생긴 이성적 판단에 의하여 제목소리를 내기 마련입니다.

완전한 사람이 없는지라 부모도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그러한 실수가 반복되면 아이들이 마음속으로 부모를 우습게 여기게 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상사가 불의한 짓을 일삼을 경우 겉으로는 복종을 하지만 속으로 욕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직장에서와는 달리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모에 대한 불신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습득이 되는 것이어서 본인들도 모릅니다.

부모도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자식들도 부모의 잘못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모르는 채 성장을 하게 되면 부모의 말을 듣지 않게 되는 거지요.

일단 성장을 하게 되면 이성적 판단을 하게 되어서 자신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는 부모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알고 보면 이러한 일조차 정확하게 인과법에 따른 일입니다.

내가 부모에게 잘못한일이 있었기에 자식도 나에게 잘못을 하는 것이며 내가 잔소리를 듣기 싫어했던 만큼 자식도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겁니다.

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으며 세상법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인과법에 따라 상처를 주고받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영적인 삶을 선택하는 거지요.

그래서 일찍이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셨던 겁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

Think not that I am come to send peace on earth: I came not to send peace, but a sword.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마10:35)

For I am come to set a man at variance against his father, and the daughter against her mother, and the daughter in law against her mother in law.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6)

And a man's foes shall be they of his own household.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10:37)

He that loveth father or mother more than me is not worthy of me: and he that loveth son or daughter more than me is not worthy of me.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8)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He that findeth his life shall lose it: and he that loseth his life for my sake shall find it.

 

교회에서는 이 내용을 예수님을 믿는데 반대하는 가족들과의 불화를 감내하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과의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은 사랑과 화합을 가르친다고 여기고있지만 이 내용은 그와는 상반되는 내용으로 육적인면을 넘어선 영의 세계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육적인 인식으로부터 단절하여(a sword) 성령을 깨닫게 하기 위해(34절) 혈육 간 사이를 변화하게(a man at variance) 만든다고 했습니다.(35절)

인과법 상으로 생각해보면 혈육이란 역할을 바꾸어서 하는 놀이에 불과합니다.

이번 생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했다면 다음 생에는 자식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36절에서 사람의 적이(a man's foes) 식구라 말했던 겁니다.

이번 생에서는 내가 너에게 상처를 입히고 다음 생에는 네가 나에게 상처 입히는 일을 하기위해 가장 가까운 가족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인식을 하게 되면 기존의 혈육관계가 변화를 일으키게 되며 그저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세상법도나 인과(因果)의 세상과는 별개의 존재가 된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부모자식을 더 사랑하면 나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not worthy of me)(37절)

worthy를 합당하다 번역한 것은 예수님을 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이는 분명 잘못된 해석입니다.

이 말씀은 육신인 예수를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자신이 지은 죄를 스스로 져야함을 말하고 있습니다.(38절)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본인 안에 거하는 성령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거지요.

예수님과 같이 성령을 드러낸 분이라 할지라도 그(육신예수)에게 의지하게 되면 본인의 육신 안에 내재하는 성령(영적예수)을 일깨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이렇게 말해놓은 겁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39절에서 자기목숨을 찾는 자는 그것을 잃는다 했으며(his life shall lose it) 나를 위하여 목숨을 잃는 자는 그것을 얻는다 했습니다.(for my sake shall find it)

만약 이 내용이 예수님을 얻는 것이 된다면 말이 안 됩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이야 예수님을 얻는다는 것을 영광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당시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었으므로 말이 안 되는 거지요.

그래서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it) 예수님의 육신이 아니라 성령이 되어야 하며 이렇게 우리가 성령을 받아들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아직도 혈육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고 있다면 성령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며 성령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시비와 선악을 가리고 내 것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야하는 것이 이세상이기는 하지만 돌아갈 영혼은 이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알고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전도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던 겁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Vanity of vanities, saith the Preacher,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육신예수가 아닌 성령이신 예수를 인정하는 이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