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42)

배가번드 2021. 9. 10.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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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교도소에서의 첫날 신고식을 우울한 분위기에서 끝마치고 취침시간이 되었는데 서열상 내가 뼁끼통(화장실) 옆에 자야 하지만 감방 장을 비롯한 고참들의 배려로 다음 서열인 뼁끼통 옆 자리를 배정 받았어.

4평 조금 넘는 방에 18명이 자는지라 모두들 칼잠을 자야 했는데 감방 장을 비롯한 서열4위까지는 그래도 자신들 몸을 제대로 눕힐 자리가 주어졌지만 밑으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아예 붙어버려 간혹 잠을 자는 도중 소변이라도 보고 올라치면 자리가 없어져 버려 억지로 비비고 들어가야 할 만큼 공간이 좁았어.

어쩌면 사회생활구조와 그리도 닮아있는지 놀라울 정도였지.

미국의 경제구조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5%의 인구가 미국의 경제95%를 장악하고 있고 나머지 95%인구가 5%를 나누어 먹고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경제구조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다수국가가 비슷하고 보면 감방 생활이 결코 먼 나라 이웃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니.

심하게 좁은 공간이라 다들 불편하게 여겼어도 한마디 불평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은 상위서열들의 폭력이 무서웠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만약 방안에서 문제가 발생될 경우 방이 깨어져 또 다른 방으로 가야하기 때문이었는데 다른 방으로 갈 경우 처음부터 또다시 시작해야 함으로 다들 불만이 있어도 참아야 했어.

실질적으로는 감방 내에서 불평등한 일이나 언어폭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원칙일 뿐 원칙이 지켜질 수 없는 것은 밖이나 안이나 마찬가지였던 거야.

아들아!

너는 이러한 일을 어떻게 생각하니?

원칙은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고?

그래!

네 말이 맞아!

아니!

맞고도 틀려.

네 말이 맞는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사회는 원칙만이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은 원칙에 벗어난 일들이 왕왕 있고 보니 혼란스러움이 있는 것 같은데 이러한 원칙을 벗어난 일조차도 신의 완벽한 조화 속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해야만 하니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꾸나.

내 생각에는 이러한 불평등을 겪으면서 쌓여온 감정들이 아마도 김 일병사건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어.

이모든 것이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데서 일어난 일이고 나 자신의 지금 역할이 무엇이고 내가 불평등을 얘기하고 있지만 나 역시 입장이 바뀌어보면 그러한 불평등이 왜 존재해야만 하고 어떻게 불평등을 극복하는지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생각들은 수많은 경험과 인내 속에 자신과의 투쟁이 있고 나서야 일어날 수 있는 자각인 만큼 김 일병의 일은 너무나 성급했다는 것이 내 개인의 생각이야.

이래서 내가 많은 이들에게 명상을 권하고 싶은 거야.

참을 인()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러한 인내심을 공부하는 데는 명상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거든.

나 역시 처음에는 불평등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느껴야 했지만 7번이나 방을 옮겨 다니면서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경험으로 인해 불평등에 대한 생각들을 내려놓아야 했어.

처음 이러한 일들을 보면서 속으로 분노의 감정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억지로 참아야 했는데 죄인의 마음으로 이 정도의 불편함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무엇보다도 명상을 하는 나로서는 하심을 하라는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기에 남들보다는 견디기가 훨씬 수월하였던 것 같아.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명상법의 특성상 이불을 덮어쓰고 칼잠을 자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했기에 잠자리로서는 불평 할 일이 적었어.

모두가 얘기들을 하느라 떠들어댈 때도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관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으니 이 또한 행복이 아닐 수 없었지.

교도소에서의 첫날밤이 그렇게 깊어 가고 있을 무렵 몇 시인지 모를 시간에 허리가 아파 일어나 앉아 명상을 시도하려고 없는 공간을 억지로 만들어 앉았는데 창밖으로 오가던 교도관이 우리 방 창문을 두드리는 거야.

다른 이들이 잠을 깰 까봐 손짓으로 전해주는 말은 누우라는 것 같았어.

나로서는 명상을 비율에 맞춰 할 필요가 있었고 경찰서에 들어온 뒤부터 줄곧 관음명상만 했기에 관광명상을 하고 싶었는데 앉아서 명상할 수 있는 자유를 주지 않더구나.

