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이 나 홀로목사의 매일은 정신없이 바쁩니다.
특히 요즘은 주변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다보니 지방을 오르내리느라 무척 힘든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내 인생무대를 장식하던 많은 배우들이 각자의 역할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한지라 배웅을 하기위해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고 있지요.
결국 누구나 한 번씩은 가야만하는 길인지라 우리역시 언젠가는 대열에 합류할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지 못한 분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연 따라 갈 곳이 정해져 있을 것이고 이곳을 오는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향해 가게 될 겁니다.
다만 각자의 믿음이 얼마나 큰가에 대한문제만 있을 뿐 영생으로 가는 길은 틀림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영생을 향한 문을 열겠습니다.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눅11:29)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눅11:30)
이 내용을 마태복음20편에서 다루었었지요.
하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의미가 발견되어질 수도 있는 만큼 요나서에 나와 있는 기적에 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욘4:1)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욘4:2)
언제나 그렇듯이 구약의 내용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나시는 분들은 반드시 요나서 전체를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리며 오늘은 요나서 4장 내용을 말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0편에서는 요나서 1절을 인용하였는데 요나가 니느웨(합의, 타협)로 가라는 하나님말씀을 거역하고 욥빠(아름다움)로 내려가서 다시스(금속의 정련, 단련)로 갔다가 고래에게 잡아먹힌 후 되살아나는 기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그것은 비유의 말씀으로서 이방인(니느웨)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말씀을 거역한 요나가 세상유희에 빠져 살다가(고래뱃속에서 3일) 영적으로 부활하게 된 사건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랬던 요나가 4장에서는 하나님께 화를 내고 있습니다.(1절)
예문에는 올리지 않았지만 3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요나의 말에 니느웨 사람들 모두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자 하나님이 진노를 풀어버렸지요.
그러자 요나는 하나님이 원래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분이라 진노하지 않으실 것을 알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갔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2절)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말씀을 거역한일에 대해 하나님이 징계를 가한 것은 잘못되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 내용은 요나가 자신이 이미 성령이 깨어나 있었음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영혼이 깨어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미리알고 있었다는 거지요.
이 말씀을 올곧게 이해하려면 우리가 영혼의 세계에 대해 알아야합니다.
영혼(성령)의 세계가 시공간이 무너진 곳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수많은 생을 윤회한다고 해도 그 나중은 성령과 하나 되기 마련이지요.
비록 육신은 이러한 사실을 모를지라도 요나와 같이 성령이 드러나 있는 사람은 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겁니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욘4:3)
Therefore now, O LORD, take, I beseech thee, my life from me; for it is better for me to die than to live.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하시니라(욘4:4)
보시다시피 나(육신)로부터 내 생명(성령)을 가져가시라 했지요.(O LORD, take, I beseech thee, my life from me)
육신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죽어서 성령으로 하나님나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요나의 푸념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4절)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알게 됩니다.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하니라(욘4:5)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니(욘4:6)
And the LORD God prepared a gourd, and made it to come up over Jonah, that it might be a shadow over his head, to deliver him from his grief. So Jonah was exceeding glad of the gourd.
5절에 요나가 성에서 나왔다는 말은 육신(성)을 벗어난 성령으로서의 요나를 가리킵니다.
동편은 해 뜨는 곳이니 하나님이신 빛, 즉 성령으로서의 요나가 세상을 관망하는 자세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높이고(초막을 짓고) 하나님 전(초막)의 그늘로 자신을 숨긴 체 세상을 수수방관하였던 거지요.
물론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드러낸 사람(육신)을 보호해주시는 탓에 그늘로 감싸주셨으며 요나역시 하나님의 보호력을 느끼는지라 엄청난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쁨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지요.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욘4:7)
But God prepared a worm when the morning rose the next day, and it smote the gourd that it withered.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욘4:8)
And it came to pass, when the sun did arise, that God prepared a vehement east wind; and the sun beat upon the head of Jonah, that he fainted, and wished in himself to die, and said, It is better for me to die than to live.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욘4:9)
And God said to Jonah, Doest thou well to be angry for the gourd? And he said, I do well to be angry, even unto death.
