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하나님 이름을 상고(詳考)하라.

배가번드 2024. 12. 6.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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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연구하다보니 가끔씩 인터넷 서핑을 하게 됩니다.

관련 자료를 찾거나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여 이곳저곳을 방문하게 되는데 오늘은 하나님 이름에 대해 궁금해 하는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인가라는 질문이었는데 누구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사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이러한 점에 대해 궁금해 해야 합니다.

어째서 하나님에게 이름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어야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았다 할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 이름이 있는 이유 또한 알아야 성경을 안다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러한 점에 대해 고민해 볼까 합니다.

우선적으로 알아야할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두 가지라는 사실입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이 “여호와” 이고 두 번째 이름은 “엘로힘” 이지요.

여호와의 뜻은 “나는 나다, 나는 있는 자 그로다”이며 영어로는 “I am who I am”로 표기하고 있으며 엘로힘의 뜻은 “능력 있는 자”이므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두 가지 모두가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만약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면 우선당장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자체가 성립이 되기 어렵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 가지라 해서 안 될 것은 없지만 이렇게 될 경우 하나님이 누구로부터 창조되어지거나 이름 지어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성경말씀은 부정되어야 하므로 이럴 수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은 이름을 가질 수 없으며 우리는 그 뜻으로 하나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아마도 크리스천 대부분은 내말에 반대하겠지만 그런 이들은 스스로가 머리와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생각해보기 바랍니다.(머리는 생각, 가슴은 양심)

모두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 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데 어째서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라는 말을 하지 않는지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거지요.

만약 성경에 기록된 대로 말한다면 예수는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 볼 수 없으며 여호와나 엘로힘만이 하나님이라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 되었고 하나님자체가 되려면 하나님은 어떤 이름을 가진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며 형상에 머물러서도 안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의 다음말씀은 진리로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요14:11)Believe m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n me: or else believe me for the very works' sake.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12)

 

크리스천들 모두는 6절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11절을 보면 예수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다 말하고 있지요.

만약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이름과 형상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가 하나님 안에 들어갈 수가 없으며 여호와 또한 예수 안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빛이신 성령으로 인식되어야하며 이름이 아니라 그 뜻을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우리역시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는 것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같은 일을 할 것이며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 말해놓은 겁니다.(12절)

이러한 이유로 예수가 다시 와서 들어 올린다는 교리는 제대로 된 해석이 아니며 성경을 오해하고 있다 봐야합니다.

예수가 아버지께로 갔는데 어떻게 제자들이 예수보다 더 큰일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면 이런 교리를 가르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지요.

하여, 이런 이들을 위해 이사야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사52:1)

Awake, awake; put on thy strength, O Zion; put on thy beautiful garments, O Jerusalem, the holy city: for henceforth there shall no more come into thee the uncircumcised and the unclean.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사52:2)

 

시온이여 깨어나 너의 힘을 입으라(Awake, awake; put on thy strength, O Zion) 했으니 구도자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성령이 깨어나라는 뜻입니다.(1절)

육신(예루살렘)을 성전 되게 만들어 성령이 깨어나게 만들라는 뜻이지요.

이렇게 성령이 드러나게 되면 육적인 면들과 완전히 분리가 됨으로 할례 받지 않는 자와 부정한자가 다시는 들어오지 않는다 한 겁니다.

그래서 2절에서 먼지를 떨어 버리라 했는데 이는 죄가 호리라도 남김없이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에서 나올 수 없다는 말씀과 정확히 일치됩니다.

육을 벗어나 성령으로 거듭나야한다는 것을 비유로서 말씀하신거지요.

그런데 2절의 뒷부분에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인즉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것은 외부의 힘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본인들이 물질과 육신에 초점이 맞춰진 상태로 살고 있기에 육신을 성전 되게 만들어 성령을 드러날수 없게 만들었음을 알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인자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성령의 불씨가 심어지면 달라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사52:6)

Therefore my people shall know my name: therefore they shall know in that day that I am he that doth speak: behold, it is I.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52:7)

How beautiful upon the mountains are the feet of him that bringeth good tidings, that publisheth peace; that bringeth good tidings of good, that publisheth salvation; that saith unto Zion, Thy God reigneth!

 

6절에서 말하는 내백성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믿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내 이름을 알게 된다 말하고 있지요.(my people shall know my name)

즉, 하나님 이름에 담긴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정확히 표현해서 하나님과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성령이 드러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7절에서 시온을 향하여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산을 넘는 발이 아름답다 했지요.(How beautiful upon the mountains are the feet)

이말씀인즉, 역경을 이겨내고 성령과 하나 된 이가 구도자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해준다는 뜻이기도 하고 역경을 이겨낸 구도자에게 성령이 임하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내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예수의 말씀과 같다고 볼 수 있지요.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상고의 시간을 마쳤으니 모두가 성령의 불씨를 가슴에 심기를 바라며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