원래 우리명상법이 빛을 보는 명상을 1시간30분한 뒤에 1시간의 소리명상을 하도록 되어있는데 만약5시간 명상을 할 경우3시간을 관광을 해야 소리를 듣는 명상을2시간 할 수 있거든.

그런데 나 같은 경우 하루 5시간이상을 관음만 하도록 되었으니 어떻게 비율을 맞출지 모르게 된 거였어.

아들아!

이 같은 경우라면 너는 어떻게 할 것 같니?

안 해버리겠다고?

신이 진정 안배를 했다면 왜 그러한 곳을 가게 만들었겠냐고?

그래!

네가 생각하는 신의 안배는 그런 거였구나.

하지만 아들아!

항시 너에게 말하고 있지만 무엇을 신의 안배로 여기는가라는 물음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문제일 뿐 우리가 생각하듯이 형체를 가진 신이 나타나서 모든 일을 처리해 주는 것은 아니야.

우리 안에 신이 거하고 있다는 말이 맞기 위해서라도 모든 일에 대한 선택은 우리에게 주어져야지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신이 알아서 해준다면 우리의 성장은 멈추고 말지 않겠니?

꼭 해야만 하는 절실한 일이 있고 뜻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많은 이들은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

신이 주지 않으면 주는 만큼만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을 하면 모든 것이 평화로울 수 있거든.

쉽지 않은 생각이긴 하겠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만큼 체념할 수밖에 없고 이왕 체념을 해야 한다면 주어진 현실에 대한 해석을 달리해보면 어떨까?

왜내게 이러한 일이 생겼을까 라는 물음보다 나에게 신이 최상의 선물을 주시나보다 라는 생각이 낫지 않을까 해.

이러한 생각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은 아니고 나 역시 명상을 한지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역시도 끓임 없는 훈련을 하고 있으니 지금 당장 너에게 바라는 것은 아니고 첫 발자국이 있어야 마지막이 있듯이 지금부터라도 시작하길 권하고 싶구나.

교도소에서 관광을 못하게 된 것을 일상생활을 관광명상으로 삼고 밤으로는 다른 이들이 자신의 무용담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관음명상을 하라는 신의 뜻으로 해석하기로 했어.

이렇게 되니 하루 종일 명상을 하는 것이 되었고 그야말로 일상생활이 선 자체가 되었지 않겠니.

첫날이 지나가고 다음날 아침 인원점검이 끝나고 나서 급수시간이 되었는데 방안에 비치되어있는 바케스 열 개와 큰 다라 두 개에 물을 담아두어야 했어.

18명이 하루 종일 써야 하는 물이어서 감방 장을 제외한 모든 인원들이 제한된 시간 안에 물을 받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녀야 했지.

복도하나에 20개정도의 방들이 있으므로 한꺼번에 물을 받을 수는 없는지라 두개 방을 한 조로 문을 열어주었는데 시간이 정해져 있는 만큼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많은 물을 확보하지 못하고 만에 하나 물이 모자라기라도 하면 설거지를 못하는 경우가 생기거나 아침저녁시간 몸을 씻기 위한 물이 모자랄 수도 있으니 모두들 열심일수밖에 없었고 이 시간만큼은 단결이 아주 잘되고 있었어.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닌데 군사작전을 하듯, 발 빠른 이는 밖에서 물을 나르고 안에서 물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연세가 비교적 높은 분들을 배치하여 아주 효과적인 방식으로 급수를 하는 우리 방에서는 단 한 번도 물이 모자란 적이 없었던 거야.

급수를 마치고 나서는 아침배식이 있었고 복도 끝에서부터 수레에 담긴 음식들을 같은 재소자들 중 선별된 인력이 나르고 있었는데 이일 때문에도 논란이 있었지.

처음 음식을 받는 방은 따뜻하고 식지 않은 밥과 국을 먹을 수 있는 반면 마지막 방에 이르게 되면 음식들이 식기 마련이어서 끄트머리 방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불평을 하게 된 거였어.

결국 재소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매일같이 순서를 바꿔가며 음식을 배식 하게 되었는데 조금 지나보니 결국 장단점이 있음을 알게 되더구나.

