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47)

배가번드 2021. 9. 23.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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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오늘은 중요한 사실하나를 발견했어.

명상자세 중에 결가부좌라는 것이 있거든.

다리를 좌우로 겹치게 꼬아 앉는 형태로 소위 말하는 도를 닦는다는 사람들이 주로 앉는 자세를 말해.

그런데 이자세가 지금까지는 잠을 쫓기 위한 방편이거나 허리를 곧추세우는데 도움이 된다는 정도로 생각해 왔는데 요즘 들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

이 정좌의 자세가 고대 사람들이 건강을 지켜 나오기 위해 만든 도인 술에도 나와 있더라는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몸소 체험해보니 너무나 좋은 운동일 뿐 아니라 신체 각 부위에 많은 도움을 주는 자세라는 것을 알았고 특히나 명상이나 도를 추구하고자 하는 분들은 힘이 들어도 꼭 이 자세를 취하라고 권하고 싶구나.

언제부터인가 틀에 짜인 모든 행동들을 내려놓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정좌의 자세를 풀어버렸는데 자꾸 배가 나오고 허리에 살이 붙기 시작해서 밥도 줄여보다가 운동도 해보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데  내가 하고 있는 번역작업 내용 중에 고대 중국인들이 이러한 자세를 취했음을 보고 다시 정좌를 생활화 해보았더니 이것이 단순하게 자세만 교정 시키는 것이 아니라 허리, , 다리의 근육과 혈에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

그렇다고 꼭 해야만 한다는 것보다 하면 좋다는 정도로 받아들여주면 고맙겠구나.

사람들마다 처해있는 상황과 환경이 같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좋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고 직업상 육체적인 노동을 해야 하는 경우는 이러한 내 말이 맞지 않을 수도 있거든.

나중에 또다시 말할 기회가 있겠고 나 역시 환경이 바뀔 때마다 명상자세를 바꿀 수밖에 없었던 만큼 어떤 고정된 자세를 고집하진 않지만 가급적 여건과 환경이 주어진다면 가장 바람직하다는 얘기를 하는 거야.

교도소에서 방이 바뀔 때마다 주위의 환경을 생각해서 내 생각과 개념들을 바꾸어야만 했는데 이러한 행동의 변화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 나를 위한 것이었던 만큼 나에게 가장 알맞고 주어진 환경과 부합할 수 있는(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것을 찾아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

그렇다고 주어지는 데로 마구잡이식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은 아니니까 괜한 오해는 말기 바라.

항시 네게 하는 말이지만 목표에 합당한 것인지를 살피고 난후 그 목적을 진행시키는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받아들이라는 거지.

내가 교도소에서 머무는 동안 항시 내 목표점을 향하는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지만 수행여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짓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수용해 나왔기에 단 한 번도 폭력을 행사하거나 큰 다툼을 일으키지 않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인데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살펴보기로 해.

눈이 내리는 가운데 운동시간이 되어 운동장에 나갔을 때였어.

평상시 내게 주어진 일이 없을 시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 책을 보듯이 명상을 하거나 편지를 쓰는 등의 시간을 보내는데 그날따라 눈이 와서 산책 삼아 나가고 싶었거든.

운동장이래야 그리 넓지 않은 공간 이였지만 그나마 바깥의 하늘을 철장 없이 볼 수 있는 데는 그곳뿐이라 모든 이들이 고대하는 시간이기도 했어.

6개방의 죄수들이 한꺼번에 나와 장난도 치고 눈싸움도 하는 등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저만치 한 불록 너머로 두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이는 거야.

한꺼번에 모여서 운동하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기에 주위 분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그 당시 대구에서 유명한 건설업체 회장님과 폭력조직의 보스라고 하더구나.

건설회사 회장님은 이쪽 편에서 조 폭 두목은 저쪽 편에서 서로 거리를 둔 채 왔다 갔다 운동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었는데 한 분은 세상의 괴로움은 모두 다 짊어진 것 같은 표정이었고 다른 쪽은 잠시 머물다가는 정거장 정도로 생각하고 행여 체력이 떨어질까 운동을 열심히 하는 표정이 얼굴에 나타나고 있었어.

