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43)

배가번드 2021. 9. 1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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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교도소에서 이틀 밤이 지나고 나자 감방 안의 분위기가 대충 파악이 되고 있었어.

감방 장을 비롯하여 상위5~6명 정도의 고참들이 방을 이끌고 있었는데 다들 고참들이 무서워 어떠한 표현도 못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불평이 많은가 보았지.

오촌 당숙역시 고참이었지만 돈이 없어 남들이 구매하는 물품을 얻어먹는 처지라 어떠한 의견제시도 할 수 없는 처지였고 나 또한 어떠한 현실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었으므로 불평등을 따질 수 없었으며 누구보다도 특혜를 누리고 있었으니 말할 처지가 아니었어.

원래 오촌 당숙은 태권도가 5단에다가 각종운동으로 단련된 무술인 이었고 성격 또한 괴팍하여 불의를 보고 참아 넘길 사람이 전혀 아니었거든.

그런데도 단 한마디 불만이나 불평을 얘기할 수 없었던 것은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어.

“무전유죄 유전유죄”는 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충분한 이유를 제공하는 말임에 틀림없는 것 같아.

감방 안이 어찌 보면 사회보다 더욱 돈이 필요한곳인지도 몰라.

지난번에 잠시 언급했지만 내가 속한 방이 경제사범 들을 모아둔 곳이라 다른 방들보다 물자가 풍부하여 가끔씩 소지(청소나 밥을 나누어주는 등의 잡일을 하는 재소자)들이나 다른 방의 사람들이 먹을 것을 얻으러 오곤 했어.

강력범들이나 절도 방에는 면회 오는 이들이 드물다 보니 접견 물(면회 오는 사람들이 넣어주는 간식 물)이 없고 예치금역시 없다 보니 간식이라고는 못해보고 사는지라 우리 방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면회를 오는 곳과는 처지가 사뭇 달랐지.

우리야 모두 초범들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내기도 하지만 몇 번씩 감방을 드나드는 꽈배기(교도소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절대 자신이 돈을 내어 남들을 먹여 살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거든.

이러한 사정은 폭력범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조 폭 두목들조차도 우리들 방에 간식거리를 부탁하고 있었으니 돈이라는 것이 사회와 마찬가지로 감방 안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거야.

S씨가 워낙 노래도 잘하고 붙임성이 있어 감방의 고참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사실은 난 협회에 속해있던 이분이 교도소내부의 간부들과도 일면식들이 있는 사람이라 만에 하나라도 방 내부의 일이 교도당국에 알려질까 우려하는 마음 또한 있었던 것 같더구나.

행정 실에서 규정하기로는 본인의 의사 없이 구매에 필요한 지출이 일어나지 못하게 되어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아서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지출이 되고 있었고 서열5~6위까지의 고참들은 지출이 거의 없고 하위순번의 사람들이 돈 액수에 따라 들쑥날쑥 지출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이모든 지출 권의 권한이 배식반장에게 달려있었지.

이러한 불평등에 대해 모두가 말하지 않았던 것은 모두들 처음 오는 교도소라 모르기도 했고 불만을 얘기했다가 왕따라도 당하면 자신만 손해인지라 이래저래 참아내고 있었던 거야.

점심 식사가 끝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마을 금고에서 전무직을 맡고 계시든 K전무님께서 금 보석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다들 부러워도 하고 서운해 하기도 했는데 사실은 가시는 전무님말씀대로 지금부터가 고생의 시작일수 있기에 결코 즐거워 할 문제만은 아니었어.

교도소까지 오게 된 데는 적지 않은 일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고 나가는 데로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위해 골치가 아파야 하는지라 전무님의 얼굴에는 기쁨보다는 차라리 안타까움이 번지고 있더구나.

전무님이 나가고 나서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바깥이 시끄러워 내다보니 어제와 같이 또 한명의 신입이 우리방문 앞에 서있는 것이 아니겠니.

