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며칠간 춥기까지 하던 날씨가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햇빛이 가득하니 사람의 마음속만큼이나 변화무쌍한 날씨인 듯하구나.
여름의 초입이라 더울 만도 하건만 이곳은 어찌 된 일인지 더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
창문을 열어두지 못할 정도로 찬 날씨가 계속되고 있는데 나에게는 그나마 다행한 일인 것 같아.
시원한 가운데 너와의 대화를 간간히 할 수 있다는 것은 신이 나에게 주신 크나큰 축복이 아닐까 해.
주문하나 없는 김치공장을 하고 있는 주제에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라고 여긴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언젠가 내가 하고 싶어 하던 일을 당겨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어?
언젠가 집도 없이 남의 사무실에 기거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보고 관음 사자가 함께 차를 마시다가 요즘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묻기에 즐거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노라고 했더니 힘이 드는 것 같은데 억지로 즐거워하는 척을 한다며 웃더구나.
그래서 내가 말했어.
어차피 현실은 내게 다가와 있고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고 있는데 어떤 해석이 진정으로 나를 위한 것이 되겠는가? 라고 되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웃은 적이 있는데 내게 그 말을 물었던 관음사자 역시 세계오지를 다니면서 스승님의 일을 해야만 했으니 나보다 별반 나을 것도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나를 위로하고 싶었던 모양이었지.
아들아!
너 역시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수많은 일들을 맞이하게 되고 선택의 순간들을 맞게 되겠지만 항시 명심할 것은 어떠한 순간도 진정으로 너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라며 일단 선택을 했으면 그 선택이야말로 신이 네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을 무조건 인정하길 바라.
그러한 마음가짐이야말로 진정 네가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길이기 때문이거든.
너도 생각을 해보렴.
네가 처해있는 현실을 원망을 해봐야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말이야.
지금 당장은 힘든 현실을 맞이하고 있지만 이러한 현실이 보다 행복한 미래를 가져다주는 밑거름이라 여기라는거지.
내가 지금껏 살아온 길이 그러했으며 앞으로 살아갈 길이 그러함으로 살아나온 나의 삶 속에서 진정으로 그러한 나의 해석이 진리라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는 만큼 또다시 내가 밟고 지나온 과거의 발자취를 더듬어 호주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꾸나.
마 선생님 댁에 머물고 있을 때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이 있었는데 사우스뱅크 내에 위치한 컨벤션홀에서 해마다 열리는 도서박람회 소식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었어.
전 세계의 영적인 단체는 거의 모두가 참석하고 있는 만큼 각종종교전시관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책에서나 보았던 요가난다를 비롯한 인도의 큰 스승들을 신봉하고 따르는 제자들과 처음 보는 이름의 단체들도 무척이나 많았지.
그중에는 우리나라에서 참석한 선도선법의 사범들이 우리 옆자리에서 기공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괜히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4백 군데가 넘게 참여한 단체 중에서 우리부스에서 알 수 없는 빛이 제일 많이 난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얼마 후 이러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어.
부스 앞에서 지나다니는 분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하고 우리단체소개를 하는 일을 교대로 하고 있던 내가 교대시간이 되어서 마 선생님과 함께 전시장을 돌면서 구경을 다니고 있을 때 인도에서 온 어떤 단체의 부스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우리를 보고 있던 그 단체 여자 분이 우리를 발견한 순간 갑자기 자기단체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서 난리를 치는 것이 아니겠니.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있는데 몇 분의 그 단체 회원들이 우리를 보고 인사를 하면서 뭐라고 하는데 뭐라는 지는 잘 몰랐지만 부러워하는 것이 아마도 우리에게 빛이 나는 모양이었어.
이러한 현상을 오로라를 본다고 하는데 아마도 영적인 명상단체에 속해있던 분들이라서 영안이 열려있어 우리의 오로라를 본 것 같았지.
사람들마다 오오라가 있는데 우리의 오오라가 그리 나쁘진 않았나봐.
