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이 히브리서5장에도 시편의 내용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시편 내용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반면에 속뜻은 모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속뜻을 알았더라면 구태여 바울이 인용하여 설명해주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간단하게나마 속뜻을 알아보기 위해 상고해보겠습니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2:6)
시간관계상 처음부터 올리지는 않았지만 시편 2장은 하나님이 심어놓은 성령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태초부터 사람의 몸 안에 심어놓은 하나님의 숨결은 벗고자 해서 벗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저 자연스럽게 심어져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는 이유는 육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며 성령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육신을 먼저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러한 점을 지적하기 위해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므로 6절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육신을 거룩한 시온 산에 비유한 것이며 하나님의 왕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즉, 성령이신 하나님이 믿음아래 놓인 사람의 육신을 성전 되게 하셨다는 말로서 성령이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다윗은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2:7)
I will declare the decree: the LORD hath said unto me, Thou art my Son; this day have I begotten thee.
다윗자신이 성령이 드러나 인자가 되었다는 뜻에서 법령을 선포한다 했습니다.(I will declare the decree)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아들이다 하셨고 오늘 나는 너를 낳았다고 합니다.
바울이 히브리서 5장에서 인용한 것이 바로 이구절로서 예수께서 다윗이 노래한 시편의 주인공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육신적으로 보면 다윗과 예수는 다른 사람이지만 내재하신 성령은 동일하며 그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대제사장과 그리스도는 같은 의미가 되고 성령이 드러난 인자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겁니다.
또한 비록 시대를 달리하고 육신을 달리하지만 성령이 임하시는 방식은 변함이 없기에 오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내재하신 성령이 드러나는 그 순간이 바로 오늘이고 예수시대에는 성부이신 하나님이 성령으로서 인자이신 예수에게 드러나는 그 순간이 바로 오늘이 되는 거지요.
그러므로 바울이 이 말씀을 인용하는 그 순간의 오늘에는 예수가 이미 성령으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으므로 바울이 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예수께서 성령으로서 인자인 바울의 몸에 역사하시게 되는 것이며 오늘날의 제사장이라 할 수 있는 목회자들의 몸을 통해 말씀을 전해줄 수가 있는 동시에 말씀을 듣고 믿음아래 놓인 사람들이 성령으로 거듭날 수가 있게 되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적용받게 됩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시2:8)
Ask of me, and I shall give thee the heathen for thine inheritance, and the uttermost parts of the earth for thy possession.
나에게 요청하면 이방인(the heathen)과 네 소유를 위한(for thy possession) 땅의(of the earth) 대부분을(the uttermost parts) 너의 유산으로(for thine inheritance) 줄 것이라 했습니다.
액면대로 보면 하나님께 요청할 경우 이방의 나라를 소유물로 주는 것이라 여기겠지만 이는 그런 뜻이 아니라 성령의 내재하심을 깨닫게 되면 육신의 소유를 온전히 성령이신 하나님께 맡긴다는 뜻입니다.
만물을 다스리는 빛이신 성령은 이미 세상에 편재하고 있는 동시에 우리들 안에도 있음으로 우리의 믿음에 따라 얼마든지 그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이는 마치 우리믿음의 크기에 따라 하나님이 제한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내안에 가두어두게 되면 나만의 하나님이 되고 영역을 넓히게 되면 우리의 하나님이 되며 더욱 크게 범위를 넓히면 온 우주를 관장하는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그러한즉, 우리는 지금 성령이신 하나님을 우리 안에 가두고 있는 중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성령이신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시2:9)
Thou shalt break them with a rod of iron; thou shalt dash them in pieces like a potter's vessel.
이 내용은 하나님께 요청하는 사람에게 하신말씀으로 성령으로 거듭나는 인자에게 하신 겁니다.
인자가 되어 강력한 가르침을 행사하라는 뜻에서 쇠막대기로(with a rod of iron) 그들을 부술 것이라 했으며 도자기처럼(like a potter's vessel) 그들을 내 동댕이쳐(dash them) 산산조각 낼 것이라(in pieces) 했습니다.
성령이 드러난 인자가 고정관념을 박살내는 가르침을 준다고도 볼 수 있으며 자신의 내면에 거하시는 성령이 드러나면 육신에 각인된 속성들이 소멸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육에 속한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시2:10)
Be wise now therefore, O ye kings: be instructed, ye judges of the earth.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2:11)
Serve the LORD with fear, and rejoice with trembling.
이 말씀을 듣는 바로 이 순간을 말하기 위해 지금 현명해지라(Be wise now) 했고 육에 속했다는 뜻에서 너 왕들아(O ye kings) 했습니다.(10절)
그리고 땅의 심판자인 너희는(ye judges of the earth) 가르침을 받으라(be instructed)했지요.
육에 속한 이들은 인자의 가르침을 받아야한다는 뜻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내재하신 성령에 대한 경외심은 항상 간직하고 있어야 하기에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떨림으로 즐거워하라고 합니다.(11절)
자칫 성령의 내재하심을 깨닫는 것을 육신이 완전해지는 것으로 착각하여 스스로 하나님이 될 수도 있으므로 이렇게 말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다윗은 말합니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2:12)
Kiss the Son, lest he be angry, and ye perish from the way, when his wrath is kindled but a little. Blessed are all they that put their trust in him.
이 말씀은 인자를 숭배하라는 뜻이 아니라 성령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라는 뜻입니다.(Kiss the Son)
인자가 성령의 가르침을 주는데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노여움이 약간 불타오를 때 (when his wrath is kindled but a little) 길로부터 소멸되는 것과 같다는 말이지요.(perish from the way)
이 말씀인즉, 성령의 불씨가 인자로부터 전해지지만 믿음이 없다면 꺼져 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에게(in him) 그들의 믿음을 둔다면(put their trust) 그들 모두가 축복받은 것이라(Blessed are all they) 했습니다.
인자를 믿는 것이 곧 내재하신 성령을 일깨우는 길이라는 뜻이니 이 말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이들만 듣기를 바라며 강해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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