잘못오지나 않았나 싶어 소지에게 물어보니 정확하게 우리 방에 배정 받았다고 하는 거야.

앞날 내가 그러했고 내 앞의 신입이 그러했듯이 별다른 일없이 똑 같은 수순을 거쳐 신입식이 있게 되었는데 이번에 들어온 분은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은 분으로 부동산을 하다가 부도를 내고 들어온 분이었어.

많은 고생을 한 탓인지 머리가 하얗게 세어 실제 나이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보였는데 손까지 떠는 폼이 술을 웬만큼 마시는 모양이었지.

아닌 게 아니라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들어보니 알코올에 젖어 살다시피 하였더구나.

경제활동이 힘들어지다 보니 가정적으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자꾸만 술에 의지하게 되어 몸까지 다친 모양이었어.

아들아!

이래서 내가 자꾸 술을 과하게 먹지 말라는 거야.

이 기회에 또다시 술 담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절대 내가 먹지 않는다고 너에게 먹지 말라고 강요하거나 먹는 분들을 하찮게 여기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구나.

이분처럼 손이 떨릴 정도거나 몸을 다치는 경우까지 갔다면 이미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는 것이 아니겠니?

담배역시 많이 알려져 있듯이 주위 사람들에게 까지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는지라 새삼 내가 열변을 토할 필요가 없으리라고 봐.

이 역시 내가 피우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이들을 깔보거나 무시하지는 않겠지만 자신과 타인의 몸을 생각해서 자제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내 조그마한 욕심이라면 끽연가들로부터 욕을 얻어먹을까?

하지만 아들아!

하지 말아야 하는 어떠한 일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겠지만 하지 않고 싶어 하고 싫어하는 것 또한 자유이지 않겠니?

다만 중요한 사실은 내가 어떠한 일을 하고자 하는가?

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중요하리라 여겨져.

요즘 가끔 버스를 타보면 아직까지 계몽이 덜된 탓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되는데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할라치면 기분이 썩 좋지 않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물론 내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 또한 업장소멸을 하는 것이리라 여기고 있지만 썩 유쾌한 것은 아니야.

중국이라 그렇겠지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 한국에서도 행하던 일이었고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 억지로 참는 것을 감안하면 제도의 억제력을 빌었을 뿐 진정 남을 위하고 자신을 위한 억제와 금연은 아니라고 봐.

얘기가 옆길을 타는 것 같지만 중요한 것 같아서 오늘은 아예 작정하고 가는데 까지 가보도록 하자꾸나.

어차피 너와 나의 대화가 시간의 제약을 받는 것도 아니요. 다른 이들을 위한 것보다 너와 나의 대화인 만큼 시간은 충분하지 않겠니.

담배건 술이건 먹지 못하는 곳에서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다가 일단 억제된 장소를 벗어나는 순간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곤 하는데 그러한 점만 보더라도 사람의 생각에 달린 문제 일뿐 마시지 않거나 피우지 않으면 큰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 수가 있어.

교도소 안에서 몇 년간이나 안마시고 안 피우고 살던 사람들도 일단 출감을 하고 나면 또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마는 것을 보면 하나의 습관일 뿐 술과 담배자체가 마시지 않거나 피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니?

그런데도 내가 술 담배에 대한 무익함을 얘기하면 자신의 술 담배 먹는 것에 대한 변론으로 나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분들도 있고 보면 조금은 답답할 때가 있어.

자신이 마시고 먹고 피우는 행위의 자유를 만끽하듯이 나 역시 안 먹고 안 피우고 안 마시는 유익함을 얘기한다고 해서 무엇이 나쁜가 말이야.

게다가 내가 먹지 말라고 하거나 피우지 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불구하고 자신이 스스로 그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왜 보지 못하는지 한심하기까지 해.

진정 자신이 자유롭고 아무렇지도 않다면 내가 주장하는 바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아야 하지 않겠니?

자신이 세상으로부터의 해탈을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할 것인데 그까짓 세상의 하찮은 즐거움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해서 어떤 큰일을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들아!

