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요즘은 한국에서 친구가 와서 머무는 바람에 너와의 대화가 많이 뜸해졌구나.
호주에서 마지막으로 돌아올 무렵 나에게 왔던 H사형이 내가 사는 곳 근처에다 아파트를 마련했는데 장식을 하기 위해 머물고 있거든.
이 친구는 신기하게도 어떤 중요한 행사가 있거나 내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함께 가곤 하는데 내가 중국을 오고 나서 벌써 3번째 중국을 들어왔어.
이번에는 호주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것과 동시에 당사자인 사형이 왔으니 기가 막힌 일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니.
우리가 인정하던지 말든지 말이야.
사형이 잠시 머물다 가게 되면 나 또한 한국을 나갈지도 모르겠지만 가는 날까지라도 너와의 대화는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지구가 내일 종말을 고한다 할지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누구처럼……
그런 의미에서 지난시간에 이어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시점으로 시각을 돌리기로 해.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하늘을 보니 하얀 눈꽃송이 들이 내리고 있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나를 반겨주고 있는 것 같았어.
어제까지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머물고 있던 내가 오늘은 겨울의 눈을 맞고 있으니 내 마음의 변화만큼이나 이세상의 날씨도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사정이 얼마나 급했던지 네 외가 식구들이 서울까지 올라와 마중을 나와 있었는데 암이 깊어 치료를 받고 계시던 네 외할아버지까지 차를 몰고 공항까지 오셨는걸 보니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알 것 같았어.
어떤 경유로 잡혀 들어갔던지 모든 일의 책임은 내게 있는 것이 분명한 만큼 내가 해결해야만 했기에 다음날 변호사 사무실로 가서 대충 사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 경찰서로 향했지.
변호사말로는 어차피 한 사람이 들어가 있는 만큼 급할 것은 없으니 천천히 사건을 처리하라는 것이었는데 나 때문에 잡혀 들어가 있는 네 엄마가 고생하는 것이 분명한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어.
내가 들어가면 네 엄마가 빨리 나온다는 소리에 경찰서로 가서 담당경찰관에게 얘기했더니 서류절차가 끝나는 데로 네 엄마가 풀려 나온다며 구태여 내가 미리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하더구나.
두 사람이 모두 들어가 있지 말고 나보고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합의 볼 것을 종용했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어.
이미 내가오기 전 네 엄마의 사촌동생이 채권자들을 찾아다니며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채권자들이 돈을 받지 않고 수표를 내 줄 리는 없고 보니 수표를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지.
채권자들로서는 야반도주 하다시피 한데다가 소문도 없이 이사를 해서 자신들을 따돌리기까지 한 내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던 것이 아니겠니.
과정이야 어떻든 나에 대한 평가가 좋지 못한 상태이고 내 수표를 사용한 원단업자 역시 도주를 한 상태였으니 채권자들은 나와 원단업자를 공모자로 여기고 있었던 지라 합의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거든.
게다가 사채업자들로서는 네 엄마가 잡혀 들어가 있는 이상 우리 측에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서 합의를 보러 오리라 여겼기에 더욱더 수표를 회수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
부도나기 전에도 내가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사채업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부탁을 했을 때 냉정히 거절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안 되리라는 것은 벌써 알고 있었어.
하지만 어떻게든 네 엄마를 빼내려는 네 외가 식구들이 이미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사방으로 알아보고 다녔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던 거야.
유일한 해결책은 내가 들어가서 네 엄마가 책임 없음을 확인해주고 나오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경찰과 검찰에서는 부도를 낸 내가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합의를 보게 하기 위해 일부러 사람을 잡아두고 고생을 시키는 것 같았는데 현실감각은 전혀 없는 탁상 행정의 본보기라 할 수 있었어.
법에서는 부부가 함께 사업을 하다가 수표를 부도내게 되었을 경우 어느 한쪽만 책임지고 나머지 한 사람은 가족의 부양을 책임지도록 되어 있는데 그 같은 사실은 어디까지나 원칙의 문제일 뿐 실상은 그렇지가 않아서 어떻게든 부도를 낸 사람이 모든 책임을 지게끔 만들어서 채권자들을 보호하는데 치중되어 있었지.
아들아!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부도난 일에 대한 변명을 하고 싶어서라고 오해는 말길 바라.
법의 심판이 제대로 내려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사건정황 이라는 것과 사건의 주변 역시 살펴야 보다 공정하다 할 수 있고 선의의 피해자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하는 것이고 법 처리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공정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란 것을 알았으면 해.