똑 같은 장소에 놓여있어도 느끼는 정도가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던 거야.

거물이라 교도소에서 독방을 주고 있었는데 그 독방이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서는 좋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언젠가 우리 방 식구 중 누군가의 재판이 건설회사 회장님과 같은 날짜에 잡히는 바람에 함께 갔다가 하소연하는 것을 들었던 모양이었어.

식사를 해도 혼자 해야 하고 남들과 대화라고는 할 수 없으니 너무나 외로워하더라는 거야.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말씀하시는 통에 함께 눈물을 흘렸다는 말이었는데 충분히 짐작이 가고 남을 일이었지.

얼마 전 교도소를 탈옥한 죄수가 자신이 요구한 독방행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탈옥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참으로 많은 생각을 일으키게 되더구나.

사실은 나 역시 독방을 주었으면 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짓이라는 것을 알고는 더 이상 요구하거나 바라지 않았는데 그분 역시 자신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면 좋으련만 모든 문제를 밖에서 찾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던 것 같았어.

어떤 이는 독방이 싫어도 주어지고 어떤 이는 독방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것은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명암이 달라진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말이야.

이러한 것을 유전 무죄니 무전 유죄니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못했음을 스스로 보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누구도 알기가 쉽지가 않아.

모두가 내가 하고 싶고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 주변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것에 대한 원망으로 하는 말일뿐 사실은 모두가 각자 받아야 하는 만큼 받고 있는 것이고 지금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형태를 달리한 어떠한 것으로 반드시 받아야 하니 불평등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구나.

그 당시 건설회사 회장님의 경우는 일반인들과 함께 어울려 같이 지내고 싶었지만 그러한 호사(?)가 절대 주어지지 않았고 다른 이가 말하는 호사를 지옥처럼 여기며 지내야 했고 이 회장님의 지옥 같은 교도소가 다른 이에게는 그다지 나쁘지 않게 여겨졌으니 그야말로 같은 장소에서 같지 않은 세상경험을 하고 있었던 거야.

조 폭 보스역시 다른 세상을 살기는 마찬가지여서 다른 이들이 생소해 하고 힘들어 하는 교도소를 혼자서 활보를 하다시피 하고 가는 곳마다 행님!”을 외치는 소리에 인사하기가 바쁠 정도의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역시 나름대로의 아픔과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것이 아니겠냐 말이지.

정도를 달리했을 뿐 어차피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이상 사회와 같을 리는 만무하지 않겠냐는 것이고 남들 눈에 차별적으로 비쳤다 해도 당사자로서는 욕심을 버리지 않는 이상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는 법이거든.

죽음이라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죽음이 나쁜 것으로 받아들여지겠지만 죽음이 신의 축복쯤으로 여기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도 없을 뿐더러 그 어떤 상황도 신의 축복으로 여기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 외부의 어떠한 상황에 자신이 고통을 당하는 일은 없다는 거야.

그래서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먼저 네 안에 있는 신의왕국을 찾아라! 그러면 모든 것이 더해지리라!”하셨던 것이 아니겠니.

참고로 말하지만 독방은 때에 따라서 징벌을 받는 방으로 쓰일 때가 많아서 내부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내는 곳이란 것을 감안하면 그러한 곳을 자청해서 간다는 것이 스스로를 벌주는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실상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무엇보다 교도소라는 곳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곳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해.

아들아!

문제를 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는 어디를 가도 문제를 보게 되고 축복과 진리를 보는 자의 눈은 오로지 축복과 진리만 본다는 것을 네게 말하고 싶구나.

앞에도 몇 번에 걸쳐 말한바 있지만 내 주위에서 불평등을 보기보다 내 자신의 만족을 얻기가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스스로의 시각이 바깥으로부터 내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다들 모르고 있는 것 같았어.

