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44)

배가번드 2021. 9. 15.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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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내 밑으로 두 명이나 되는 하급자가 생겼는데 별로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었어.

부동산을 하다 들어온K씨와 S씨는 경찰서 유치장에서부터 한방에서 지내던 사이라 만나는 순간 반갑게 인사들을 나누었는데 반가운 마음도 잠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를 원수 대하듯 했지.

원래 K씨가 경찰서에서는 선배였는데 서류심사가 늦는 바람에 하루 늦게 교도소로 넘어와서 S씨의 뒤 순번으로 자리하게 되고 보니 졸개 신세로 전락한 K씨의 심사가 불편해졌던 거야.

고참들과 항시 어울리다시피 하는 S씨의 행태가 곱진 않았고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았다 해도 은근히 자신보다 나이도 적고 순번도 아래인 점을 내세우는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거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원수가 되는 순간이었지.

이런 일들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여서 자기와 뜻을 같이할 때는 사이좋게 지내다가도 조금만 자기에게 손해가 오거나 뜻을 달리하면 적이 되고 마는 것이 이세상이지 않겠니.

이 두 분의 사이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구나.

나 역시 호주를 가기 전 센터건립을 위해 동수들과 함께하는 동안 자신들의 입지를 확보하기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무척 많이 보았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지만 교도소에까지 와서 자리다툼들을 하는가 싶어 안쓰럽기까지 했어.

인간 군상들이란 어쩔 수 없다는 비애감에 젖어 들더구나.

그런데 이러한 나의 관조자적인 시각이 바뀌는 일이 발생하였는데 S씨가 심심하면 자신의 나이를 들먹이며 내가 자기 막냇동생과 동갑임을 강조하는 통에 내 에고가 발동하게 되었어.

자기는 남에게 고참행세를 하면서 나를 동생 취급 하고자 하는 심사가 괘씸하기도 하고 고참들에게 지나치게 잘 보이려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

나하고 정확하게 네 살이 차이가 나는데 자신의 막내 동생에 비유한다는 것은 내가 고참이긴 해도 자신보다 나이가 적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 것이고 아마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꺼리를 만들고자 한 모양이었는데 조용히 살고 싶은 내가 거리를 주지 않으려다 보니 일어난 일이었어.

솔직히 말해서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반말하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고 내가 고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

밤에 잘 때는 순번에 따라 내 옆 자리에서 자게 되었는데 몸부림을 얼마나 치는지 코를 고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팔다리를 휘젓다시피 하는 데는 참기가 힘이 들더구나.

명상 중 몇 번이나 얻어맞아야 했고 자다가도 몇 번이나 깨어나야만 했는데 잠버릇인 데야 어쩔 도리 없긴 하지만 나 역시 싫다는 표현을 안 할 수는 없었어.

욕을 하거나 구체적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미간에 내 천자가 그려지는 일은 종종 있었고 잠을 자다가 팔이나 다리를 심하게 밀친 적도 있었지.

다른 분들께 자리를 바꿔주길 부탁하기도 했지만 누가 바꿔 주고 싶겠니.

아들아!

너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수없이 강조해왔던 일이 바로 이러한 일 때문이었어.

내가 일의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을 때는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지만 막상 내 앞에 현실로 다가왔을 때는 그러한 평정심은 어디로 가고 혼란과 격정 속을 헤매게 되거든.

내가 직접 피해를 보지 않을 때야 어떤 말을 못하겠니.

 

말로써 떡을 하면 조선팔도 사람을 배부르게 먹이고도 남는다.”

 

이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일 거야.

잠자리 때문에 다툼이 자주 일어났는데 나 역시 폭발하고 싶은 감정이 몇 번이나 일어나는 것을 억지로 눌러 참아야 했어.

감방장의 자리는 세 사람은 너끈히 잘 만큼 넓게 만들어놓고 그 밑으로 배식반장이 두 사람자리를 차지하고 다음부터는 자리구분이 없긴 하지만 가끔 몸부림을 쳐서 고참 잠자리를 방해라도 할라치면 욕을 엄청 들어야 했는데 한번은 자는 도중에 난리가 난적이 있었지.

