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연휴를 마치고 새롭게 한해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겠지만 나에게는 매일이 새로운 날의 연속임으로 그저 오늘도 새롭게 시작할 뿐이지요.
바울이 매일같이 죽는다고 말한 것처럼 나 홀로 목사 역시 매일같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바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전3:1)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전3:2)
바울을 따르는 이들이 근본적으로는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동등한 형제들이지만 아직 영적이지 못하고 육에 속한지라 어린아이 대하듯 한다는 뜻입니다.(1절)
그래서 젖을 먹이고 밥을 먹이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 말씀인즉 속 깊은 영의 일들을 말할 수 없다는 거지요.(2절)
요약하면 영적으로 아직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어린아이 수준에 맞는 말씀만 전해주었다는 겁니다.
다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길을 걷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3:3)
For ye are yet carnal: for whereas there is among you envying, and strife, and divisions, are ye not carnal, and walk as men?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고전3:4)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고전3:5)
Who then is Paul, and who is Apollos, but ministers by whom ye believed, even as the Lord gave to every man?
시기와 갈등으로(envying, and strife) 서로 분열하고(divisions) 있다면 육에 속한이라 바울은 말합니다.(3절)
그러므로 4절을 통해 육신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바울의 뜻은 “지극히 작은 자”이고 아볼로의 뜻은 “파괴자, 침략자”로서 자신을 지극히 낮추고(바울) 육적 속성을 파괴시키는(아볼로) 영적지도자를 가리키지요.
이러한 이유로 5절에서 아볼로나 바울은 동일한 사역자라 말하고 있습니다.
분별심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두 사람이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의 역할이 다를 뿐 똑같이 영적가르침을 전하는 메신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3:6)
I have planted, Apollos watered; but God gave the increase.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7)
바울은 성령의 불씨를 심어주는 역할을 하고 아볼로는 물을 주는 역할을 했지만 성장은 하나님이 주신다고(God gave the increase) 합니다.(6절)
이 말씀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불가(佛家)의 가르침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관점에서 보면 종교가 다르다 해도 문제될 것이 없는데 같은 교회 안에서도 반목하여 갈등한다면 영적인 사람이라 볼 수 없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7절에서 심는 이나 물주는 이에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우리를 성장시키는 하나님께 집중하라 한 것인데 여기에는 또 다른 뜻이 있음을 다음 구절을 통해 알려줍니다.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3:8)
Now he that planteth and he that watereth are one: and every man shall receive his own reward according to his own labour.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9)
For we are labourers together with God: ye are God's husbandry, ye are God's building.
성령의 불씨를 심어주기 위해 겸손을 가르치는 사람이나(바울) 육적속성을 파괴시키기 위해 보다 강력한 가르침을 주는 이가(아볼로) 다르지 않으며(are one) 그들 모두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라고 합니다.(8절)
그래서 수고함에 따라(to his own labour) 상이 주어질 거라(receive his own reward )했습니다.
이 말씀은 비단 가르침을 주는 이의 역할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듣는 이와 말하는 이가 둘이 아님을 알라는 뜻입니다.
9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라는 표현을 했는데 이는 영적지도자를 뜻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뒷부분을 보면 바울의 가르침을 받는 이를 하나님의 농사에(God's husbandry) 비유하고 하나님의 건축물에(God's building) 비유했음을 알 수 있지요.
바울과 같은 하나님의 동역 자들을 통해 가르침을 받아 영적결실을 맺는다면 성령과 하나 되고 육신을 성전으로 만드는 것이니 어찌 둘로 볼 거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고전3:10)
According to the grace of God which is given unto me, as a wise masterbuilder, I have laid the foundation, and another buildeth thereon. But let every man take heed how he buildeth thereupon.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3:11)
For other foundation can no man lay than that is laid, which is Jesus Christ.
바울은 자신의 가르침이 육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밝히고 있습니다.(10절)
본인은 터를 닦는 사람에 불과하고 각자가 그 위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지어야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거지요.(every man take heed how he buildeth thereupon)
액면으로는 마치 세우는 이가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본인 스스로가 성전을 지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11절에 터를 닦는 이가 예수그리스도라 했지만 결국 성령이라는 뜻이지요.
앞서 10절에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바울자신이 터를 닦았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예수그리스도가 터를 닦는다 했으니 성령으로 하나 되었다는 겁니다.
결국 전체 내용을 보면 성령의 가르침을 전하는 이나 받아들이는 이가 다 같은 성령을 담고 있음을 알라는 것으로 분별심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모든 이들의 내면에 성령이 거하고 계심으로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져야 빛이신 성령과 하나 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며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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