여러 사람들이 몰려와서 말썽이 생기게 될까 얼른 자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가버렸어.
그렇게 홀 주위를 돌다 보니 교회에서 함께 봉사 일을 하던 책임자부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분들 역시 다른 단체의 일로서 참석하고 있었고 교회에서 만나다가 장소를 달리해서 만나게 되니 반가운 마음이 일어나더구나.
남편 되시는 분은 다른 분에게 머리 지압을 하고 있었고 부인이 우리를 맞아주었는데 짧은 영어였지만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어.
그런데 인사를 하는 도중 느낌이 좋지 않아 옆을 보니 다른 분의 머리 안마를 하고 있던 남편 되시는 분이 무서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는데 섬뜩한 기분까지 드는 거야.
지난번에도 말했다시피 사랑에 눈이 먼 남자의 질투심이 그러한 눈빛을 만들었던 것 같았는데 그때 당시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몇 년 뒤에는 이해가 되더구나.
아들아!
어차피 한번은 짚고 넘어 가야 하는 만큼 말이 나온 김에 얘기 해보도록 할까?
인간의 감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집착이라는 말을 우리는 알고 있는데 변형된 사랑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 이 집착이 바로 그러한 질투의 감정을 만들게 된 거야.
집착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인간들이 이 세상을 놓을 수 없도록 만들기도 하고 본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기도 하는 것인데 이세상의 모든 집착을 놓는 순간 대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사람이 사랑을 할 때 순수하게 집착 없고 자유로운 사랑을 해야 한다는 말은 쉽게 하지만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이를 사랑하거나 좋아하게 되면 그 질투의 마음이 아픔을 만들어내게 되어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게 만들거든.
이러한 질투에 대해서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은 어쩌고 하면서 얘기를 많이 하지만 내 생각에는 모든 감정이 다 이유가 있고 쓸 데가 있다고 여기고 있어.
혹시 너는 일반인들은 모르겠지만 수행자들은 인간적인 감정에 메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구나.
그렇지만 아들아!
사람의 만남이 인과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만큼 만에 하나 감정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 되거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사랑의 욕구가 전혀 생기지 않아야 한다면 아마도 부처는 나무토막이나 돌덩이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니.
만약 인과에 의해서 부부의 연을 맺어야 한다면 인간적인 감정이 생겨야 그러한 일이 성사가 되는 만큼 질투라든지 인간적인 차원의 일들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야.
다만 내 마음이 움직이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어서 인연이 다가왔음을 보고 그러한 인연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수행하는 분들과 일반인들을 비교했을 때 다르지 않을까해.
물론 선택의 자유는 본인에게 있음은 물론이지.
쓰레기차를 피하면 똥차하고 박치기한다는 불변의 법칙 범위 내에서 말이야.
쓸데없이 그분에게 오해를 살 필요가 없었으므로 얼른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 되시는 분과 대화를 했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을 부인과 대화를 한 내게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
이러한 일은 일반인들과의 사이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동수들 간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서 내게 물심양면의 도움을 주고 있던 S사저의 남편에게도 오해를 산적이 있는데 영어가 서툴렀던 내가 모든 일을 사저와 의논을 하고 부탁을 했더니 나중에는 사저가 내게 자기의 남편과 대화를 해줄 것을 요청하기까지 했지.
S사저의 남편과의 문제 역시 서투른 영어라도 대화상대자로 남편을 택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을 애당초 영어가 서툴다는 핑계로 남의 부인과 대화를 한 내게도 문제가 많았던 거야.
이 같은 경험을 해본 지라 누구와도 대화를 할 때는 주위를 살펴보고 오해의 소지가 없게 하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되었으니 그분들이 나에게 스승의 역할을 하게 되었음은 명백한 사실인 것 같아.
그렇게 컨벤션홀에서의 경험을 하고 난 후 어느 날인가 레이아저씨가 중국차를 좋아하는가 묻기에 좋아한다고 했더니 차 한 잔 대접을 하겠노라 하시더구나.
