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각 교회에서 사람들이 나와 전단지를 나누어주며 전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구원을 받았다 생각하고 그 좋은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려 나름의 노력을 하는 겁니다.
나 역시 명상단체에 속해 있을 때 이와 같은 일을 많이 해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런 분들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그들의 행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분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복음전파를 하는 것이고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할 점은 어떤 일에도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만약 누군가에게 수행을 권유해서 그로 하여금 영적인 길을 걷게 만들었다면 일정부분 감당해야할 일이 있다는 겁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막10:29)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30)
But he shall receive an hundredfold now in this time, houses, and brethren, and sisters, and mothers, and children, and lands, with persecutions; and in the world to come eternal life.
29절에 예수께서 나와 복음이라 한 것은 성령과 진리의 말씀을 가리키는 거지요.
이 말씀을 보건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물질과 육적인 속성을 버릴 준비가 되어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말씀을 액면대로 받아들여 부모자식을 버리고 몸도 재산도 교회에다 바치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육신과는 무관하고 이세상과도 무관한 성령을 깨달아야 영생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물질세상이나 육신보다 영을 중시 여겨야 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백배나 돌려받는다 한 겁니다.(receive an hundredfold now in this time)
자신에게 속한 재산과 자신의 부모형제만이 본인의 소유물과 혈육이 아니라 다 같이 하나님의 소유물이자 자녀라는 인식을 가지라는 뜻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적인 연결고리가 형성된다는 뜻으로 복음말씀을 통해 서로가 성령의 이름아래 혈육과 같이 되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부모형제 및 재산이 백배 늘어난 것은 좋지만 여기에 따라 핍박 또한 겸하여 받는다고 합니다.(with persecutions)
이 말씀을 진리에 대적하는 무리들로부터 공격의 화살이 쏟아지는 것이라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복음을 전달함으로 인해 짊어져야할 책임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점을 불가(佛家)에서는 업장을 공유한다고 표현하며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십자가를 함께 진다 말할 수 있지요.
예수께서 처음에 자신이 모든 이들의 짐을 짊어진다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Come unto me, all ye that labour and are heavy 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이 말씀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예수님이 우리 짐을 모두 짊어진 것이 되지만 이는 성령의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성령을 깨닫게 되면 모든 죄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뜻입니다.
몰론 이 말씀을 액면대로 받아들여 예수께 기도를 함으로서 내 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행초보자의 경우이며 영적인 길에 접어든지 오래되어 성장하게 되면 기도의 적용범위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신 거지요.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
처음에는 자신의 짐을 예수께 맡기며 살아가지만 성령의 불꽃이 피어나 예수님과 같아지게 되면 예수님과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24절 말씀은 예수님을 무턱대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 되신 예수님과 같이 동등해져야함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세상 죄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리며 돌아가신 예수님처럼 세상 죄를 감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25절에서 목숨을 걸어야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신거지요.
육신과 물질보다 영을 우선시해야 우리의 본신인 성령을 찾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거라 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성장을 하게 되면 반드시 이러한 말씀의 적용을 받는 일이 발생하며 자신역시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져야함을 알게 됩니다.
이는 내가 사사로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눅13:18)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눅13:19)
It is like a grain of mustard seed, which a man took, and cast into his garden; and it grew, and waxed a great tree; and the fowls of the air lodged in the branches of it.
하나님 왕국이 우리 안에서 실현되려면 반드시 이런 과정을 겪기 마련입니다.
성령이 심어져 성장하면 본인자체가 빛을 발하게 되며 사람들에게 성령의 불꽃을 나누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19절에서 성령이 담긴 구도자를 광(光)을 입힌 커다란 나무에 비유하고 있는 겁니다.(waxed a great tree)
이 같은 일은 구도자라면 누구나가 경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전도를 한다는 것은 이러한 일을 실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는 거지요.
쉽게 생각해서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결혼을 했다고 쳤을 때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책임지는) 것과 같이 영적으로 연결고리를 형성하여 한 가족과 같이 된다는 것은 상대방의 십자가를 함께 진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말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이의 경우에는 내가 잘 알지 못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오랜 기간을 수행단체에서 생활을 했으므로 이런 상황을 많이 경험했지요.
함께 수행하는 동료 수행자들을 형제자매로 여기는 것을 물론 한 가족처럼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어려움은 곧 나의 어려움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들의 즐거움이 내 행복이라 여겼던 겁니다.
때로 오해와 불신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성장 통이라 여기며 지내온 거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영적인 길을 걷는 경우 반드시 십자가를 함께 져야함을 인식해야합니다.
초보자를 데려다 놓으면 실수를 연발할 수 있으며 세상에서 묻혀온 때를 씻는 과정이 필요한 법입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할 것이 분명하며 오래참고 견디며 지켜보는 인내심이 필요할거라 여겨집니다.
이 같은 일은 성령이 드러난 이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성령이 드러나기 위해 행해야하는 의무이기도 합니다.
진정으로 배웠다면 실천할 수 있어야하는 겁니다.
나는 성경말씀을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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