눈이 내리는 가운데 운동시간이 끝이 나고 돌아와 보니 교도관이던 사형이 다시 한 번 불러내 주었지.

함께 얘기를 하면서 다른 교도관 한 분을 소개 시켜 주셨는데 방편을 하고 계시는 중으로 입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시기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어.

내가 교도소 내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떻게 해결하고 있냐고 묻기에 김만 먹고 지내고 있노라 했더니 조금은 안쓰러워하시는 것 같더구나.

자신역시 암투병중 이라 수많은 식이요법을 해보았는데 우리법문을 만나고 나서 체험과 함께 암의 성장이 멈추는 바람에 의사들도 놀라고 있다면서 자랑을 하시기에 내심으로 사형! 제발 지금마음을 유지하시길 바랍니다.”하고 싶었지만 참고 대화를 마친 후 헤어져 방으로 돌아왔어.

아들아!

내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 한데는 이유가 있어.

앞서 많은 동수들의 모습에서 보았듯이 자신의 주변 환경이 좋을 때는 다들 스승님을 찬양하고 단체를 위하는 발언을 하다가도 조금만 신상에 어려움이 닥치거나 환경에 변화가 찾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등을 돌리는 것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염려된 나머지 말하고 싶었던 거야.

그분이 앓고 계시다는 암이 바로 내가 염려하던 바였거든.

암이 진행이 더 이상 되지 않고 상황이 좋아져서 찬양한다면 상황이 나빠지면 반대가 될 수 있다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었어.

이러한 신심은 언젠가는 변화가 오기 마련이란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방으로 돌아와서 내가 한일은 편지를 쓰는 것이었어.

부인이 한의원 하신다는 사형은 부부가 번갈아가면서 편지나 엽서를 보내오고 있었거든.

이분들의 편지는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방안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는데 면회를 오지 않거나 서신연락이 전혀 안 되는 분들은 방안 사람들로부터도 좋지 않은 대접을 받기 일쑤인데 그 이유는 평상시 어떻게 놀았으면 편지 한 통 해주는 이가 없느냐는 판단 때문이었지.

사회 어느 곳에서도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그곳에 맞게 고정되기 마련이듯이 그곳 역시도 그러한 나름의 평가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편지가 많이 오고 안 오고가 꼭 방안 사람들에게만 평가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도당국에서 가석방이나 감형의 기준으로도 사용하는 잣대고 보면 그야말로 억지로라도 편지를 받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았어.

사형에게 답장을 보내면서 부탁하나를 했지.

호주에서 머물고 있을 때 내가 돈이 없어 힘들다는 소식을 듣게 된 비구니스님께서  돈을 보내주셨는데 오래 머물지도 못하고 돌아온 뒤로 안부 인사를 못 드리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있었거든.

그래서 다른 분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귀띔만 해드리라고 했던 건데 사형에게 편지를 보낸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득달같이 달려오셨더구나.

 

신이 보낸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하시는 것이 수행을 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사형!

모범적인 생활로 스승님의 일을 하세요.

스승님께서 보호하실 겁니다.”

 

!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는 생활을 하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으로 그날의 면회를 마쳤어.

별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도 않았는데 스님께서 마음에 부담이 되셨던지 다음날부터 교도관사형을 다그치기 시작했던가 봐.

하루가 멀다 하고 와서 생활이 어떤가? 물어 오면서 스님의 인사말을 전해 주셨는데 고마움을 넘어서 부담이 되기 시작하더구나.

아마도 스님께서 매일같이 안부를 묻고 찾아가보라는 부탁을 하셨던 모양이었는데 차라리 모른척하고 말걸 하는 후회가 들기 시작하였어.

모든 일은 자연스러워야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은 그 일이 무엇이든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그때 또 한 번 실감할 수 있었거든.

열흘에 한번 올까말까 하던 분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오는 것은 얼마나 불편할 것이며 마음에도 없는 인사말을 만들어가며 만나야 하는 내 마음은 또 어떻겠냐는 거야.

