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도화지(圖畫紙)에 그림그리기.

배가번드 2023. 7. 13.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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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미완성의 그림이라 표현하는 노래가사가 있습니다.

인생전체를 놓고 봤을 때 완성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있다는 결론을 얻었기에 이런 가사를 썼겠지요.

그런데 가만히 가사를 음미해보면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수는 없으며 사는 동안 끝없이 그려야 한다는 말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 인생자체가 그림그리기의 연속이라는 뜻에서 가사를 썼다는 겁니다.

이래서 정해진 바가 없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지만 깨달음을 얻은 이는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고 필연만이 존재하며 모든 것은 정해졌다 말하지요.

많은 이들이 이러한 말에 헷갈려하며 도대체 인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궁금해 하게 됩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은 아직 영안을 열지 못했기 때문이며 인식의 확장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본인의 진아(眞我)인 성령을 깨닫지 못한 겁니다.

언젠가 이런 일을 바다의 고래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태평양에 사는 고래가 바다를 마음껏 돌아다닌다 해도 정해진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음으로 운명은 정해진 거와 다름없지요.

어느 날 문득 태평양 너머에도 바다가 있음을 깨닫고 좀 더 먼 바다를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지구촌을 벗어날 수는 없음으로 그 또한 운명은 정해진 것이 됩니다.

하지만 태평양 안에서도 전체 바다 안에서도 언제나 고래는 자유롭습니다.

이래서 모든 것이 정해져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관조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관점이며 육신적인 인식의 것은 아닙니다.

고래가 누구에게도 속박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정해진바가 없는 것이지만 시공이 무너진 영혼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은 정해져 있는 겁니다.

사람의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고래가 바다를 헤엄치듯이 자유롭게 인생을 즐길 자유가 있으며 그림을 그리듯 마음대로 행동해도 됩니다.

그렇지만 본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합니다.

심해 깊은 곳으로 내려가 호흡곤란에 빠질 수도 있고 천적을 만나 사냥을 당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한다는 거지요.

이러한 까닭으로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할 때도 경험이 있는 조력자가 필요하며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인생에서는 이런 동반자를 일러 소울메이트(soulmate) 라 부릅니다.

영혼이 통하는 사람을 소울메이트라 했으니 영혼의 세계를 아는 이가 바로 소울메이트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알아야할 것은 이 땅에서 만날 수 있는 소울메이트 역시 똑같이 육신을 가지고 있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주관적이지 않고 보다 객관적이며 본인이 그림을 주도하기보다 동반자 위주로 그림을 그려갑니다.

상대방이 함께 그림그리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언제나 도움을 줍니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그림에 싫증을 나서 딴 짓을 한다고 느껴지면 자유롭게 놓아주는 선택을 하지요.

이러한 일이 이 세상에는 이별로 비춰지지만 영혼의 세계를 아는 이의 눈에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생에서 스승을 만나 영적인 함께 길을 걸어가다 등을 돌리거나 사랑하는 연인들과 이별을 하는 등의 일은 인생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런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저런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거지요.

그래서 깨달은 스승은 이별 또한 정해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필연이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진정한 소울메이트라면 끝까지 함께 하며 보살펴 주어야 한다고 여길 것이며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은 옳지 않다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성령은 절대 누군가의 손을 놓거나 이별을 선언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본인이 스스로 손을 놓지 않는 이상 성령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다만 성령을 담고 있는 육신이 등을 돌리는 겁니다.

흔히들 우리들은 사람의 죽음을 두고 하늘의 뜻이라고 하거나 죽을 운이었다고 말하며 돌아갔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도 모르게 정해진 운명이 있음을 인정하는 꼴입니다.

그러는 한편으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며 사람이 못할 일은 없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죽어서 영혼이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정해진 것이며 육신에 머물러 있을 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처럼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본인이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성령은 내재하고 있으며 인식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모든 것을 정해진 것으로도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지요.

이러한 까닭에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릅니다.

악몽을 꾸었다고 해서 반드시 현실에서 나쁜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좋은 꿈을 꾸었다고 해서 나쁜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이들 가운데 일부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지구촌의 미래를 알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틀린 말입니다.

만약 그럴 것 같으면 성경의 다음말씀은 부정되어야합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마25:24)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마25:25)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25:26)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마25:27)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마25:28)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25:29)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25:30)

 

이 말씀은 천국에 대한 비유의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세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이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지라 저절로 돈이 불어나게 만들어 줄 거라고 말하고 있지요.

여기에서 달란트는 화폐단위가 아니라 사람각자의 재능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사람마다에게 재능을 주었는데 활용을 하지 않고 썩히는 이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잘못 믿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신 성령이 인간의 몸을 통하여 세상에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주어진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책무라는 점을 알라는 거지요.

이러한 점을 볼 때 인간세상이 정해진 대로 흘러간다는 말은 틀린 말이며 곧 멸망할거라는 말은 허망한말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본인이 맡은바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의 멸망이 언제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인생의 멸망은 지금 당장 일어날 수도 있지요.

멸망은 세상과의 이별을 뜻하고 사람사이의 이별은 관계의 멸망이니 멸망을 걱정하기보다 멸망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인생은 그림을 그리는 작업과 같은 것이니 인연이 주어졌으면 최선을 다해야하고 상대방에 대해 신뢰(信賴)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왕 그릴 거면 잘 그려야하고 예쁘게 그려야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보기에도 좋고 그리기도 좋은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