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삶은 물위를 걷는것과 같다.

배가번드 2023. 7. 6.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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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 역시 힘든 일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으며 즐깁니다.

힘든 일을 즐긴다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쉽고 힘이 들지 않는 일만 하다보면 육신은 나날이 약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내가 즐긴다는 표현을 하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얼마 전 이런 일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몇 달을 쉬다보니 나도 모르게 체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었던 겁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산책을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평상시처럼 생수를 사들고 집으로 향했지요.

편의점이 집 앞이라 그렇게 많이 걷지도 않았고 2층까지의 계단이 그리 많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계단을 오르는 순간 무릎이 시큰거리는 겁니다.

여섯개들이 생수를 양손에 든 탓이라 해도 그 정도 무게에 무릎이 시큰거린다는 것은 평상시에는 상상조차 못할 일입니다.

몇 달 쉬는 동안 몸살을 몇 번 앓기도 하고 코로나에 걸려 고생을 한 후여서 그렇다 생각을 하며 위안을 했지만 심히 못마땅했지요.

사람하나를 업고서 올라와도 문제가 없어야 할 것인데 꼴란 생수 몇 병에 무릎이 시큰거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여겼던 겁니다.

이때부터 하루라도 빨리 일을 하리라 마음먹었던 것 같습니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생각보다 많이 힘이 들었고 팔다리에 알이 배겨 며칠을 고생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적응이 되었으며 이제는 계단을 올라와도 무릎이 시큰거리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느껴집니다.

힘든 일을 통해 근력이 생겼기 때문으로 나도 모르게 운동이 되었던 거지요.

일을 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같은 공사장에서 일을 해도 업종에 따라 느껴지는 노동의 강도는 틀리며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강도는 같지 않습니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동일한 일을 함에 있어서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마음상태에 따라 노동의 강도가 결정된다는 점을 알게 만듭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 육신의 노화가 진행되면 신체 각 부위에 탈이 나기 마련이지만 아직 노화현상을 말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철근이나 목수님들의 노동강도에 비하면 내가하는 전기업종의 일은 가벼운 편이며 그분들의 연령대가 나보다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는 그저 운동을 하는 편에 속할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신체적 변화를 살펴볼 때 현장에서 힘든 일을 할수록 근력이 좋아진다는 점을 확인하게 됨으로 지금의 일을 즐기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내가 하는 전기일이 힘들지 않고 쉬울 걸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으며 사람에 따라서는 무척 힘든 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동료수행자 한분을 나와 같은 전기 업종에 소개를 시켜드렸는데 불과 몇 달 만에 10키로가 빠졌다며 힘들어 했지요.

지금도 가끔씩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일을 할 때가 있는데 그들이 느끼는 노동의 강도는 내가 느끼는 점과 분명히 다릅니다.

그들의 입을 통해 듣기도 했고 일을 할 때 표정과 몸짓을 보면 얼마나 힘들어 한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전기 분야의 일도 워낙 다양해서 비교적 쉬운 일도 없지는 않지만 지금 하는 일은 기초 작업이라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건물의 기초가 되는 골조작업은 어느 것 하나 힘들지 않은 것은 없으며 모든 업종이 힘들기 때문에 한국인들보다 외국인들이 많은 겁니다.

이러다보니 현장에서 한국젊은이들을 보기가 어려우며 다들 늙수레한 이들인데 젊다싶으면 대부분 외국인입니다.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말이며 다들 쉽고 편안한 일을 찾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상 일을 해보면 근본적으로 쉬운 일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일이라고 이름 붙여지는 순간부터 어려움은 다가오기 마련이며 온갖 시험이 찾아옵니다.

오죽하면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선지자들조차 힘든 현실을 말하며 믿음의 힘으로 이겨내야 함을 말했겠습니까.

멀리 과거로 돌아갈 것도 없이 현재 목회자들의 삶을 보아도 이런 점을 충분히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어쩌다 외국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생활상을 들어보면 그분들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영적인 길을 걷거나 그렇지 않거나 관계없이 물질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어려움은 동일함을 알 수 있지요.

그렇지만 같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막4:36)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막4:37)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막4:38)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막4:39)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막4:40)

 

많은 이들이 동일한 세상을 살아가기에 다른 배들도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36절)

세파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것을 광풍이 일어 파도가 쳐서 물결이 배에 가득하게 된 것으로 비유했지요.(37절)

제자들은 힘든 현실 앞에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성령과 하나 되신 예수님은 흔들림이 없었다고 합니다.(38절)

성경을 읽는 많은 이들은 이 장면을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킨 걸로 알겠지만 39절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파도가 치는 이유는 바람이 불어서인데 바다에게 잠잠 하라 해서 될 일이 아니지요.

바로 이점을 사람들이 알도록 하기위해 일부러 이렇게 말해놓은 겁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파도가 칠 이유가 없고 바다가 조용하면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세상이 험난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모든 것이 하늘의 뜻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라는 뜻에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나무랐던 거지요.(40절)

자신 안에 하나님이신 성령이 있음을 믿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두렵지가 않으며 이겨낼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내가 알기에 힘든 현실을 즐길 수밖에 없으며 세상을 파도타기처럼 여기고 있는 겁니다.

 

 

움직이는 것이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자신의 마음임을 아는 이는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