이러한 모든 불편함이 내가 편지를 해서 안부를 물었던 것에서 비롯된 만큼 어디까지나 문제점의 근원지는 나였고 내가 한 행위로 내가 불편을 느끼고 있었던 거지.

남들은 안 오고 안 찾아 주어서 불만인데 나 같은 경우는 남들과 사정이 전혀 달랐으니 이 또한 가치관에서 오는 입장 차이였고 스님께서 염려하시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삶을 내가 살아가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여겨져.

그렇다고 스님의 고마움이나 교도관사형에게 감사함을 못 느낀다는 것은 아니야.

다만 교도소 내부에서 사는 내 생활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인 거지.

어느 날인가 출소한지 며칠이 지난 네 엄마가  면회를 왔더구나.

나를 보자 말자 눈물부터 보이기에 얼른 짜증 섞인 말로서 화재를 돌려버렸어.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로 시작되는 네 엄마의 말을 중간에서 끓어버린 이유는 그러한 대화가 지금현실에서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남들은 돈을 써가면서도 못 가는 호주에서의 생활도 적응 못하고 돌아온 당신 때문에 오늘 이지경의 입장이 되었지 않는가? 하는 원망스러운 마음 또한 가슴 깊은 곳에서는 작용 했었던 것 같아.

밖에 네가 와있는데 면회를 하겠는가 물어오는 네 엄마 말에 절대로 만나게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어.

행여 내 모습을 보고 어린 네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렵기도 했고 일단은 교도소라는 곳이 정상적인 사람들이 오는 곳은 아니고 범죄자들만 온다고 생각하던 내 고정관념이 있었기에 너를 만날 용기가 없었던 거야.

아들아!

지금 내가 네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더 이상 교도소에 갇혀 있었다든지 내가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임을 네가 알았으면 해.

네 엄마가 돌아가고 나서도 변함없이 교도소의 시계는 어제와 같은 방향, 같은 간격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감방장과 과일 도매상을 하시던 H사장님께서 형이 확정되어서 넘어가는 바람에 방안에 직위변동이 있었으며 또 다른 신입이 들어오고 있었고 감방장도 바뀌었어.

다음으로 감방 장에 오른 분은 노래방을 경영하다 들어오신 분으로 불교신자 이었는데 아마도 절에서도 감투를 쓰고 있는 것 같더구나.

자신이 모시고 있는 스님이 대단한 율사라고 하기에 누구냐고 물어보았더니 들어본 적이 있던 스님이었는데 내가 임시로 연락인 을 맡아 했을 때 나에게 입문 증을 반납하신 스님의 은사 스님이셨어.

내가 알기로는 전국적으로 유명하신 분이고 율사로 소문난 데다 책도 여러 편 낸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이름나신 큰스님께서 고기를 아주 맛있게 드신다는 거야.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조금은 비웃는 것 같은 어조로 말을 했어.

 

아니!

다른 분도 아니고 스님에다가 그렇게 율사로  소문난 양반이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뉘 집 개가 들어도 웃을 소리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고기를 드시는 이유가 뭐라 합디까?”

 

그랬더니 내 말에 어조가 격해있었던지 말을 얼버무리면서 대답을 피하는 눈치였는데 모르긴 해도 내 말에 기분이 조금은 나빴을 거야.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입으로 들어온 한 분이 자기 집에 제사날짜가 다가온다는 말에 다들 각자의 집에서 제사 지낼 때의 일들로 화제가 만발할 때였지.

조용히 앉아서 책을 펴 들고 있던 내가 한마디 거들게 되었던 거야.

부모님 살아생전에는 효도한번 안 하던 인간들이 모두들 돌아가시고 나서 제사상을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자식들 잘되도록 해달라고 절하는 꼬락서니가 한심하기 그지없다는 얘기를 했었어.

그랬더니 누군가 옆에서 받아 치더구나.

