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양심을 살리는자, 죽이는자.

배가번드 2023. 9. 28.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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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이란 어렵게 생각하면 무척 어렵고 쉽게 생각하면 아주 간단합니다.

이 세상 자체를 연극무대라 생각하게 되면 너무나 간단하며 죽는 것을 연극이 끝났다고 여기면 됩니다.

우리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였고 지금 하는 일이 내 역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저 맡은 일에 충실하고 열심히 일하며 살다 돌아가면 그만이지요.

그렇지만 역할에 충실한 나머지 남을 이용하고 남에게 못할 짓을 하는 바람에 죄가 지혜를 가리고 영혼을 어둠에 빠트리게 되는 겁니다.

죄는 악하며 악은 빛과 반대되는 어둠이라 빛이신 성령을 가리게 됨으로 영생을 얻지 못하고 윤회를 거듭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머리가 좋아 남을 잘 이용하고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 부유하고 풍족하게 되면 영혼의 등급도 높아질 것 같지만 아쉽게도 그렇다고 보기 어렵지요.

물질세상의 최고봉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죄를 지었음을 우리는 눈으로 확인을 하게 됩니다.

재벌회장들이 연이어 감옥을 들락거리고 판검사출신들이 옷을 벗는 것은 물론 심지어 교도소 가는 일이 허다합니다.

법이라는 것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정권이 바뀌게 되면 온갖 권력을 누리던 자들이 죄인이 되어 감옥 간다는 사실을 볼 때 그들 스스로가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법해석을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사실 법이라는 것은 사람들 간의 약속에 불과한 것으로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시대에 따라 법적용이 달라진다는 점만 보더라도 하나의 약속이며 얼마든지 어겨질 수 있습니다.

그때는 그러한 일이 죄가 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죄가 되지 않는 일이 얼마든지 많기에 내말은 참됩니다.

이처럼 물질세상의 법이란 영원하지도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지도 못합니다.

아무리 명판사가 판결을 내린다 할지라도 진정으로 정의로울 수 없으며 죄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본인 스스로가 정의롭고 신 앞에서도 떳떳하다 말하면 할 말은 없으나 세상의 이치상 이렇게 되기는 어렵습니다.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어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다 생각하면 모르겠지만 내보기에 소위 말하는 출세한 자들이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을 본적이 없음을 볼 때 육신을 가진 자로서 신 앞에 떳떳할 자는 아무도 없다 여겨집니다.

아마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내말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며 본인들은 양심에 비추어 떳떳하다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내면에 신이 살아나지 않은 양심은 진정한 양심이 아니라 두뇌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자신의 양심이 누구를 이롭게 하는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나를 이롭게 하는 양심의 소리는 자신의 죄를 변명하는데 급급할 것이며 타인을 위하는 소리는 애써 무시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자신을 위하는 양심은 신이 죽어버린 사람의 것이고 타인을 위하는 양심은 신이 살아난 자의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깨닫게 하기위해 신은 사람들에게 역할을 바꾸어서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윤회라고 합니다.

이러한 점을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지요.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5:21)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마5:23)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4)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마5:25)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5:26)

Verily I say unto thee, Thou shalt by no means come out thence, till thou hast paid the uttermost farthing.

 

살인하지 말라는 10계명 중에 하나입니다.(21절)

그렇지만 예수님은 형제에게 노하거나 바보라 말하며 미련한 놈이라고 하면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22절)

이 말씀을 잘못 받아들이면 말이 안 된다 생각하게 됩니다.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누구나 한번쯤은 형제에게 화를 내기 마련이며 바보라고 하거나 미련하다 말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액면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담긴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육신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님을 알라는 뜻에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3절을 보다시피 제단 앞에서 예물을 올리고 있는 중이라고 한 사실을 볼 때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서 일어난 일임을 알 수 있지요.

즉, 우리내면에서(육신은 성전) 살아나신 성령(양심)에 비추어볼 때 상대방에게 잘못한일이 생각이 난다면 그 즉시 화해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내 육신을 온전히 버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육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져야 성령과 하나 될 수 있기에 상대방과 화해를 한 후에 제물을 드리라 말씀하신 거지요.(24절)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누군가와 어떤 일을 도모(圖謀)하기 마련이며 때로는 반목(反目)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할 때 제때 해결을 하지 못하면 그 일로 인해 내 영혼이 육신을 버리고 성령과 하나 되는 영광을 얻을 수가 없게 됩니다.

상대방의 원망하는 마음으로 인해 발목이 잡힘으로 영혼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25절에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심판받고 감옥에 가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현상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생전 모든 인과정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빚을 졌다면 그 원망하는 마음으로 인해 자신의 영혼이 자유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예수님은 26절에서 호리라도 갚지 않으면 감옥에서 나올 수 없다 말하고 있지요.(by no means come out thence, till thou hast paid the uttermost farthing)

이세상은 영혼의 감옥이고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은 윤회의 틀 속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 같은 일은 성령을 깨닫는데 있어서 너무나 간단한 방법이고 세상을 가장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성전인 내 육신 안에 거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믿게 되면 성령이 되살아나서 내가 행할 바를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우리 스스로가 눈을 감고 귀를 막지 않는 이상 성령은 항시 말해주고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