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집회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도사님의 설교가 사람의 육신이 죄악 덩어리이고 그 죄를 참회해야한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이러한 말씀은 교회 다니기 전부터 몸소 느끼고 있는지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입니다.
30년 가까운 명상수행은 나로 하여금 육신의 죄를 철저히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명상을 하기위해 눈만 감으면 지나온 내 과거속의 죄가 드러나 눈을 감기가 겁이 날 정도였으며 지옥도 세 번이나 다녀왔을 정도로 영적체험도 다양하게 했지요.
성경이 인간의 몸을 죄악덩어리로 보고 이 세상을 지옥으로 보는 이유를 알게 된 셈입니다.
그런데 전도사님의 설교 중에 한 가지 짚어 봐야하는 대목이 생각납니다.
지옥에 떨어지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내경험에 의하면 지옥에 가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지옥을 다녀온 이들이 많으며 그들 또한 지옥에서 벗어났음을 성경은 기록합니다.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2:2)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가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음부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시86:13)
For great is thy mercy toward me: and thou hast delivered my soul from the lowest hell.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은 영벌(永罰)에 처해진다는 것과 지옥에 가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영벌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절단된다는 뜻입니다.
예문을 보다시피 지옥에 가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뉘우치면 용서받게 됩니다.
죄가 커서 지옥에 떨어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크신 자비로움은(great is thy mercy) 내 영혼을 건지실수 있다는 말이지요.(thou hast delivered my soul from the lowest hell)
그런데 한글 성경이 말하는 음부는 영어성경을 보면 가장 낮은 지옥을(the lowest hell)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은 지옥에도 많은 층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천국에도 다양한 층들이 있음을 시사(示唆)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천주교에서는 망자를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며 불교에서도 천도식을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한번지옥에 떨어지면 영원히 헤어날 수 없다는 가르침은 잘못된 것이며 영의 세계를 제대로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평소에 성령이 드러난 이와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며 믿음을 간직하고 있느냐 입니다.
사실 지옥이라는 곳의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이지요.
그러므로 경험자들이 잠시라도 머물 곳이 못 된다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 시간이 길게 느껴지듯이 지옥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지게 됩니다.
그래서 시간이 멈추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며 고통이 영원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것을 선지자 욥도 다윗왕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까 합니다.
욥과 다윗은 예수님보다 훨씬 전의 인물들인데 이들은 과연 누구로부터 구원을 받았을까요.
예수만이 구원자라고 한다면 이들이 선지자로서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말은 거짓이 됩니다.
성경을 읽어본 이들은 아시겠지만 이들 모두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은 이들입니다.
내재(內在)하신 하나님, 즉 성령으로부터 구원받았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역시 내재하신 성령을 만나야 하고 응답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여기에 대해 직접 말씀하신바가 있지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여기에서 또다시 질문을 하겠습니다.
예수사후 2천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과연 보혜사는 왔을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16절을 보면 예수께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또 다른 보혜사를 제자들에게 보낸다고 했으며 그가 영원토록 함께 한다고 합니다.
그가 진리의 영이라 했으니 분명히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앞서 또 다른 보혜사라고 했으니 성령이 드러난 예수님 외에 또 다른 성령이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성령이 빛이라 했으며 하나님 왕국에서 수많은 빛의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17절에 세상은 성령을 받지 못한다 했는데 이는 물질적이고 육적인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은 성령을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성령이 드러난 예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자신 안에 성령이 있음을 알고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했지요.
이 말씀을 보건데 예수님이 다시 세상에 와야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보내신다는 또 다른 보혜사를 볼 수 없을까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미 말했듯이 보혜사는 빛이신 성령을 가리키는데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반드시 영안(지혜안)이 열려야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이 허락해야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할 겁니다.
여기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The sacrifices of God are a broken spirit: a broken and a contrite heart, O God, thou wilt not despise.
상처받은 영혼이 진정으로 참회할 때 하나님께서 돌아보신다는 뜻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상처받은 것도 억울한데 참회까지 해야 한다는 것은 뭔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겁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깨닫고 나면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을 때 그조차도 하나님 뜻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뭔가를 심어놓았기에 돌아온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성령을 깨달았을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상처를 받았을 때조차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며 참회를 하게 되지요.
그러므로 회개하고 용서받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
다른 이는 모르겠고 나는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메시아 이신 예수생존당시 제자들 중에도 구원받지 못한 이가 있음을 아는 이는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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