처음 배식을 받게 되면 따뜻하긴 하지만 양이 적고 마지막으로 배식을 받게 되면 양은 많지만 따뜻하지가 않게 되는데 처음부터 많이 주다 보면 마지막에는 밥이 모자라는 수가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씩 주다가 마지막에는 남기지 않기 위해 많이 주기 때문이었어.

빨리 받으면 양이 적고 늦게 받으면 따뜻하지를 않으니 결국 어느 한 가지가 좋기 위해서는 다른 한 가지는 못할 수도 있다는 신의 섭리가 배식에도 적용되고 있었던 거야.

이러한 사실을 모를 때는 불평들이 많다가 막상 시도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고 중간에 위치한 방들은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여서 불평이 있을 턱이 없었지.

아들아!

이래서 중용이라는 말이 생겨 난 것 같아.

중용이라는 말을 이런데다 붙이기는 뭐하지만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아야 한다는 부처님의 말씀은 중요한 가르침임에 틀림이 없어.

모든 이들이 이러한 중용의 도를 알아서 마음에서 욕심을 내려놓는 날 이세상은 아마도 천국이 되리라 생각해.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빨리 받기도 하고 양도 충분하길 바라고 있지만 내 충족을 위해서는 남의 희생이 따라야 함을 반드시 알아야 하거든.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은 부를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결국 남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서 보다 많은 자비와 보시 행을 권하고 싶구나.

지난번 장사 편에서 말했다시피 이 세상에서 필요한 숫자는 정해져 있고 내가 만약 그 숫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남이 팔 숫자만큼 내가 더 많이 팔고 있다는 것인데 다른 이의 불행이 내 행복이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 않겠니.

지금의 경제구조상 남들보다 더 많이 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나무랄 수 없는 노릇이니 탓하진 않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많이 벌수록 겸손하여 오늘의 내 성공 뒤에는 남들의 실패와 희생이 따랐음을 알고 무엇보다 개미군단들의 구매가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서 부를 축적하는데 애를 쓰기보다 사회로 환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식사를 하면서 내가 반찬을 먹지 않고 김만 먹자 감방장의 특별지시로 내 반찬만큼은 신경 써주라 하였는데 어떤 방을 가도 내 유일한 반찬인 김만큼은 항시 확보가 되었던 것을 되돌아보면 이 또한 신의 보살핌이 아니었나 싶고 채식을 하고자 하는 나의 절박함이 이러한 안배를 가져오지 않았는가 생각해.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나에게도 작업이 주어졌는데 원칙적으로 보자면 뼁끼통 청소를 해야 했지만 감방장의 특권으로 다음 단계인 설거지를 담당하라고 하더구나.

설거지를 한 사람이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네 사람이 각자가 맡은 부분이 따로 있었는데 처음 내가 맡은 수세미작업을 시작으로 일차 헹굼이 있고 다음으로 이차 헹굼 다시 마른행주로 닦는 작업과 마무리정리로 이어지는 4단계로 이루어졌는데 마지막4번째 담당은 서열이 중간 이상 되는 중고참으로 설거지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밥그릇이 물이 담긴 다라로 날라들기 일쑤이기 때문에 다들 긴장된 마음으로 열심히 설거지를 해야만 했어.

이 밖에도 방청소시 빗자루담당, 걸레담당, 창 닦기, 신문 받아 철하기, 겨울철 온수담당 등 그렇게 좁은 교도소 감방 안에 어쩌면 그토록 많은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

아들아!

이러한 점을 보면서 우리가 평상시 세상을 살아갈 때 나도 모르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가를 알게 되더구나.

특히나 집에서 생활할 때 무심코 살아가는 일상에서 네 엄마가 얼마나 수고하고 힘이 들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어.

내가 일을 해보기 전에는 어떠한 일도 힘들다는 것을 모르고 지내지만 막상 내가 직접 해보면 일의 힘 드는 점을 알게 되어서 남의 어려움을 헤아릴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겠니.

이래서 이론과 실재는 천양지차라고 하는가 보았어.

설거지가 끝이 나고 다음 순으로 방 청소를 하였는데 18명이나 되는 인원이 설거지하는 동안 벽을 타고 앉아 각자가 할 일을 하고 있다가 청소시작과 동시에 일어나야 했는데 4평이 조금 넘는 공간에서 일어나봐야 어디를 갈수 있으랴.

