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을 통해 조금이라도 득을 보고자하며 자신이 손해 보는 쪽에 서는 것을 싫어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 같은 일은 너무나 당연하여서 하나의 법칙과도 같습니다.
개인 간의 일은 물론이며 노사(勞使) 관계도 마찬가지고 세상사가 이러한 법칙아래 굴러간다고 해도 무방하지요.
알고 보면 국가와 국민의 관계도 이러한 법칙아래 놓여있는 겁니다.
국민이 세금을 내야 굴러가는 국가의 시스템은 세금을 낸 만큼의 혜택을 국민에게 허용하게 됩니다.
알게 모르게 국가에 세금을 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그 혜택을 누리는 거라는 말입니다.
아마 많은 이들이 나라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을 하겠지만 이조차도 알고 보면 나라에 빚을 지는 것과 같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국가세금을 떼먹거나 남의 돈을 함부로 유용하는 이들을 보는데 영적으로 보면 참으로 위험천만한 짓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흔히들 복이 많은 사람을 두고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보다 말하고 재수 없는 일을 당하면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보다 말하는 것은 결코 허구(虛構)가 아닙니다.
뭔가를 심었기 때문에 싹이 돋아난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이 같은 일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들이 이런 일을 저절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삶을 살다보면 이생만 살아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노력하기만 해서 일이 성사될 것 같으면 운이 좋다거나 나쁘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고 별로 힘들이지 않는데도 일이 원활하게 풀리는 일이 다반사인걸 보면 현상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아도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기 마련이지요.
과거에 이런 일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 배웠기에 새벽부터 일어나 열심히 일을 했는데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일하는 사람을 본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보다 더 먼저 일어나 노력했는데 그때도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일하는 사람을 본거지요.
밤새워 일한다 해도 누군가는 나 먼저 노력하는 사람이 있고 나보다 오랫동안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노력의 결과물은 신이 주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영적인 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열심히 일을 하고 결과는 신께 맡기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영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 세상 적으로 무척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가장 큰 이익을 남기는 장사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지금 당장은 남을 이용하여 득을 보거나 국가의 세금을 빼먹는 것이 이익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모든 것이 내가 돌려받아야할 일이라 생각하면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본인을 이롭게 하고 득 되게 하는 겁니다.
요즘도 가끔씩 생각하는 것은 수천 년 동안 전쟁에 나섰던 그 많은 사람들은 왜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나라를 위했을까 입니다.
그 당시에는 요즘처럼 전산망이 구축되지 않았고 신원확인을 제대로 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인데 어째서 죽음을 자초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지요.
워낙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며 출세를 위해서라는 말이 있지만 이것이 모두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뭔가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여 전쟁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입니다.
영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자신이 국가에 손해를 끼쳤거나 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을 때 이런 일을 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어떤 영매(靈媒)는 결혼이 너무나 하고 싶은데 못하는 사람은 전생에 누군가를 성폭행한 벌을 받는다고 말하는 거지요.
성경을 연구하다보니 이러한 점은 너무나 명확하게 다가와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더욱 생각하게 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바로왕의 마음을 하나님이 강퍅하게 만들었다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주어지는 것들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내가 지어놓은, 혹은 뿌려놓은 일로인해 내 마음까지 움직여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확인할 수 없기는 하지만 영적인 길을 걷고 있거나 걸어갈 사람은 내말을 정확히 이해할 것이며 이해가 되지 않는 이들은 나를 멀리할겁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정확하게 말씀하신바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요10:25)
Jesus answered them, I told you, and ye believed not: the works that I do in my Father's name, they bear witness of me.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요10:26)
But ye believe not, because ye are not of my sheep, as I said unto you.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
My sheep hear my voice, and I know them, and they follow me: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And I give unto them eternal life; and they shall never perish, neither shall any man pluck them out of my hand.
예수님을 목자라 하며 그를 따르는 제자 및 사람들을 양으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유의 말일뿐 양과 목자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이라는 표현이 있는 겁니다.
어린양이라는 말은 착하고 순수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성령을 가리키지요.
그러므로 성령이 심어지거나 깨어나기 시작한 영혼 앞에는 반드시 예수님과 같은 분이 나타나게 되어있으며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할 것은 목적지가 분명해야 하며 살아가는 방식이 영적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물질적 성공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이는 이런 이를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등을 돌리게 됩니다.
지옥에 떨어질 영혼은 거기에 합당한 언행을 할 것이므로 그 마음이 강퍅해져서 영적인 사람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세상은 그야말로 웃기는 세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도 물어가지 않고 죽음에 이르렀을 때 한 푼도 가지고가지 못할 돈을 주거나 물질적 도움을 주면 고맙게 생각하고 존경을 표합니다.
그렇지만 영생을 얻게 해주고 영혼이 깨어나게 만들어주는 가르침에는 고마워하지 않으며 존경심을 가지지도 않지요.
오히려 공격의 대상으로 삼거나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 여기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혹시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한편으로 비웃습니다.
자신의 몸으로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으나 자신의 지금언행은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안다면 좀 더 신중하리라 생각합니다.
거듭 말하건대 나는 타인들로부터 물질적 이득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타인에게 영적인 이득을 주고자할 따름입니다.
겸손하고 착한 이들은 얻을 것이고 교만하고 악한 이들은 잃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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