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의원에 갔습니다.
딱히 아픈 곳이 있었다기보다 근육을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지라 가끔씩 부항을 뜨는 것이 좋다 여기기에 가게된 겁니다.
냉증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예전과 같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으며 근육통이 생긴 것도 아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번씩 어혈을 제거해주는 것은 필요하다 여기고 있지요.
의사선생님이나 간호사선생님 모두가 너무나 친절하고 좋으신 분들이라 거리가 조금 있기는 해도 기어코 그곳을 가고 있습니다.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인연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그분들의 성정(性情)에 강한 이끌림을 받게 되었나 봅니다.
보통의 경우 의사선생님들은 환자와 치료자라는 사이를 생각해서 뭔가 모를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데 양평역 근처에 자리한 다정한의원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지요.
무엇보다도 선생님께서 환자를 낫게 하기위해 무척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으며 솔직한 점이 너무나 좋게 여겨졌던 겁니다.
어떻게 하면 환자를 빨리 낫게 할 수 있나 매일같이 연구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나 역시 어떻게 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성령을 깨닫게 만들어 하나님 품에 들게 할까를 매일같이 연구하고 있으니 치유의 방법을 연구하는데 있어서는 서로 상통한다 할 수 있으므로 강하게 끌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나 같은 경우에는 병이 생기는 근본원인을 생각하므로 치료하는 일에 그렇게 진심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몸을 심하게 다루는 바람에 병이 생긴 것이므로 내 생활 습관이나 성격을 고쳐야한다 생각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단지 심하게 아플 경우 병원을 가서 도움을 받을 뿐 근본적인 치료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주의지요.
그렇지만 아무리 내가 몸을 아끼려 해도 현실은 그렇지가 않으며 몸을 혹사하기 마련인지라 어쩔 수 없이 병원신세를 지게 됩니다.
이제는 육신이 노화현상을 보이고 있으므로 갈수록 이러한 걱정은 빠르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며 지금부터라도 근육을 심하게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로 전환을 하려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일을 할 때는 이런 생각은 어디로 가버리고 일에 몰두를 합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퇴근시간이 다가와 있고 집에 와서야 내가 무리를 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정말 웃기게도 이러한 생활을 내가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나 스스로를 놀래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의 경우는 내가 알 수 없지만 나에게는 일자체가 즐겁습니다.
내손을 거쳐 무엇인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나를 즐겁게 만들고 있으며 내가 아직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즐겁게 만들고 있지요.
이러다보니 아침저녁으로 즐거움을 만끽하는 생활의 연속입니다.
아침이면 오늘 어떤 일이 내게 주어질지 기대를 하며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에는 한편의 글을 완성하는 기쁨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에 즐거워합니다.
이래서 인지 가끔씩 강제휴가가 주어집니다.
현장의 사정상 작업이 중지되는 일이 왕왕 생긴다는 거지요.
마치 하나님께서 잠시 쉬라는 듯이 현장이 멈추어 서게 되는지라 다시 한 번 내 상황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표면상으로는 발주처(發注處)와 시공사(施工社)가 갈등을 일으켜서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보이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만약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삼을 경우 이 같은 일은 분명 재앙이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영적인 길을 걷는 구도자로서는 쉬면서 앞날을 도모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이번기회에 전업을 하라는 뜻인지도 모를 일이지요.
한두 개 현장만 더하면 전업을 하려 마음먹고 있었기에 조금 빨리 현실로 다가온 것이라 여길 수도 있는 일이어서 그다지 심각하게 여길 일도 아닙니다.
만약 이렇게 강제휴가가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이번에 한의원을 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반가운분들과의 재회(再會)가 없었을 겁니다.
이렇듯 세상사는 언제나 초점의 문제로 귀결이 됩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지며 결과 또한 달라집니다.
물질적이고 육적인데 초점을 맞추면 재앙이던 것이 영적인데 초점을 맞추면 축복이 되는 거지요.
이래서 돈과 도는 글자가 비슷하지만 길이 다르다고 말하고 있으며 함께 할 수 없다 말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돈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양식과 같은 것이어서 인생의 목적이 될 수도 없으며 모으고 쌓아둘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마치 인생의 목적이라도 되는 양 돈을 취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지요.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출16:15)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출16:16)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출16:17)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출16:18)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출16:19)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출16:20)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출16:21)
이 내용은 출애굽한 후에 광야에서 굶주릴 때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 먹게 하신 일을 기록한 것으로 영적인 길을 걷게 되었을때 일어나는 일을 비유한 겁니다.
만나의 뜻은 “이것이 무엇이냐”로서 일용할 양식을 가리키고 오멜의 뜻은 “한데 묶다, 쌓아 올리다, 보리 한 묶음”으로 각자의 역량을 뜻합니다.
각 사람마다의 능력으로 먹을 양식을 취하기에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지만 사는 동안 먹는 것은 정해져 있다는 뜻이지요.
부자도 가난한 이도 세끼를 먹으며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이스라엘백성) 사는 데는 지장 없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필요이상으로 욕심을 내는지라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 것이고 하나님의 노여움을(모세는 하나님의 대변인, 하나님과 하나 됨) 산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길을 걷는(도 닦는) 이가 필요이상으로 욕심을 내면 탈이 난다는 것을 비유로서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해가 뜨면 그것이 녹는다 했는데 이는 빛이신 성령이 드러나면 필요이상의 재물은 녹아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도가 높으면 돈이 따라 온다 가르치는 이는 성경속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볼 수 없으며 자신의 의를 드높이는 동시에 하나님의 시험에 빠진 거라 봐야 됩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분명히 적고 있지요.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16:4)
내말을 믿든지 말든지 내 알바 아니지만 적어도 성경을 제대로 읽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며 강제휴가 첫날을 알차게 보냈음을 보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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