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28)

배가번드 2021. 8. 9.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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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내가 처음 태백에서 내려올 때도 그랬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무렵의 마음상태 또한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러한 마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로 장을 열어 보자꾸나.

태백에서의 명상 중 끓임 없이 솟아나는 생각에 시달림을 받든 어느 날 집중을 했다 싶으면 또다시 망상에 끌려가는 내 의식을 지켜보며 어떡하면 한 생각의 끄달림을 받지 않고 명상에 집중할 수 있는가를 끓임 없이 연구하던 중 한번은 생각을 지켜보기로 했어.

내 의식을 제3의 눈에 집중한 채로 생각이 일어나는 것에 무관심을 연습했더니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생각들이 내 집중된 초점주위로 둥둥 떠다니는 것이었는데 그날 이후부터는 집중을 한 상태로 무엇이든 할 수가 있었지.

이렇게 되기까지는 밤낮없이 집중에 대한 생각만 했던 일 년 이상의 시간과 네 번의 선 행사 참석그리고 결정적인 스승님의 축복이 함께 했음 이라 여겨지지만 사실은 매일의 명상을 오로지 스승님만 생각했으므로 스승님의 축복이 전부라 해야 정확할거라 생각해

그때부터 관조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졌다고 자부했지만 절대로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으며 시시각각으로 다가서는 삶 속의 번뇌는 나를 관조자의 시각에만 머물게 허락지 않았어.

그러한 시달림 끝에 생각한 것이 출가였었는데 스승님의 말씀은 결코 내가 출가하는 것을 허락하지를 않더구나.

일찍이 내 스승님께서는 내면으로 출가를 해야지 겉모습의 출가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을 하셨기에 가족들이 있는 내가 출가를 한다는 것은 현실도피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출가에 대한 생각을 접었고 내게 주어진 삶은 가족들을 안고서 함께 가는 내면의 출가자 생활이라 여겼던 것이었어.

그러한 이유로 출가자와 같이 온전히 앉아서 하는 명상을 하루 적어도 6시간 이상을 했으며 밤낮으로 만트라를 외었고 꿈속에서조차 외우고 있다 깨어나길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한마디로 24시간 집중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거야.

그래서인지 항시 내 귀에는 천상의 음악소리가 어딜 가도 함께하며 심지어 나이트클럽 같은 시끄러운 곳 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24시간 축복 속에 사는 것 같았지.

하지만 그렇게 24시간이 천상의 소리와 함께 한다 해도 현실 속의 고통은 결코 멈추지가 않았으며 내면에 집중을 하고 있을 때는 편안함과 천국의 지복을 느끼다가도 막상 현실로 돌아왔을 땐 전혀 그렇지가 않았어.

게다가 처음 명상할 때는 지나온 과거의 내 삶의 참회를 기억나는 것만 했지만 명상이 깊어 갈수록 아주 어린 시절 남에게 함부로 말한 기억에다가 잘못된 생각을 한 것까지 떠올라서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마저 들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나같이 못되고 업장도 많은 놈이 어떻게 수행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자책감이 심하게 들어서 수행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만들었지.

그럴 때마다 스승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는 말씀으로 나를 붙들어주셨는데 아마도 스승님의 그 말씀이 아니었다면 결코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

이러한 내면의 변화는 명상 중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고 명상을 많이 할수록 의식이 맑아져 현실생활에서 남의 마음까지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어.

내 앞에서 어떤 의도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상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 아주 힘이 들더구나.

한마디로 남의 잘못만 보게 되는 시기인데 무척이나 넘기 어려운 고비였던 것 같아.

네 엄마가 나와 살면서 많이 힘들어 했던 부분이 아마 이러한 점 일 거라 생각하는데 남의 잘못은 얼음 알같이 지적하면서 자신의 잘못은 모르는 나를 마음속으로 많이 욕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호주에서 생활하는 어느 날 네 엄마와 심하게 다투고 명상을 하러 가며 생각해보니 명상을 하면 할수록 다툼도 없고 마음의 격한 감정 또한 없어져야 할 것 같은데 왜 이리  부부싸움을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겼지만 금방 답이 주어지더구나.

아직까지 우리는 서로가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모난 부분을 깎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었고 앞으로도 일정기간 계속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

싸움이 나쁜 것이 아니라 싸움을 통해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거지.

