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바쁘게 산다는 것은 행복한 겁니다.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은 그보다 좋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한주간은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나 홀로목사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내 바람에 따라 성경을 제대로 상고해보는 시간이 주어졌으니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주에 전도사님이 예로 들었던 구약을 다시 한 번 살펴볼까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사9:6)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7)
Of the increase of his government and peace there shall be no end, upon the throne of David, and upon his kingdom, to order it, and to establish it with judgment and with justice from henceforth even for ever. The zeal of the LORD of hosts will perform this.
전도사님께서는 6절에 나오는 아기가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맞으려면 예수님은 육신으로 인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7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현현하려면 시공간이 무너진 빛의 존재인 성령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다윗의 권좌에 앉아 그의 왕국을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겁니다.(upon the throne of David, and upon his kingdom, to order it)
그리고 지금이후부터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서 그 왕국을 세운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to establish it with judgment and with justice from henceforth even for ever)
지금 이 내용을 말하는 시점은 이사야시대이며 다윗과도 300년의 차이가 있지요.
다윗과 예수탄생과는 1천년이 넘는 세월이 놓여있으므로 그동안에도 여호와이신 하나님은 정사와 평강을 확장시켜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Of the increase of his government and peace)
다윗으로부터 이사야 시대까지 지속적인 확장이 이루어져 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신다 한 겁니다.(The zeal of the LORD of hosts will perform this)
이 말씀은 성령의 역사하심이 어떠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내용으로 상세하게 분석해봐야 합니다.
만군에 속하는 영어 hosts는 “주인, 주최자, 주재자” 등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우리 몸의 주인을 가리키는 것이며 육신과 영혼모두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이 자신 몸의 주최자라 여기는 이에게 host는 육신으로 인식될 것이며 영혼이 몸의 주인이라 여기는 이에게 host는 영혼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며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한 이에게는 성령이라 여겨질 겁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해석을 하게 되면 우리 몸과 마음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신다가 됩니다.
이 내용은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이가 들으면(믿지 않으면)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할 때 하나님의 열정이 작용을 하게 되면 이세상이 단박에 변화를 일으켜 천국이 될 것 같지요.
그러나 인류역사상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여전히 지옥과도 같은 세상은 유지 되고 있습니다.
다만 지옥 같은 세상을 통해 성령을 깨닫고(드러내고) 영생의 하늘로 올라가는 영혼들이 있었을 뿐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인간스스로가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말은 영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됩니다.
우리의 진정한 영혼은 원래 에덴동산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던 겁니다.
에덴동산은 선악의 구분 없이 평평한 곳으로 평화와 즐거움만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곳에 오래 머물러있던 영혼은 어느 날 문득 세상을 내려다보고 신기해하며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에덴동산에는 없는 세상의 고통과 괴로움을 맛보고 싶기도 하고 지옥 같은 세상에서 허우적거리는 불쌍한 영혼을 구제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 세상으로 내려옵니다.
하지만 막상 내려오면 자신이 머물던 곳의 기억을 상실하게 되고 본인역시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통 속에 빠져 한동안 지내게 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육신에 가려져 성령이 드러나지 못하기도 하고 이 세상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때에 따라서는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어떤 경우에는 곧바로 본연의 모습을 찾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이사야서는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6절의 아기는 순수한 영혼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키는데 우리에게 내재하신 성령이 깨어나는 것을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태어난다고 표현한거지요.
그런데 이렇게 성령이 깨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신이 호응을 해야만 합니다.
병아리가 깨어나려 몸부림을 치는 것과 동시에 어미닭도 밖에서 알을 쪼아 깨트려 주어야한다는 말입니다.
삶의 주최자(主催者)가 육신이던 영혼이던 관계없이 본인의 의지가(열정이) 작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이신 성령 또한 어쩔 도리가 없는 겁니다.
안과 밖이 동시에 호응을 했을 때 성령이 드러남이 있게 됨으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한거지요.
하나님의 열정이 곧 하나님과 하나 되고자 하는 구도자의 마음이며 성령의 뜻이자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구도의 길을 걷는 이의 내면에서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난후 얻게 되는 하늘의 영광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여기에 대한 증거말씀 역시 이사야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사9:1)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사9:2)
1절에서 말하는 그녀는 구도자를 뜻하며 마음의 혼란스러움과 성령(빛)의 밝기를 비유한 겁니다.
1절 뒷부분의 그는 하나님을 가리키며 스불론과 납달리로 하여금 가볍게 고통 받게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불론의 뜻은 “후한 선물”이고 납달리의 뜻은 “다툼”인데 이는 물질세상을 가리키는 거지요.
인식하기에 따라 이세상이 선물이기도 하고 그로인해 각종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이렇게 비유한 겁니다.
즉, 구도자가 처음 수행 길에 접어들면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각가지의 시련을 겪게 되는 것을 비유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너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했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세상을 뜻하며 요단의 뜻은 “영원”이며 갈릴리는 “순환, 고리, 원”등으로 영원하지 못한 세상과 영생을 얻지 못한 이방인을 뜻합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나면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거지요.
21절을 보면 어둠속을(영적이지 못한 길) 걷고 있던 백성이 큰 빛(성령)을 보면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이에게(육에 속한이) 빛이 비추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바로 이와 같은 일이 구도자에게 일어난다는 것을 이사야는 밝히고 있는 겁니다.
이세상이 생긴 이래로 이러한 일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바 성경은 예언서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며 오늘의 시간을 여기에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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