하나님은 요나 머리위로 비추는 뜨거운 태양빛을 가려주던 박 넝쿨을 없애버림으로서 요나의 잘못된 인식을 고쳐주고 있습니다.(7절)
8절은 성령이 드러날 때의 과정을 묘사한 것이므로 우리가 아주 심도 있게 들여다봐야합니다.
해가 뜰 때는(when the sun did arise) 성령이 드러날 때를 가리키며 맹렬한 동풍이 분다는 것은 (a vehement east wind) 성령이 드러나면 물질적인 것들은 바람에 날리듯 떨어져 나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육신이 견디기(받아들이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요나가 기절을 하다시피하며(he fainted) 살기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했던 겁니다.(8절)
또한 이 내용은 아무리 성령이 드러난 스승이라 할지라도 스스로를 높이고(초막을 짓고) 임무를 저버리게 되면(복음을 전하지 않고 그늘아래 숨어 수수방관하는 행위) 하나님이 성령을 거두어버린다는 경고의 말씀이기도합니다.
faint에는 약하고 희미하다는 뜻도 있으니 크나큰 하나님의 빛이 나타나자 요나의 빛이 희미해져버렸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거두어 가버리자 요나는 더 이상 성령이 머물지 않는 평범한 육신으로 돌아가 버렸기에 하나님에게 화를 내는 것까지도 합당하다 말하고 있습니다.(9절)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일이며 속뜻은 육신의 한계를 말해주는 겁니다.
육신으로서는 당장 눈앞에 놓여있는 일들만 보는지라 육신이 고통스럽고 힘든데 대한 반응을 하기 마련이라는 거지요.
죽는 날까지(육신이라는 껍질을 벗기 전까지) 육신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인간으로서 아주 당연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반응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여호와께서는 가르쳐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욘4:10)
Then said the LORD, Thou hast had pity on the gourd, for the which thou hast not laboured, neither madest it grow; which came up in a night, and perished in a night: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4:11)
And should not I spare Nineveh, that great city, wherein are more then sixscore thousand persons that cannot discern between their right hand and their left hand; and also much cattle?
하나님께서는 육신이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유한한 것인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누리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인데 불구하고 자신의 것인 양 생각하는 것을 지적하는 동시에 인간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하나님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음을 말씀하신 겁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하루살이 인생인 박넝쿨 조차 아끼는 마음을 발휘하거늘(Thou hast had pity on the gourd)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보다 크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상고(相考)해봐야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크다면 어째서 지옥 갈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겁니다.
예문을 통해서도 보았듯이 하나님은 무한한인내심과 자비심을 가지고 기다린다고 했으니 누구도 지옥을 가서는 안 되는 거지요.
바로 여기에 대한 대답을 11절에 해놓았습니다.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 명이나 되었고 육축도 많이 있었다는 말은 영의 세계를 깨달은 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영의 세계는 방향성을 상실한(시공이 무너진) 상태이므로 자신의 영혼을 깨달은이가 많았다는 말이지요.
이미 여러 차례 말했듯이 12는 삼위일체(3)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4)을 나타내는 숫자이니 성령을 깨달은 이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육축에 대한 부분을 우리가 분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육축에 해당하는 영어 cattle은 주로 소를 가리키는 단어이며 가축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소는 알다시피 인간에게 순종하며 헌신하는 동물이지요.
살아서는 밭을 가는 일과 우유를 생산하며 죽어서는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제공합니다.
일생을 봉사와 헌신만 하다 돌아가기에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사람에 비유된 겁니다.
비록 자신이 성령을 드러내거나 깨닫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봉사와 헌신하는 이들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지요.
이런 이유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내가 니느웨를 용서하지 않겠느냐(And should not I spare Nineveh)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대상은 성령을 깨닫거나 하나님을 위한 헌신과 봉사를 아무런 사심 없이 행하는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결국 요나가 복음을 전파할 때 그 말씀을 받아들여 뉘우치고 회개한 사람들은 성령을 깨닫거나,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됨으로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결론을 얻게 되지요.
여기에 대한 보충설명을 예수님께서 하고 있습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눅11:31)
The queen of the south shall rise up in the judgment with the men of this generation, and condemn them: for she came from the utmost parts of the earth to hear the wisdom of Solomon; and, behold, a greater than Solomon is here.
예문에 나오는 남방 여왕은 스바여왕을 가리킵니다.
