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방송을 보다 세상의 변화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급변하는 세상이라 다양한 신종직업이 생긴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줄서기라는 직종(職種)이 생겼다는 사실을 처음 접하게 되었지요.
이것은 직업이라기보다는 알바라고 봐야할 것인데 세상일에 무관심한 나로서는 너무 놀라운 일을 발견하게 된 겁니다.
가끔씩 백화점 명품을 사기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하는데 번호표를 받고서 기다리는 일을 대행해주는 알바가 있다고 합니다.
수백만 원짜리 명품을 사고는 싶고 추운날씨에 기다리기는 싫다보니 사람을 시켜 순서를 기다리게 하는 신종알바를 생각해 낸 거지요.
게다가 한사람이 살 수 있는 숫자가 제한적이다 보니 구매를 대행해주면 또다시 수고비를 받을 수 있어서 실구매자와 함께 들어가서 구매까지 해준다고 하니 요지경세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러니 세상 사람들이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일들은 예로부터 있어왔다고 봐야 합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곡소리를 대행해주는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한국문학사에서 발견되고 있는 만큼 물질세상에서의 이런 일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유교예법에 따르면 초상집에서 곡소리가 끊어지면 안 됨으로 사람을 고용해서 곡소리를 대신하게 만든 겁니다.
이러다보니 내 어머니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돈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하셨나 봅니다.
“돈이면 처녀 불알도 살 수 있다.”
돈만 있으면 성전환 수술쯤은 일도 아닌 세상에 살다보니 이런 말은 더 이상 비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모두가 이런 일을 당연시 여기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개중에는 나같이 물질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내말을 듣는 다수의 사람들은 내 말뜻을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거나 등을 돌려야한다 해석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자유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살고 있는 가운데 얻게 되는 대자유(大自由)를 가리킵니다.
일반적으로 자유라 함은 남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자유는 때로 남의 자유를 침해하기 마련인지라 자칫 방종(放縱)으로 이어지곤 하지요.
실지로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자유와 방종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방종의 뜻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 마음대로 행동한다고 사전은 적고 있으니 두 가지 단어는 뜻이 상통 한다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는 나만의 자유가 아닌 타인의 자유까지 포함하는 대자유가 되어야만 합니다.
이런 일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표본이 되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막4:35)
And the same day, when the even was come, he saith unto them, Let us pass over unto the other side.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막4:36)
And when they had sent away the multitude, they took him even as he was in the ship. And there were also with him other little ships.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막4:37)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막4:38)
And he was in the hinder part of the ship, asleep on a pillow: and they awake him, and say unto him, Master, carest thou not that we perish?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막4:39)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막4:40)
35절에 그날 저물 때라는 것은 인생의 마지막을 가리키며 영생의 세계로 향해가는 것을 저편으로 가자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세상과는 다른 별개의 세상으로 가자는 권유의 말씀이지요.(Let us pass over unto the other side)
그리고 36절에 군중을 떠났다는 말은 일반인들과는 달리 영적인 길을 걷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이신 예수를 모시고 영생을 향한 여정을 이어간다는 말입니다.(they took him even as he was in the ship)
대다수의 사람(군중)들은 성령이 내재함을 모르고 살아가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함께 함으로 인해 성령과 함께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배는 구도자의 육신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으며 풍랑은 세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세찬 풍파(風波)에 시달리는 일을 배에 물이 가득 찬 것으로 묘사한거지요.(37절)
이렇게 세파에 시달리는 동안 구도자들은 당연히 신에게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 신은 저 멀리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배안의 뒤쪽에 누워 잠들어 있다고 합니다.(he was in the hinder part of the ship, asleep on a pillow)
하나님과 하나 되신 예수님이 배 고물을 베고 자고 있다는 것은 성령이 육신(배)안에 잠들어 있음을 비유한 겁니다.
이 같은 일은 특별한 일도 아니며 우리가 일상에서 늘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곤경에 빠지게 되었을 때 절실하게 하나님을 찾게 되는 일을 묘사한 것으로 우리가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게 되면 성령이 응답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38절을 보면 제자들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그 표현방법이 우리의 눈길을 끌어당깁니다.
한글성경은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않느냐 했지만 영어성경을 직역해보면 우리가 소멸될 것을 보살펴주지 않느냐 입니다.(Master, carest thou not that we perish?)
이는 육신이 죽을 지경에 놓인 것보다 영혼이 소멸될 것이 걱정이라는 점을 말해줍니다.
즉, 예수는 육신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온 거라는 뜻이지요.
이러한 까닭으로 예수가 바람을 꾸짖고 바다더러 잠잠하여 고요해지라 했을 때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 겁니다.(39절)
일반적으로 이 내용을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으로 받아들여 바다를 잠들게 만든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런 것이 아니라 성령이 깨어나게 되면 세상과는 별개의 인생을 살게 됨을 뜻합니다.
우리가 진정 성령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세상의 풍파는 전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육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을 경우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기도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에 대한 믿음이 강하여 성령이 되살아난 사람이라면 당면한 일을 다른 시각으로 봅니다.
물질적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시각으로 보게 되며 주어진 현실을 달리 해석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가령 물질적으로나 육신적으로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업장소멸의 기회로 여기거나 복덕을 쌓는 순간이 주어졌다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인자, 성령이 드러난 이) 세상적인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므로 세파를 꾸짖었다 표현한거지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축복과 저주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40절을 보다시피 예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음을 나무라고 있습니다.
어찌 성령과 함께 함을 믿지 않느냐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배(육신)에 성령이(예수님) 함께 타고 있음에도 아직도 세상에 굴복하고 있냐는 질타의 말씀이니 이는 그 옛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말씀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봐야합니다.
하여 오늘 설날을 맞이하여 여러분들께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드립니다.
부디 새해에는 성령과 함께하는 여정을 이어 가시기 바랍니다.
세상 풍파를 즐길 수 있는 이들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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