중국 전통차를 파는 가게에 가서 차를 시켜놓고 대화를 하는데 여러 가지 가정사와 신상에 대한 일들을 얘기했었어.
짧은 영어이긴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단어 한 개만 얘기해도 알아들을 수가 있어서 몇 가지 대화를 한끝에 레이아저씨가 나와 함께 자신이 머물고 있는 바이른 베이라는 곳을 가서 함께 지내지 않겠는가? 묻는다는 것을 알았지.
호주는 해변이라고 해도 아무데나 텐트를 칠 수는 없었고 텐트 에리어가 따로 있었는데 그러한 장소를 카라반 파크라고 부르고 레이아저씨가 그곳의 한 장소를 임대해서 텐트생활을 하고 있었거든.
자신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축복 받은 일과 남은 인생을 스승님의 홍법을 펼치는데 바치기로 신과 약속했다면서 나보고 영어도 배우고 함께 홍법 활동을 하자는 얘기였는데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어.
돈을 주고라도 영어를 배워야 할 판에 무료로 가르쳐주겠다는데 얼마나 좋은 일인가 말이야.
얼씨구나, 하고 따라나서게 되었지.
우리가 함께 바이런 베이로 떠난다는 소식에 함께 교회 봉사하시던 타 단체 분들도 아쉬워하면서 작별인사를 했는데 영화에서 본 것처럼 내 볼에 입맞춤을 하는 인사가 익숙하지 않아서 함께 입맞춤을 할 수는 없었지만 나를 아껴주는 마음만은 고스란히 받아들였어.
작별인사를 하는 아쉬움은 마 선생님 가족이 더욱 심했는데 얼마나 서운하셨으면 그동안 받지 않던 전기세며 각종세금까지도 모두 청구를 하시는 통에 어처구니없기까지 하더구나.
야속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나를 사랑하는 그분들의 마음만큼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어서 아직까지 감사하고 있는데 그 당시 나로서는 레이아저씨와의 생활을 선택해야만 했으니 어쩔 수 없이 작별을 해야만 했어.
호주의 많은 장소가 그러하듯이 바이른베이로 향하는 길 또한 아름다운 초원의 연속이었는데 울타리가 쳐진 목장 안을 보면 나무가 어쩌다가 한두 그루 있고 그 나무아래 한가로이 누워있는 소나 말들의 모습들이 대부분의 목장 풍경이었지.
한적한 시골길을 교통법규에 조금도 위반됨이 없이 달려가다 보니 일반적으로 1시간이면 도착할 길을 반시간이 넘게 시간이 걸렸지만 천천히 달리는 바람에 주위의 경관을 즐길 수 있어서 좋더구나.
해외에는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호주국내에서는 제법 알려진 휴양지인 바이른베이는 휴가철을 앞두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어.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레이아저씨의 텐트 옆에 내 자리를 마련해두고 저녁 무렵에는 식사를 하기 위해 시내를 나왔지.
그렇게 작은 마을에 채식식당이 있다 하여 30분 이상을 헤맨 끝에 겨우 찾아낸 식당은 채식식당이긴 했지만 한국의 채식식당과는 다르게 술과 담배를 허락하고 있는 것 같더구나.
아마 술 담배도 기호식품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으로 채식주의자인 내 눈에는 그다지 좋게 여겨지진 않았어.
허기진 터에 대충 식사를 마치고 텐트로 돌아가는 것으로 바이른베이 에서의 첫날은 저물고 있었지.
다음날 아침에는 주위를 살필 여유가 있었는데 우리텐트 맞은편에 자리한 곳에는 시드니에 있는 항공사에서 근무하다가 외계인을 네 번이나 만난 이후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와 살고 있는 그렉이라는 호주 분이 살고 있었어.
옆에는 버스를 몰고 호주전역을 여행 다니는 분들도 있었으며 가족들이 모두 그곳에서 살고 있는 분들도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카라반 파크라는 곳이 피서 철에만 이용되는 곳이 아니라 가난한 분들을 위해 마련된 곳이기도 한 것 같더구나.
