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구원을 받아도 발은 씻어야한다.

배가번드 2023. 12. 5.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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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현실에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 해도 내가 만족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는 거지요.

그렇지만 그러한 만족이 즐거운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자연스러운 것이며 불만족하는 마음을 억지로 억누르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여겨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직장을 구했는데 너무 힘들다고 여겨질 경우 무턱대고 만족해야한다 말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 겁니다.

이러한 사정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으며 본인스스로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알아야 할 것은 본인이 이직을 생각하고 있고 나름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불구하고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감당해야할 일이며 감수(甘受)해야 할 일이라는 거지요.

이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이며 누가 인생의 주관자인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내가 지금의 직장을 선택했고 주어지는 임무가 내 선택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어느 정도 힘든 일은 견딜 수가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 정도가 내육신이 감당하기 어려울정도이고 마음에 고통이 느껴질 경우라면 당연히 이직을 생각해야 할 것이고 그러한 마음을 신이 주시는 것으로 생각할 수가 있지요.

그러나 이직이 되지 않고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다면 그것은 육신너머의 일이 나에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을 통해 내가 무엇인가를 얻어야하는 것이며 아직 공부가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이럴 경우 어찌어찌 이직을 했다 해도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다가옵니다.

이 같은 일은 어떤 경우에도 적용됩니다.

우리가 종교를 선택해서 신앙생활을 할 경우에도 같으며 사람과의 만남에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연출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 것도 없이 내경우가 그러합니다.

20대에 성당을 다니다가 냉담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영성체를 모시기 싫어서였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성체(領聖體)를 모시기에 내육신이 깨끗지 못하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영성체는 성당에서 신부님께서 주시는 밀떡을 가리키는데 이는 예수님의 피와 몸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 영성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있지요.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마26:26)

And as they were eating, Jesus took bread, and blessed it, and brake it, and gave it to the disciples, and said, Take, eat; this is my body.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마26:27)

And he took the cup, and gave thanks, and gave it to them, saying, Drink ye all of it;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For this is my blood of the new testament, which is shed for many for the remission of sins.

 

26절을 보면 예수께서 떡을 신성하게 했다고 합니다.(Jesus took bread, and blessed it)

또한 포도주역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하는데(gave thanks) 이 말인즉 축성(祝聖)을 드렸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예수님이 나누어 주신 것은 단순한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기도를 통해 성스럽게 된 음식이지요.

그래서 예수께서는 빵과 포도주를 자신의 몸과 피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성령이 드러난 자신의 몸과 피를 공유한다는 것을 믿게 만들기 위해 이런 행사를 벌인 겁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우리 안에 담는다는(먹는다는) 것은 성령이 내재함을 뜻합니다.

성령은 죄와는 무관한 존재임으로 성령을 깨닫는 순간 죄 사함이 이루어지는 거지요.

즉, 영육이 분리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사는 동안 지은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죽는 날 까지 갚아야 합니다.

다만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지옥에 떨어지는 일은 없으며 본인의 진아는 온 곳으로 돌아갑니다.

이러한 말은 내가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겁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요13:10)

Jesus saith to him, He that is washed needeth not save to wash his feet, but is clean every whit: and ye are clean, but not all.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을 나누어 받은 사람들은 이미 씻은 이와 같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발은 씻어야한다 말씀하셨지요.

살아오는 동안 혹은 살아가는 동안 지은 죄는 반드시 갚게 됩니다.

징계가 주어지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재하신 성령을 깨닫는다는 것은 목욕을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우리가 침례 식을 할 때 물에서 나오는 순간 영적으로 부활을 하는 거지요.

이때 영혼이 지은 과거, 현재, 미래의 죄는 소멸이 됩니다.

성령이 부활하는 순간 시공간이 무너진 세계로 진입하게 됨으로 빛의 몸이 되어 죄와는 무관한 존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러한 상태를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앞서 마지막 만찬에서 피 흘림에 대한 말씀역시 그 연장선이라 봐야 합니다.

액면대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성경에도 피 흘림의 뜻이 따로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요.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26:29)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하나님 왕국에도 먹고 마시는 일이 있을까요?

지금 예수님은 바로 이점을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 왕국에서 새것으로 마신다는 것은 이 땅의 것이 아니라 영생의 하늘에 오를 수 있는 생명수를 뜻하는 것으로 이 세상 물의 개념이 아닙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내말을 믿지 않겠지만 빛이신 성령을 경험하신 분들은 내말을 이해할거라 생각합니다.

과거에 내가 영성체를 모시지 않고 냉담을 했던 이유는 예수님이 내안에서 살아계신다는 생각을 하자 도무지 세상을 제대로 살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짓말도 못할 뿐 아니라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조금도 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한동안 성당을 등지고 지냈던 것인데 거짓말처럼 어느 날인가 성령을 경험하는 일이 일어났지요.

머리가 갈라지는 고통 속에서 내면의 음성을 들었고 결국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성당을 다니면서 먹었던 예수님의 몸과 피가 내안에 잠재되어 있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주어졌던 셈입니다.

결국 한번 심어진 성령은 사라지지 않으며 한번 깨어난 성령은 다시 잠들지 않는다는 점을 깨우친 겁니다.

과거에는 내 삶을 주관하는 이가 육신이었고 지금 내 삶의 모든 것은 성령이 주관하시다보니 오히려 성당 다닐 때 보다 더욱 심하게 내 삶이 통제되고 억제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과거와 달리 고통스럽거나 가책을 받는 일이 없으며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육을 위하는 삶이 아니라 영을 위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육의 속성을 죽일수록 즐거움과 축복이 배가 되는 이치를 아는 이는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