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장사의 절경을 담은 영상을 보내왔습니다.
좋은 음악을 배경으로 곱게 물든 단풍나무의 아름다운 사진을 편집하여 보낸 영상을 보는 순간 과거에 내장사를 방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주차장부터 내장사까지 연결되는 단풍나무의 절경은 가본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라 생각됩니다.
양쪽으로 늘어선 단풍나무의 붉은 빛은 사람들의 얼굴까지 붉게 물들일 정도였지요.
그렇지만 주차장 인근에 심어진 것들은 과거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내장사로 올라가는 계곡입구부터가 오래된 것들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단풍나무의 절경을 즐기게 만들기 위해 주차장 인근을 단풍나무로 조경(造景)을 한 겁니다.
인위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 또한 아름다우며 보기에 좋습니다.
일부에서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것으로 여기지만 내 생각은 다릅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고 사람이 만든 구조물들도 자연의 일부라 생각합니다.
어떤 자연을 만들어 가느냐에 대한 문제일 뿐 근본적인 자연여부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여깁니다.
그런 의미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말로 들이며 자연보호라는 말도 자신의 것을 소중히 다루라는 말로 들립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1:26)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창1:29)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1:30)
예문전체를 보면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우리나라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천부경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하나님이 따로 있어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하나님과 똑같이 만들어졌으니 인간이 곧 하나님과 같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26절을 보면 하나님이 한분이 아니라 여럿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 한분밖에 없다 여겨서인데 알고 보니 하나님이 여럿이라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예수님도 하신 적이 있지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마11:11)
이 말씀을 액면대로 보게 되면 천국에도 높낮이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영이 육보다 우선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며 오히려 높낮이가 없음을 역설하신 겁니다.
만약 이 내용을 액면대로 받아들여 천국에 높낮이가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말은 거짓이 되고 맙니다.
구원이 곧 영생이고 영생이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내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받아들인다면 구원은 영생과는 무관해지며 단지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을 구한 것이 됩니다.
이럴 경우 천국은 나누어지게 되며 각 단계의 천국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천천만천 구만천” 이라는 말이 생겨난 거지요.
각자의 하늘이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나누어진 하늘이 하나로 합쳐지려면 빛으로 통일이 되어야하는 겁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이 말씀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예수만이 구원이라는 말을 하게 되며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게 됩니다.
예수가 아니면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 했으니 예수의 부활만을 기다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내용은 예수께서 성령의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빛이신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영생을 얻지 못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내말이 틀리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다음말씀은 성립되지 않게 되지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기존의 크리스천들은 이 내용 역시 예수님이 기도를 해주어야 보혜사가 함께 할 수 있다 말하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만이 성령을 받을 자격이 있다 여길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17절에서 세상은 성령을 알지 못하여 받지 못하는 반면 제자들은 알뿐만 아니라 함께 거하고 내재하여 사신다 했으니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은 빛이신 성령에 대한 가르침을 제자들이 받아들임으로 인해 내재하신 성령이 되살아나게 된 것을 말씀하신 겁니다.
이 같은 내용은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지요.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So he drove out the man; and he placed at the east of the garden of Eden Cherubims, and a flaming sword which turned every way,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fe.
이미 수차례 말했으므로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지만 화염검이(a flaming sword) 빛을 가리킨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성령이신 빛을 통하지 않고서는(빛을 보지 않고서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말은 예수님이 하신말씀과 정확히 일치됩니다.
생명나무를 향하는 모든 길에 놓인 화염검이라 했으니(a flaming sword which turned every way of the tree of life) 어떤 경우에도 빛(성령)을 봐야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우리의 목표가 영생이라고 한다면 이렇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아는 모든 분들께 권합니다.
“자연(自然)에서 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가라”
내가 말하는 자연은 산과 바다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은 스스로 존재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여호와의 뜻이 “나는 바로 나다, 나는 있는 자 그로다” 임을 볼 때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이 자연 자체임을 알 수 있지요.
그러므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하나님과 하나 되라는 뜻입니다.
만물 안에 하나님 숨결이 담겼음을 아는 이는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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