주위에 계시는 분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앞에 사시는 그렉이라는 전직 항공사직원과 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자신이 외계인과 만나서 나눈 얘기를 해주었어.
아들아!
너는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하니?
아니면 없다고 생각하니?
내 개인의 생각으로는 있다는 생각이야.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1984년쯤인가 은행에 갈 일이 있어서 들렀을 때였어.
그곳에 비치된 “세계”라는 잡지에서 미국의 대통령과 외계인이 미국대통령전용기 트랙에서 웃으면서 찍은 사진을 본 것이 내가 처음 보게 된 외계인의 사진이었지.
그때 기사 중에는 외계인이 미국의 대통령을 만난 후 소련의 정치 지도자인 고르비와 면담을 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보이더구나.
사실여부를 떠나서 상당히 믿음이 가는 내용이었는데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소련의 붕괴와 함께 탈냉전시대가 시작되었고 전세계공산주의 진영의 잇따른 붕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오늘날 세계의 흐름은 멋 훗날 어느 때인가 오고야 말 전 세계의 통일을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해.
그 해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 아 드 월드” 라는 노래가 생겼고 미국의 유명한 팝 가수 수백 명 이상이 모여 대대적인 행사를 벌인 해였는데 내가 본 외계인과 미국대통령이 함께 찍은 사진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 같았어.
그때 당시 한번 본 외계인의 사진을 기억의 창고 속에 간직하고 살아왔는데 호주에서 직접 외계인을 만났다는 분과 대화를 나누고 보니 이 또한 우연으로 넘겨버리기엔 너무나도 기가 막힌 일이더구나.
매일같이 그분과 아침저녁으로 만나 우리는 차를 마시고 그분은 포도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처음 외계인을 만났을 때는 외계인이 동양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하였어.
자신의 침대머리맡에 앉아 1시간을 넘게 대화를 나누면서 6가지의 비밀을 얘기해주었다면서 그 당시 외계인과 나눈 대화내용을 리포트로 작성해둔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지.
내가 텐트로 가지고 가서 읽어봐도 되겠는가 물어보니 흔쾌히 승낙하였는데 여섯 가지 중 첫 번째가 예수님의 성경에 나와 있지 않은 13세부터 29세까지 16년간의 세월 동안 인도로 건너가서 공부를 하였다는 것과 불교에 입문하여 석가모니 제자로서 생활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는 이 세상을 위험에 빠트릴 악마의 사람으로 미국대통령 레이건을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어.
나머지는 그다지 내 주의를 끌만한 내용은 없었던 것 같고 무엇보다 내 영어 실력이 모자라다 보니 해석이 그다지 좋지 않기도 했고 그 얘기를 잃는 도중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으므로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머물던 바이른 베이가 나사에서 “유 에프 오” 와 "외계인 연구소"를 설치한 곳이기도 한데 그곳 주민들치고 “유 에프 오”를 보지 않은 분들은 없고 보면 절대로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
아직도 외계인의 존재여부를 놓고 설왕설래 말이 많은데 내가 하는 이말 역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아냥거림을 초래하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내가보고 들었던 것을 말할 뿐 결과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기로 해.
그곳에서 사는 동안 자주해변을 나가보곤 했는데 내가 사는 곳에서 불과 1백 미터쯤의 거리에 위치한 해변은 가끔씩 내가 명상을 하는 장소이기도 했는데 탁 트인 바다와 더불어 맑디맑은 하늘의 푸름에 괜히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하고 가끔씩 젊은 호주남녀 나체족들의 알몸수영도 구경하면서 명상에 잠기곤 했어.
텐트생활을 하면서 레이아저씨의 요리솜씨 덕분에 그 동안 못 먹던 음식을 많이 먹어보게 되었는데 해상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시던 분이라 그런지 요리솜씨가 아주 좋았지.
