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교도소로 넘어가기 전 검사의 심문이 있었는데 본인 확인 절차상 필요한 과정이긴 했겠지만 좁고 어두운 공간에 수백 명을 밀어 넣어둔 처사는 아무리 죄인이라 해도 너무하다 싶더구나.
몸 돌릴 틈이 없이 빼곡히 들어찬 방에 때마침 전국적인 조직 폭력배 단속으로 대구시내 5개 파의 조 폭들이 모두 잡혀 들어와 있는 바람에 살벌한 분위기까지 연출이 되고 있었는데 이를 미리 알고 따로 분리하고 있긴 했지만 가끔 소란이 일어나기도 했어.
게다가 어떻게 숨겨 들어왔는지 담배를 피우기까지 했는데 그렇게 좁은 공간에서도 화장실로 숨어 들어가 번갈아 가며 피우려고 안간힘 쓰는 모습을 보니 철없는 아이들 같아 괜히 쓴웃음이 나더구나.
나 역시 학창시절 선생님 몰래 담배를 피워 본적이 있었지만 어른이 되어 남의 모습들을 보니 한심해 보이고 있었던 거야.
영웅심에 사로잡혀있는 저들 또한 언젠가는 자신들을 되돌아 볼 기회가 있으리라 여기며 속으로 웃고만 있었어.
대기를 하는 동안 서로들 인사도 하고 자신의 무용담을 널어놓고 있었는데 누가 더 심한 죄를 저질렀나? 경쟁을 하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듯했지.
몇 시간이 흘렀을까?
다들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 문이 열리더니 깨끗한 사복차림의 잘생긴 청년 하나가 들어왔는데 유치장에서 십 여일 씩 고생한 우리네와는 달리 조금 전까지도 사무실생활을 하고 있던 사람처럼 말끔한 모습이었어.
여느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손에 수갑을 차고 있다는 것이었지.
다들 중간에 들어온 사람을 신기해하며 쳐다보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두려움을 느꼈는지 들어오기 무섭게 기죽지 않으려는 듯 괜한 욕을 해 보이고 있었어.
어디서 수갑 푸는 법은 배워가지고 손목에 찬 수갑을 풀더니 한 손에 쩔렁 거리면서 갖고 노는 폼이 자신의 대단함을 과시해서 남들이 무시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이더구나.
아니나 다를까 이러한 청년의 모습에 옆 자리의 건달 하나가 말을 걸었어.
“헹씨는 무신 잘모스로 들어 왔능교?”
이렇게 말을 걸기 시작하자 많은 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리로 쏠렸지.
한 몸에 시선을 받자 이때다 싶었던지 더욱 심하게 욕을 하며 자신이 사람을 죽여서 들어왔다며 얼굴 역시 살인마의 얼굴답게 험악하게 만드느라 애를 먹고 있더구나.
하는 짓이 귀여워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사람을 죽일 때 어떠했고 하며 한참을 떠들어 대는 중에 누군가 문을 열더니 신이 나서 떠드는 사람을 불러내는 거야.
“어이! 000!
니 마누라 벌금 갖고 왓시이까네 퍼뜩 나온나”
이 말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일어나 도망치듯 나가는 것이 아니겠니.
한참을 재미나게 듣던 조 폭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서로들 쳐다보며 웃음보를 터트렸는데 앞으로 죄인이 되어 기나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절박함이 일시에 날아가 버렸어.
아들아!
너는 이 사람의 행동이 어떻다고 생각하니?
혹 너는 이 사람의 처신이 남자답지 못하다 여기지나 않는가 모르겠구나.
하지만 나는 이 사람이야말로 어찌 보면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인데 함께 살펴볼까?
처음 이 사람이 들어오는 순간 나는 속으로 벌금을 내지 않아서 일부러 들여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처음부터 겁이 난 이 친구가 죄인들로 가득한 곳에서 기죽지 않으려고 미리 선수를 쳐 다른 이들로 하여금 자신을 깔보지 못하게 한 거였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남보다 잘 살아가는 방법으로 다들 이러한 방식을 택하고 있으니 이 친구야말로 세상을 아주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지 않을까 해.
