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주간은 무척 바쁘게 보냈습니다.
평상시에도 늘 바쁘게 지내긴 하지만 더욱 심하게 바빴다는 말입니다.
퇴근 후 성경공부 하는 점에 있어서는 큰 변화가 없지만 집에서 조용히 혼자 공부하는 것과 교회를 나가서 두 시간 말씀을 듣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난 후 감상문(?)까지 작성해야 하는지라 무척 바쁘게 지내야 했지요.
피곤한 가운데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들었던 것은 전도사님의 설교와 내경험과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봐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하는 일은 달랐던 겁니다.
전도사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라는 사명을 받은 것이며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교회에서 전하는 말씀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살피라는 사명을 받은 셈입니다.
그분은 그분대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나는 나대로의 역할을 담당한 거지요.
여기에는 절대적으로 누가 옳고 그름은 없으며 옳다는 주장만이 있고 옳다고 받아들이는 마음만이 있을 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사님 말씀대로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우리 죄를 도말시켰다고 생각하고 다시 태어났다 여기며 새로운 마음으로 선행을 베풀고 복음말씀을 전하며 살아간다면 그 행위에 따라 천국에 이를 수도 있음으로 구원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겁니다.
아니면 나처럼 내재하신 성령이 깨어났다 생각해서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 마냥 굴어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으니 그 또한 정답이라 말할 것도 아닙니다.
이러나저러나 모든 것은 자신이 할 탓이고 받아들이는 마음상태가 중요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구원을 받게 되면 반드시 육신의 한계를 느끼게 되어 바르게 살게 됩니다.
성령은 곧 내안에 살아있는 양심과 같아서 도덕적이고 율법적인 생활을 하게 만듭니다.
또한 이기주의적인 마음보다는 이타행을 실천하게 되어있으며 봉사와 헌신을 즐겨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행하는 일을 보고 그 사람을 평가 한다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마16:27)
For the Son of man shall come in the glory of his Father with his angels; and then he shall reward every man according to his works.
만약 내 행위와 무관하게 구원이 이루어질 것 같으면 이 말씀은 틀린 말이 됩니다.
이 말씀은 우리 안에서 성령이 깨어나게 되면 인과가 곧바로 주어지게 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곧바로 징계가 주어지는 것이 이래서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한순간에 죽음에 이르러도 곧바로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겁니다.
또한 이 내용은 우리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하늘에 올라 심판을 받게 되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는 예수님의 공중 재림 때 일어나는 일이라 여기며 진정한 부활의 날에 일어날 일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옳다면 예수님 피가 우리 죄를 영원히 도말시켰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는 버려야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피가 우리 죄를 영원히 도말시키든지 아니면 부활 때 심판을 받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한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모순된 주장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령에 대해 모르기 때문으로 성경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만이 구원이라 생각하다보니 생긴 오류로서 예수를 육적인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며 성령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됨을 주장하기 위해 목회자들은 이사야서를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잘못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사43:10)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43:11)
I, even I, am the LORD; and beside me there is no saviour.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43:25)
I, even I, am he that blotteth out thy transgressions for mine own sake, and will not remember thy sins.
10절 말씀을 두고 목회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지는 하나님말씀이라 여기고 있지만 속 깊은 뜻을 헤아려보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 모두에게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뜻은“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하나님이 싸운다. 하나님은 강하다”등으로 영적인 길에 나선 구도자 전부를 통칭하는 겁니다.
이를 액면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만이 선택받은 민족이 되며 구약성경은 이스라엘민족에게만 적용할 책이 되고 맙니다.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인들이 선민사상(選民思想)에서 못 벗어나는 것이 성경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지극히 오해한 것으로 하나님은 어느 특정한 민족에게만 역사하시는 존재가 아닙니다.
예문을 보다시피 여호와 전에도 후에도 신이 없다한 것은 그가 우주만물을 비롯해 온 세상을 창조한 분이라는 점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외에 구원자가 없다고 했으니 예수님이 구원자가 되려면 불가피하게 하나님과 동일해져야합니다.
개신교에서 오로지 예수만이 구원자라 말하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일해 지려면 예수님 육신으로서는 불가능하며 빛이신 성령이 되어야 하지요.
만약 육신으로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면 그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어야 하며 재림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보혜사를 보낸다는 말을 해서도 안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아가 되려면 빛이신 성령이 되어야하는 것이며 이사야서 내용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라 주장하려면 육신예수가 아닌 성령이신 예수님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예수의 공중 재림이 육신부활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시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25절을 보다시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죄를 기억하지 않고 도말(塗抹)시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죄를 덮어 준다고 말하고 있음을 볼 때(blotteth out thy transgressions) 성령을 깨닫고 나면(드러나게 되면) 육신과는 무관한 존재가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지요.
성령은 곧 하나님이므로 하나님이 자신을(성령) 위해 사람의(육신의) 죄를 도말하여 기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만약 전도사님 말씀처럼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도말시켜 준다는 말이 성립되려면 피가 성령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물리적인 관점에서의 피로 받아들인다면 그야말로 미궁 속을 헤매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활동 시기는 B. C. 7세기경입니다.
예수님과 약 700년의 차이가 있지요.
그런데 이사야서에 기록된 내용이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 것이라고 말하게 되면 예수탄생까지 700년 동안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는 말이 되고 맙니다.
이래서는 성경말씀이 진리의 경전이 될 수 없습니다.
11절 말씀대로 여호와 외에 구원자가 없다는 것이 진리의 말씀이 되려면 하나님이 빛이신 성령으로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고 그가 와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받아들이게 되면 이 세상 누구도 구원받지 못했으며 모든 영혼이 어딘가에 머물고 있다가 예수의 부활에 모두가 되살아나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상세하고도 세밀하게 말해주어도 이해가 안 된다면 답이 없습니다.
그저 본인이 믿던 대로 믿고 내게서 멀어지기 바랍니다.
음부에도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이는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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