그 당시 네가 초등학교1학년에 다니고 있었고 서울에서 네 엄마와 단둘이 지내고 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무작정 잡아두고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경찰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니겠니.
내가 우기다시피 해서 경찰서 유치장을 들어갔을 때 여자 쪽 유치장에 갇혀있던 네 엄마가 반가운 마음과 걱정된 마음의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면서 아는 척을 하더구나.
얼굴을 마주보고 얘기를 하게 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애써 외면하고 유치장 안으로 들어갔어.
내가 유치장을 들어가고도 이삼 일간을 더 유치되어있던 네 엄마가 일단은 교도소로 넘어갔는데 분명히 내가 들어가게 되면 네 엄마가 나오게 된다고 들었는데 불구하고 왜 네 엄마가 교도소를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
밥 많이 먹고 건강 하라는 말을 남기고 네 엄마가 떠나는 날 알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쳐 올랐지만 아무런 말도 없이 눈인사로 네 엄마를 보낼 수밖에 없었어.
일단 아침저녁으로 마주보아야 하는 네 엄마가 눈앞에서 없어지고 나니 괴로운 마음은 많이 가셨고 조금만 참고 지내면 네 엄마가 너에게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방안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만큼 여유가 생기더구나.
우선 내 눈에 쉽게 뛴 사람은 한눈에 조 폭으로 봄직한 젊은 친구였는데 1백 킬로는 쉽게 넘어갈 몸체에 날렵하기까지 한 것이 시시한 건달패와는 격이 달라 보였는데 마약밀매를 하다가 잡혀 들어온 모양이었어.
내 행색이 평범하지는 않은데다가 식사할 때 반찬으로 김만 먹고 잠을 잘 때는 앉아서 자는지라 며칠을 함께 지내고 나서는 나를 도사 대하듯 하였지.
채식주의자인 내가 젓갈 들어간 음식이나 조미료가 들어간 반찬을 먹을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김만 먹을 수밖에 없었고 잠을 자는 것도 하루 두 시간을 넘기지 않는 습관 때문에 오래 누워있으면 허리가 아프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앉아 있었거든.
지금이야 보다 자유롭게 명상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하루 여섯 시간 이상을 명상해야만 했으니 자연히 내 행동이 이상할 수밖에 없었어.
과거에 아는 친구들 이름을 팔면 좁은 대구 바닥이라 금방 알 터이지만 괜히 아는 척해 봐야 쓸데없고 죄인의 몸으로 들어가서 반성을 해야 하는 터에 뒷골목 족보를 들먹여서 뭐하랴 싶기도 하여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먼저 말을 걸어오더구나.
며칠을 함께 지내보니 말도 없는데다가 생활하는 것이 일반인들과 다르다면서 뭐 하는지 묻기에 채식과 명상을 하고 있노라 했더니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듣기에 몇 마디 말을 하게 되었어.
조 폭이나 마약 판매하는 생활을 길게 해봐야 자신의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와 자식의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생활을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했더니 이번일 만 끝나고 나면 완전히 손을 씻으려고 한다는 얘기를 하더구나.
아들아!
너는 이 사람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니?
정말 이 사람의 말대로 한탕만하면 깨끗이 손 씻고 새 출발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이번 한탕만 잘하면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데 사실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해.
지금 당장 생각은 한탕만 잘하면 안 할 것 같지만 사회에서 조금만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또다시 한탕을 하게 되는데 그러한 모든 것이 마음속의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거든.
많은 범죄자들이 교도소에서는 다들 뉘우치고 반성하다가 사회로 돌아오게 되면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주된 이유가 사회에 나와서 전과자가 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야.
다들 전과자들을 고용하길 꺼려하는데다가 전과자 스스로가 욕심을 버리기에는 사회 환경자체가 금전만능주의로 만연 되어있기 때문이지.
다들 범죄자를 없애야 한다는 데만 관심을 갖고 있을 뿐 정작 범죄를 하도록 만드는 사회구조의 변화를 생각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진정으로 이사회를 범죄자 없는 사회로 만들려는 의지가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어.
내 개인의 생각으로는 재소자들이 사회에 나와서 적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각종 제도 역시 중요하겠지만 사회생활에서의 어려움을 이겨 나갈 수 있는 마음을 갖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 되어야 할 것 같아.