내가 조금이라도 불편해할까 봐 배려를 해주셨는데 처음에는 나보고 요리를 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지만 내가 아무 요리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더 이상 시키시지 않더구나.
그 당시 우리의 일상은 아침을 10시쯤 먹고 바이른베이 주변마을을 돌면서 스승님의 견본책자와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오후5시쯤에 다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서 앞집의 그렉과 차를 마시며 놀다 명상과 잠을 자는 일과를 보내곤 했는데 그 당시 열심히 한 탓인지 지금은 작게나마 센터가 생겼다고 하였어.
비록 세상에서 가장 작은 미니 센터라곤 하지만 그 당시 레이아저씨와 내가 공을 들인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흐뭇해.
아들아!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지금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여서 어떻게 노력을 게을리 할 수가 있겠니.
목표가 무엇이든지(물질적인 것을 포함)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다가 보면 언젠가는 결실이 맺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어.
한번은 레이아저씨께서 나에게 관음 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어오셨는데 아마도 평생 스승님 홍법만 하며 지내겠노라는 당신의 소원처럼 관음 사자가 되고 싶으신 것 같더구나.
나 또한 그러한 생각을 안 해 본 것도 아니어서 만약 본인의 생각이 그렇다면 관음 사자가 하는 일을 자신이 하면 되지 않겠는가? 라고 말씀 드렸더니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며 누구의 칭찬이나 평가를 바라지 않고 묵묵히 할 일만 하셨어.
우리들은 모두가 남의 평가를 바라고 인정받기를 좋아하는데 사실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여겨지거든.
진정으로 내가 원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러한 일을 지금 하는 것이야말로 목표점에 가까이 가는 것이 되지 않을까해.
예를 들어 누군가 노후에 목장을 하려고 한다면 목장을 꼭 늙어서 할 필요가 없이 지금 바로 목장을 하면 된다는 거지.
아들아!
혹 너는 목장을 살 돈이 없음을 얘기할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면 목장에 취직을 하면 되지 않겠니?
목장에 취직하는 것과 목장을 직접 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고?
그렇다면 한 가지 물어보자꾸나.
목장을 하는 것이 목표인지 목장을 사는 것이 목적인지 말이야.
모든 사람들이 행복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자신의 진정한 목적조차 모르는 데서 온다는 것을 다들 모르고 있는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어.
다들 목장을 하고 싶어 하지만 목장을 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수고는 하지 않으려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고 보면 진정으로 삶을 즐기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으로부터의 평화와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성현들의 말씀은 진리임이 분명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보다 깨달은 분들이 하는 일을 함으로써 과정을 뛰어넘는 것이 바로 목표를 달성 하는 것이 된다는 거야.
레이아저씨 역시 목표인 관음 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관음사자라면 함직한 일을 함으로써 스승님의 수고를 들어주었고 자신 역시 스승님 아래서 에고를 시험 받는 번거로움을 겪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었어.
레이아저씨와의 생활이 재미가 있어지고 영어 역시 조금씩 들릴 만 할 즈음 한국에서 친구가 오게 되었는데 H사형이라고 나와 나이도 같고 영동선 때 함께 부식 조에 속해서 일을 했던 사형인데 너 역시 몇 번 본 일이 있을 거야.
가끔씩 통화를 하면서 호주의 아름다움을 얘기했더니 나를 만나기도 하고 함께 일도 하며 영어도 배울 겸 온다는 소식이었지.
반가운 마음에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는데 뜻하지 않은 공항에서의 풍경은 내 고정관념 하나를 깨어주더구나.
그때까지 내가 알기로 사람들 사이에 갖추어야하는 예의와 가족들 간의 정과 사랑은 어디까지나 동양인들의 전유물인줄 알았었는데 사랑이란 동서양을 뛰어넘어 같다는 것과 오히려 사랑의 표현방법에 있어서 서양인들이 더욱 확실하다는 것을 알았던 거야.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몇 차례의 비행기가 도착을 하였고 그때마다 마중 나온 사람들과의 재회의 순간들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번갈아 가면서 포옹과 함께 눈물로서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네 보다 더 진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어.