인도의 원숭이 사냥꾼이 원숭이를 어떻게 잡는지 살펴보면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해탈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으니 살펴볼까?

우선 원숭이 사냥꾼은 호로병을 준비하는데 입구가 좁고 가늘게 되어있고 밑에는 넓고 둥글게 생긴 병에다 땅콩을 조금씩 집어 넣어두고 평상시 원숭이가 잘 노는 곳에다가 놓아두고 멀리 서 지켜보고 있는 거야.

한참을 숨어서 지켜보노라면 원숭이들이 각자가 한 개씩 차지하고 열심히 땅콩을 꺼내먹고 있는데 이 순간 사냥꾼이 재빨리 달려 나가면 이때 놀란 원숭이들이 순간적으로 손을 빼내지 못하고 잡히는 거지.

그냥 손을 빼면 되지 않느냐고?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런데 손이 빠져야 말이지.

왜 안 빠지냐고?

손에 잡은 땅콩을 놓지를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니.

손에 쥔 땅콩이 아까워서 놓지를 못하니 병목이 좁은 호로병에서 손을 빼내지 못해 결국 잡히고 마는 거야.

어때?

이만하면 세상사람 들이 왜 해탈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충분하지 않니?

믿지 못하겠다고?

어째서 술 담배와 육식을 해서는 해탈하지 못하느냐고?

너는 아직도 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술, 담배, 육식을 않는다고 해서 해탈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유희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는 것에 대한 말이라는 것을 네가 알아야 해.

지난번에도 얘기한바 있지만 계율을 지킨다고 해서 깨달음을 얻거나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해탈이라는 의미가 어떠한 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데 있다면 조그마한 집착도 없어야 하고 구속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거야.

너도 생각해보렴.

세상으로부터 해탈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보잘것없는 술 담배 육식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면 어떻게 깨달음을 논하고 해탈을 논할 수 있겠니?

그렇다면 과거의 도가 높으신 분들의 기행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그래 너는 또다시 남의 얘기를 하기 시작하는구나.

왜 그렇게 남의 얘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다른 사람이 밥을 먹는다고 네 배가 불러지더냐고…

배부른 척은 할 수 있을지언정 배가 불러지는 일은 없을 거야.

아니, 헛배가 불러질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영양을 섭취하지는 못할 거라 여겨져.

도가 높으신 분들이 그러한 기행을 하신 것은 그분들의 문제이고 또한 그분들이 그러한 행동을 한 분명한 목적과 뜻이 있는데다가 그 당시 기행을 하기까지 수많은 세월의 뼈를 깎는 계행과 수행이 뒷받침되고 있었음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어.

솔직히 우리역시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고 누구나 그렇게 하면 돼.

단 한 가지 스스로가 자유로운가의 여부를 제외하면 말이지. 내가 어떠한 말로서 주장을 하더라도 스스로 여유롭고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해.

발끈해서 공격의 화살을 날리지 말고 말이야.

아들아!

내가 책만 봐서는 깨달음을 얻기가 어렵다고 한 말에 대한 나의 책임 있는 대답을 해야겠구나.

언젠가 내가 아는 스님 한분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었어.

그 당시 달마대사의 일대기와 육조혜능의 일대기에 푹 빠져 있을 무렵이었는데 책 내용을 봐서는 누구나 생각만 가지면 그야말로 해탈이고 부처인데 무엇 때문에 계율을 지키려 애쓰고 명상을 한다고 이불을 뒤집어써가며 애를 먹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거든.

“스님!

책을 보고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나요?” 하자 그 스님이 대답하시더구나.

“예! 그러한 것을 해오라고 하지요. 깨달음의 일종이긴 하지만 대 해탈을 구하는 깨달음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셨지.