그날 이후로 네 엄마와 싸우고 나도 그때뿐 절대 가슴속깊이 미워하는 법은 없었고 남이 되어 돌아선 지금도 네 엄마를 미워하거나 원망해 본적이 없는데 이러한 점은 어느 누구를 대상으로 해도 마찬가지였어.

호주에서 지내던 어느 날 명상을 하고 나와서인지 기분도 좋았고 그날따라 햇빛 또한 얼마나 눈부신지 아름다운 주변 환경을 마음껏 즐기며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집을 향해 오는 길 우측으로 보이는 목장의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평화로워 보이는지 천국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싶어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어.

한동안 말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어느 순간 무심코 한 생각이 일었는데 우리인간의 가식적인 삶과 말의 본능적인 삶을 비교하게 되었지.

아들아!

너는 힘들고 어려운 공부를 해야 하는 너의 삶과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먹고 즐기고 사는데 아무 문제도 없는 동물의 삶 중에 어떤 삶이 좋다고 생각하니?

어쩌면 네 생각은 동물의 삶이 나을 수도 있다고 할지 모르겠구나.

나 역시 돈을 벌기 위해 일찍부터 일어나서 밤낮없이 일해야 하는 일도 없고 벌어 먹여야 할 처자식 걱정도 없는데다가 어디에나 널려있는 풀들을 먹고 아무데나 배설하면 되는 말의 삶보다 어쩌면 인간의 삶이 나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어.

하지만 나는 결코 힘든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말의 삶과 바꾸고 싶지 않았거든.

동물이 아무리 값이 많이 나가고 인간들로부터 황제 같은 대접을 받고 살아간다고 해도 결코 인간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신과 인간만이 갖고 있는 창조력이야.

인간은 어떤 동물도 흉내 낼 수 없는 창조주의 품성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존재라고 외계인들까지도 말하고 있다는데 꼭 외계인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내가 항상 네게 묻듯이 어떤 선택을 내리는가에 따라서 나의 삶을 창조할 수 있는 진정한 신이 될 수 있는 존재그것이 바로 인간의 참모습이 아니겠냐 말이지.

내가 비록 호주까지 와야 했고 그 동안 무척 힘들게 살았다 해도 그것이 모두 나 자신이 창조력을 갖춘 신의 또 다른 표현임을 알기 위해서인만큼 현실이 아무리 힘이 든다 해도 고귀한 인간의 삶을 동물에 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

이러한 나 자신의 자각이 일어나고 내 마음의 변화가 생기는 것과 때를 같이해서 현실에서의 삶 또한  변화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변화하는 삶이 이번에는 나를 한국으로 되돌려 보냈으니 눈을 그때 당시 한국으로 돌아간 내 쪽으로 돌려보자꾸나.

한국으로 돌아가기 바쁘게 네 삼촌부터 찾았는데 아직 안정도 못한 채 떠돌고 있어서 며칠을 찾아 헤맨 후에야 만나게 되었고 그간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며 새 출발을 호주에서 하자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을 하였어.

네 삼촌으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거든.

네 할머니가 걱정이 되어 만나보니 도리어 내가 걱정할까봐 아직까지 채권자들이 집을 비워달라는 소리는 안하고 있다 시며 호주에서 재기하기만을 바라셨어.

바쁘게 서류를 준비해놓고 네 숙모를 만나러 가보니 지하 방에서 고생을 심하게 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나를 보더니 그간의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더구나.

그때까지 네 삼촌과도 별거 중이었고 가족들 간에 여러 가지 오해가 있어서 나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지라 서먹한 마음을 풀기위해 내가 사과를 했고 그간에 일어나 일을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더니 다른 사람보다 나에게 더욱 섭섭했다고 하였어.

네 숙모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네 삼촌과 숙모를 결혼시킨 것이 바로 나였고 너희 숙모로서는 오로지 아주버님이 되는 나만 의지하고 전라도에서 대구로 시집을 온 것인데 내가 자기를 이해하지 않고 감싸주지 않은데 대한 서러움이 컸던 모양이었지.

그 동안 우리가 겪었던 모든 것을 서로가 이해하고 호주에서 새 출발을 하자는 내 말에 끝내는 동의를 하고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했어.

이렇게 해서 일단 가족들은 의견에 합일을 이루어냈지만 네 삼촌 식구들이 호주로 가게 만들려면 기계를 구입해야만 했는데 돈이 한 푼도 없는데 어떻게 하겠니.