누군가 불평 석인 말로 앉아도 한방” “일어서도 한방” “누워도 한방이라는 소리에 다들 웃었지.

신기하게도 18명이나 되는 인원이 먹고 자고 씻고 해도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었는데 우리가 좁다고 여기거나 모자란다는 생각만 하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 모자람이란 없다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았어.

너는 이런 나의 말이 실감이 가지 않겠지만 18명의 이불만 해도 4평 넘는 방을 채우고도 남을 테지만 물 바케스10개에다 큰 다라 2개까지 놓아둔 방에 18명이 앉아있다는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아니겠니.

게다가 개인 사물들(옷가지와 세면도구, 잡동사니) 까지 있고 각종구매 물들(음료수와 면도기, 운동화, 빵이나 먹을 것 등)까지 즐비하고 보면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교도소라고 보면 되는 거야.

방 청소가 끝이 나고 온수를 받고 나서 감방장이 나보고 샤워를 하라고 하더구나.

경찰서를 들어간 뒤로 단 한 번도 면도와 몸을 씻지 못하고 있었는데 더부룩하게 자라있는 머리와 수염으로 꼴이 말이 아니었던 지라 너무나 반가운 말이었어.

뜨거운 물과 찬물을 적당이 섞어 몸을 씻는 요령을 가르쳐주겠다고 나선 사람은 나하고 나이가 같은 K라는 친구였는데 개인택시를 몰다 여자관계로 붙들려 들어온 사람이었지.

나와 나이가 같다는 말에 친근감이 갔던 모양이었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안에 매달려있는 페트병을 보니 20개는 넘어 보였는데 모두 아침으로 각자가 한 병씩 세수할 때 사용하는 물을 담아놓은 것이었지.

병에다 적당히 더운물을 섞은 후 머리에서부터 내리 붓기 시작하고 비누칠을 한 후 헹구는 것까지 샤워를 끝내는데 들어가는 물은 네 병이면 충분하였는데 좀 더 줄일 수도 있겠더구나.

이래서 사람을 환경의 동물이라 하는가 보았어.

평상시 물을 함부로 여겨 낭비를 쉽게 하는 것을 보는데 모두들 정신들을 차려야 할 거라 생각해.

지금 지구는 절대적인 물 부족을 향해 치닫고 있고 이대로 가면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물 부족사태가 온다고 하는걸 보면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지는 언제까지 계속될는지 안타까움이 앞서는구나.

결국 코앞에 현실로 다다라서야 정신들을 차리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이라도 내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버리고 절약하는 자세로 돌아서는 것이 이 세상을 물 부족으로부터 구하는 길이 됨을 모두가 알았으면 해.

주어진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적응할 수 있는데 불구하고 불평불만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속의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첫날은 면도와 함께 장발로 자란 머리 탓에 무려4병의 물을 썼지만 나중에는 2병으로 줄어들었고 좀 더 시간이 흘러갔을 때는 두병도 남았지 않겠니.

고참 들의 엄청난(?) 배려에 십 여 일 동안 못한 샤워까지 마치고 나오니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하더구나.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배식반장이 나에게 옷을 내밀었는데 내가 입고 있던 누런색의 옷이 아닌 연옥색의 깨끗한 옷을 내어주었어.

보통 미결수에게 교도소 측에서 내어주는 옷은 누런색인데 아직까지 재판을 받기 전이라 완전한 죄인이 아니어서 자신이 구매해서 입을 수 있는 옷이 따로 있었거든.

국가가 죄인들을 위해 배려한듯했지만 이 또한 불평등을 느끼게 만들었으니 내가봤을 때는 쓸데없는 배려 같았어.

나에게 옷을 내어주는 것이 공짜인줄 알았지만 사실은 교도소 들어올 때 가지고 들어온 돈에서 지출이 되어야 했으니 생돈을 주고 중고품 옷을 사 입은 셈이었지.

하지만 그때 당시로는 이러한 사실을 알 수가 없었어.

나중에 변호사 접견을 갈 때 동행을 하게 된 배식반장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동네선배의 동창생이었는데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서 나를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게 좋아졌고 이래저래 감방 내에서 내편이라 할 사람이 점점 더 많아졌으며 대구바닥이 무척 좁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모두들 달라진 내 모습에 즐거워들 하며 덕담을 나누는 중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있어 내다보니 또 다른 신입이 우리 방 앞에 서 있었어.

