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인식의 폭을 넓혀 성령과 하나 되라.

배가번드 2025. 4. 25.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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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시간 사도들이 의로움의 무기를 좌우에 들었다고 했는데 이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가리킨다 볼 수 있고 공의와 사랑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하나님이라 하면 무조건 사랑으로 감싼다고만 알고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매를 들기도 하는지라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자녀를 키워본 이들을 알겠지만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는 꾸짖을 줄도 알아야 아이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무조건 감싸 안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랑이며 은혜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바울이 하나님을 대변한 사도로서 성도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잘 알 수가 있지요.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고후6:8)

By honour and dishonour, by evil report and good report: as deceivers, and yet true;

 

명예와 불명예, 악한 면과 선한 면, 속이는 자 같지만 참된 것으로서 대한다고 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성도들이 명예가 손상되는 것은 물론 기분나빠할 말도 했고 속이는 것 같은 말도 했지만 그 모두가 더 큰 명예와 선함과 진리를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세상 적으로 출세하여 높은 직위와 부를 누리고 있다 했을 때 그것이 무의미하다 말하게 되면 듣는 사람은 무척 기분이 상할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영혼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지 모멸감을 주거나 창피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고후6:9)

As unknown, and yet well known; as dying, and, behold, we live; as chastened, and not killed;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As sorrowful, yet alway rejoicing; as poor, yet making many rich; as having nothing, and yet possessing all things.

 

육적으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적으로는 모든 이들 안에 내재함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9절)

바울 및 사도들 모두는 하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성령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으므로 만인의 내면에서 살고 있다는(we live) 뜻이지요.

그러므로 육적으로는 하늘로부터 벌 받는 것 같으나(as chastened) 죽지 않았다(not killed)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자신의 영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으므로 삶의 질고(疾故)에 노출되면 저주받았다고 생각하며 살다 육신의 죽음과 함께 영혼도 함께 죽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과 사도들처럼 성령과 하나 된 이들은 육신적으로는 일반인들과 같이 고통과 괴로움에 노출되어 사는 것 같지만 내면으로는 영생을 얻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0절에서 겉보기에는 슬픔에 빠진듯하지만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자 같으나 많은 이들을 부요하게 만들며(making many rich)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한 겁니다.(possessing all things)

모든 것을 가졌다고 했으니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말이며 사람들의 삶에 희망을 줌으로 부요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만물을 만드신 이는 하나님이며 만물을 생동케 하시는 이는 하나님의 영이시니 곧 성령입니다.

사도들이 성령과 하나 되었고 성령이 온 세상에 빛으로 만연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구약속의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4)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이 내용이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러나 육신 예수가 아닌 성령으로서의 예수를 뜻하는 겁니다.

육신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구약의 내용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게 됨으로 이 말씀은 성령과 하나 된 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성도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고후6:11)

O ye Corinthians, our mouth is open unto you, our heart is enlarged.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고후6:12)

Ye are not straitened in us, but ye are straitened in your own bowels.

 

고린도는 “뿔”이라는 뜻으로 믿음을 가리킵니다.

즉, 믿음을 가진 이들은 모두 들으라는 말이지요.

본인들이 믿는 만큼 사도들의 입과 마음이 확장된다는 점을 알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11절)

이 말씀은 듣는 귀가 말하는 입과 둘이 아니라는 뜻으로 준비된 자에게 문이 열린다는 말과도 같은 겁니다.

믿는 마음이 크면 가르침도 따라서 커질 수밖에 없기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2절에서 바울은 사도들 안에서 너희가 궁핍해진 것이 아니라 너희자신의 내면이 좁아진 것이라(ye are straitened in your own bowels) 말해줍니다.

바울 및 사도들은 이미 성령을 깨달아 있으므로 가르침의 폭이 넓고도 심오하지만 받아들이는 성도들의 영혼이 아직 어린아이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후6:13)

Now for a recompence in the same, (I speak as unto my children,) be ye also enlarged.

 

성령에 대한 가르침을 줌에 있어 자녀를 대하듯 한다 했으니 그야말로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복음말씀을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간곡하게 가르침을 전하더라도 바라는 것은 오로지 확장된 인식이라고 합니다.(be ye also enlarged)

인식의 폭을 넓혀 성령과 하나 된 사도들과 같아지라는 뜻이지요.

이러한 바울의 마음을 나 홀로목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성경연구를 시작한지 벌써 십년도 넘었지만 오로지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인식의 확장을 통하여 성령을 깨닫는 것뿐입니다.

누구에게도 금품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나에게 와달라고 사정해본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나로부터 멀어져 달라고 말해왔으며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부탁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이 따라오고 있으며 내 발목을 부여잡고 있으니 갈수록 몸이 무거워 지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므로 부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올 사람만 이곳을 방문하기 바라며 오늘 강해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