솔직히 이러한 사람은 세상 어디를 가도 제 살길을 찾기 마련인데 남 보기에 야비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가볼 때는 대구시내의 5대 조폭들이 득실거리는 방에서 가장 돋보이는 사람이 바로 그 친구였어.
절대 자신은 범죄의 소굴에 빠져들어 스스로를 망치는 일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갖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아들아!
혹 너는 이 사람이 기회주의자라고 욕할는지 모르겠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해.
만약 그 사람이 처음 들어올 때부터 기가 죽어서 다른 이들에게 굽실거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니?
이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고 해도 남에게 피해를 준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거든.
그렇다고 자신이 득을 보지도 않았어.
다만 자신이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거나 괜히 생길 수 있는 다툼을 피했을 뿐이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는 관중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중국 제나라 시절 재상이었던 사람으로 관포지교의 주인공인 이분에 대해 공부해 봄으로써 진정한 지혜가 어떤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얘기해볼까?
우선 이분에 대해 공부하려면 관중과 포숙아 라는 두 사람의 성장배경이나 사람 됨됨이에 대하여서 공부할 필요가 있을 테지만 시간 관계상 간략하게 소개만 하도록 해.
포숙은 원래 부유한 집의 자제로서 잘생기고 의협심 또한 강해서 항시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하고 나서는 의리의 사나이였고 관중은 가난한집에서 태어나 포숙에 비해 못생긴데다가 싸움이 나도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여 뒤로 쳐지기 일쑤였는데 한번은 패싸움이 끝이 나고 왜 함께 싸우지 않았나? 물어보니 싸움도 못하는 자신이 앞장을 서게 되면 싸움에 방해만 될 것 같아서라고 하더라는 거야.
이뿐 아니라 나중에 포숙과 관중이 함께 동업을 하여 장사를 할 때도 관중이 배분을 많이 가져갔는데 포숙아가 가난한 관중을 생각하여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를 했기 때문이었어.
이 두 사람이 성장하여 각자가 모시는 왕자가 왕이 되려는 순간이 되었을 때 첫째왕자를 모시고 있던 관중이 계략을 써서 포숙으로 하여금 둘째왕자를 모시고 오도록 하여 활로 쏘았지.
그러나 마침 허리에 차고 있던 요대에 화살이 꽂히는 바람에 둘째왕자를 죽이려는 관중의 계략이 실패로 돌아가고 죽임을 당하게 되었는데 이때 역시 포숙아가 나서서 관중을 구해 주었던 거야.
아들아!
많은 사람들이 관중을 비난하고 포숙아를 칭찬하였지만 항시 포숙아가 관중을 비호하였던 것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었어.
평상시 사소한 싸움이 났을 때는 몸을 사리기 바쁘던 관중이지만 자신이 모시는 왕자를 왕으로 떠받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마저 아끼지 않고 과감하게 화살을 날릴 수 있는 관중의 용기를 포숙은 알고 있었던 거야.
무엇이 가치가 있고 목숨을 걸어야 할 때라는 것을 아는 관중의 지혜를 알아본 포숙아 역시 대단한 분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용기도 대단하겠지만 진정으로 가치 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어떤 선택을 하던 자신의 자유겠지만 말이야.
나중에 자신을 죽이려 했던 관중을 관용으로 용서하고 중용하여 써야 한다는 포숙아의 제의를 받아들인 제 나라의 환공은 이후 관중의 지혜에 힘을 입어 승승장구하여 제나라를 춘추전국시대에서 단연코 앞서가는 나라로 만들 수 있게 되었어.
정치를 하는 도중에도 관중의 돋보이는 지혜를 볼 수 있는데 간신을 모조리 죽이는 도덕정치를 폈던 것이 아니라 간신들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아주 지혜로운 정치를 하였고 모든 이들에게 욕도 먹지 않으면서 왕을 보필하는 뛰어난 지혜를 발휘하였지.