4평이 넘는다 해도 정사각형으로 만든 방이라 다리를 완전하게 뻗어서 두 줄로 마주보는 형태로 자야하는데 자다 보면 상대방 발을 차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지라 내가 속한 줄의 H씨가 건너편 고참의 발을 건드린 모양이었어.

화가 난 고참의 욕설에 변명을 했다가 발로 배를 걷어차인 모양으로 한동안 아파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을 거들어서 편들어 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던 것은 모두가 그분을 왕 따를 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거야.

개인택시를 운전하시다가 부인이 하시는 사업이 부도가 나서 부인과 함께 교도소에 들어와 계신 것이 나와 비슷하여 내심으로 친근감까지 들었었는데 방안의 다른 분들에게는 이상하게 인기가 없었거든.

아마도 고의적으로 부도를 냈다는 의심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았지만 내가보기에는 다른 이들이 이분을 욕해야 할 어떤 이유도 없었어.

내가 볼 때는 모두가 그만그만한 이유가 있었고 가슴 아픈 사연은 있기 마련인 것 같았는데 단 한 가지 이분이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너무나 솔직했다는 것이었지.

남들은 조금씩 자신의 불리한 점을 감추면서 말을 하는데 비해 이분은 사람이 너무 좋아 가슴 속 깊은 말을 죄다 하는 바람에 사람들로부터 밉상을 받게 된 거야.

개인택시를 모는 분이라 많지 않은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 것 같았지만 따님을 결혼시켜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던 모양이었는데 자신 속을 너무나 많이 내보인 후유증을 톡톡히 치러야 했어.

연세도 환갑이 다된 노인네인데 불구하고 적어도 10살은 어린 젊은이로부터 배를 걷어차이고 욕까지 얻어먹었으니 얼마나 화가 낫겠니?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거려도 누구 하나 편을 들어주지 않는지라 혼자서 삭혀야 했지.

내 오촌 당숙과는 말이 통해 친하게 지냈지만 당숙 또한 말할 처지가 아니었고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나는 더 더욱 말할 것도 없었고……

변명이 될지 모르겠지만 교도소라는 곳이 원래 그런 곳이고 인간적이거나 도덕적인 것을 바라서 되는 곳이 아니었거든.

가끔 원리원칙을 따지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자신을 향한  불이익뿐이었어.

아들아!

너는 아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물어올지 모르겠지만 사회라는 것이 이러한 불평등과 무질서가 아주 조화롭고 질서 있게 진행되는 곳이라면 네가 이해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과거 내가 20대 초반쯤에 격은 일은 나에게 이런 일들에 대해 엄청난 반발을 느끼게 만들었지.

그 당시 군대 간 친구 녀석이 휴가를 나와 함께 공원에 가서 술을 마시며 놀다 소변을 보기위해 화장실을 갔을 때였어.

모두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기에 술이 취한 가운데도 억지로 참아가며 줄을 섰지 않겠니.

그런데 내가 선 줄 앞으로 새치기를 해서 소변을 보는 사람이 있어서 보니 경찰이었어.

얼마나 화가 나고 어처구니없던지 술김에 달려가 어깨를 잡아채며 끄집어내었던 거야.

민중을 위해 봉사를 해야 할 경찰관이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새치기를 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하며 나무랐었지.

소변을 보던 중 봉변을 당하게 된 경찰관이 나에게 욕을 하며 멱살을 잡기에 같이 멱살을 잡으며 싸움이 붙었어.

그때만 해도 혈기가 왕성할 때였고 무엇보다 정의로운 시민의 지켜야 할 도덕이 어떤 것이라는 것과 사람의 살아가는 도리에 대한 열변을 토할 때라 무서울 것이 없었거든.

그래서 그 당시 내 별명이 개똥철학자 이었지 않겠니.

경찰관과 싸움이 벌어지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사정을 파악한 시민들이 내편을 들어 지지하는 듯하자 호루라기를 불어 지원을 요청하더니 몰려온 의경들이 나를 에워싸고 공격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모두 우~하고 야유를 보내며 경찰관의 횡포를 나무라듯 했어.

안되겠다 싶었던지 무전을 쳐 경찰차를 부르더니  나를 태우고 인근파출소로 데려가더구나.