할 수 없이 네 외가댁에 찾아가서 협조를 요청해야만 했어.

염치없기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고 이 길만이 우리 가족들이 사는 길이라 엎드려 빌기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갔는데 의외로 반갑게 맞아주시더구나.

앞서 호주에 놀러 오셨다가 푸대접만 받고 가셨던 지라 서운해 하시리라 생각한 것과 달리 웃으며 대해주시는 모습에서 딸 가진 부모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이래서 부모마음을 결코 자식들이 알 수 없다고 하는가 보다 싶었지.

여러 가지의 사정과 우리입장을 말씀 드렸더니 어려운 가운데도 돈을 빌려주시는데 그때 네 외할아버지가 간암투병을 시작할 무렵이란 걸 감안하면 우리에게 돈을 빌려주시는 것은 정말이지 힘든 일이었을 거야.

그런데도 두말없이 빌려 주신걸 생각해보면 지금도 그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몰라.

그렇게 해서 돈은 빌렸지만 이번에는 기계를 구하는 것이 문제였는데 여기저기 수소문해보니 그 해 중고이불 기계들이 모두 아프리카로 수출이 되는 바람에 전국적으로 한대도 없다는 것이 아니겠니.

중간 중간 호주로 전화를 해본 결과 투움바에서 처음 본 기계는 가격을 잘못 말했다면서 3만 불인가를 요구한다는 것이었어.

싸게 불렀다가 막상 우리가 급하게 살려고 했더니 가격을 올렸던 거지.

도저히 그 가격으로는 구입할 수가 없었기에 내가 공장 할 무렵부터 데리고 있던 네 엄마 사촌에게 여기저기 수소문하라 시켜놓고 대구센터에 머물면서 명상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오기를 어떤 사람이 중국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기계3대를 사놓았다는 거야.

팔려고 산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혹시 몰라 물어보았더니 돈만 많이 주면 팔겠다고 해서 흥정을 하려고 연락을 했었어.

 

!

어쩌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그 기계가 바로 우리기계 이었어.

네 삼촌이 빼앗긴 공장에서 누군가가 중국으로 가져가기 위해 사 놓았던 거야.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기계를 산사람도 내가 아는 사람이었고 내 기계를 사서 보관하고 있던 사람 역시 나하고 인연이 있었던 사람이었어.

기적 같은 이 일을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시간이 걸려도 설명을 해보자꾸나.

처음 내가 이불 장사를 돈도 없이 시작하였기에 하청을 주로 주게 되었고 기계를 보관하던 사람이 바로 내가 일거리를 주던 하청공장 사람 중의 하나였는데 이분과는 조금 좋지 않은 인연이 있었어.

원래 이불은 원단소비량이 많아서 한 장에 한 치씩만 줄여도 한 달이 지나면 엄청난 양의 원단이 남게 되고 하청공장 들이 그 원단으로 이불을 만들어 팔기도 하거든.

기계를 보관하고 있던 사람 역시 그 당시 나에게 그러한 일이 들통이 나서 분쟁이 일어나게 되었을 때 내가 양보를 해서 법적인 다툼을 면한 적이 있었던 거야.

분한 마음에 고발을 할까 하다가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이 속이 편하겠다 싶어 그냥 덮어주었지.

바로 그 하청공장 사장이 내 기계를 마당에다가 비가 맞지 않게 포장까지 씌워 고이 보관하고 있었으니 지난날 나에게 진 빚을 갚은 셈이 되었지 뭐겠니.

물론 기계를 산사람은 따로 있었는데 그분 역시도 나와는 인연이 있었고 그분 형이 나와 거래관계가 있었어.

기계를 산사람 형이 삼베로 만든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기에 내가 그분으로부터 삼베이불과 카펫을 사서 팔기도 했으므로 물건을 주고받기도 하고 사람을 시켜 외상으로 가져오기도 하는가 하면 주문이 많을 시에는 그곳에서 직접발송도 해주기도 했었는데 어느 날인가 그 공장이 부도가 났던 거야.

내가 줄 돈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연락이 닿지를 않더구나.

모르긴 해도 이들에게 돈을 주어야할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그 누구도 돈을 받으려고만 했지 줄려고 하지 않았어.