사람들은 모두들 이 세상에 선만 존재하길 바라고 악은 모두 사라지길 바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실상을 바라보면 선과 악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경계를 달리하는 만큼 선도 악도 없음을 알 수가 있지 않겠니?
이렇게 놓고 본다면 충신과 간신 역시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명암을 달리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표면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이어서 나쁘게 쓸려는 머리를 좋도록 돌려주기만 하면 간신이 충신이 될 수도 있고 충신 역시 간신일수 있다는 거야.
이러한 점을 너무나 잘 이용한 것이 관중이었고 나중에 관중이 죽고 나서 제 나라가 망하게 된 것이 도덕정치를 고집하던 포숙으로 인해서 라고도 볼 수 있어.
재상이 되고 난 포숙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왕의 옆에 있는 간신들을 척결하는 일이었는데 관중이 재상으로 있을 때는 가끔씩 간신들과 어울려 즐길 수 있었던 왕이 포숙아가 너무나 완벽한 도덕정치를 하고 주색근처도 못 가게 하자 정치와 세상사는 일에 흥미를 잃어버린 왕이 병이 들고 말았고 왕이 병이 들자 할 수 없이 간신들을 다시 궁으로 끌어 들이는 바람에 결국 제 나라는 멸망을 하고 말았던 거지.
관중이 죽기 전 이러한 미래를 예견하였기 때문에 왕이 누구를 재상으로 삼으면 될 것인지를 물어왔을 때 관중은 포숙아를 반대했던 것이었어.
포숙아가 나빠서라기보다 왕의 퇴폐적인 면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포숙에게는 부족했기 때문이라 생각해.
아들아!
아마도 너는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는 필요악 이라는 것이 있거든.
몇 해 전 우연히 보게 된 경찰청 사람들이라는 프로에서는 이와 같은 일을 잘 말해주고 있었는데 서울시내 어떤 한 지역의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사람을 그 지역의 밤업소 사람들이 고발을 하여 구속을 시켰더니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업소 주인들이 다시 그 사람을 석방시켜달라는 탄원서를 올린 것이었어.
왜 이 같은 해프닝이 벌어졌냐하면 처음 이 지역의 조 폭 우두머리에게 상납을 해오던 업주들이 너무나 심한 이 사람의 횡포에 치를 떨며 구속을 시키고 나니 호랑이가 없는 산에 여우가 주인행세를 한다고 다른 곳에 있는 폭력배들이 서로 이 지역을 차지하겠다고 달려드는 통에 밤업소 주인들이 먼저 보다 몇 배나 심한 시달림을 받게 되었던 거야.
그래서 구관이 명관이라고 먼저의 폭력배를 풀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게 된 거고……
그러면 너는 경찰은 도대체 무엇 하는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라는 것이 있고 경찰이 24시간 밤업소만 지키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면 자체에서 해결할 것은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러한 일을 뒷골목 어깨들이 알게 모르게 담당하고 있는 거야.
한마디로 이독치독 이라는 것이 아니겠니.
과거에 어떤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조폭 소탕을 벌린다고 큰소리 친 적이 있지만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어.
그분이 대통령선거에 나왔을 때 나 역시 선거운동에 동원된 적이 있었고 대구에서 연설이 시작되기 전 그 당시 대표 의원이던 그분이 단상에 오르게 하기 위해 모여든 청중들 사이로 길을 내는 역할을 했었거든.
명칭이야 경상청년00회라고 거창하게 붙이고 있었지만 실상은 각 지역의 건달들을 모아서 조직했던 돌격대 비슷한 것이었어.
모두들 당선 후 전과기록을 지워주겠다는 후보의 말을 믿고서 주야를 가리지 않고 선거운동에 투입되었던 것인데 각종선거에 이용할 대로 이용하고 나서 때에 따라서는 쓸모없는 존재로 몰아붙여 버리기 일쑤이니 웃기는 말이 아닐 수 없었지.
사실 국민들에게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정말 범죄를 모두 없앨 수 있거나 대한민국에서 조 폭을 완전히 소탕할 수 있거나 하진 않아.
아들아!
얘기가 너무 멀리 나온 것 같으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도록 하자꾸나.