속으로 나는 잘됐구나 하였어.

일반경찰이 잘못을 저질렀으니 파출소에 가면 상급자가 있을 것이고 나의 행동의 정당성을 얘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거지.

이렇게 생각한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자초지종의 말을 모두 다 듣고 난 파출소 소장님께서 오히려 나에게 욕을 하는 거야.

얼마나 화가 나던지 같이 욕을 했더니 나이도 어린 나에게 욕을 얻어먹은 소장님이 분한 나머지 내 손가락을 꺾기에 아주 부러 트리라며 마주보고 손을 밀어대었더니 안되겠다 싶었던지 유치장 속으로 넣어버리더구나.

결국 이렇게 해서 경찰서까지 넘어가게 되었는데 경찰서에서는 조사계장 앞에서 또 한 번의 좌절을 넘어선 분노가 일어났는데 그래도 먹물깨나 먹었기에 일선 파출소의 경찰들과는 다를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 여지없이 무너졌어.

내 뺨을 때리면서 너 같은 놈들만 있으면 어떻게 경찰관 해먹겠냐?? 하는 거야.

어떻게 조서를 꾸몄는지도 모르게 나에게 지장을 찍길 강요하여 재판을 받았는데 구류 2일을 선고 받았어.

앞에서 몇 번 당하고 나니 가재는 게 편이라는 평범하고도 불변하는 현실 앞에 나 자신이 무너지고 있었지.

더 이상 소란스럽게 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고 2일 구류형을 사는 동안 밥도 먹지 않고 분해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어.

이 일로 인해 다시 한 번 공부를 해서 썩어빠진 법 집행을 내가 한번 바꿔보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지만 절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 동안 일어난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중간에서 포기해야만 했지.

지금생각 해보면 우스꽝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때만큼은 절실했었어.

아들아!

너는 내 얘기를 듣고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구나.

아마도 네 나이에 맞게 그 당시 혈기왕성한 나의 행동을 지지 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 생각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어.

지금의 나는 그때 일을 어떻게 생각 하냐고?

그때 일은 아주 잘했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내가 그러한 일이 또 발생하게 됐을 때 그 당시와 같은 반응을 하리라 기대하지는 말기 바라.

왜 그러냐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지 않기 때문이지.

그때는 그때의 의식 상태에서의 내 모습이 존재했고 지금은 수많은 세월을 겪어 나오면서 쌓인 경험과 의식의 변화를 일으킨 내가 존재하고 있으니 똑 같은 반응을 기대해서는 곤란하거든.

경찰관들의 권위의식을 문제 삼는 사람들도 무척 많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먼저 자신들을 살펴봐야 하리라 여겨져.

자신들의 성찰이 일어나고 나서 다른 이들을 살펴봐도 결코 늦지 않을 뿐더러 이 세상을 탓하기 이전에 나 자신은 과연 올바른지를 봐야 한다는 거지.

그렇다고 경찰관이 잘한다거나 못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님을 네가 알았으면 하고 세상 사람들 또한 잘한다거나 못한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야.

이세상의 어떤 일도 그냥 일어나는 법은 없다는 말이 진리이기위해서는 어떠한 일이 있어야 할지 생각해볼까?

우선 살인사건하나를 살펴보도록 해보자꾸나.

어떤 이는 어떠한 경우라도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고 열변을 토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러한 이는 분명 도덕적으로 아주 깨끗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지?

또 다른 이는 이 사건에 대해 조금 아는 바가 있어서 사태파악을 통해 분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절박한 사정이 있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음을 알고 피해자가 잘했나 못했나? 혹은 가해자의 잘잘못을 따지려고 할 거라는 거지.

그러나 또 다른 이는 가해자나 피해자가 전생의 인과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여겨 빚을 갚은 것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 아니겠냐 말이야.

이렇게 보면 각자가 똑 같은 사건을 보면서 반응을 달리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모두가 자신이 아는 만큼의 평가를 내리고 있으니 누가 정답이고 오답일수 있겠느냐는 것이 아니겠니.

아마 너는 어떠한 경우라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쪽에 무게를 두게 될 터이겠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기가 막힌 일들을 겪어나가면서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고 남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나에게도 어김없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또한 경험하면서 남들을 이해하기 시작할거라는 거지.