18명이나 되는 인원도 모자라 또한 명의 추가인원을 보내는 교도행정당국의 처사에 다들 욕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당시 IMF로 인해 경제사범이 전국적으로 넘치고 있었으므로 전국의 교도소가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었고 급작스레 늘어난 죄인들을 수용할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일어난 거지.

모르긴 해도 이때 당시 변호사들이 때 아닌 호황을 누렸으리라 여겨져.

첫날 나처럼 윗주머니에 숟가락과 칫솔을 꽂은 체 어리둥절한 모습의 신입모습을 보며 어제 있었던 내 과거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었는데 참으로 거지행색이 따로 없더구나.

아들아!

너는 개구리 올챙이시절 모른다는 말을 기억하지?

바로 내가 그랬던 것 같아.

불과 하루 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가 싶게 그분이 불쌍하게 보였고 게다가 안에 있는 사람들이 기를 죽일 심산으로 욕지거리를 하는 통에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은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싶더구나.

왜 다들 같은 입장에 있으면서 저러한 모습들을 보이는가 싶어 마음속 깊이 불만이 가득했지만 누구보다 특권을 누리고 있는 나로서는 불평등을 얘기할 입장이 못 되었어.

첫날 내가 들어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수순을 거치고 신입이 되어 들어온 사람은 화원을 경영하던 분으로 전국 난 협회의 직책도 가지고 있고 밤무대 가수이기도 했던 전직이 화려했던 분이었어.

아무리 전직이 화려해도 방안에 들어서는 순간 똑 같은 부류의 인간으로 대접 받기 마련이니 어찌 보면 인간세상보다 평등한 세상이 교도소 안이 아닐까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아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교도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별다를 바가 없었지.

저녁식사를 마친 후 신입식이 있었는데 처음 들어오는 신입에게 앞으로 함께 지내는 동안 방안에서 생활하는 요령과 방안의 선배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신입식의 주된 목적이었지만 실상은 기를 죽여서 말을 잘 듣게 만들기 위한 수단인 것 같았고 공연을 시켜 자신들이 처음 들어올 때 당한 앙갚음의 마음도 없지 않았던 것 같았어.

빙 둘러앉은 사람들은 아리랑을 부르고 있는 가운데 반중간에 서있는 신입의 앞으로 화장지를 꼬아 만든 줄을 늘어뜨리고 아리랑노래에 맞춰서 넘나들어야 하는데 눈을 가리기 전 우선적으로 줄을 보도록 만든 후 몇 번 넘나들 동안 줄을 잡고 있다가 줄을 거둬들이고 나면 줄이 없어진 줄도 모르는 신입은 혼자서 다리를 쳐들며 넘고 잔뜩 엎드려서 줄 아래를 통과하듯이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웃겨 다들 배를 잡고 웃는 거야.

가끔씩 머리가 줄에 닿으려 한다고 엄포라도 놓을라치면 더욱더 납작 엎드리는 바람에 끈도 없는 바닥을 기다시피 하는 꼴이 어느 코미디가 그렇게 웃길 수 있겠나 싶더구나.

바닥을 기는 공연이 끝이 나고 나면 이번에는 김일성 눈알 빼는 공연이 벌어지는데 코를 잡고 뺑뺑이를 돌게 한 후 두꺼운 종이에 그려진 원을 손가락으로 짚게 만드는 것인데 이 또한 어릴 때 해본 놀이지만 다 큰 어른이 어지럼증으로 비틀거리다 넘어지는 모습을 보며 다들 웃고 난리들을 쳤어.

아들아!

나는 이 순간 어떻게 반응하여야 할지 엉거주춤하고 있었어.

도대체 웃어야 할지 모른 척 해야 할지 아니면 미친 짓거리 하지 말라고 외쳐야 할지 말이야.

그런데 이런 표정과 함께 내 마음속에서도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함께 동화되어 즐기자는 마음과 비인간적인 이런 일을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마음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어.

이러한 내 마음의 갈등과는 무관하게 공연이 이어졌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공연은 눈을 가리고 피를 뽑는 순서였는데 사람을 뉘어놓은 체 팔을 걷어 올리고 못으로 혈관을 아플 정도로 찌른 후 못을 통해 야쿠르트가 흐르게 하면 눈을 감고 있는 당사자는 진짜 피가 흐르는 듯이 여겨지기 때문에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내리는 줄 알고 어지러움 까지 느끼게 되거든.

