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비가 많이 내립니다.
궂은 날이 지속되면 사람의 기분도 우울해 질수가 있습니다.
이럴 때면 어떻게든 기분 좋은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말이 쉽지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지요.
우울해지기 시작하면 한이 없고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비참하게 여기기에는 너무나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성령을 담고 있으므로 고귀하며 함부로 자신을 비천(卑賤)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내재(內在)한 성령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육신을 천하게 여기고 신분을 낮추는 것은 구도자(求道者)로서 바람직한 마음가짐이지만 물질적인인식하에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여 낙심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짓이라는 거지요.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를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이신 성령이 왜 이 모양으로 살게 하나 원망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이미 수차례 우리인간이 하나님이신 성령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으므로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하나님은 우리를 우울해지게 만들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마음이 들게 허용하시는 걸까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같은 일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의 해석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우리가 무엇인가의 잘못을 저질렀고 거기에 대한 벌로서 우울한 마음이 드는것이며 다른 하나는 시험에 들었기 때문이지요.
두 가지 모두의 경우가 결과적으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이며 영생을 향한 여정에서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 성경은 정확하고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리라마는(출7:3)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출7:4)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출7:5)
이 내용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어의 뜻을 알아야합니다.
바로왕의 뜻을 알지 못하면 해석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의 히브리어 뜻은 “큰집”으로 하나님이신 성령을 담고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집트(애굽)의 뜻은 “검은 땅”으로 빛이신 성령이 깨어나지 않은 이방인(이방의 땅)을 뜻하지요.
모세는 “물에서 건진 아이”이고 아론은 “고상함”이니 성령이 깨어난 인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고귀한 가르침을 이방인들에게 전해주었으나 사람들이 믿지 않고 불순종하며 영적인 길을 거부하는 반복된 행태를 보여준다는 내용이 출애굽의 핵심입니다.
재앙이 닥칠 때는 하나님을(인자로서의 모세) 믿는 것 같다가도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일에 사로잡힐 때면 또다시 마음을 바꾸는 일을 반복한 끝에 결국에는 장자가 죽는 재앙이 닥치고 나서야 이스라엘백성을(믿음의 길을 가도록) 놓아주지요.
성경에 언급된 장자는 사람의 육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육(肉)이 먼저 생겨야 영(靈)이 담길 수 있으므로 성경은 항상 육신을 먼저 앞세웁니다.
그러므로 출애굽은 빛(성령)이 들지 않는(성령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이집트=검은 땅)의 마음에 육적속성이 죽어야 비로소 영생을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는 것을 기록한 겁니다.
물질세상을 벗어나 영적인 길을 걷고자하는데도 열 가지나 되는 시험이(열 가지 재앙) 주어지는데 영생을 얻기 까지는 더욱 많은 시련이 주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모세를 통해 재앙이 닥칠 때마다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겠노라 약속하지만 또다시 번복하곤 합니다.
이렇게 바로 왕이 마음을 바꾸는 것을 성경은 하나님이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었다 기록하고 있지요.
이러한 일이 우리들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이기에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인 길을 걷고자하는 구도자의 영혼을 가리키며 그러한 영혼의 선택을 막아서는 것은 육적인 자아로서 바로 왕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처음부터 영적인 길을 걸어가도록 해버리면 되지 않느냐 말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믿음이 강하게 뿌리내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열 가지의 재앙을 겪는 동안에도 쉼 없이 영적인 길을 걷고자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에 자신도 모르게 강한 믿음이 형성되었으며 마지막에 육적자아가 죽게 되자 드디어 애굽땅(이방의 마음)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던 거지요.
이런 까닭에 바로왕의 마음까지도 하나님이 강퍅하게 만들었다 기록해 놓은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재앙이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일지라도 함부로 바라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주어지는 고난의 시험은 받아들여야하지만 자청해서 스스로를 고통 속에 빠트려서는 곤란합니다.
이 같은 교만한 마음은 그야말로 재앙을 불러들여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됩니다.
오죽하면 예수님도 다음과 같이 기도하라 했겠습니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6:13)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For thine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men
직역하면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으로부터 지켜 달라 입니다.(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왕국과 권능 및 영광이 영원히 당신 것이라 했으니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울한 마음이 들거나 기쁜 마음이 드는 모든 순간들은 하나님이신 성령이 주시는 것이며 성령은 우리 안에서 매순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여 일시적인 우울함은 더 큰 기쁨을 주려는 전주곡에 불과합니다.
타인들의 경우는 내가 알 수 없으나 나는 우울함을 이렇게 여기며 이겨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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