그렇다고 지금 네가 어른 흉내를 내라거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라는 얘기는 하지 않겠지만 지금 네가 내리고 있는 판단이 유일한 정답은 아님을 생각하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얘기한 경찰관역시 내 말만 들어보면 천하에 나쁜 경찰관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때 얼마나 절박한 일이 그분에게 일어나고 있었는지 모르는 일이고 보면 내행동이 절대적으로 잘했다고 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아니겠니.

이렇게 어린 시절 나의 과거가 교도소에서의 내 행동을 자제 시킨 절대적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함부로 나서는 일을 하지 않는데 까지는 영향을 미친 것만은 사실 이였어.

그렇게 배를 차인 후로 H선생님은 말이 적어졌으며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으려 하고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셨는데 나중에 들었던 얘기로는 그분의 부인이 네 엄마와 한방에 있었다고 하더구나.

처음 내가 들어왔을 때 내 사정을 알고 난 뒤부터 내게 각별히 신경을 써주셨는데 바로 그러한 동병상련의 사정 때문이었지.

부인 또한 함께 들어와 고생을 하다 보니 내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거야.

불법이긴 하지만 가끔 소지를 불러 여사에 갇혀있는 부인과 비둘기(쪽지)를 날리기도 했는데 아마 피해자와의 합의 문제를 의논하고 있었던 모양이었고 바로 이점 때문에 방안 사람들로부터 욕을 얻어먹었던 것이었어.

아들아!

사람들은 참으로 웃기거든.

남들의 잘못은 너무나 명명백백하게 잘 보면서 어떻게 자기의 잘못들은 그리도 보지 못하는지 몰라.

그분이 피해자와의 합의에서 유리한 쪽으로 몰고 가는 것에 대한 질투와 미움을 거침없이 표현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보기엔 그 방에서 그분을 욕할만한 사람은 누구도 없었어.

앞에서도 잠시 얘기했지만 그분의 따님이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채권자이신 할머니가 십여 년간이나 이자를 받고 있었기에 웬만큼 하면 합의를 봐 줄 수도 있는지라 버팅기고 있었던가 보았지.

어떻게 보면 사기성이 짙은 다른 이들보다 강도 면에서 제일 약하다고도 볼 수 있는 분인데 욕은 제일 많이 얻어먹었어.

지금생각 해보면 그분에게 욕을 한 분들은 모두가 자신이 지은 죄만큼 어김없이 살고 나갔지만 오히려 그분은 제일 먼저 교도소문을 나갔는데 인과응보의 법칙이 분명하게 살아있었기 때문이라 여겨져.

아들아!

너는 이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다른 분들이 이분의 업장을 나누어 가져간 거라 생각하면 무리라고 생각하니?

네가 어떻게 생각하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언젠가 부처님의 말씀을 예로 들어 이러한 일에 대한 비유를 한바 있으니 다시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이 세상에 어떠한 우연도 없다는 말이 맞기 위해서라도 내 말이 맞아야 해.

비둘기를 날리면서 여사(여자감방)의 소식을 알고자 애를 쓰는 그분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네 엄마의 소식이 궁금했었는데 면회 온 네 엄마 사촌동생의 말로는 아직까지 석방이 되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네 엄마는 나보다 미리 교도소로 넘어가서 벌써 나간 줄 알고 있었고 나만 잡혀 들어오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여겼었는데 아직까지도 교도소에 머물고 있다는 소리에 평정심이 무너지고 있었지.

법을 집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미워지다 못해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고 있었어.

교도소에 오는 것도 모자라 이와 같은 고통을 주는가 하는 마음에 자신들 또한 언젠가 나와 같은 심정을 꼭 맛보리라는 저주의 생각까지 일어나더구나.

거의 매일같이 물어보았지만 전해오는 소식은 기다리라는 말뿐이었어.

결국 내가 변호사접견을 청하게 되었고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접견장소로 향하고 있었는데 남자 접견실 건너편으로 여자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보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니.

거짓말처럼 네 엄마가 연옥색의 미결수 옷을 입은 체 나를 보고 있는 거야.

