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른들 말씀에 개는 주인을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누구나 한 번씩 들어보았겠지만 실지로 키워보지 않고서는 왜 이런 말이 생겼는지 제대로 알기는 어렵지요.
주변을 보면 반려 견을 키우는 집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가정에서 식구이상의 대접을 받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다들 모르고 있겠지만 개를 키우게 되는 것이 결코 우연히 아니며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저 어쩌다보니 개를 키우게 된 것이 아니라 에너지(인연)의 영향에 의해 서로를 끌어당겼다는 겁니다.
영적으로 보자면 개나 사람이나 다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 할 수 있으며 생각에 따라서는 한 형제나 다름없습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일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내용이 있지요.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것이 헛됨이로다(전3:19)
For that which befalleth the sons of men befalleth beasts; even one thing befalleth them: as the one dieth, so dieth the other; yea, they have all one breath; so that a man hath no preeminence above a beast: for all is vanity.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전3:20)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3:21)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전3:22)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는 짐승과 사람을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 취급합니다.
성당 다닐 때 신부님이 복날이 되면 개를 잡아 신도들과 먹는 경우가 허다했지요.
왜 이러한 일이 당연시 여겨지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성경을 제대로 읽었다면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19절을 보면 인생에게 닥치는 일이 짐승에게도 일어난다고 했으며 동일한 호흡이 있다고 했습니다.
호흡이란 하나님의 숨결이자 생명력이며 성령을 뜻합니다.
아마 이런 말을 하면 어떤 목사님은 펄쩍 뛰며 반대하겠지만 성경의 내용으로 보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도자가 말하기를 짐승보다 사람이 특출한 것이 없다고 했으니 이것은 사사로이 하는 말이 아닙니다.(a man hath no preeminence above a beast)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들은 사람에게만 영혼이 있고 짐승은 영혼이 없기 때문에 동일하지 않다 말하겠지만 21절을 보게 되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이 땅으로 내려간다고 했으니 영혼이 동일하게 들어있음을 알 수 있지요.
무엇보다도 전도자가 이런 말을 남긴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본인의 진정한 영혼인 성령을 깨닫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짐승 같은 짓을 하게 되면 그 영혼이 짐승의 몸을 받아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알게 합니다.
성령이 들어있는데 어찌 짐승의 몸을 받을 수 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죽게 되면 영은 온 곳으로 돌아가고 혼백은 흩어지며 육신이 땅으로 돌아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됩니다.
성령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사람이 자신으로 알고 있는 인식체인 영혼(혼백)은 낮은 영의 세계에 머물게 되며 자신의 살아생전 과보(果報)에 따라 일정기간을 보내다가 다시금 세상으로 돌아오게 되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게 되면 짐승과 사람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야하며 영혼이 완전히 달라야합니다.
그렇게 되면 동일한 호흡이 들어있다 말해서는 안 되며 구태여 짐승을 들먹이며 혼이 땅으로 내려간다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네 인생을 살펴보면 이 같은 해석은 너무나 당연한거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에 자신의 영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며 그중에서도 성령에 대해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를 생각해보면 내말이 이해가 될 겁니다.
기독교도 스스로가 말하기를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모두가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영혼에 대해서 제대로 알 필요가 있음을 시사(示唆)합니다.
우리가 같은 교회를 다니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은 하지만 실지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만약 그렇게 간단하게 될 것 같으면 예수생존 당시에 이미 구원이 끝났어야 되는 겁니다.
예수로부터 동일한 가르침을 배우고 익혔지만 그 결과는 다르다고 했지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For what is a man profited, if he shall gain the whole world, and lose his own soul? or what shall a man give in exchange for his soul?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마16:27)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16:28)
이 내용을 예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이는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크게 오해 한 겁니다.
만약 그럴 것 같으면 저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구원받지 못한다는 예수님말씀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25절에 나를 위하여 라고 한 것은 성령의 입장에서 말씀하신 걸로 봐야합니다.
그리고 26절은 명백하게 잘못된 해석입니다.
천하를 얻고도 그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리면(lose his own soul) 무슨 이득이 있으며 사람이 무엇으로 영혼과 바꿀 것인가로 바꾸어야합니다.
육신보다 영을 소중히 여겨야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인데 육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얼토당토 않는 해석을 한 겁니다.
살아생전 내재(內在)하는 성령을 위해 자신의 목숨조차 아끼지 않을 때 인자의 영접을 받는다고 했고 자신이 행한 행위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본인의 노력여부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을 위하면 영의 것이, 육을 위하면 육의 것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거지요.
그러므로 짐승과 같은 짓을 한사람은 당연히 그 영혼이 밑으로 내려가야 하는 것이며 성령을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은 사람의 영혼은 영생의 하늘로 들어 올림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면 용서받고 구원받는다 했으니 백정이 칼을 놓을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주어집니다.
짐승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은 이는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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