다들 서양이라면 포르노나 만들고 어른공경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알고 있지만 몇몇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고 요즘 심심찮게 한국에서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 또한 있다는 뉴스를 보면 더 이상 예의범절이 동양의 전유물은 아닌성싶구나.
그렇게 내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동안도 시간은 흘렀고 몇 시간을 지나도 나오지 않기에 걱정을 하고 있는데 공항 직원이 내게로 오더니 누구를 기다리는가 묻지 않겠니.
그래서 한국에서 오기로 되어있는 친구를 기다린다고 했더니 따라오라는 거야.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따라가 보니 친구가 붙잡혀서 취조를 당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우리 동수들이 해외여행이나 어디를 가도 복장을 간편히 한답시고 등산가방과 남루한 점퍼차림으로 다니다 보니 생긴 일이었어.
공항직원이 볼 때는 아무리 봐도 거지 행색에다 가방 안에는 불법체류를 하기 위해 준비한 것 같은 용접기술책과 페인트용 책들이 있었으니 당연히 붙잡아서 조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게다가 마중 나온 나 역시 슬리퍼차림과 반바지를 입고 모자라고는 너덜너덜한 것을 쓰고 왔으니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불법체류자로 본거야.
나 역시 같은 부류로 취급을 당하게 되었는데 어쩔 수 없이 외가댁에 연락하여 취업비자를 내고 정식으로 머물고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어.
아들아!
이래서 사람은 남들 보기에 깨끗하고 단정하게 치장을 해야 하는가 봐.
우리 스승님께서도 자신의 몸을 깨끗이 씻고 치장하는 것이 남을 위한 보시라고 하셨는데 이날 우리 모두가 실감하게 되었어.
몇 달 동안 만나지 못한 만큼 할 말도 많아서 센터에서 3일 동안 열심히 얘기하고 지내다가 함께 바이른베이에 도착하여 친구가 머물 텐트를 치는 도중 네 삼촌이 찾아왔더구나.
그 넓은 해변에 늘려져있는 텐트 에리어들을 단 두 번 만에 찾았다는 것의 놀라움을 얘기하기보다 뭔가 큰일이 생겼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
네 엄마가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리는 바람에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다는 소식이었는데 내가 빨리 돌아가야 네 엄마가 풀려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니.
어처구니없는 일이긴 했지만 망설여서 될 일은 아니었기에 뒷마무리를 친구에게 부탁하고 레이아저씨에게 양해를 구한다음 작별인사를 해야만 했지.
이렇게 해서 호주로 돌아간 내 생활은 막을 내렸고 또다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신은 내게 또 다른 시련의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으니 오늘은 여기서 쉬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일어난 여러 가지의 일들로 다시 만나기로 하자꾸나.
스승님!
처음 영동센터를 떠나시는 스승님께 6개월의 시간을 달라고 했던 일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망각 속으로 젖어 들어
그러한 일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게 지내왔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날짜를 계산해보니 정확하게 6개월이
되어있더군요.
한국을 떠날 때 5월20일, 돌아오는 날짜가 11월20일 이였어요.
급하게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 표를 알아보았지만 구할 수가 없다가
항공사 파견 직원이던 외사촌동생에게 부탁한 결과 말레이시아 항공에
단 하나의 좌석이 남아있었던 것 역시 신의 정확한 안배였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항공사의 비행기편중에 단 한 개의 좌석만이 남아있었다는 것은
우연을 넘어선 신의 정확한 안배를 느끼게 만들었어요.
난생처음 일등석을 탈수 있었던 것 역시 앞으로 다가올 내 인생의 여정을
축하해주려는 신의 안배였었지요.
이러한 내 인생의 연속된 우연들이 어느 틈엔가 필연들로 느껴지게
되었으며 매 순간이 정확한 신의 안배 속에 있음을
알게 하신 스승님!
찬미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