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집에 도둑이 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일먼저 생각했던 것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었지요.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며 살았기에 이런 일을 당하게 되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더라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남의 집을 침입하여 도둑질 한 적이 없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를 생각한 끝에 중학교 때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떡볶이를 훔쳐 먹었던 기억이 나는 겁니다.
백 원을 내고 백오십원어치의 떡볶이를 먹었으므로 훔친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거지요.
이 뿐만 아니라 남의 것을 탐하던 마음까지 드러나기에 도둑질 당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인과응보라고 해서 내가 저질렀던 행위에 대한 응보(應報)가 똑같은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똑같이 당하지는 않으며 형태와 유형을 달리해서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이러한 마음을 먹게 된 것이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인과응보의 법칙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며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 없으며 무엇인가를 심었기에 싹이 나고 나무가 자라며 열매가 열리게 되는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일은 내 인생에서 확인이 되는 일이었으며 지금도 어김없이 적용받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과거 악동시절 후배들에게 주먹질을 함부로 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술에 취한 채 체육부 학생들로부터 몰매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좌우 갈비뼈가 네 대나 부러져 두 달 가까이 드러누워 지내야만 했던 겁니다.
이날 이후로 폭력 행사하는 것을 자제하게 되었지만 지금도 어쩌다 폭력적인 생각만 해도 안 좋은 일이 발생하게 됨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은 인생 곳곳에서 경험이 되는 일이며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마다 생각하는 일입니다.
언제가 한번은 거래하던 곳으로부터 부도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역시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지요.
느닷없이 거래처 사장님이 암에 걸려 돌아가시는 바람에 속절없이 부도를 당하게 되었는데 그로인해 명상수행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당시 부도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을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며 육신의 죄인 됨을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는 거래처 사장님이 믿는 불교에 따라 극락왕생하기만을 기도했지만 지금은 내 죄를 갚을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일단 부도를 당했고 당사자는 돌아가셨으니 어찌할 바가 없으므로 포기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지만 훗날 명상을 통해 알고 보니 우리가 세세생생 인연의 고리를 지속하여 형성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영원 속에서 안식을 할 때까지 이러한 일을 반복해서 겪게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으므로 영생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는 거지요.
내가 살아나오는 동안 겪었던 모든 일이 인과응보를 깨닫게 하였고 죄와 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였으므로 이러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은 먼저 죄인 됨을 깨닫고 뉘우친 후 죄 사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사실 일반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이러한 일을 당하는가를 생각만 할뿐 모든 일에 대한 원인제공자가 자신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오로지 원망만 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언젠가 어떤 목회자 한분은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기가 어려웠음을 토로한 적이 있지요.
모태신앙에다 모범생으로 일관했던 학창시절은 물론이고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으니 본인의 죄인 됨을 깨닫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것이 아담의 원죄 론이었고 그로인해 육신에 죄가 각인되었다 생각하며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죄 사함을 받았으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하며 세상의 환란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하는데 과연 그분이 그러한 상태가 되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고통은 육신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우리의 궁극의 영혼인 성령과는 별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있다는 것은 아직은 육신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며 죄 사함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인 겁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 일반인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으며 다만 고통을 느끼는 정도와 받아들이는 마음상태가 판이하게 다르며 죽어서 가는 곳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러한 일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4)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But he was wound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bruised for our iniquities: the chastisement of our peace was upon him; and with his stripes we are healed.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진정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면 이러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과 함께 하는 이들은 당면하는 고통과 슬픔을 하나님의 징벌이라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내재하신 성령이 내육신안에서 내고통과 슬픔에 동참하고 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그는 우리의 슬픔을 견뎌냈고 짊어졌다고 한 겁니다.(he hath borne our griefs, and carried our sorrows)
그렇지만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미움을 받고 고통 받으며 상처 받는다 여겼다고 했는데 이는 성령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육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내재하심을 아는 이와 모르는 이의 차이점을 말해주는 것으로 같은 고난 속에 있어도 받아들이는 마음상태가 확연히 다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5절은 우리의 범죄로 인해 그가 부상을 당하였고(he was wounded), 멍들었다고(bruised for our iniquities)합니다.
성령을 깨달은 사람이 당하는 부상과 상처는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지요.(육신은 동일하지만 받아들이는 인식상태가 다름)
또한 우리평화의 응징(膺懲)은(the chastisement of our peace) 그에게 있으며 그가 매 맞음으로(with his stripes) 우리가 치유되었다고 했는데(we are healed) 이 또한 성령의 내재하심을 가리키고 있는 겁니다.
즉, 성령의 내재하심을 깨달은 사람은 육신이 저지른 죄를 달게 받고 있는 것이며 자신이 알건 모르건, 혹은 이생이건 전생이건 할 것 없이 모든 육신이 짓는 죄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만물 안에 내재하고 있음을 알기에 이렇게 표현하는 거지요.
이와는 반대로 육에 속한 사람들은 성령에 대해 모르므로 우리 모두는 양처럼 헤맸다 했으며(All we like sheep have gone astray) 우리 모두는 각자가 자신의 길로(to his own way) 돌아섰다 했습니다(have turned every one)
영에 속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이 이처럼 차이가 있음으로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죄악을the (iniquity of us all) 그에게 놓았다고 한 겁니다.(the LORD hath laid on him)
하나님의 숨결이 모두에게 들어있지만 드러난 이와 그렇지 못한 이의 차이는 이처럼 선명합니다.
그러므로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인 양이지만 누군가는 세상 죄를 짊어지는 양이고 누군가는 고집스러운 양이니 자신이 어느 쪽인지 스스로가 알거라는 말씀을 드리며 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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