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12사도는 12명이 아니다.

배가번드 2024. 1. 22.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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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가 끝이 나고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에 섰습니다.

매순간이 시작의 연속이기는 하지만 내게 있어 지금 이순간은 색다른 시작이 되고 있지요.

그동안 마음먹고 있던 것을 실현시키는 시작점으로 삼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나 홀로목사코너를 통해 성경연구를 해오던 것을 잠시 멈추고 있었는데 지금부터는 카스를 통해 또다시 재개하려 마음먹고 있습니다.

4복음서를 끝낸 지 정확히 1년이 지난 이 시점에 새로운 출발을 카스를 통해 하려고 합니다.

간간히 일상을 알리는 시간도 가지면서 나 홀로목사의 성경강해를 겸하겠다는 겁니다.

내가 이러한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신약성경이 쓰인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마태, 마가, 누가 세가지복음서는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비슷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가리켜 공관복음서라 말하기도 하지요.

그 내용의 대부분은 예수님 말씀에 기초하고 있으며 오로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요한복음은 영적체험을 많이 다루고 있으며 요한자신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부각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사도행전을 시작으로 요한 계시록까지는 각 복음서가 나름의 특색이 뚜렷하여 개인의 신앙심이 깊게 새겨져 있으며 일상적인 일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특히 바울의 경우,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신약 27권중에 13권이 바울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 되었음은 물론 세상 사람들에게 성령의 불꽃을 나누어줄 자격을 갖추었다 볼 수 있지요.

무엇보다도 바쁘게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현시키게 만든다는 점에서 바울이 작성한 편지는 현시대의 우리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나 역시 한정된 공간보다는 일상을 통해 성경말씀을 우리 삶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말해보려 하는 겁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시피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로 보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使徒行傳)의 뜻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져 있다 여겨집니다.

사도를 사전에서는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특별히 뽑은 12제자라 적고 있으며 그들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 사도행전이지요.

액면대로 생각하게 되면 12명의 직계 제자를 사도라고 부른다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그런 뜻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달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3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숫자이고 4는 사람의 숫자이며 연합한 숫자가 12입니다.(3×4=12)

이 말인즉, 사도는 열두 명이 아니라 수백수천 수만 명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받아들여져야 성경을 통해 영생을 얻는다는 말이 성립이 되며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사도가 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12사도를 단순하게 숫자로 인식하게 되면 신약에 기록된 다수의 인물들은 사도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어본 이들은 알다시피 성경에 기록된 인물 모두는 사도와 같은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복음은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본문에도 나오지만 사도의 행렬에는 누가도 포함되어 있으며 사도에 포함되지 않은 인물들도 등장합니다.

이들 역시 복음전파에 힘을 보탰고 그들의 행적역시 사도행전에 포함이 되어야하는지라 사도를 12인에 한정짓는 것은 크나큰 오류입니다.

이 또한 앞으로 성경연구를 통해 밝혀지게 되겠지만 사도행전의 뜻을 제대로 알고 가야겠기에 언급해 본겁니다.

서론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지금부터 사도행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겠습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행1:1)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행1:2)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1:3)

To whom also he shewed himself alive after his passion by many infallible proofs, being seen of them forty days, and speaking of the things pertaining to the kingdom of God: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

And, being assembled together with them, commanded them that they should not depart from Jerusalem, but wait for the promise of the Father, which, saith he, ye have heard of me.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1:5)

 

언제나 말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내용을 액면대로 보면 누가가 데오빌로라는 인물에게 편지를 한 내용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는 겁니다.

데오빌로의 뜻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며 누가의 뜻은“총명하다, 빛나다”입니다.

이러한 뜻을 적용하여보면 빛이신 성령을 경험하여 지혜를 연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에게 복음전파의 목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의 시작과 끝을 적었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1,2절)

즉, 먼저 쓴 글이란 누가복음을 가리키며 그 내용은 예수님의 행적을 적었는데 성령이 임하시어 적었다는 뜻이지요.

2절 마지막부분을 보면 사도는 12명에 제한시킬 일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선택을 받은 자, 즉 성령이 임하는 이들 모두는 사도의 칭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3절에 해 받으신 후라 한 것은 십자가 부활사건을 가리킵니다.(he shewed himself alive after his passion)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40일은 숫자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다른 뜻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40은 사람의 숫자4와 완성을 뜻하는 10의 연합된 숫자입니다.(4×10=40)

4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이 실현된 인자이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연관된 일을 말씀하셨던 거지요.(speaking of the things pertaining to the kingdom of God)

4절을 보면 우리가 성경을 액면대로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함께 모아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했는데 이 말씀은 초발심을 잃지 말고 구도의 길을 벗어나지 말라는 뜻입니다.(예루살렘의 뜻“평화의 터전, 평화의 기초”)

그것이 아니라면 모두가 예수살렘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겁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는 복음전파를 위해 세계 여러 곳으로 흩어져 복음전파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려면 믿음을 유지하여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5절을 보다시피 예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거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우리가 성령에 대한 믿음아래 구도의 길을 걷다보면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wait for the promise of the Father)

이 말씀을 보건데 우리가 아직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못했다 생각된다면 각자가 자신의 믿음에 대해 점검을 해봐야한다 생각됩니다.

각자의 믿음에 대해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는 없지만 성경말씀에 비추어볼 때 그렇다는 거지요.

어찌되었건 오늘 올린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첫날이라 여기에서 멈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면관계상 더 이상 올릴 수도 없거니와 다음시간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잠들지도 않고 휴식도 필요 없지만 육신은 쉬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