기가 막힌 재회에 또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아 얼른 고개를 돌렸는데 네 엄마의 안타까운 눈망울이 내 머리에 깊숙이 각인되는 순간이었어.

아들아!

지금 이 순간 그때의 그 일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는구나.

비록 지금은 남남이 되었지만 네 엄마에 대한 사랑이 어쩌면 그때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면 너에게 욕을 얻어먹어야 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내 솔직한 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구나.

사랑한다면서 왜 헤어졌냐는 말은 하지말길 바래.

너와의 대화가 끝날 즈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내가 했음을 말할 기회가 있는 만큼 나에게 시간을 주렴.

순번이 되어 변호사를 만났을 때 분노한 내 감정이 가감 없이 튀어나왔어.

오늘 접견이 끝나는 대로 검사를 만나 마누라를 내보내 주지 않으면 교도소 내에서 난동을 부릴 것이니 알아서 하라는 협박을 하였지.

워낙 힘 있게 말을 했고 쌍 욕만 안 했다 뿐이지 거의 욕설에 가까운 말로써 협박을 한데다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말하는 내 의지가 장난 아니게 보였던지 다음날로 네 엄마가 석방되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어.

가슴의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것 같은 환희심이 일어났고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지.

솔직히 말해 내가 그토록 분해했던 것은 검사의 의도가 피해자 쪽에 기울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서류처리를 핑계로 네 엄마를 가두어두고 피해자와 합의를 보라는 의도가 다분히 보였기 때문이었어.

실지로 안 보내 준다고 해서 내가 난동을 부릴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연극을 해서라도 엄마를 네 곁으로 하루라도 빨리 보내고 싶었거든.

이러한 좋은 소식에 방안의 모든 분들이 축하해주었는데 그곳에서도 축하할 일이 있고 축하 받을 일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니?

사람 사는 곳은 어디라도 감정의 기복이 있기 마련이니 자신이 어떠한 마음상태에 있는가에 따라 언제나 천국에 머물 수도 있다는 것은 진리임에 틀림없는 것 같아.

네 엄마가 네 곁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방안에서의 생활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매일같이 이어져오는 면회인 명단에 생각지도 못한 이름을 보게 되었어.

아들아!

내가 호주로 돌아갈 때 차비를 빌려주셨다던 C사형 알지?

그분이 면회를 왔더구나.

얼마나 반갑든지 친형제를 만난 것보다 더 기뻤어.

센터의 이런저런 소식을 가져왔고 가끔 편지도 보내주어서 너무나 감사하였는데 지금껏 신세를 못 갚고 있구나.

호주에서부터 감방으로 들어온 순간까지 내가 가장하고 싶었던 일은 동수들과 차를 마시면서 도에 대한 대화를 하는 것이었어.

매일 밤 감방 안에서는 처음 들어온 신입에게 자신의 연애 경험담을 하라고 시켰는데 심심하니까 시간을 보내기위한 방편으로 강요를 했나 보았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그러한 강요를 하지 않았지.

쓰레기통을 뒤지면 남들만큼 꺼리가 있겠지만 남들 앞에서 내 쓰레기통을 들추고 싶지 않았기도 하고 시킨다고 할 내가 아닌데다가 음담패설로 아까운 시간을 보내기가 싫었거든.

아들아!

지금 이 순간 또 한 번 네게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음담패설이 나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관심사가 그리로 부터 멀어져 있었음을 말한다는 것을 알아다오.

결코 그런 말을 하고 즐기는 분들을 나무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고 내 즐거움을 말하고 싶은 것뿐이고 지나간 내 과거를 보자면 그분들보다 더 심한 경험을 했을 수도 있지만 단지 그러한 점이 더 이상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거야.

그 당시 내가 가장관심 있었던 것이 정신세계 이었으니 감방 안의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없었고 오로지 내 안에 존재하는 나 자신 속의 스승과 얘기할 수밖에 없었으니 남들은 남의 얘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내면으로 향하고 있었어.

그런데 아들아!

웃기는 것은 이러한 행동이 다른 분들에게 얼마나 좋게 느껴졌던지 표현을 안 했다 뿐 속으로 나를 무척이나 좋아하시는 것 같았어.