한마디로 욕심을 버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아무리 좋은 제도가 준비되어 있다 해도 마음속의 욕심을 버리지 않는 이상 재범을 막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인 만큼 현실의 어려움을 견디고 마음속의 욕심을 이겨 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야.
이 같은 말은 교도소를 간 범죄인들뿐만 아니라 미리 어려서부터 그러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도 말로만이 아니라 어른들이 행동으로서 보여주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거지.
말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해놓고 모두들 자신들의 이익만 바라고 행동하는데 어린 아이들이 뭘 배우겠냐는 것이고 없는 집의 자식들이 어려서부터 어떠한 마음상태로 성장하게 되겠어.
이 같은 일을 실행하기위해서는 사회전반의 노력들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야.
우리네 수행인들조차 이러한 욕심을 버리기가 어려운데 어찌 일반인들의 마음에서 욕심을 버리기가 쉬울 수 있겠냐만 부를 축적하는 행위에서 부를 나누는 것으로 마음들을 바꾸게 될 때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이 생기게 되고 범죄자 없는 사회가 형성 될 거라 생각해.
아들아!
내 인생이 다른 누구들처럼 아름답지 못할지 모르지만 이세상의 험한 구석들은 조금씩 맛은 본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깊이 있게 빠져들지는 못하였어.
어린 시절 마약을 하는 친구들과도 친분이 있어서 가끔 집에도 놀러 오고 자고 가기도 했지만 호기심에 한 번씩 먹거나 주사를 맞아 보려고 해도 이상하게 그 친구들이 나에게만큼은 주지를 않았지.
그들 말로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절대 줄 수 없다는 거야.
원래 마약 하는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권하기 마련인데 불구하고 먹어보겠다고 나서는 나에게 아무도 주질 않았으니 이 또한 신의 안배가 아닐까 생각해.
이러한 내 경험을 얘기하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약을 판매하는 젊은 친구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자신이 중간 판매상 이라는 것과 검사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말해 주더구나.
아닌 게 아니라 다른 이들 모르게 담배도 피울 수 있게 배려 해주는 것 같았는데 전국적으로 연결되어있는 마약판매조직을 일망타진하려는 검찰의 노력을 볼 수 있었지.
검사로서는 어떻게든 성과를 올려야 하고 중간 판매책을 손에 넣은 만큼 최대한 이용하려고 적당한 당근과 채찍이 필요했겠지만 나와 대화하던 중간 판매책 역시 보통내기는 아니어서 안 보이는 가운데 머리싸움이 한참 벌어지고 있었어.
판매책인 젊은 친구 역시 살고 나가게 되면 보복을 생각해야 하고 당장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윗선에서 제공되는 만큼 자신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야.
그 당시 부인과 갓난애도 있으니 함부로 행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는데 전화를 연결해서 최상부에 자리한 우두머리와 검사를 연결시켜주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웬만큼은 검사에게 제공한 것 같았지만 자신의 앞날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았어.
이래서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가 봐.
아들아!
내가 항시 말하듯이 너의 선택이 어떤 것이든 상관이 없지만 그 선택에 따른 결과만큼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 된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었어.
나와 함께 유치장에 있던 그 젊은 친구 역시 공부를 해서 출세하기보다는 보다 손쉬운 건달의 세계에 몸을 담았는데 조 폭의 세계 역시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위치가 결정되는 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고 수많은 싸움과 선후배간의 알력, 조직 간의 경쟁 등, 어찌 보면 일반사회보다 더욱 힘든 일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거지.
이 친구 역시 어린 나이에 이러한 점을 간파하고 독립의 길을 걸었는데 일찍이 배운 것은 없고 보니 자연스럽게 마약판매업자와 손을 잡게 된 것이었어.
첫발을 잘못 디딘 탓으로 범죄의 미로 속을 헤매게 된 거야.
마약판매를 해서 돈은 무척 많이 벌었지만 쉽게 번 돈은 쉽게 쓰이는 법, 흥청망청 돈을 뿌리고 다녔고 돈 쓰는 맛에 길들은 뒤로는 무엇을 해도 만족할 수가 없는 노릇이어서 웬만한 돈벌이는 눈에 차지도 않았거든.
그러다 보니 처음 한탕만하고 손 씻는다는 맹세는 어디로 가고 한번만 더 한번만 더 하다 보니 그날까지 오게 된 것이었어.
이러한 사람이 사회로 돌아가게 되면 무엇을 할 수 있겠니?