이러한 얘기는 육조혜능의 일대기를 봐도 잘 나타나 있는데 혜능선사가 오조홍인을 찾아갔을 무렵 이미 신수라는 학승이 홍인 휘하에 있었는데 다들 신수가 의발(스승이 쓰던 물품) 전수를 받게 되리라 여겼지만 결국 육조혜능에게 의발이 전해졌어.

육조혜능은 그 당시 나이가 25살 정도였고 신수대사는 50이 넘은데다가 혜능은 겨우8개월을 부엌에서 일만하고 있었으며 신수는 수년간 수행을 열심히 하고 있었지.

수많은 경전을 달달 외우다시피 하는 신수와 일자무식의 혜능의 차이가 무엇이 있을 것 같니?

내가 생각하기에는 책은 지식이라 오늘 정답이 내일 오답일수 있지만 지혜는 그와 달라서 언제나 불변하는 것이라 생각해.

내가 격은 한가지의 일이 아마 이러한 나의 생각을 사실이라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살펴보자꾸나.

언젠가 내가 책한 권을 보고 심하게 창피함을 느낀 적이 있는데 곰에 대한 이야기였어.

추운 지방에 사는 곰일수록 덩치가 크고 사납다는 말과 함께 북극곰이 세상에서 가장큰곰이라는 내용이었는데 십 수 년이 지나는 동안 항시 주장하던 내가 작년쯤 인가 인터넷을 통해 내가 알고 있던 정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알래스카의 불곰이 제일 크다는 내용을 듣고도 자신 있게 남들 앞에서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번실수를 했기 때문에 또다시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지.

내가 알고 있는 사실조차 말하기가 두려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도가 낳은 아힘사의 영웅 간디는 어떤 여인네의 손에 이끌려 따라온 소년의 사탕 먹는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몇 번인가를 되돌려 보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어.

아이 엄마는 아이가 사탕을 너무나 좋아해서 건강을 해칠 것이 염려가 되어 평소 아이가 존경하는 간디가 충고를 해주면 사탕을 끓지 않을까 싶어 데리고 온 거였는데 간디는 일주일 있다가 다시 오라는 말로 되돌려 보냈다는 거야.

다시 일주일 뒤에 가니 또다시 일주일 이렇게 한 달 여가 지난 후에야 간디께서 하신말씀이 “얘야! 사탕이 몸에 좋지 않으니 끓도록 해라” 이었어.

어이가 없어진 아이엄마가 항의하듯 물었지.

 

“선생님! 처음부터 사탕이 몸에 좋지 않으니 먹지 말라고 하시면 될 것을 어떻게 한 달씩이나 지나 이제야 말씀해주시는 겁니까?”

 

그러자 간디께서는 말씀하셨어.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아이에게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 아들아!

이래서 내가 책을 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거야.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은 상태에서 책을 보는 것과 무턱대고 책을 많이 보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하고 내가 경험을 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남의 말만 믿는 것이야말로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거든.

정신세계에 대한 책을 조금만 봐도 사람의 몸이 육신뿐 아니라 아스트랄체니 맨탈체등의 여러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거기에 따른 위험이 있다는 것도 함께 알아야 해.

우주의 여러 곳에는 너무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그러한 곳을 통과하고자 하면 반드시 안내자가 필요한 법인데 그러한 일을 하는 이를 우리는 스승이라 부르고 있어.

지옥의 야차로부터도 구해 줄 수 있는 스승이 있어야 마음 놓고 우주를 여행할 수 있지 않겠니.

또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말을 받아들이든 무시하던 순전히 네 자신에게 달렸음을 말하고 싶은데 단지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절대 남의 말을 함부로 평가를 해서는 곤란하다는 거야.

진정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지 살펴보고 남이 하는 것처럼 행동해보고 난후에 자유로움에 대해 말해도 늦지 않을 것 같구나.

누군가 내게 채식한다는 사람들이 왜 고기처럼 생긴 것을 먹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차라리 고기를 먹고 싶으면 먹고 말일이지 안 먹는다면서 채식고기는 왜 먹느냐는 비판을 했어.

아들아!