그날 그분 역시 약5분의 시간이 지나자 어지러움을 호소하였지.

다들 재미있게 떠들며 좋아 들 하였지만 좋아할 일만은 아니었어.

어디선가 본 책에는 우리가 한 신입식과 비슷한 실험을 미국에서 사형수들을 상대로 실험한 결과 실지로 몇 명이 죽는 일이 발생했는데 인식만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거든.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들에게 약품실험에 참여하면 자신들 가족들에게 엄청난 액수의 돈을 준다는 말을 하고 지원자들10명을 모집하여 독약이라고 속이고 영양제를 주사하자 5명이 죽고 몇 명은 정신이상이 되었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 비슷한 일은 전쟁 중에도 일어났어.

이차대전 당시 약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 병사들이 감기로 고생을 하자 생각 끝에 의사가 밀가루를 반죽하여 만든 가짜 약을 주었더니 90%이상이 감기가 낫더라는 거야.

사람들의 인식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어.

그래서 평상시의 올바른 인식을 가지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고 올바른 신(), (), ()를 가지기 위해 수행이라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겠니.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것으로 공연이 끝이 나는듯했지만 마지막으로 노래한마디 하라는 말에 아주 흔쾌히 노래를 하였는데 정말로 노래를 잘하더구나.

노래가 끝이 나고 감방 장으로부터 무엇 때문에 들어오게 되었는가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야 본인이 밤무대 가수였다는 사실과 전국 난 협회에 회원이고 교도소의 간부들 중에도 같은 회원들이 무척 많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어.

꽃집경영에는 그다지 손해볼일은 없었지만 동생으로 인해 수표가 부도가나는 바람에 부정수표단속법위반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공소시효기간을 한 달여 앞두고 누군가의 고발로 잡혀 들어오게 되었다는 거야.

수표가 부도나고 멀리 울산으로 피신해 내려가 사는 동안 여자를 만나 살게 되었는데 너무나 정이 들어 헤어질 수도 없고 부인과는 별도로 살고 있다는 얘기를 하더구나.

다들 이분의 인생여정을 안타까워하였지만 나는 왠지 그렇지가 않아서 노래를 들을 때만 하더라도 좋았던 이미지가 부인 외에 다른 여자와 동거를 하고 있다는 소리에 갑자기 미워 보였어.

아들아!

오늘 또 하나의 고백을 해야겠구나.

그날 그분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속으로 그분을 비난하였던 것은 내 마음의 분별 심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지나간 내 과거를 내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어.

스승을 따라 수행을 한지가 그때 당시 겨우 4년이 넘어서고 있을 무렵인데 불구하고 불과4년 전에 남들보다 더 심하게 잘못된 생활을 일삼던 내가 그분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중생심 인가 말이야.

게다가 그분이 불륜을 하고 있는지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 내가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남의 인생을 저울질하려 했으니 어리석기 그지없는 행동을 하였어.

공연을 하면서도 거리낌 없이 즐길 줄 알았고 주위와 융화를 잘하는데다가 붙임성도 좋았고 사람이 너무 좋아 처음에는 다들 좋아했는데 나중에는 너무나 아는 것이 많다고 고참들로 부터 욕을 얻어먹기도 했어.

사람이 너무 잘나도 남들의 시샘을 불러일으키나 보았지.

S씨가 들어옴으로 인해 내가 한 단계 직급이 올라가게 되었는데 직급이 올랐다고 해도 설거지가 한 단계 오르게 된 것뿐이었지만 일단 내 밑에 부하가 생긴 기분인 것만은 사실이었어.

교도소 들어간 지 하루 만에 승급(?)을 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복이라면 복이 아니겠니.

방안의 고참말로는 2개월 이상 뺑 끼 청소만 하신 분도 있다고 했으니 어찌 보면 복이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의미로서가 아니라 다른 의미에서의 축복을 받았어.

그러나 해석을 달리한다 하더라도 이래저래 내가 신의 축복을 받은 것은 사실인 것 같으니 오늘은 여기에서 쉬었다가 다음시간에는 또 다른 축복을 맞이하러 가보자꾸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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