솔로몬으로부터 성령을 나누어(가르침)받기위해 먼 길(땅 끝, 고난의길)을 마다않고 와서 기어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영적제자이지요.
남방여왕이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부여받았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까닭은 그 당시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성령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앞서 29절과 30절에서 예수님께 표적을 구한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자신이 바로 솔로몬과 같이(더 큰) 성령을 나누어줄 수 있는 그 시대의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솔로몬시대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스바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예를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저를 시험코자 하여(왕상10:1)
And when the queen of Sheba heard of the fame of Solomon concerning the name of the LORD, she came to prove him with hard questions.
첫 시작부터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나옵니다.
스바여왕은 솔로몬을 어려운 문제로 시험하러 왔다고 했는데 단순하게 세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관한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왔으니(heard of the fame of Solomon concerning the name of the LORD) 당연히 영적인 문제였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로는 솔로몬은 명 판결로 유명한 왕이지만 사실은 영적으로 크게 깨달은 스승이었던 겁니다.
열왕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바여왕은 솔로몬이 하나님(여호와)에 관한 문제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영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 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이르니 수원이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약대에 실었더라 저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왕상10:2)
And she came to Jerusalem with a very great train, with camels that bare spices, and very much gold, and precious stones: and when she was come to Solomon, she communed with him of all that was in her heart.(KIV)
Arriving at Jerusalem with a very great caravan -- with camels carrying spices, large quantities of gold, and precious stones -- she came to Solomon and talked with him about all that she had on her mind.(NIV)
예루살렘이 성지로 알려진 만큼 스바여왕이 영적여정의 도착지에 다다랐음을 보여줍니다.
예루살렘까지 오기위해 많은 수원(수행인원,a very great train)과 귀중품을 동반했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영적깨달음을 위해 아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왕 앞에 왔을 때 자신 마음안의 묻어둔 모든 것을 온전히 털어놓았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 대목은 약간의 수정이나 보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글성경은 분명 NIV를 번역한 것인데 영적인면을 고려하면 KIV성경을 해석해야한다는 겁니다.
이 내용은 그저 대화를 한 것이 아니라 여왕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 모든 것들을 솔로몬과 교감을 나눈 거지요.(she communed with him of all that was in her heart)
왜 나 홀로목사가 이렇게 주장하는가 하는 것은 다음내용을 보면 알게 됩니다.
솔로몬이 그 묻는 말을 다 대답하였으니 왕이 은미하여 대답지 못한 것이 없었더라(왕상10:3)
And Solomon told her all her questions: there was not any thing hid from the king, which he told her not.
여기에서 나오는 왕은 솔로몬자신을 가리키는 말이자 솔로몬 내면에 내재한 성령, 즉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하나님에 관련된 질문에 막힘이 없이 대답해 줄 수 있었던 거지요.
여기에 대해 스바여왕은 다음과 같이 반응하고 있습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모든 지혜와 그 건축한 궁과(왕상10:4)
그 상의 식물과 그 신복들의 좌석과 그 신하들의 시립한 것과 그들의 공복과 술 관원들과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정신이 현황하여(왕상10:5)
And the meat of his table, and the sitting of his servants, and the attendance of his ministers, and their apparel, and his cupbearers, and his ascent by which he went up unto the house of the LORD; there was no more spirit in her.
예문으로 오른 이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솔로몬의 몸과 스바여왕의 머릿속이 보입니다.
액면으로 보면 솔로몬의 왕궁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지만 속 깊은 뜻을 헤아려보면 솔로몬의 지혜가 생긴 과정과 내면을 이루고 있는 솔로몬의 인식세계를 묘사해놓았음을 알 수 있다는 거지요.
이렇게 보게 되는 결정적인 단서는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는 층계와 정신이 현황하였다는 대목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내용이 솔로몬의 왕궁이라면 하나님나라에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솔로몬왕궁에 있다는 말인지라 고고학자들을 동원하여 왕궁 찾기부터 해야겠지요.
그리고 정신이 현황하였다는 말은 (no more spirit in her) 그녀의 영혼(진아, 성령)이 빠져나와 솔로몬왕의 내면에 합류(하나)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솔로몬의 가르침에 매료되어 영적으로 하나가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스바여왕은 다음과 같이 감사의 인사말을 솔로몬왕에게 전합니다.
