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속담에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더한 잘못이 있음에도 상대방 잘못을 지적하는 이들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 대부분은 이러한 상태로 살아갑니다.
본인은 실수를 남발하면서도 상대방의 잘못을 일일이 지적하는가 하면 자신의 잘못은 실수로 여기고 상대방의 잘못은 큰 죄라도 지은 것 마냥 호들갑을 떱니다.
사실 알고 보면 이러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으며 속 깊은 내면에서는 본인이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본인이 잘못을 저질러 보지 않았더라면 잘못을 인식할 수조차 없음으로 본인에게 더 많은 잘못이 들어앉아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더라도 내가 더 많은 잘못을 저질렀음을 인식하고 말을 합니다.
비록 내가 당신에게 말을 하고 있지만 내 과거와 미래의 나를 향해 말하는 것이라는 점을 항상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나와 일을 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보지 않고 간섭도 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내 눈에 동료가 잘못한 작업이 띄게 되면 내가 수정을 해버리든지 조용히 말해줍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일에 몰두가 되어 다른 이의 작업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매일같이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 본의 아니게 남의잘못을 지적하는 일이 잦은데 현장에서조차 남의 일에 간섭을 하다가는 내일을 할 수가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말씀을 내 삶에 지표로 삼고 있는지라 가급적이면 남의 잘못을 보지 않으려 합니다.
이러한 내말은 성경에 기인(起因)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7:3)
And why beholdest thou the mote that is in thy brother's eye, but considerest not the beam that is in thine own eye?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하라 하겠느냐(마7:4)
Or how wilt thou say to thy brother, Let me pull out the mote out of thine eye; and, behold, a beam is in thine own eye?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마7:5)
Thou hypocrite, first cast out the beam out of thine own eye; and then shalt thou see clearly to cast out the mote out of thy brother's eye.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7:6)
이 말씀은 앞서 말한 한국 속담과 일치한다 말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약간 다르게 봅니다.
들보에 해당하는 beam은 기둥이라는 뜻도 있지만 빛줄기라는 뜻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냥 네 눈 안에(in thine eye) 라고 하지 않고 구태여 네 자신의 눈 안에(in thine own eye) 라고 말한 점을 볼 때 다른 뜻이 있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즉, 이 말씀은 단순하게 눈 안에 들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 깊숙이 내재된 빛이신 성령을 뜻한다는 거지요.
그렇게 되어야 4절 말씀이 성립되는 겁니다.
육신을 가진 이로서는 누구나가 잘못을 간직하고 살아감으로 타인의 잘못을 지적할 수가 없습니다.
정보공유의 법칙에 의해 육신을 가진 이는 누구라도 죄악의 성질을 간직하고 있으며 환경과 여건이 조성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빛이신 성령을 깨닫게 되면 육신과는 무관한 영체가 주관하는 삶을 살게 됨으로 타인의 잘못에 대해 가르쳐 줄 수 있게 됩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려면 본인이 완전해져야 가능한 겁니다.
우리가 보통 직장에서 일을 할 때도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려면 자신의 실력이 상대방보다 뛰어나야 합니다.
본인이 아직 완전하지 못한 주제에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면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겉으로는 완장을 차고 있으므로 예우를 갖추고 따라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 깊은 마음으로는 존경심이라고는 일도 없으며 오히려 깔봅니다.
바로 이러한 점을 예수님은 지적하고 있는 거지요.
지금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영적인 것으로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일갈인겁니다.
너희가 진정 사람들에게 하나님 복음을 가르치려면 먼저 자신의 눈이 밝아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5절에서 들보를 빼내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끌을 빼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들보를 들어내야 한다는 말은 빔을 드러내야 한다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cast out the beam out of thine own eye)
만약 이것을 육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들보를 빼내고 나서 남겨진 다른 것들은 어쩔 것인가라는 물음을 갖게 됩니다.
육신 안에는 들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티끌도 있기 마련이지요.
이래서는 누구라도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빔(beam)을 빛줄기로 해석하는 이유입니다.
성령이신 빛을 깨달아야(드러나야) 사람들에게 영생에 대해 말을 해줄 수가 있는 것이며 영생의 하늘로 이끌어줄 자격이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위선자라고 예수님은 강력하게 질타하고 있습니다.(Thou hypocrite)
5절을 보다시피 형제의 눈 속에서 티끌을 뺀다고 하신 것은 조금의 잘못도 남아있지 않게 한다는 거지요.
한마디로 말해서 빛이신 성령을 깨닫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것은 믿음에 따른 일로서 스승과 제자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성령이 드러난 분의 가르침을 믿어야 이심전심(以心傳心)법을 적용받아 내재한 성령이 깨어날 수가 있는 겁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해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예수님이 알기에 6절과 같이 말씀하신거지요.
솔직히 이 말씀은 나를 위한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지금껏 십 수 년을 성경에 대해 말해왔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난과 조롱이었습니다.
심지어 마귀의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귀신들린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으며 손가락질도 수없이 당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거룩하고 진주보다 귀한 영생의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으니 예수님의 이 같은 말씀을 듣지 않은 벌을 받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내재하신 성령을 믿으며 내면의 신에게 간청하는 이가 있으므로 이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같은 하나님의 자식이며 빛이신 성령을 나누어받은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형제로 여기는 이들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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