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보면 반드시 수정해야할 일이 생깁니다.
특히 여러 사람이 함께 일을 하다보면 누군가는 실수를 하기 마련이며 그때가 되면 지적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내가 화살을 받아야 합니다.
누구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상대적으로 내가 타깃이 되곤 하지요.
그도 그럴 것이 평상시 성경에 집중이 되어 있다 보니 실수가 잦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러한 상태인 나를 즐거이 밝히고 있다 보니 무엇인가 잘못되면 나부터 찾게 되는 겁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큰 탓이로소이다”를 연발하며 살아가다보니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있지만 어떨 때는 누구 한일인지를 아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지목하여 말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일이 잦아지면 속으로 인연이 다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두 번은 실수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지만 그러한 정도가 도를 넘어서면 가치 없이 등을 돌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적으로 일어나는 일로서 육신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상대방의 입을 통해 나를 그만두라는 말을 하도록 만들며 때로는 내가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되는 겁니다.
육신적으로 내가 아무리 참고 인내하려고 해도 상대방 스스로가 말을 하거나 아니면 상황이 급변하여 등을 돌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이 함께 할 수 없다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러한지 성경을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고후6:14)
Be ye not unequally yoked together with unbelievers: for what fellowship hath righteousness with unrighteousness? and what communion hath light with darkness?
영어성경은 믿지 않는 자와 불평등한 멍에를 지지 말라 말하고 있습니다.(ye not unequally yoked together with unbelievers)
이 말씀인즉 일반인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의 행동양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의로움과 불법이 우의(友誼)를 가질 수 있냐고 하며(fellowship hath righteousness with unrighteousness?) 빛과 어둠이 교감을 가질 수 있냐 묻고 있는 겁니다.(communion hath light with darkness?)
이는 돈과 도가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씀과 동일한 것으로 영적인 사람은 불평등한 세상과 타협할 수 없다는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고후6:15)
And what concord hath Christ with Belial? or what part hath he that believeth with an infidel?
그리스도의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고 벨리알의 뜻은 “가치 없는 자, 사악한 자, 야비한 자”등입니다.
알다시피 그리스도는 성령을 가리키며 벨리알은 악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요.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보면 이 내용은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이 조화롭게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믿는 자와 신앙심 없는 자가(believeth with an infidel) 어떤 부분에서 화합하겠냐고 한 겁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세상을 등지고 멀리 산속으로 떠나라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불평등한 세상을 살아가는 중이니 인내하며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6:16)
And what agreement hath the temple of God with idols? for ye are the temple of the living God; as God hath said, I will dwell in them, and walk in them; and I will be their God, and they shall be my people.
다 같은 육신이지만 영적인 사람의 것은 성전이고(the temple of God) 육적인 사람의 것은 우상으로(idols)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영적인 사람 안에 거하여 그들 안에서 행동한다 했으며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겁니다.
영적인 사람은 성령을 일깨워 육신을 성전 되게 만들었으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지요.
요약하여 말하자면 성령을 일깨웠으므로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고후6:17)
Wherefore come out from among them, and be ye separate, saith the Lord, and touch not the unclean thing; and I will receive you.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18)
And will be a Father unto you, and ye shall be my sons and daughters, saith the Lord Almighty.
액면대로 보자면 세상을 벗어나 사람들과 접촉하지 말라는 말이 되지만 이는 그런 뜻이 아니라 이미 성령의 내재함을 깨달았으니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다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17절)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분리되어 있음을(come out from among them, and be ye separate) 말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touch not the unclean thing) 한 겁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영접한다고(I will receive you) 하셨으니 이를 위안으로 삼고 인내하며 살아가라는 말이지요.
18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will be a Father unto you) 너희는 나의 자녀가 되리라(ye shall be my sons and daughters) 하신만큼 이러한 말씀에 의지하여 불평등한 세상을 견디라는 말씀이니 참으로 귀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신앙심이 있든지 말든지 똑같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믿음을 가진 자는 불평등한 세상을 견디기 쉽습니다.
적어도 죽어서 지옥을 가지는 않으며 잘하면 영생까지 얻는지라 이보다 좋을 순 없지요.
그러나 믿음이 없는 자는 불평등한 세상을 항상 불만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어떤 삶이 더 좋은 삶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겁니다.
이러한 까닭에 종교를 가지는 것은 산속에서 호랑이를 만났을 때 피신할 수 있는 나무와 같다는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나 홀로목사는 어떤 종교든지 하나를 선택하여 신앙생활하기를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그렇지만 알아야할 것은 종교를 선택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정견(正見)을 가지는 것은 개인의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소를 물가에 끌고는 갈 수 있으나 물을 먹는 것은 소자신이라는 사실을 말하며 6장 강해를 모두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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