어디까지나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풍습이고 예절로서 부모님을 기리는 자식들의 마음이지 결코 돌아가신 부모로부터 뭔가를 바라서는 아니라고 하기에 또다시 말해주었어.

 

가슴에 손을 얹고 냉정하게 생각들을 해봅시다.

과연 내가 바라는바 없이 조상님들을 순수하게 기리는 마음만으로 제사를 모시는 것인지 아니면 정성껏 조상을 모심으로서 내가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앞서는 것인지 말입니다.”

만약 진정으로 조상님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모시는 것이라면 돌아가신 분들이 어떻게 하면 편안할 것인가를 생각할 것인데 음식을 차려놓고 귀신이 와서 먹도록 하고 후손을 위해 일을 하도록 바란다면 조상님들을 혹사를 시키는 것이나 진배없지 않나요?

살아생전에 자식들을 위해 죽어라고 고생만하다가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후손들을 위해 또다시 일을 해야 한다면 그것이 어찌 후손 된 도리라 할 수 있으며 살아계실 때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지들 끼리 먹기 바쁜 인간들이 돌아가 귀신이 된 다음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이유가 뭐란 말입니까?”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나의 말에 아무도 대꾸를 못하였고 먼저 말을 꺼낸 신입이 머쓱했던지 내 말에 동조성발언을 했어.

 

아인 게 아이라 우리 아부 지도 내가 여 드러온줄 알마 조상 묘를 파 디지 삘 끼라 예.

조상이고 뭐꼬 내 새끼가 깜빠아 가 있는데 제사가 가당케심미꺼?”

 

이 말이 바로 모든 이들이 제사 모시는 형태를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었어.

결국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다들 이러한 마음상태로 제사를 지내는 것인데 나 역시 예전에 누구보다도 정성껏 제사를 모시러 다녔고 추석성묘도 빠짐없이 참석하였으며 깊숙한 산골을 차가 긁히는 것을 무릅쓰고 열심히 다녀봐서 잘 알거든.

우리 집안에 12상 구, 네 외갓집이14상구인가 되는 제사를 빠짐없이 다녔는데 한 달이면 두 번은 평균이고 한번은 겹치는 날까지 있었으니 바빠도 한참을 바빠야 했어.

만약 조상제사를 잘 모셔서 내가 물질적인 복을 받아야 한다면 준 재벌은 돼야 하겠지만 결과는 전혀 그렇지 못했고 감방은 물론이고 네 엄마와는 이혼까지 했음을 너도 알지 않니?

그렇다고 내가 물질적인 부가 따르지 않아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오해는 말길 바라.

아들아!

너도 알다시피 네 할아버지는 산소도 없어.

가정형편이 어려워 화장을 해야 했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태풍으로 도로가 유실된 곳을 3번이나 차를 갈아탄 끝에 도착했을 때 90이 넘은 내 할머니가 자식의 죽음을 앞에 두고 애통해 하고 계시다가 눈에 살이 살아나와 뒤덮인 눈으로 알아보지도 못하는 손자의 음성을 듣고 반가움과 안타까움을 표하셨지.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시는 아버지의 형제들도 모두다 노인이긴 매한가지라 어떻게 산소를 구할 엄두조차 할 수 없었어.

그때 당시 내 나이가 어린 탓에 산소나 죽음의 의미조차 분명치 않았지만 기억만큼은 너무나 또렷하게 나고 있는데 돌아가신 시신 앞에 한참을 울던 내 눈에 아버지가 살아 숨 쉬는 것 같지 않겠니.

그래서 큰 아버님께 말씀 드렸더니 나를 붙들고 하염없이 울고만 계셨어.

너에게 고백 한 적이 있었듯이 너를 키우는 동안도 돌아가셨다는 생각보다는 그립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며 지내왔던 것만 봐도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한 나의 사랑이 남들의 그것보다 덜하지 않은 것을 충분히 알리라 생각해.

