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어김없이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전도사님으로부터 성경 말씀을 듣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확인하는 동시에 성경을 상고(詳考)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위한 노력을 한 겁니다.
사실 성경을 읽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유일한 정답이라 말할 것은 어디에도 없지요.
상고하라는 말 자체만 하더라도 꼼꼼히 따져보고 분석하라는 상고(詳考)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서로 비교하라는 상고(相考)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던지 목적지인 천국에 이를 수 있다면 어떤 해석도 가능한 것이지 이렇게만 받아들여야한다는 규정은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며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를 만들고 독사가 마시면독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로 전도사님이 하신 말씀 중에 나와 견해의 차이를 보이는 대목을 몇 가지 말해볼까 합니다.
우선적으로 전도사님은 성경이 인류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며 있었던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나로서는 역사적으로 있었다기보다 담긴 뜻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사람이 몇 백 년씩 살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정말 사람이 수백 년씩 살았다기보다 숫자에 담긴 뜻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창세기 5장을 보면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수백 년씩 살았다고 나오는데 여기에는 담긴 뜻이 있는 것이며 액면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입니다.
시간관계상 모두를 옮겨 놓을 수는 없는지라 등장인물에 따른 뜻만 몇 가지 간추려 보겠습니다.
노아 방주의 주인공 노아의 할아버지는 므두셀라로 뜻은 “창던지는 자,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이며 아버지 라멕은“능력 있는 자”이고 노아의 뜻은 “위로하다, 위안, 휴식”등입니다.
이렇게 삼대만 놓고 보면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기도하여 하나님과 하나 되면(능력 있는 자가 되면)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노아와 같은 사람이 된다고 해석할 수 있지요.
노아의 방주가 “구원의 배”라는 사실은 너무나 널리 알려진 바로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는 수백 년씩 살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실질적으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 담긴 뜻이 있음을 말해주는 내용이 성경에 있습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창6:1)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6: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6:3)
보시다시피 사람의 날이 일백이십 년이 된다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수백 년을 살았다고 기록한 성경말씀은 거짓이 되거나 아니면 이 내용이 거짓이 되어야합니다.
분명히 창세기 6장 3절까지의 말씀은 노아방주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기록된 내용임으로 창세기에 기록된 년 수는 사람의 수명을 가리킨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이라는 점을 볼 때 여기에는 담긴 뜻이 따로 있는 것이며 해석을 달리해야 하는 겁니다.
노아가 구백 오십 세를 살고 죽기 전에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문으로 올린 창세기6장 내용은 사람의 육신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담긴 과정을 말해주는 것으로 역사적인 사실로 보기 어렵습니다.
1절을 보더라도 구태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과 결혼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번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기록한 것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성령과 함께하는 사람(깨어난 사람)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을 제멋대로 아내로 삼았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에 담긴 뜻이 따로 있음을 알아야하며 여기에 대한 해답역시 3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지 않는다고 말한 점을 볼 때 앞서 사람의 딸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결혼한 것이 혼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사람의 몸 안에 심어지는 과정을 뜻한다는 점을 알 수 있지요.
120(12×10=120)년은 12와 10을 나누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12년은 삼위일체(3) 하나님과 사람이(사람의 숫자4) 연합한 숫자이며 10은 완전의 숫자입니다.(3×4=12)
그래서 성경에는 12사도와 12광주리 등의 말이 나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100라는 숫자도 완전에 완전을 거듭한다는 뜻이 있습니다.(10×10=100)
이러한 인식하에 예문의 내용을 보게 되면 우리자신을 성령이 임하실 수 있게(선택받을 수 있게) 아름답게 꾸며야한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들들의 마음에 들게 처신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하나 되어 영생의 하늘에 올라 빛의 몸으로 존재하는 성령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보내신다는 보혜사는 바로 이러한 존재들로서 우리가 자격을 갖추었을 때 나타납니다.(드러남)
바로 이러한 과정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로 삼았다 한 겁니다.
물론 이 같은 말은 나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므로 누구나 받아들이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볼 수 있어야 성경에 담긴 뜻을 헤아릴 수 있게 되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내말을 믿지 않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에덴동산에 대한 것만 제대로 알아도 성령의 역사하심은 일어납니다.
이번 집회에서도 전도사님이 말씀하셨듯이 에덴동산이 실지로 있었으며 중동지역의 땅속에 묻혔다고 하셨지만 속뜻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지요.
에덴동산의 뜻은 “기쁨의 동산, 극락의 정원”입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을 사방으로 흘렀다는 강 이름에도 담긴 뜻이 있습니다.
비손의 뜻은 “자유롭게 흐르다, 쏟아진 물”이고 기혼의 뜻은 “뿜어내다, 솟아난다.”이며 힛데겔의 뜻은“큰 강” 그리고 유브라데는 “흐르다, 커다란 강”이라고 합니다.
이 같은 점을 볼 때 에덴동산은 생명의 근원(물)을 뜻하며 태초에 인간이 영일 때 속해져있던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다시 말해 우리가 돌아갈 곳이 바로 에덴동산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쉽게 돌아갈 수는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창3:23)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So he drove out the man; and he placed at the east of the garden of Eden Cherubims, and a flaming sword which turned every way,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fe.
사람이 에덴동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빛이신 성령을 깨닫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해가 뜨는 동편에 케루빔과 화염검을 둘러놓았다고 한 겁니다.
생명나무는 영생을 뜻하는데 그곳으로 가는 모든 길을 케루빔과 화염검을 지키고 있다고 하지요.(a flaming sword which turned every way,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fe)
케루빔은 지천사로 부르기도 하고 아기천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원뜻은 “경외하여 맞이하게 되다”입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이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맞이하게 된다는 뜻이며 화염검은 말 그대로 번개와 같은 빛을 가리킵니다.
빛이신 성령을 보았을 때 영생을 얻게 됨을 이렇게 표현한거지요.
생명나무에 이르는 모든 길에 이러한 시험이 놓였다고 했으니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빛이신 성령이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볼 수 없다 하여도 육신을 벗어나는 날 공중재림하시는 성령을 보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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