이미 돈 쓰는 맛을 알아서 리어카행상으로 벌어들이는 돈이나 막노동을 해서 버는 돈이 눈에 차기나 하겠냐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을 잡아넣은 검사나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는 말은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법관들의 세계도 파헤치고 보면 결코 아름답지는 못하고 어찌 보면 일 못하는 국회의원만큼이나 많은 욕을 얻어먹어야 하는 직업일수도 있어.
인과법을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업장을 얘기하고 있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떤 큰스님께서는 업장 많은 돈을 보시로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그러한 논리로 따진다면 법조계 쪽이야말로 업장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셈이야.
이 세상 범죄자들을 상대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이 법조계인데 어떻게 깨끗하다 할 수 있으며 수많은 비리가 도사리는 곳이 법조계이고 보면 이 세상에 업장이 없는 깨끗한 돈 따윈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돈이라는 것은 아름답게 쓰일 때 좋은 것이지 결코 더러운 돈이나 깨끗한 돈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아들아!
혹 너는 내가 교도소를 갔다 왔기 때문에 억하심정으로 법을 집행하는 분들을 비하시키고 네가 법관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할지 모르지만 그렇지가 않아.
항시 너에게 말해왔듯이 너의 선택이 어떠하더라도 실상을 알아야 하고 이러한 실상을 알고난후의 너의 선택은 소신 있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설사 너의 선택이 조 폭이라 하여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기 바라는 것이 내 진정한 의도라 할 수 있어.
좋고 나쁜 것이 없다고 말하기 위해 좋지 않은 것을 말했을 뿐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네가 알았으면 해.
만약 내가 법조계를 나쁘다고 한다면 이사회질서를 아무렇게 방치해도 된다는 것이 되고 말지 않겠니.
사람들은 흑백논리를 좋아하겠지만 나는 결코 그렇지가 않아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이 있을 것이 있다는 것뿐이어서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다만 이것을 하기 위해서 저것이 필요하고 저것을 하기 위해서 이것이 필요할 뿐이란 거지.
유치장 안에서 지내는 동안 더욱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사회의 분위기 탓인지 마약 중독자들이 무척 많이 잡혀 들어왔는데 다들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더구나.
제돈 내고 제 몸을 망치는데 왜 잡혀 들어와야 하는가라는 소리에 일리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가지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어.
마약을 먹고 환각상태에서 저지를 수 있는 또 다른 범죄와 한번 빠져들면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마약의 병폐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려는 국가의 정책은 마약을 먹는 행위를 범죄로 정하고 있는 것 일뿐 개인의 자유의지를 막고자 하는 것은 아닌 것이지.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하자면 사람의 두뇌에서 나오는 엔도르핀이라는 물질이 있는데 이물질이 뇌에서 나오게 되면 사람이 기분이 좋아지고 일을 해도 피곤하지 않게 만들어주거든.
이렇게 뇌에서 만들어지는 엔도르핀을 외부로부터 주입하는 약물로 억지로 나오게 만드는 행위를 마약을 복용하거나 주사한다는 것인데 범죄로 단정 지어지고 있는 것이지.
사실 이러한 일역시도 평화와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욕심에서 나온 것인 만큼 크게 나무랄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워낙 마약중독의 병폐가 심각한 만큼 범죄행위로 규정하게 된 거야.
가끔씩 뉴스에서도 보듯이 마약중독자가 인질사건을 심심찮게 벌리고 있고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중독자로 만들기 쉬운 만큼 사회로부터 마약을 몰아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을 것 같구나.
만약 누군가 내 몸을 내 마음 대로하는데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냐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무인도나 산 깊은 곳에서 마음껏 행동하고 살기를 권유하고 싶어.
이 말은 절대 그러한 주장하는 사람이 틀려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말하는 것이야.
사회와 발맞출 수 없는 사람들은 구태여 이사회에서 살 필요가 없이 그러한 선택을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 아니겠니.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는 내 선택에 따른 어떤 일의 결과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의무도 함께 생긴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하고 이러한 의무를 무시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것을 욕심이라고 하는 거야.
이러한 욕심을 버리기 위해서 소위 말하는 도를 닦는 것이고…….
내가 말하는 것이 얼마나 그 친구를 감동시킬 수 있었나 모르겠지만 십여 일을 함께 지내는 동안 내가 말하는 것을 꽤 심각하게 듣는 눈치였고 여가시간에도 쓸데없는 잡담보다는 책을 많이 보고 있었어.