다들 정신없이 피해 다니느라 외상값이 얼마인지 잘 모르는데다가 설사 안다 해도 일단 부도가 났다 하면 다들 주지 않는 것이 다반사이거든.

우리공장 역시 외상 값 받을 돈이 줄 돈보다 훨씬 많았지만 받을 수 없었던 것도 사람들의 그러한 심리 때문이었지.

그렇지만 그 당시 나는 그분의 부도소식을 듣고서는 일부러 수소문을 했어.

돈을 갚아주겠노라고 소문을 냈더니 잠적했던 분이 금방 연락이 왔더구나.

부도가 나서 심리적으로 힘이 드실 것이고 돈도 귀할 것인데 보태드리지는 못해도 외상값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연락을 했다며 돈을 건넸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고 하셨는데 그러한 일을 기계를 사신 분이 들었던 거지.

기계를 산사람 역시도 이불 장사를 하시던 분이라 나와는 잘 알고 있었던 만큼 전화를 했더니 반가워하시며 내가 부도난 소식도 듣고 있었고 내 기계인줄도 알고 있었다면서 자신이 투자한 금액만큼은 달라 시더구나.

그분 말씀으로 시세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싸게 샀다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네 삼촌에게 물어보니 시세보다 3배도 더 싸다고 하였어.

한마디로 횡재를 한 거나 다름없었고 무엇보다 우리가 사용하던 것이어서 따로 기계작동 숙지를 할 필요도 없었던 만큼 아주 이상적인 신의 안배라 할 수가 있었던 거야.

아들아!

어떠니?

이러한 점만 봐도 신의 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음을 알 수가 있으며 내가 한 행위에 대한 보답은 언젠가 분명하게 돌아옴을 알 수 있지 않겠니?

그것이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사람들이 알거나 모르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하는 음모를 꾸미지만 내가 남을 해하려고 하는 순간 신은 이미 그러한 응보를 준비하고 함께 진행을 시켜간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는 거지.

반응이 늦게 진행된다고 해서 절대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진행의 빠르고 늦고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콩 심은 데 팥이 날리는 없는 법이거든.

아들아!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기계를 구입해놓고 네 삼촌먼저 호주로 떠나보낸 후 네 숙모 서류와 살림정리를 하는 동안 서울에서 머물고 있던 어느 날이었어.

동수들의 근황이 궁금하여 센터를 가보았지.

동수들과 함께 모여 차를 마시던 곳도 그대로 있었고 다들 몇 달만의 해후를 반가워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대만의 관음사자가 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어서 만나러 가자고 했더니 다들 피하는 것이 아니겠니.

그때 오신 분은 스승님의 왼팔이라 할 정도로 스승님의 일을 많이 했고 워낙 일과 명상밖에 모르는 분이라 몸을 돌보지 않고 정진하시는 분이었는데 다들 왜 저러나 싶었어.

일단 스승님의 제자이고 관음사자로서 오셨다면 당연히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센터에 가보니 주방에서 다른 몇 분의 사저들과 다과를 하고 계시기에 인사를 드렸지.

반갑게 인사를 받으시고는 와서 과일을 먹으라고 해서 함께 과일을 먹고 스승님 안부를 묻고는 나왔는데 왜 동수들이 그분을 무서워했나 하는 것은 며칠이 지나서 밝혀지더구나.

처음 인사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을 모시고 태백센터에서 국내선을 하게 되었는데 얼마나 사람들을 명상으로 몰아치시는지 관음명상을 연속3시간을 해야 진보가 빠르다며 계속해서 관음명상을 시키는 바람에 동수들이 무진장 애를 먹었어.

게다가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하면 가차 없이 호통을 치는 통에 출판 팀의 사저들이나 작업을 담당하는 사형들이 혼 줄이 났던 거야

그렇게 모두들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서야 왜 다들 그 토록이나 그분을 무서워했나를 알았지.

하지만 나로서는 아주 고마운 분이셨으며 그때까지 간간히 그렇게 해오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하진 않았던 관음명상을 3시간 연속으로 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

때마침 일주일마다 하는 단식과 시간이 겹쳐져 엄청나게 힘이 들었지만 사력을 다해 버티어냈는데 하도 힘이 들어서 명상 중에 “제발 이제는 멈추게 해주십시오.” 하고 빌었지 않겠니.