왕께 고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진실하도다(왕상10:6)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영히 이스라엘을 사랑 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을 삼아 공과 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왕상10:9)
Blessed be the LORD thy God, which delighted in thee, to set thee on the throne of Israel: because the LORD loved Israel for ever, therefore made he thee king, to do judgment and justice.
6절을 보면 스바여왕 자신이 직접 확인(솔로몬의 내면세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문으로만 들은 것이 아니라 검증(檢證)을 했다는 말이니 자신이 직접 체험으로서 깨달았다는 말인 동시에 자신이 솔로몬의 지혜를 판단할 만큼의 수준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7절을 보면 이 같은 나 홀로목사의 해석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스바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축복한다고 말했는데(Blessed be the LORD thy God) 이것은 솔로몬왕의 안에 있다고(which delighted in thee) 했습니다.
정리해보면 솔로몬왕의 내면에 자리한 하나님, 즉 성령을 보았다는 말인 동시에 이를 볼 수 있었던 스바여왕도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렇게 성령을 깨달은 사람은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했으며 심판할 자격도 갖춘다고 했지요.
이 같은 일은 성령을 드러낸 사람이 세상 사람들 기준으로 형벌을 가하고 억압하며 철권통치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스라엘백성)에게 율법의 잣대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솔로몬왕의 입을 통해 스바여왕이 성령을 나누어받은 사실을 확인해보겠습니다.
솔로몬 왕이 왕의 규례대로 스바 여왕에게 물건을 준 외에 또 저의 소원대로 무릇 구하는 것을 주니 이에 저가 그 신복들로 더불어 본국으로 돌아갔더라(왕상10:13)
And king Solomon gave unto the queen of Sheba all her desire, whatsoever she asked, beside that which Solomon gave her of his royal bounty. So she turned and went to her own country, she and her servants.
솔로몬이 스바여왕의 소원대로 주었다고 했는데 무엇을 주었을까요.
스바여왕이 구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었다는 것을 예문을 통해 이미 확인했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성령을 나누어 받은 것이며 여왕에게 내려진 왕의 하사품은(Solomon gave her of his royal bounty)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요.
그리고 여왕이 본국으로 돌아갔다는(she turned and went to her own country) 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액면으로 보면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이겠지만 결코 이것은 땅에 있는 나라가 이아니라 본래고향, 즉 하나님왕국을 뜻합니다.
성령을 나누어받았으니 당연히 하나님왕국으로 돌아간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이렇게 비유한 거지요.
신복들과 더불어 돌아갔다고(she and her servants) 구태여 묘사해놓은 부분도 주시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솔로몬왕국에서도 보았다시피 술을 따르는 사람과 관원 및 신하들 모두가 여호와 전을 장식하고 있었지요.
바로 이와 같은 의미로서 신복들과 함께 본국(하나님왕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던 겁니다.
한사람의 영적스승아래 수많은 제자들이 구원받을 수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이렇게 묘사해 놓은 거지요.
이러한 일에 대해 성경은 포도나무에 비유를 해놓았는데 포도나무에 달린 열매나 잎 모두가 하나의 포도나무를 형성하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하게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예수님께서 31절에서 남방(스바)여왕이 심판 날에 일어나 이스라엘백성(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심판할거라 말씀하신 겁니다.
똑같은 이치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셨던 거지요.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눅11:32)
이미 확인했다시피 이방사람들인 니느웨 사람들조차 회개하고 뉘우친 후 복음을 받아들이자 하나님과 하나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졌으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부하는 이들을 심판하게 된다는 거지요.
그러면 우리가 여기에서 생각해봐야할 일들이 있습니다.
수십 년간 종교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왜 아직도 성령을 깨닫지 못하고 있느냐하는 겁니다.
그것은 두 가지 원인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믿음의 대상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믿는 자세의 문제 때문이지요.
믿음의 대상이 요나처럼 삐딱한 마음을 먹어버리게 되면 성령을 나누어줄 자격을 상실하게 됨으로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게 되며 믿는 이들의 마음이 삿되면 영적인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받지를 못합니다.
눈을 하늘을 보고 몸을 땅을 향하고 있으면 어찌 하늘로 오를 수 있겠냐는 거지요.
이곳을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이 이 같은 사실을 명심하시고 지금부터라도 믿음의 자세를 고치시길 바라며 오늘의 성경강해를 마무리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