겉으로는 떠들고 웃고 하지만 유심히 나를 관찰하는 그들의 눈에서 신의 품성을 볼 수 있었는데 이렇듯 사람들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신의 품성이 드러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더구나.

그래서 인지 어느 누구도 나에게만큼은 폭력적인 언사나 행동을 보이지 않았는데 내 배경(오촌 당숙이나 감방장 등) 탓 일수도 있겠지만 실상으로 보자면 평상시 행동 때문이라고 여겨져.

철저한 계행과 남들에게 항시 공손한 태도로 대했으며 마음속으로라도 그들을 깔보거나 업신여기는 일이 없었고 나보다 나이가 5살 이상 많은 분들에게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존대를 하였으며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거든.

게다가 뭔가 모르는 나 혼자만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그들도 느낌으로 알고 있었기에 나를 항시 어렵게 대하고 있었지.

이러한 점만 보더라도 모든 일은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남의 눈을 의식한 행동보다 진실 된 마음이 담긴 말과 행동이야말로 남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지 않겠니.

네 엄마가 나가고 난후 보다 안정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는데 10여일 이 지날 무렵 그 당시 교도관으로 계시던 사형이 찾아오셨더구나.

그 동안 무척 바쁘셨던 모양으로 일찍 못 찾아온 미안함을 얘기하셨는데 밖으로 잠시 불러내어 녹차를 한잔 대접해 주셨지.

녹차라야 티백에 들어있는 현미녹차여서 평상시 동수들과 마시는 다양한 차에 비할 바 아니었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몇 십만 원 하는 차보다 더욱 값진 것이었어.

아들아!

이래서 물품의 가치는 사람에게 달렸다는 거야.

흔하디흔한 티 백 녹차의 값어치가 장소를 달리한 곳에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어.

면담을 마치고 티 백 몇 개를 얻어 방으로 돌아가니 방안의 모든 이들이 환호성을 올리며 반가워하는데 선물꾸러미를 본 개구쟁이 아이들처럼 좋아들 하더구나.

그도 그럴 것이 차라고는 구경도 못해보는 곳에서 그나마 말차가 들어있는 녹차 티백이 어디랴!

서열2위의 과일도매업을 하시던 H선생님께서 한마디 하셨어.

 

누구누구는 교도관 중에 높은 사람 안다고 큰소리를 혼자 쳐도 차하나 못 얻어 오는데 아무 소리 없이 조용한 00이는 이렇게 실력으로 보여주는구나!”

 

꼭 누구를 빗대어 하는 말인 것 같아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하는 양을 보고 있자니 온수시간에(겨울이라 뜨거운 식수를 페트병2개 분량을 배급) 물을 받아 작은 국 받는 대야에 티백을 넣고 우려내어 18명의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마셨어.

이렇게 해서 녹차파티를 즐거이 마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처음 들어오던 날 문지방을 밟지 말기를 애타고도 애절하게 간곡하고도 절실하게 절박한 심정으로 말씀하시던 김치공장을 경영하시다 들어오신J사장님께서 집행유예로 나가시게 되었지.

원래 김치공장은 국가에서 농민들을 위하는 권장사업으로서  몇 가지의 혜택이 주어지는 사업이었는데 이분역시 그러한 혜택을 보았다가 사업이 실패하는 바람에 돈을 갚지 못해 들어오게 된 거였어.

한 가지 웃기는 사실은 교도소 내에 사제김치 구매가 허락이 되고 있었는데 그 김치가 바로 이 사장님 김치였다는 거야.

식사를 할 때마다 김치가 맛이 없다고 핀잔과 야유를 들어야 했는데 납품단가를 보면 그만한 가격에 납품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적당한 매출고를 유지하기위해 어쩔 수 없이 출혈판매를 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지.

김치가 고춧가루가 적은 것은 고사하고 맛까지 없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맛을 볼 수 없는 내가 평가를 할 수는 없었지만 웬만했던가 봐.

나중에 이분과는 또 한 번 만나게 되는데 내가 김치공장을 하게 된 것과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으니 다음기회에 또다시 거론하기로 해.

그분이 나가기 무섭게 또 한명의 신입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다음에는 새로 들어온 신입에 대한이야기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작별을 하도록 하자꾸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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