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라.

배가번드 2026. 4. 13.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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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교회를 나갔습니다.

개인사로 바쁘기도 했고 교회가 확장 공사를 하느라 예배시간을 앞당기는 바람에 몇 주를 나가지 못하게 된 겁니다.

어지간하면 확장공사에 일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육신적으로 너무나 피곤함으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일요일만큼은 정말 쉬고 싶은지라 몇 주를 건너뛰게 된 거지요.

그러나 매일같이 성경을 붙들고 있고 성령은 우리를 언제나 연결하고 있으므로 인연자(因緣者)들은 항상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내재하심을 아는 이들은 조금도 낯설지가 않으며 언제나 반가운 얼굴로 맞이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설교를 담당하신 목사님께서는 성령의 열매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복습하는 마음으로 갈라디아서를 보겠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갈5:22)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longsuffering, gentleness, goodness, faith,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3)

Meekness, temperance: against such there is no law.

 

 

진정으로 성령을 깨달았다면 사랑과 즐거움과 평화, 그리고 인내와 온화함과 선량함과 믿음, 그리고 온유와 절제가 열매로 주어진다고 했습니다.(22절)

성령과 함께 한다면 사랑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어 즐거움을 주고 서로 화합하며 상대방의 잘못도 관용과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어 자신을 위하기보다 상대방에 대한 온유의 마음을 가져 욕심을 절제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보통의 경우 이것을 반대로 적용하여 상대방으로부터 사랑과 즐거움을 받기를 원하게 되고 내 잘못을 상대방이 관용의 마음으로 이해해주기만을 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일은 육에 속한 것인지 영에 속한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점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깨달음의 정수로서 진정 성령으로 거듭나야 가능한일입니다.

그래서 23절에서 거기에 대항할 법이 없다 했습니다.(against such there is no law)

우리가 육신을 가진 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으로 육적속성에 길들여져 살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모든 행위가 육신의 범주를 뛰어넘게 됨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나를 위하기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배려의 차원을 넘어서 크나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제는 절덕(節德)이라고도 표현되는데 욕심과 쾌락을 스스로 조절한다는 의미이지만 내가 한 행위에 대한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라고도 해석됩니다.

내가 그만큼 했으면 너도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마음을 억제하라 여긴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무엇인가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실망을 하게 되며 그로인해 다툼이 일어납니다.

이러함으로 종교단체에서조차 서로 반목과 다툼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와 같은 일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세상 어느 곳에나 적용되는 일이지요.

내가 이만큼 열심히 일했는데 월급은 요만큼만 주느냐 해서 노사갈등이 생기는 것이고 내가 그만큼 이해와 사랑으로 대했으면 너도 반만큼이라도 보답을 해야지 않느냐 해서 부부싸움이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세상 법은 물론이고 육적인 인식범위를 뛰어 넘어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서 실천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다음과 같은 말이 성립됩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살전5:15)

See that none render evil for evil unto any man; but ever follow that which is good, both among yourselves, and to all men.

항상 기뻐하라(살전5:16)

Rejoice evermore.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Pray without ceasing.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In every thing give thanks: for this is the will of God in Christ Jesus concerning you.

 

누구를 대하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항상 선을 따르라고 했으니(ever follow that which is good) 하나님이신 성령을 따르라는 말이지요.

사람을 대할 때 항시 내재하신 성령에 초점을 맞추라는 말이니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모든 사람 안에 성령이 내재함을 알아서 한결 쉬워집니다.

상대방이 어처구니없는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성령이 깨어나기 위한 몸부림정도로 치부하여 긍휼의 마음으로 대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항상 기뻐할 수도 없고 중단 없이 기도할 수도 없지만 성령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언제나 기뻐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선하고 빛이신 하나님이 성령으로서 우리 안에 거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면 항상 기뻐하게 되며 기도 속에 있는 것과 같지요.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뜻이라고 봐야 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렇게 되면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부대끼며 상충되고 모순된 일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럴 때 본인의 생각을 죽이고 상대방 의견을 따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요.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살인을 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알아야할 일도 발생합니다.

이렇게 되면 결코 범사에 감사하지 않게 되며 기뻐할 수도 기도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성령을 담지 않은 그릇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으며 아무리 죄악으로 가득한 육신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빛이신 성령이 들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상대방이 성령으로 거듭나기까지 참고 인내하며 기다려 줍니다.

나에게 공격의 화살을 날리는 사람에게 맞대응하기보다 화살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피 흘리고 함께 아파합니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이러한 까닭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이들을 성인이라 부르는 겁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권리이자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사랑을 쉽게 말하지만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이정도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흔히들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게 되면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막상 부부의 연을 맺고 살다보면 어느새 사랑은 미움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그토록 열정적인 사랑이 상대방의 말 한마디 행동하나에 와르르 무너져 결국 갈라서게 됩니다.

그러나 갈라서고 또 다른 만남이 이어진다 할지라도 공부를 마치지 못했다면 그 같은 상황은 반복해서 다가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생에 마치지 못한 공부는 다음 생에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영생을 상속받는 것과 같이 완성되지 못한 영혼은 성령과 하나 되기 위한 여정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참을 인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 하지만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닫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성부이신 하나님이 성자인 사람의 몸(인자)에 성령으로 임하신다는 것이니 거듭난 사람은 찰떡같이 알아들을 거라 여기며 갈라디아서 복습의 시간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