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성령을 영접함은 할례와 같다.

배가번드 2025. 10. 31.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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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4장의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시간 바울의 말씀을 통해 확인해본결과 우리가 진정으로 원할 때 성령은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 육신이 원하는 방식은 아닐지라도 반드시 성령은 우리에게 합당한 것들을 주신다는 거지요.

다시 말하자면 주어진 현실이 아무리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성령이 주시는 거라는 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당면한 현실은 언제나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우리의 영혼이 원해서 온다는 겁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세례요한이나 예수 및 사도들이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해보면 이 말이 어떤 뜻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들 모두가 원치 않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의를 내려놓고 순교(殉敎)했음을 생각해보면 왜 이렇게 말하는지 알 수가 있지요.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은 우리내면 깊숙이 자리한 진정한 영혼인 성령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말씀을 드리며 성령과 하나 되신 바울의 말씀에 귀 기울여 보겠습니다.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골4:7)

All my state shall Tychicus declare unto you, who is a beloved brother, and a faithful minister and fellowservant in the Lord: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골4:8)

Whom I have sent unto you for the same purpose, that he might know your estate, and comfort your hearts;

 

7절에 등장하는 두기고의 뜻은 ‘행운의 아이’입니다.

얼핏 보면 두기고라는 사람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성령을 가리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의 지경을(my state) 선언한다는(declare unto you) 표현을 하고 있으며 그가 주안에서(in the Lord) 믿음직한 성직자이고(a faithful minister) 동료 고용인(fellowservant)이라고 했습니다.

한글성경은 ‘state’를 처해있는 상황이라 해석해서 사정을 알린다 했지만 이는 바울의 경지(境地)가 어떠한지를 말해준다는 뜻입니다.

8절을 보면 이 같은 해석이 아주 합당함을 알게 되지요.

성령의 입장인 바울과 같은 목적을 위하여(for the same purpose) 그를 보낸다 했고 그가 너희의 유산을 알게 하며(know your estate) 너희 마음을 위로한다(comfort your hearts) 했으므로 성령을 뜻한다고 봐야 합니다.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 이어지는 내용역시 올곧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골4:9)

With Onesimus, a faithful and beloved brother, who is one of you. They shall make known unto you all things which are done here.

 

오네시모의 뜻은 ‘유익한, 이익’등으로 사람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을 앞의 내용과 연결하여 생각해보면 성령이(두기고) 임하면 물질적 이익까지 더해진다는 말이 되지요.

그렇다고 해서 가난했던 사람이 부자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만족하는 마음이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뒷부분에서 그들이 여기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all things which are done here) 알려 줄 거라 한 겁니다.

즉, 성령과 하나 된 바울 및 사도들에게 일어났던(경험했던) 모든 일들을 알려준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해석이 되지 않으면 성경은 심각한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학자들은 골로새서를 바울의 옥중서신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이 내용을 보면 그렇게 보기 어렵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이 사람을 파견시킨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더욱더 이 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골4:10)

Aristarchus my fellowprisoner saluteth you, and Marcus, sister's son to Barnabas, (touching whom ye received commandments: if he come unto you, receive him;)

 

아리스다고의 뜻은 ‘최고의 통치자’이고 바나바의 뜻은 ‘권면의 아들, 위로의 아들’이며 마가의 뜻은 ‘큰 망치,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입니다.

마가는 요한의 헬라어 이름으로서 여러 명의 요한가운데 한사람이지요.

그런 마가가 바울과 함께 옥에 갇혔다고 하니 너무나 생소합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사람들이 말하는 감옥이 아니라 성령에 종속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계명을 받아들이는 너희가 접촉을 할 것이라 했으며(touching whom ye received commandments) 만약 그가 오거든(if he come unto you) 영접하라(receive him) 한거지요.

즉,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면 성령을 영접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 다음내용역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골4:11)

And Jesus, which is called Justus, who are of the circumcision. These only are my fellowworkers unto the kingdom of God, which have been a comfort unto me.

 

유스도의 뜻은 ‘올바르다, 의롭다’이며 예수의 뜻은 ‘하나님이 구원 하신다’이므로 이 또한 성령을 영접하면 의로움을 얻게 되어 구원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할례 받은 사람이라(who are of the circumcision) 한 것이며 하나님왕국에 바울과 동역자로서(my fellowworkers) 바울의 위로가 되었다(a comfort unto me) 한 겁니다.

정리하여보면 성령을 영접한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할례 받은 것과 같아서 성령과 하나 된 바울과 같이 하나님 왕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아마도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어디에서도 이러한 해석을 하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육적이고 물질적인 시각으로만 보게 되는지라 속뜻을 알 수 없으므로 항상 지명과 사람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지요.

이런 이들의 특징이 자신에게 맞는 말씀만 들으려 한다는 겁니다.

항상 자신의 의를 먼저 내세워서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므로 오늘은 믿었다가 내일은 불신하는 일을 반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홀로목사는 언제나 내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에 초점을 맞춥니다.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소리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인간적인 면으로야 사람들 마음에 드는 말만 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싶지만 성령은 그와는 반대의 말을 전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까닭에 나 홀로목사에게는 사람의 영광이 주어지지 않으며 오로지 하늘의 영광만이 주어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골로새서 4장의 두 번째 시간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