한번은 내가 외계인에 대해 물었더니 그 친구 말이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확신은 못하고 있더구나.
아들아!
이러한 점을 우리는 깨달은 자와 못 깨달은 자를 구분하는 잣대로 여길 수 있는 것 같으니 잠시 언급을 해보도록 해.
모든 경전이나 책들은 모든 사람들이 평범하고 자신의 내부에 신성과 불성이 깃들고 있음을 말하고 있긴 하지만 스스로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미혹에 빠져있고 싶어 하기에 스스로가 신이나 부처가 되지 못하고 있을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인데 그러한 말을 처음 너와의 대화에서 미리 말했던 만큼 다시 되풀이 하지는 않겠어.
그렇게 모든 이들이 인식하던 못하던 신이고 부처라면 내가 중간 중간 책만 읽어서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고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논리가 성립 되는데 내가 그러한 말을 하게 된 이유는 스스로가 신이고 부처라는 확신을 책만 본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어.
빛을 본다거나 소리를 듣는다거나 하는 것은 그러한 증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이 또한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나 자신 또한 그다지 큰 의미를 두고 싶진 않아.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빛과 소리를 듣고 보는 것은 자기 스스로에게 확신을 하게 만드는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고 사람들의 인식수준에 따라서 듣고 보는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야.
그날 내가 하는 말을 그 친구가 확신하지 못하는 것만 보더라도 우리자신이 신이고 부처라는 사실 또한 아무리 내가 열심히 말을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겠니.
책을 보고 깨달았던 지붕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추다 깨달았던 모두가 깨달음을 얘기하는 것은 맞는데 다만 한 가지 자기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다른 사람의 인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거지.
남이 하는 말에 아직도 영향을 받고 있고 자신의 행동에 자신이 없다면 스스로가 신이고 부처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보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아.
그래서 우리는 수행을 하는 것인지도 몰라.
자신에게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 말이야.
결국 깨달았다는 말은 자신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이 부처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말이고 스스로는 물론 남들까지 부처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없는 것은 깨닫지 못했음을 말하는 거지.
앞서 마약 판매책이 외계인 존재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아들아!
교도소를 넘어가기 전 유치장에서 읽었던 책 한 권은 교도소생활을 보다 수월하게 만들어주었는데 양00 이야기라는 책이었어.
이 책의 주인공이신 양00씨는 여성으로서 어려서부터 심한 병을 앓아왔는데 병명도 없이 산채로 배 안에서 구더기가 끓고 아무것도 못 먹고 물만 먹고14년인가를 살았다는 분이었지.
몸이 낫고 나서부터는 알 수 없는 능력이 생겨 아픈 사람이 이분만 보면 병이 낫더라는 거야.
이러한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병자를 피해 도망을 다니는 중간 중간 대필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게 된 것이었어.
아들아!
너는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어쩌면 너는 왜 도망 다닐까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구나.
모든 병자들이 이분만 보고 병이 낫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 되겠는가 하겠지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우선 당장은 좋겠지만 큰일이 생기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해.
너도 생각해보렴.
이 세상에 있는 병원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하고 의료시설을 만드는 회사도 망할 것이며 제약회사 역시 필요 없게 되고 병자가 없다는 것은 사람들이 영원히 산다는 것 일 텐데 거기에 따른 일들 또한 얼마나 많을까 상상만 해도 혼란스럽지 않니?
그래서 이세상의 지금과 같은 구조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서는 곤란한 것이고 죽어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이 바로 죽음을 초월한 세계가 아닐까 해.
높은 의식의 세계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아직까지 이세상의 의식수준이 이러한 모든 것을 받아내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거든.
그분 역시 이러한 점도 알고 있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이세상의 인과법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인해 자신이 다른 이의 인과에 관여하는 것이 싫어 도망 다니는 모양이었어.
이분이 겪어 나온 인생길은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언제나 부처님에 대한 고마움과 실생활 역시 스님들을 공경하며 지내시는 겸손한 모습에서 참다운 보살의 면모를 볼 수 있었지.
이분의 책을 읽는 것이 내게는 무척이나 감동을 가져다주었어.
경찰서유치장에서 약 보름 정도의 시간 동안 몇 사람과의 만남이 있었고 책 몇 권을 보는 동안도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 교도소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다음시간에는 교도소로 넘어가서 일어난 일들로 만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쉬어가도록 하자꾸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