갈 길은 멀고 아직 기나긴 여정을 통해 충분히 얘기할 것들이 있는 만큼 기회가 닿는 데로 사회의 필요악들이 어떻게 필요하고 모든 것이 완벽 속에 있음을 얘기하도록 해.
그렇게 어렵사리 교도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떨어진 뒤라 캄캄한 밤이 되어있었고 간단한 저녁식사가 제공된 후 신체검사를 마치고 임시 방으로 향하였어.
기나긴 복도를 지나는 동안 양 옆으로 나있는 방안으로 보이는 광경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더구나.
모두들 무엇들을 하는지 웃통들은 벗어 던지고 모여서 낄낄대며 떠들고 있었고 자욱한 안개 같은 것이 내 시야를 가리고 있었는데 안개가 있을 리는 없고 지옥이 있다면 이런 광경이 아닐까 생각했어.
온몸에 문신을 새긴 몸으로 모여 있다가 우리가 들어오는 소리에 창살로 다가서서 욕들을 하는데 우리 일행 중의 사람들과 서로 욕을 하다가 교도관으로부터 한바탕 욕을 먹기도 하였지.
조용한 곳에 임시숙소를 마련하면 이러한 번거롭고 시끄러운 점을 막을 수도 있으련만 처음 입소하는 사람들의 기를 죽일 심산으로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만 모아놓은 사동의 제일 마지막 방을 임시숙소로 배정한 거야.
마지막 끝의 두 방에 40여명이 나뉘어 자게 되었는데 4평 남짓한 방에 22명이 잤으니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갈 거라 생각해.
게다가 새벽녘에는 추가로 들어오는 인원이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24명이 한방에 잤더구나.
그렇게 첫날을 보내고 다음날 방 배정을 받기 위해 행정 실에 불려 들어갔고 출석 체크를 받기 위해 웅크리고 있는데 안쪽에서 나오는 교도관의 모습이 낮이 익어보니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동수가 아니겠니.
그분의 입장이 곤란할까 봐 모른척하려다가 아무래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건데 싶어 아는 척을 했어.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당황스런 모습이 엿보였는데 괜히 아는 척을 했구나 하는 후회가 앞섰지만 이미 아는 척을 한 후라 어쩔 수 없이 어색한 웃음을 보이고 말았지.
바쁜 일이 있으신지 나중에 찾아보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황망하게 나가시더구나.
아들아!
앞에서 얘기 한 적이 있던 비구니스님 있지?
내가 단식하고 난 후 가래떡을 만들어주셨다던 스님 말이야.
그 비구니 스님께서 청송감호소의 재소자들을 상대로 봉사활동을 하시고 계실 때 나 역시 함께 활동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청송감호소에 근무하고 계시던 분이 바로 이 교도관 이셨어.
나보다 일찍 입문하신 분이었고 내가 교도소 홍법을 하시는 D스님을 따라서 교도소로 봉사활동을 따라갔을 때 처음으로 소개 받고 알고 지내던 동료 수행자였지.
때마침 내가 화원교도소로 들어가기 몇 달 전 청송에서 화원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던 모양이었는데 나로서는 동료수행자가 교도관으로 계신다는 것이 엄청난 힘이 되었던 거야.
이 또한 신의 완벽한 안배임에 틀림이 없었던 것 같아.
방 배정이 끝나고 정해진 호실에 도착하고 보니 담당자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감방 안에 있던 재소자들이 앞 다투어 내다보고 있었어.
그들 몇몇이 나를 보고 욕을 하더구나.
아마도 기를 죽이려는 속셈인 모양이었는데 하는 양이 하도 유치해서 피식 웃어주었더니 다들 놀라는 것 같았어.
그때까지도 머리를 깎지 않아서 아무렇게 자란 머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다가 기가 죽기는커녕 빙긋이 웃기까지 했더니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랐던 거지.
담당교도관을 기다리는 잠시 동안의 시간 속에서도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는데 앞으로 이 사람들과 생활하려면 싫던 좋던 잘 보여야 할 텐데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나가면 결국 방안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가 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죄인의 몸으로 반성을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도 맞지 않는지라 무조건 복종하고 지내리라 마음먹었어.