게다가 네 할머니의 병명도 나타나지 않는 병을 치료하느라 굿을 벌였을 때 네 할아버지의 혼령이 사촌누님에게 빙의 되어 나타난 것을 목격까지 한 내가 제사나 산소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은 내 믿음이 더 이상 그러한 사실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야.

물론 개중에는 제사로 인해 많은 도움을 받거나 산소를 명당에다 안치해서 덕을 본 많은 분들이 있는 걸로 알기에 새삼 그러한 일로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한 일들이 모두 자신의 믿음과 인연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내가 구태여 남들처럼 똑같을 필요는 없었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표현한 것에 불과해.

그런데 나의 이러한 말이 방안 사람들에게 모두 좋게만 여겨진 것은 아닌 모양이었어.

그날은 그냥 넘어갔지만 다음날 온수를 받는 시간 교도소내부에서 일어나는 불평등에 대해 말을 했을 때 이었어.

항시 내 말이라면 누구 하나 대꾸 없이 들어주고 동조를 하는 분위기였는데 그날은 감방장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지 않겠니.

 

아 새끼 디기 말만내 주디 다물어라 이!”

 

이 한마디가 내 귀에는 폭탄보다 더 큰 효과음을 냈어.

 

아니! 이럴 수가!

감히 나에게 욕을 하다니?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입바른 소리에다가 저희들한테 도움이 되라고 말해주었는데 고맙다는 인사는 못할망정 욕을 해?

게다가 내가 얼마나 명상을 열심히 하는데

저희들이 음담패설을  주고받을 때조차 나는 신을 찾고 신과 대화를 나누는데 감히 나에게 욕을 하다니…….

똑같이 교도소에 와있다 해도 너희와 나는 격이 다르단 말이야.

너희들은 담배하나도 못 끓지만 나는 술 담배는 물론 육식까지도 끓었고 하루 최소한 6시간은 명상을 하는데다가 결가부좌를 해서 2시간도 넘게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을 수도 있으며…….”

 

끝도 없는 나의 에고가 내 머리를 어지럽히며 올라오고 있었어.

어떻게 하면 복수의 화살을 날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동안 말없이 마룻바닥을 노려만 보고 미동도 않고 앉아있었더니 감방 장 이하 방안 사람들이 곧 폭발하고야 말 것 같은 내 분위기에 압도당해 쥐죽은 듯 조용해졌지.

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일어나더구나.

 

일어나서 배를 밟아버리고 죽기 살기로 해버려?

말아?”

 

저녁 점호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까지 감방 장에 대한 내복수심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이모든 일이 나 자신이 만들어놓은 결과가 내게 왔다는 것이 인식 되자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하였어.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달리 해석 될 수도 있고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 사람들에게 항상 감동적일 수는 없다는 것을 내가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였으며 자신이 지키지 못하는 행동에 대한 말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이 곱게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생각지 못한 탓이었지.

한마디로 목이 마르기까지 기다렸다가 물을 먹여야지 물가에 억지로 끌어다 놓는 거와 진배없다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내가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더욱 도덕적이고 훌륭하다는 생각에서 한 말이었기에 사람들로부터 거부감을 갖게 만들었던 거야.

아들아!

이러한 일로 내 안에 참으로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래서 내가 모든 일은 상황이 주어져봐야 알 수 있다는 말을 했던 거지.

제 삼자적인 위치에서 바라보면 언제나 평화로울 수 있지만 막상 나 자신이 모든 일에 당사자가 되고 나면 시각이 180도 아니라 360도까지도 바뀔 수 있다는 거야.

그 당시 감방장님께서 욕을 하기 전 까지만 해도 수행자로써의 품위에 걸맞게 행동거지를 바로하고 갖은 폼을 다잡던 내가 욕 한마디에 밑천이 다 드러나 버린 거였어.

물론 밖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속 깊은 곳에서는 감방장님을 몇 번은 죽이고 있었거든.

이래서 내가 주위에서 나를 욕하는 사람이 사실은 아주 고마운 분이고 신이 보내주신 사자라는 표현을 하는 거야.

