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핑 중에 어떤 기독교인의 구약내용에 대한 질문을 본적이 있습니다.
모세가 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나 하는 것인데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없었지요.
그래서 이번기회에 제대로 된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출34:29)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출34:30)
모세가 그들을 부르니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출34:31)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하고(출34:32)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출34:33)
And till Moses had done speaking with them, he put a vail on his face.
시내(Sinai) 의 히브리어 뜻은 “가시나무숲”입니다.
이는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떨기나무숲과 동일한 것으로 빛이신 하나님을 본 것을 비유로서 말해놓은 겁니다.
산에 올랐다는 것은 높은 의식 상태를 뜻하며 의식의 정점을 뜻합니다.
성경에는 산에 올랐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하나님이신 성령을 만났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지요.
예문의 내용을 액면대로 보게 되면 하나님을 만난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기를 두려워 한 것으로 보이지만 속 깊은 내용을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알아야하는 것은 내재하는 하나님이신 성령을 만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상태를 29절은 설명하고 있는 것이며 30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보기를 두려워했다는 것은 의식의 단계가 높지 못하면 모세와 같이 성령이 드러난 사람을 알아볼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31절에서 모세가 불렀을 때 아론과 교회의 어른이 먼저 와서 말했다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어느 정도의 영적등급에 도달해야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만약 이러한 해석이 아니라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이 되고 맙니다.
모세의 얼굴에 광채 나는 것이 두려웠다는 것은 볼 수 없었다는 말인데 이럴 경우 모세가 하나님말씀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달했다는 32절은 성립이 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하나님을 믿는 이들)들에게 가르침을 주지만 제대로 성령을 알아보는 사람이 적었다는 것을 뜻하며 성령이 드러나려면 죄의식이 벗겨져 두려움이 없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성령이 드러난 이는 얼굴에 수건을 가린 것과 같아서 외형적으로는 알아볼 수가 없으며 대중들에게 영적가르침을 줄 때 성령의 역사하심을 힘입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32절)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작용할 때 가르침을 주는 이와 받는 이가 이심전심이 이루어진다는 거지요.
vail을 한글성경은 수건으로 해석했지만 이는 성령이 가려져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선택된 단어입니다.
아니면 타올(towel) 이라는 단어를 썼겠지만 성령이 가려져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이렇게 묘사해 놓은 겁니다.
이러한 점을 영적체험이 없는 일반인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우므로 신약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풀어서 말해놓았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고후3:13)
And not as Moses, which put a vail over his face, that the children of Israel could not stedfastly look to the end of that which is abolished: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후3:14)
But their minds were blinded: for until this day remaineth the same vail untaken away in the reading of the old testament; which vail is done away in Christ.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고후3:15)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고후3:16)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3:17)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모세와 같이 성령이 드러난 사람(예수와 같은 인자)이 빛이신 성령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육신을 하나님으로 알게 될까 걱정되기 때문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폐지될 것의 마지막이라 했으니(the end of that which is abolished) 육신을 가리키는 것이며 모세가 성령이 드러났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할 경우 모세의 육신을 하나님을 알게 되기에 고정된 시각을 가지지 않게 한다고 말해놓은 겁니다.(children of Israel could not stedfastly look)
이러한 점을 볼 때 우상숭배의 늪에 빠질 것을 우려해서 모세가 얼굴을 가렸다는 점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바울은 모세처럼 성령이 드러난 것을 숨기지 않고 과감하게 벗어던지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가려져 있기 때문에(their minds were blinded) 구약에 담긴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고 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벗겨진다고 합니다.
이당시 이미 그리스도 예수는 승천(?)을 했으므로 성령이라 봐야하며 성령이신 예수를 믿음으로 인해 성령과 하나 되는 영광을 얻게 될 거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때껏 성령과 하나 됨을 얻지 못한 이들도 많았던 모양으로 모세의 글을 읽을 때 수건이 마음을 덮는다고 했습니다.(15절)
이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숭배의 늪에 빠지지 않게 배려한 것은 좋으나 오히려 성령을 깨닫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뜻이지요.
철저하게 모세가 육과 영을 분리시켜 말해놓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께로 돌아가면 벗어진다고 말해놓았으며 주님이 성령이라는 점을 말해줍니다.(16절)
성령이 머무는 곳은 시공이 없는 세계인지라 자유로움이 있다 말하고(17절) 빛의 몸이 되기에 서로가 거울을 보듯이 한다고 했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뀐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건데 성령에 대해 제대로 알고 믿으면 살아생전 하나님과 하나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육신을 버리는 순간 성령과 하나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러므로 모세의 수건은 예수님시대에도 오늘날에도 마음에 가려져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으며 한시바삐 제거해야할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부디 많은 이들이 베일에 가린 성령을 드러낼 수 있기를 기원하며 모세의 수건을 상고해보는 시간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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