신이 내게 이러한 곳으로 보낸 이유는 어디까지나 하심을 공부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나자 앞방의 입방절차를 마친 교도관이 내게로 오더구나.
드디어 교도소에 정식으로 입방 하는 순간이 다가왔는데 문이 열리고 첫발을 디디는 순간 방안의 누군가가 다급하게 말을 하고 있었지.
“조심하소. 문지방 발 버마 안되구마”
영문도 모르고 밟지 말라는 데로 건너뛰다시피 성큼 들어섰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에게 사정하듯이 문지방을 못 밟게 한 그분이 다음날 항소심 재판을 받으러 가는 날이라 누군가 방 문지방을 밟게 되면 일심의 재판형량을 그대로 찍힌다는 미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어.
아들아!
이러한 점을 보더라도 그 안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니?
사건경위야 어떻든지 간에 일단 갇힌 사람의 심정은 너무나 절박하기 마련이어서 이러한 미신에도 의미부여를 하게 되는 것인데 실지로 이분은 며칠 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되었어.
미신이라고만 여기기에는 갇힌 사람들의 심정이 너무나 절박했고 내가 속한 방이 주로 초범들이라 처음으로 교도소 생활을 하다 보니 모두들 간절한 마음으로 나가고 싶어 하였는데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나가려고만 하고 있었지.
나 역시 처음으로 들어가 보는 감옥이라 어쩔 줄 몰라 하는 데 방안의 막내인 것 같은 사내 하나가 나를 보고 벽 쪽을 향해 돌아 앉아 있으라고 하더구나.
방안의 사람들 역시 내 행색이 평범하지는 않은데다가 밖에서 기를 죽여 보려고 욕을 하다가 내가 피식 웃기까지 했으니 함부로 대하기도 뭐하고 해서 모두들 말을 아끼고 있는 것 같았어.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방안의 어색함이 조금 가신 듯, 감방장의 말이 들려왔는데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 목소리여서 뒤돌아볼까 하다가 괜히 허락 없이 돌아봤다가 시끄러울 것 같아 억지로 참고 있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철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내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문지방 밟지 말길 바란다는 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사람은 재판을 받기 전 심리를 받기 위해 나갔다 오는 모양이었어.
심리라는 것은 재판을 받기 전에 판사가 사건에 대한 심사를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인데 판결을 내리기 전에 사건전말에 대한 것을 본인에게 물어보고 확인해본 후 형을 선고할 때까지 기한을 주어 그 기간 중에라도 피해자와 합의를 이루어내도록 하기 위한 과정을 말하는 거야.
그때 그분 또한 재판을 앞두고 심리를 받으러 갔다 돌아오는 중이었는데 이분의 목소리는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는 목소리여서 뒤돌아보았더니 외가 쪽 오촌 당숙이 아니겠니.
어쩌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가 막혔는데 예전부터 외삼촌댁에서 공장장 생활을 오래 하고 계셨기 때문에 평소에 가끔씩 뵙고 있었고 외가 쪽과 평상시에도 왕래가 잦았던 만큼 가까이 지내던 사이였거든.
내가 명상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친인척들과 담을 쌓고 있었기에 그 동안 서로 간에 소식을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교도소에서 만나게 될 줄은 당숙이나 나 자신이 어떻게 알았겠냐 말이야.
기가 막힌 재회에 방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어이없어 하기도 하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기도 하였는데 때마침 저녁점호 시간이라 인원점검을 하게 되어 열을 맞춰서 앉게 되었어.
처음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번호를 제일 먼저 외치게 되어 있는지라 내가 첫 자리에 앉고 다음 자리에는 감방 장이 앉았는데 내가 그분 얼굴을 보게 되었지.
벽을 보고 돌아앉아 있을 때부터 낮 익은 목소리다 싶어 돌아보고 싶었었는데 막상 얼굴을 대하고 보니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았어.