그랬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명상을 마치고 난 후 동수들을 보시며 누군가 뒤에서 그만하자고 열심히 빌었지만 모른척하고 계속했다고 웃으시더구나.

지금도 그분으로 인해 명상에 도움을 받으신 분들이 무척이나 많은데 말이 쉬워 3시간 연속 관음명상이지 5천 배를 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상상하면 될 거라 생각해.

우리와 함께 선을 한지 불과 몇 달 후 이분이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들 슬퍼했는데 어떤 동수의 꿈에 나타나서 말씀하시길 너무 슬퍼하지 말라면서 자신은 높은 곳에 올라가 있다고 하더라는 거야.

또다시 인간 세상에 오고 싶지 않다고 하시며 기회가 있을 때 명상을 많이 해야 자신처럼 높은 곳을 갈 수 있으니 열심히 명상하라고 했다더구나.

스승님께서도 아주 슬퍼하시며 우셨다는 것만 봐도 이분을 얼마나 아끼셨는지 알 수 있지 않겠니.

누군가는 스승님께서 우셨다는 소리에 이렇게 말하기도 해.

어떻게 수행자가 죽음을 슬퍼할 수 있는가하고 말이야.

아들아!

너는 이점을 어떻게 생각하니?

수행자라면 인간의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

네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이 있어.

부처가 된다는 것은 아무 감정도 갖지 않는 나무토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감정이 풍부하여 상대의 아픔이나 슬픔을 내 것으로 느끼는 사람이 부처라는 것을 알아야 해.

삶과 죽음에 집착하지 않고 감정에 끄달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 일뿐 누구의 죽음도 슬퍼할 줄 모르는 냉혈한이 되는 것이 부처가 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거든.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부처가 되는 것이 어떠한 길인가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해보기로하고 그때 당시로 다시 돌아가 보자꾸나.

네 삼촌네 식구들을 데리고 호주를 가기위해서 서류 심사를 통과하려면 준비를 해야 하고 여권을 내는 데부터 이사까지 마무리하려면 간단한문제가 아니었기에 서울과 지방을 오르내리며 준비를 진행시켜나가는 중 이번에는 또 다른 관음사자가 서울에 오셨더구나.

나로서는 처음 뵙는 분이라서 생소하긴 했지만 한국동수뿐 아니라 세계의 관음가족 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는 분이었고 스승님의 초창기 제자로서 스승님의 시자 생활도 오래 하신 분이셨지.

이분으로부터는 기공을 전수 받게 되었는데 아주 좋은 기공법 이었지만 어떤 이들이 기공이 주는 체험에 빠지는 바람에 나중에는 하지 말라는 얘기도 있었어.

기공을 하더라도 제3의 눈인 지혜안에 집중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데 자신들도 모르게 기공에 빠져들어 기공의 체험에 빠졌던 거야.

나 같은 경우는 기공을 배워서 아주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사람들마다 같지는 않은가 보았지.

태백산에 있는 청옥센터에서 관음 사자를 모시고 함께 기공을 배우던 어느 날인가 저녁에 차를 마시면서 캄보디아에서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자 어떤 동수 하나는 얼굴이 너무나 까매서 캄보디아 인들이 자기들 동포인줄 알고 검문을 하지 않더라고 해서 다들 신나게 웃었어.

아들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캄보디아에서 있었던 또 하나의 일이 생각이 나는구나.

캄보디아 두 번째 선이었는데 한참 여름인데다 아열대 지방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모기와 곤충들이 무척이나 많이 날아다니고 있었어.

처음에는 모기가 몇 마리 설치는듯하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지더니 무엇인가 날개가 달린 것들이 내 몸으로 부딪치면서 날아드는 것이 아니겠니.

나중에 알고 보니 개미였었는데 날개가 달린 개미가 어느 순간이 되면 날개를 떨어트리고 땅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때마침 그날이었던 모양이야.

처음에는 내 얼굴에 부딪치더니 날개를 떨어뜨린 후 옷 속을 통해서 몸으로 내려가는데 주위 분들이 모기향을 몸에다 뿌리는 통에 상대적으로 뿌리지 않은 내게로 모여드는 것 같았어.

처음에는 위쪽에서 왔다 갔다 하기에 까짓것 위에서만 놀면 참을만하다 여기고 있었고 설마 팬티 속에야 들어가랴 싶어 꾹 참고 명상을 하는데 내 생각을 알아채기나 한 것처럼 개미들이 아래로 내려가더니 팬티안쪽으로 들어가 사방으로 헤집고 돌아다니는 거야.

