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밀양”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전 도연배우는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지요.
흥행성적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영화중에 손꼽히는 수작이라 생각합니다.
멜로물로 알려진 이 영화는 기독교인들이라면 한 번씩은 봐야하지 않을까 여겨지는 영화입니다.
아이를 유괴살해 당한 후 신앙에 기대어 살아가던 순애(전도연분)가 살인자를 용서하러 교도소를 찾아갔을 때 유괴범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신 줄을 놓게 만들었습니다.
교도소 내에서 성경을 접한 유괴범이 이미 구원을 받았노라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말을 하는 통에 머리가 하얘졌던 겁니다.
상처는 자신이 받았는데 예수님으로부터 살인마가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바람에 어이를 상실한거지요.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 가운데는 이런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성경을 통한 구원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본인이 산더미 같은 죄를 저질러놓고 하나님으로부터 무조건 용서받았다 말한다고 해서 용서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한다는 말입니다.
지금껏 보았듯이 성경은 무조건 용서받고 구원받는다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되살아나야한다 말하고 있으며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뉘우쳐야한다 말하고 있습니다.
내재하는 하나님이신 성령은 우리가 진정으로 뉘우치는지 위선적으로 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상대방의 마음까지도 헤아리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구원받았다 말할 것이 아니라 본인자신의 신구의(身口意)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가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이 같은 점을 알기는 어려우므로 예수나 바울과 같은 선지자들로부터 배워야 하는 겁니다.
하여, 오늘도 변함없이 성경 속으로 들어가 바울로부터 배워 보겠습니다.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7:9)
For I was alive without the law once: but when the commandment came, sin revived, and I died.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롬7:10)
And the commandment, which was ordained to life, I found to be unto death.
율법 없이 살아가다가(I was alive without the law once) 계명이 오게 되자 죄가 살아나 죽었다고 합니다.(sin revived, and I died)
이 말씀인즉, 율법을 모르고 살다가 율법에 대해 알게 되자 꼼짝없이 육신이 죽게 생겼다는 뜻입니다.
육신을 가진 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죄 값은 사망이라 했으니 도저히 살아날 방법이 없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10절에서 율법의 작용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계율은 영생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정해놓은 것인데(the commandment, which was ordained to life) 오히려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는 겁니다.
이러한 까닭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롬7:11)For sin, taking occasion by the commandment, deceived me, and by it slew me.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7:12)
Wherefore the law is holy, and the commandment holy, and just, and good.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계명을 주신 이유는 육신의 한계를 느끼고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것인데 잘못 받아들임으로 인해 영혼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11절)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율법이나 계명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 했습니다.(12절)
이 말씀인즉 율법이나 계명을 하나님이 정해주셨다는 뜻이며 목적자체가 사람으로 하여금 성령을 드러내어 하나 되는데 있으므로 선하고 의롭다는 거지요.
그래서 바울은 이어지는 내용에서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롬7:13)
Was then that which is good made death unto me? God forbid. But sin, that it might appear sin, working death in me by that which is good; that sin by the commandment might become exceeding sinful.
율법이 선한데 선한 것이 우리자신에게 사망이 될 수 있느냐 묻고 있습니다.(good made death unto me?)
이 같은 일은 하나님이 금하신다 했는데(God forbid) 이는 하나님의 본뜻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이나 계명을 정해주신 것은 성령(선한 것)으로 말미암아 육을 죽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라는 거지요.(working death in me by that which is good)
즉, 육신의 죄인 됨을 철저히 깨닫게 만들기 위해 율법과 계명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롬7:14)
For we know that the law is spiritual: but I am carnal, sold under sin.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롬7:15)
For that which I do I allow not: for what I would, that do I not; but what I hate, that do I.
율법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이스라엘백성 모두가 알기에 우리 모두가 율법이 신령한줄 안다 말하고 있습니다.(we know that the law is spiritual)
그렇지만 속뜻을 모르고 있었기에 육에 속하여 죄에게 팔렸다 한 겁니다.(14절)
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육신에 초점이 맞춰진 상태로 살았으므로 성령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5절에서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용납하지 못하고 있다(I do I allow not) 했으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않고(I would, that do I not)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한다고 했습니다.(I hate, that do I)
이는 성령의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내재하신 성령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육신을 나무라는 말씀이지요.
성령을 깨닫지 못한 인생은 언제나 죄악 속에 살아간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롬7:16)
If then I do that which I would not, I consent unto the law that it is good.
성령이 원치 않는 것을 육신이 하면(I do that which I would not)그로인해 율법의 선한 것을 인정하게 된다는 말이지요.(consent unto the law that it is good)
즉, 영을 따르지 않고 육을 따르면 언제나 죄악 속에 머물게 됨으로 율법아래 놓여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성령이신 하나님과 하나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도 정해진 시간이 다되었으므로 잠시 쉬었다가 다음시간에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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