너는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너 역시 그 점이 궁금했다고?

그래! 그렇다면 내가 확실하게 답해주마.

먼저 네가 채식인 들에게 묻기 전에 너 역시 채식이라는 것을 해보기 바라.

얼마나 채식을 지키기가 힘이 들고 술 담배 고기를 먹지 않고 철저한 계행을 지키며 수행해나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경험해 본 후에 어떠한 이로움이 있고 왜 그들이 채식고기를 먹는지 알고 나면 모든 이유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거야.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해탈이라는 대명제가 있기 때문이라면 궁색한 변명이 될까?

나의 이런 대답에 너는 또다시 딴죽을 걸지 모르겠지만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계율이 해탈을 가져오지는 않고 어떤 것이 해탈인가에 대한 각자의 가치관이 틀리는 만큼 어느 누구의 생각도 정답 아닌 것은 없으리라고 봐.

다만 내가 아는 해탈은 진정한 천국을 얻는 것을 뜻하는데 다른 이들은 어떨지 잘 모르겠어.

진정한 천국은 해탈을 얻어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내 개인의 생각인데 그러한 천국을 얻기 위해서는 어떠한 순간도 천국 아님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왜 그러냐고?

너도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내가 만약 어떠한 특정한곳을 천국으로 여기고 있다면 어떤 특정한 상태가 없어지면 천국이 아니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야.

어떤 한 사람이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을 천국이라 여긴다고 가정한다면 물이 좋지 않거나 정자가 좋지 않거나 했을 경우 천국이 아닌 것이 된다는 거지.

반드시 물도 좋고 정자도 좋아야 한다는 조건이 생기기 때문에 어느 순간 충족해지지 않는 경우가 생기면 더 이상 천국은 존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 아니겠냐 말이야.

내가 말하는 천국은 바로 이러한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마음의 해탈과 천국이어서 절대 어디를 가도 불변하며 조건이 필요 없으니 항시 천국 속에 머물 수 있거든.

오늘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 수많은 지식을 쌓아두어도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현실에 나타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구나.

인터넷을 뒤져 좋은 말은 모두다 산더미처럼 말하고 있고 기억의 창고 속에 담고 있지만 그 무슨 소용이 있겠니.

세상에 나가 남들과 하루만 부딪히면 다 날아가 버리고 마는 것을…….

남이 쓴 글이 내생각과 틀리기만 해도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겸손한 체 얘기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말이야.

차라리 세상 밖으로 나가 막노동이라도 하는 것이 훨씬 유익 할 거라 생각해. 내 안에 무엇이 들어있고 내가 진정 깨달음을 얻었는지 진정으로 겸손한지는 말로서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이 없어.

대중들과 섞여 생활을 해봐야 진정 내 속에 잠재된 것들이 드러나는 것이지 좋은 말을 아무리 달달 외워봐야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내가 너와의 대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러한 점인데 나 역시 십년 이상을 내 속의 감정의 찌꺼기들이 어떻게 올라오게 되었고 남들과의 부딪힘을 통해 밑바닥에 잠재된 것들이 수없이 일어나더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렇게 시간을 들이고 있는 거야.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주위가 편안할 때 자신의 밑바닥의 찌꺼기를 볼 수 있는 이들은 없어.

반드시 바람이 불어 파도가 심하게 칠 때라야 바다 속이 뒤집어져 바닥의 모래들이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부의 힘이 작용할 때만이 내 안에 숨어있던 에고가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지.

이래서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을 주면 그분이 바로 스승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예부터 내려오는 말로 번뇌는 보리라는 것이 아니겠니?

사람들이 알거나 모르거나……

혹은 인정하든 말든…….

아들아!

너는 내 말이 이해가 가는지 모르겠구나.

지금당장은 아니더라도 지나온 나의 과거를 더듬다 보면 너 역시 이해 할 것도 같으니 다음에는 또다시 한걸음 더 내 과거로의 여정을 진행시켜보자꾸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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