어째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어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3천명이나 모여 선을 하는 곳에서 일어 날수도 없는지라 명상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어.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허리아래에서만 놀면 그나마 참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콧구멍에만 들어가지 않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한일인가 하는데 이번에도 어떻게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콧구멍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미치기 직전 이었지.

다행히 안쪽이 뜨거웠던지 끝까지는 들어가지 못하고 중간쯤에서 왔다 갔다 반복하며 간질이는데 그 순간은 내 정신이 아니더구나.

드디어 내가 정신을 놓아버리기로 작정했어.

가만히 보니 내 생각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고 내가 의식하지 않으면 개미들도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을 거라 여기며 집중만하고 의식을 놓아버리기로 하고 몸을 포기를 해버리는 순간 거짓말처럼 명상 끝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함께 그 많던 개미들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렸지.

3시간 동안의 사투가 끝이 나자 명상이 끝난 앞의 동수가 내 무릎에 수북이 쌓여져 있는 개미날개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는 모습을 보면서 날개를 털어냈었어.

이러한 재미난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하고자 했지만 긴 이야기는 하고 싶지가 않아서 입을 다물고 말았는데 지금 말을 하다 보니 그때 일이 생각이 나는구나

아들아!

무릇 이 세상살이나 수행자의 의식세계도 개미떼와 같이 많은 걱정근심 번뇌들이 많은데 의식을 하면할수록 자꾸 거기에 빠져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경험이었고 그리로 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경험이었던 거야.

그렇게 여러 가지 재미있는 얘기와 기공을 3일에 걸쳐 배우고 관음사자와 함께 각 센터 별로 동수들에게 전수해주기 위해 대구센터에 갔을 때였어.

그때까지도 기공을 배워준다고 모여서 다들 열심히 배우다가 잠시 쉬는 시간이었는데 앞에서도 잠시 언급 한 적이 있던 20년 이상 날 감자와 얼음만 드신다던 K스님께서 기공을 배우러 오셔서 자리를 함께하고 계시다가 한 말씀 하시는 거야.

 

이 학상장이라카는 기공은 참말로 조은 운동 임미데이 기가 마키는 운동이라 예.”

동수들 눈에는 잘 안비지만도 하늘에서 억수로 조은 기운이 내리 온다 아이미꺼

참말로 조오심데이 열씨미 하이 소 ”

 

이렇게 극찬을 하시자 옆의 사저 한 분이 “할아버지는 관음도 하시지 않으시면서 무슨 말씀이어요!” 하며 핀잔을 주자 얼른 관음사자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분에게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고 하시는 거야.

이미 이 세상을 벗어난 지 오래되신 분이고 육신만 남았을 뿐 천국과 지옥을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시는 분인데 매스컴에 알려지면 매일같이 방송국에서 찾아오실 테지만 본인이 워낙 겸손하셔서 외부에 알려지기 싫어하시는 것이라면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라는 말씀을 하셨지.

그때서야 다들 그 스님을 다시 보고 서로 질문들을 하려고 난리들을 피우더구나.

나야 이미 입문 초기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스님의 실체를 관음사자로부터 처음 전해들은 동수들이 앞 다투어 질문들을 하자 스님께서 한 말씀하시길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게 태어나신 때문에 여러 가지 보법이나 수행법을 많이 하셨는데 손오공의72가지 법술보다 딱하나 많은 73가지 법문을 하셨노라 시며 그 중에서 마지막까지 하고 있는 공부가 바로 우리관음법문 이라 말씀하셨어.

그러면서 동수들에게 당부하시길 관음법문이야말로 최고의 법문이 맞는 만큼 끝까지 붙들고만 있으면 다된다고 하시고 명상하지 않고 이름만 걸고 있어도 최소한 지옥 가는 일은 절대로 없음을 스님께서 장담을 해줄 수도 있다 시더구나.

그렇게 스님이 많은 동수들에게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센터를 나왔을 때 서류준비가 모두 되었다는 연락이 왔고 네 숙모와 조카를 데리고 나는 또다시 한국을 떠나서 이국 땅 호주로 향하게 되었으니 다음에는 다시 한 번 호주로 날아가서 이어지는 내 삶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고 이장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자꾸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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