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처불상, 사사불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님이 하셨지요.
곳곳이 부처님이고 하는 일마다 불공이라는 뜻이니 삼라만상을 창조하시고 우주만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특성을 그대로 옮겨놓은 말입니다.
원래 불교도인 소태산대종사께서 일종의 종교혁명을 일으킨 것이 오늘날의 원불교가 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우상숭배와 잘못된 기복신앙에 빠져있던 기존의 불교에 일대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겁니다.
알고 보면 원래의 불교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말한 것일 뿐 새로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인데 워낙 생소하게 느껴지다 보니 새로운 불교처럼 보일뿐인거지요.
지금 우리가 성경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도 기존의 성경을 조금 더 진보되고 확장된 인식으로 보자는 것이지 다른 종파나 교리를 만들고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몰라서일 뿐 세상의 어떤 종교도 궁극적 목표점은 한곳입니다.
확장된 인식의 눈으로 보면 모든 곳의 마지막 목적지는 영생의 하늘일 수밖에 없으며 그곳은 산꼭대기나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누군가 이길 만이 정답이라 외친다면 그는 아직 산 밑에서 헤매고 있다 보면 정확하며 정상에 도달하지 못한 겁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내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성경을 통해 바울의 말씀을 듣다보면 이해가 될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유대교의 교리만 존재하였고 성경내용을 액면대로만 받아들였는지라 바울의 말씀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성령의 임하심을 경험한 이들이 많았다고 하므로 우리역시 반복해서 들을 필요가 있다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변함없이 선지자이자 사도이신 바울의 말씀을 청종(聽從)해보겠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
Owe no man any thing, but to love one another: for he that loveth another hath fulfilled the law.
서로 사랑하는 것(love one another) 외에 사람에게 어떤 것도 빚지지 말라 했습니다.(Owe no man any thing)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타인을 사랑하는 이는 율법을 충족시켰다고 했지요.
사람이 사는 동안 누군가로부터 빚을 지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볼 수 있으므로 이 말씀은 당연히 담긴 뜻이 따로 있는 겁니다.
즉, 빚을 지거나 주더라도 사랑의 마음으로 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롬13:9)
For this,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 Thou shalt not kill, Thou shalt not steal, Thou shalt not bear false witness, Thou shalt not covet; and if there be any other commandment, it is briefly comprehended in this saying, namely,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Love worketh no ill to his neighbour: therefore love is the fulfilling of the law.
십계명을 간단하게 포함할 수 있는 것이(briefly comprehended)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지요.
이 말씀이 간단한 것 같지만 무척이나 심오(深奧)하고 광대한 가르침입니다.
진정으로 배우자를 사랑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한눈을 팔지 않을 것이고 진정 사람을 사랑한다면 살인도 저지르지 않을 것이며 남의 것을 훔치거나 탐내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면 율법이 따로 필요 없으며 그자체가 율법이나 다름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 말하고 있는 거지요.(10절)(love is the fulfilling of the law)
이러한 일을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역지사지(易地思之), 이심전심(以心傳心), 심심상인(心心相印)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할 줄 알고 마음으로 통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빛이신 성령이 임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해 줍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13:11)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2)
The night is far spent, the day is at hand: let us therefore cast off the works of darkness, and let us put on the armour of light.
우리에게 사랑의 마음이 생겨날 때가 곧 성령이 임하실 때라는 것을 잠에서 깨어나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11절)
믿음이 깊어지면 반드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말이지요.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될 수는 없습니다.
빛이자 사랑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 내재함을 믿고 생활에서 실천해나갈 때 어느 순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12절에서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말하고 있습니다.(cast off the works of darkness, and let us put on the armour of light)
달리 표현하면 육적 속성을 죽이고 성령으로 거듭나자는 말과도 같은 거지요.
이렇게 되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기에 11절에서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 표현하고 있으며 12절에서는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 말해놓은 겁니다.
이러한 일 모두는 자신이 직접 경험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듣기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이신 성령이 들어있다 했지만 막상 살아보면 그 말씀대로 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위로해 줍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롬13:13)
Let us walk honestly, as in the day; not in rioting and drunkenness, not in chambering and wantonness, not in strife and envying.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
But put ye on the Lord Jesus Christ, and make not provision for the flesh, to fulfil the lusts thereof.
밝은 낮과 같이 정직하게 걷자고 권유합니다.(Let us walk honestly, as in the day)
그리고 소동을 일으키거나 술에 취하지 말라하며(in rioting and drunkenness) 간음하거나 음란하지 말고 분쟁 속에 있거나 시기하지 말라 했습니다.(not in strife and envying)
구도자로서 이렇게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이렇게 살기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지요.
그래서 바울은 14절에서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고 육신의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일을 만들지 말라 한 겁니다.
성령과 하나 되신 예수를 우리 안에 살게 하여 육적속성을 죽이고 빛의 몸으로 거듭나자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서 13장을 모두 마쳤으니 서로 사랑하시길 바라며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
'짧은생각 긴여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이 내재함을 깨달아야 거듭난다. (2) | 2024.11.09 |
---|---|
완전해 지는것은 완전을 보는것이다. (8) | 2024.11.08 |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22) | 2024.11.06 |
모든 영혼은 높은 힘에 예속(隸屬)하라. (10) | 2024.11.05 |
믿음의 성벽을 쌓아 성령을 담으라. (24) | 2024.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