점호를 기다리는 동안 어디서 봤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20여 년 전 운동복총판에서 근무할 때 함께 일한 적이 있던 그 당시 영업부장님인거야.
인사를 하고 아는 척을 했더니 깜짝 놀라는데 본인 역시 안면이 있긴 했지만 워낙 아는 사람이 많아 누군지 모르고 있다가 내가 아는 척을 하고 나서야 알아보더구나.
과거에 두어 달 함께 일을 하였다 하여도 자신은 외부로 영업을 다니고 있었기에 업무성질이 달라 그다지 친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내 특이한 두뇌구조상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어.
아들아!
나는 어떻게 된 심판인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웬만한 일들은 모두기억을 하고 있거든.
그렇지만 공부할 때의 기억력은 정말 좋지가 않아서 앞줄을 읽고 다음 줄을 읽어 내려가면 이미 앞줄이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아.
이런 내가 그분을 기억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어.
일단 감방 장과 내가 아는 사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외 오촌 당숙 역시 감방서열5위에 속해있었으므로 나에게는 많은 특권이 주어지더구나.
특권이라야 별것 아니었고 교도소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격 모독이라든지 신고식과 업무상 보직을 편하게 배정 받는 정도였지만 그 또한 생각에 따라서는 많은 혜택이랄 수도 있었지.
감방생활도 단체 생활이고 여러 사람들과의 대면에 있어 절차와 의식이 필요했으므로 공책에다 배식반장이 꼼꼼히 써놓은 차례대로 대답을 해야 했는데 첫날의 서먹서먹한 분위기 탓에 틀리기 일쑤여서 틀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질타와 함께 벌칙이 가해지지만 나에게는 이러한 벌칙이나 욕설이 없었다는 것이 내가 받은 특혜였다는 거야.
이러한 절차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생각에 따라서는 비인도적이기도 하지만 이 또한 감방생활에서는 필요한 일이기도 했지.
원래는 자신의 소개가 끝이 나면 몇 차례의 공연(?)이 펼쳐지지만 나에게는 그러한 모든 절차가 생략이 되고 노래한곡으로 신고식을 마무리하라는 감방장의 특별지시가 있었으며 그러한 배려에 따라 노래한 곡을 하게 되었는데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아서 선곡한 것이 “그리운 얼굴”이라는 노래였든 것 같아.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였는데 제목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네 이모 약혼식 때 내가 불렀던 노래였었어.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네 이모 약혼식 때의 정경이 떠오르고 그 당시 네 엄마가 경영하던 피아노교습소에서의 생활이 떠올랐는데 네 이모의 피아노연주와 네 엄마의 플루트소리에 맞춰 노래를 하곤 했던 일상들이 생각이 나기 시작하자 여자감방에 갇혀있을 네 엄마의 생각과 내가 처해있는 현실의 처량함이 물밀 듯 밀려와 눈물이 앞을 가리는 거야.
노래를 마치지 못하고 울먹이는 나를 보고 감방사람 모두가 침울해 하였고 어떤 분들은 함께 우는 분들도 있었으며 오촌 당숙은 당숙대로 눈물이 그득하여 벽에 기댄 체 한숨을 쉬고 있다가 결국 목멘 소리로 한마디 하시더구나.
“00아! 울지 마라. 약해지면 안 돼”
이렇게 방안의 침체된 분위기 탓에 모두들 눈물바다가 되어가는 것을 다시 활기 있게 만들기 위해 나서신 분은 새마을금고의 전무님으로 계시던 K씨였어.
“00씨! 처해있는 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우리가 강해지지 않으면 이곳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습니까? 약한 마음은 버리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티어내야 합니다.”
나를 걱정하기도 하고 자신들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한 것 같았어.
아들아!
이런 침울한 분위기 속에 치러진 나의 신고식 탓에 모두들 침묵하는 가운데 밤이 깊어 갔어.
그렇게 나의 신고식은 끝을 맺었고 교도소 생활은 막이 올랐으니 다음에는 교도소에서 있었던 나의 일상을 가지고 다시 만나기로 하고 여기에서 쉬어가도록 하자꾸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