감방장님 자신은 못 느끼고 있었겠지만 본인역시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기보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기에 말을 해놓고 시종일관 말없이 눈을 감고 후회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는데 사실은 본인의 의사라기보다 신이 시킨 필연적인 일이라고 봐야 한다 이 말이지.

어째서 그러냐고?

그러한 해석이 나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 뭐겠니?

일단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 때 몇 가지의 내 행동 반경을 예상해 볼 수 있는데 여러 가지의 선택사양 중에 내가 필연적으로 선택한 길은 바로 이러한 해석이었다는 거야.

물론 내가 선택한길이 필연성을 가진 유일한 길은 아니었고 많은 유형의 필연적인 길들 중에 내가 필연으로 받아들인 길이였어.

그렇다면 어떻게 한 가지 일에 그렇게 여러 가지의 필연들이 있을 수 있냐고?

그래!

이번에는 나의 필연이 문제가 되는구나.

아들아!

먼저 네가 말하고 생각하는 필연과 내가 말하는 필연이 같지 않음을 말해야겠구나.

네가 말하고 있는 필연은 자유를 구속하는 필연이고 내가 말하고 있는 필연은 자유로운 필연임을 네가 알아야 해.

너의 필연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어떤 일을 우리들이 선택의 여지없이 가야만 하는 것인 반면 나의 필연은 이러한 결론을 얻기 위해서 그러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필연이라는 말이야.

어때?

조금 이해가 가니?

알아듣기 쉽게 다시 한 번 설명해 보도록 하자꾸나.

너의 필연이 시작에서 비롯되었다면 나의 필연은 결론에서 그 의미를 부여한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만약 네가 헌집을 헐고 새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 반드시 헌집을 부셔야만 할 때를 우리는 필연적으로 집을 헐었다고 표현하지 않니?

그런데 집을 부술 수도 있고 그대로 둘 수도 있는 너의 선택이 항시  열려있을 때 헌집을 부수지 않고 그대로 두면 헌집을 볼 수 있는 결과가 올 것이고 부수고 또다시 집을 지으면 새집을 보는 결과를 초래할 거란거지.

이럴 때 나의 필연은 네가 어떤 선택을 했던 결과를 얻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네가 선택했던 길이 필연적이었다는 말이고 네가 생각하고 있는 필연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헌집을 헐어야만 했던 것만 생각하는 필연이고 말이야.

그렇다면 이것도 필연이고 저것도 필연이 아니냐고?

그래!

이제야 내 말뜻을 이해했구나.

내가 항시 말하고 있다시피 필연이 아닌 순간은 어디에도 없고 신의 축복이 아닌 순간 역시도 어느 순간도  없다는 말의 뜻이 바로 이러한 의미였던 거야.

감방장의 말에 내가 얼마든지 해석과 반응을 달리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선택한 필연적인 해석과 반응은 그러한 선택과 필연이었다는 것이지.

그 당시 감방장님의 욕이 아니었다면 내 속에 어떠한 에고가 들어앉아 있는지도 모르게 수행자의 도도함과 고고함에 파묻혀 현실에서의 안일이 가져다주는 안락함에 몸을 묻고 살아갔겠지만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신의 손길은 감방장의 입을 통해 내 속을 확 뒤집어 놓았지 않겠니.

이런 까닭에 내 수행에 도움을 주신 감방장님께 고맙다고 해야 마땅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감방장님 안에 거하고 계신 신이 하신 일인 만큼 감사의 말씀은 신께 돌려야 될 것 같았어.

그렇게 내 속의 에고가 정체를 드러내고 내가 신에게 고마움을 느낄 무렵 옆방의 누군가가 집에 가고 싶다는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내뱉더구나.

그 소리와 함께 그날의 밤은 깊어 가고 있었고 나는 또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신과 만나고 있었어.

아들아!

이렇게 해서 교도소에서의 해탈을 향한 나의 여정이 또 한 번의 막을 내리고 있었으니 다음에는 또한 걸음 나아간 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자꾸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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