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채식 협회의 모임에서 만났던 사형이 한국의 총판을 맡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나로서는 무척이나 다행한 일이라 여기고 있었어.
그러나 그것이 나의 생각처럼 진행되지는 않으리라는 느낌이 또 다른 한편으로 스물 스물 일어나고 있었는데 워낙 많은 굴곡을 겪다 보니 이제는 액면 그대로의 사실조차 믿기지가 않았던 거야.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 같은 기쁜 순간조차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
그토록 확실한 순간들조차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고 국가의 일조차도 단 한순간에 뒤틀어 버리는 신의 조화를 경험했기에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건지도 몰라.
하지만 걸어가는 길을 멈출 수도 없었고 되돌아갈 수 없는 여정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지라 한 발자국씩 나갈 수밖에 없더구나.
솔직히 내가 까닭 모를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는 것은 이미 그때 내게 주어진 일이라는 것이 결코 물질적인 성공보다는 무언가 나와 상대방이 서로가 도구가 되어 어떠한 연극무대를 장식하게 될 거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거기에 따른 결과를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데 대한 걱정 때문이었던 것이라 여겨져.
그때 그 사형 역시 오로지 명상수행만을 인생최대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었던 만큼 물질적인 성공보다는 깨달음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거든.
아니나 다를까 나의 이러한 우려대로 처음 출발부터가 삐걱거리고 있었는데 사형의 일처리 하는 방식부터가 일반인들과는 거리가 있었어.
처음 들여온 김치처리문제만 하더라도 나는 식당 홍보용으로 뿌리자는 건의를 했지만 사형의 경우는 그렇게 무작정 공짜로 줄 것이 아니라 기다려보면 신의 안배에 따라 사려는 사람이 나설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거야.
그 말도 일리는 있지만 신의 안배라는 것이 저절로 생기는 일이기도 하지만 내가 움직이려는 의지도 포함된다는 것은 무시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한마디 거들고도 싶었지만 안 그래도 내주장이 강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는지라 될 수 있으면 그분의 주장대로 하리라 생각을 했고 어찌되었건 한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일에 대한 결정권은 총판에 있는지라 나는 조언을 하고 협력을 하는 자리로 만족하겠다고 마음먹었었고 또한 미리 말씀도 드렸던 만큼 나설 수는 없었어.
겨우 구해놓은 총판인지라 만지면 터질세라 불면 꺼질세라 조심했던 거지.
그런데 이분과의 생활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그분과 함께 총판을 해야만 하는 확실한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분의 생활자체나 인식정도가 완전히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그분의 인식을 나와의 일을 통해 서로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나에게 직접 말씀을 하시진 않았지만 신과의 합일을 위해 자신이 생각하는 의식세계를 현실세계에다 접목을 하려한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많이 볼 수 있었기에 일에 대한 결과를 알 수 있었던 거지.
아주 된 통으로 걸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이미 활을 떠난 화살이었어.
내가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그분이 잘하거나 못했다든지 혹은 내가 잘하고 못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거든.
내가 된통 걸렸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우리가 모두 신의 안배에 의해 지독한 연극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거야.
어떻게 알았냐고?
앞서 말했듯이 신 김치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점을 느낄 수 있었고 평상시 이분의 발언을 보면 그 같은 내 생각이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이분은 항시 신이 모든 것을 안배해준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직원을 구하더라도 신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모든 것을 신이 알아서 해주시리라 믿고 있는 것 같았거든.
내가 보기에도 이분의 믿음의 힘이 무척이나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분의 평상시 행동이나 말도 그분의 인식정도를 뒷받침하고 있었기에 나 역시 그분의 그러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지.
그러했기에 누군가 다른 분들이 그분을 나무라거나 평가를 좋지 않게 할 때면 그렇지 않다고 기를 써서 변호했던 거야.
내가 보기에는 그분만큼 믿음을 크게 가진 이가 우리 주변에 없는 것 같았거든.
이분은 아주 특이한 성장배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선적으로 이분의 아버님은 태고종의 스님이셨고 이분 또한 스님이셨어.
가정을 가지고 있는 대처승이었는데 이미 어려서부터 수행자로서 성장을 하셨는지라 우리네와는 아주 다른 삶을 사신 분이었고 만약 수행이 기간을 정해놓거나 세상의 공부처럼 성적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분을 능가할 분이 몇 없을 거라 생각해.
그러한 분이기에 자신의 믿음이 남달리 강하셨고 부인 역시 아주 대단한 수행자였지.
부인이 나하고 나이는 물론 생일까지 같았던 점 역시 나와 그분들과 어떠한 연극을 해야만 하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이 느껴졌어.
크리스천이라 할 수 있는 부인의 과거역시 범상한 수준은 아니었고 관음법문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세상 기준을 넘어선 분임에는 틀림이 없었던 거야.
이렇게 특이한 분들이었으니 나와 같은 괴팍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은 너무나도 정확한 인연이었고 신의 안배일거라 생각해.
이러다 보니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관점들이 모두 다 달라서 나는 나대로 그들이 한국에서 판매와 거래처확보 등의 일을 모두 해주길 바랐고 그들은 그들대로 내가 자신들을 도와서 모든 것을 해주길 바랐던 거지.
처음 내가 그분들이 총판을 시작할 때 시간이 나는 대로 총판의 일을 돕겠다고 말씀을 드렸던 것은 어디까지나 돕는다는 차원이었지 내가 모든 일을 다해준다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분들은 그야말로 내가 모든 것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더구나.
나로서는 중국에서 물품을 공급하는 일만 해주면 모든 것이 끝날 테지만 우리가 한시라도 빨리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함께 힘을 모아야겠다 싶었기에 도움을 주려 했던 거야.
이렇게 동상이몽을 가진 가운데 시간은 흘러갔으며 몹시도 주저하던 김치를 주문하게 된 것은 이분들과 함께 한지 보름인가 지난 후였어.
내가 자꾸 그분들에게 김치주문을 하시라 서두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중국에는 직원들이 할일도 없는 공장에서 대기를 하고 월급만 축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다들 한국에 나와 있는 내가 거래처를 잡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거든.
게다가 무엇보다 우리공장의 운영자금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이러한 내 성화에 못 이겨 그분들이 주문을 하게 되었던 만큼 중국으로 돌아가 있던 사저를 또다시 불러 그분들을 도왔던 거야.
이렇게 사저를 한국으로 불러야 함에 따라 중국공장의 운영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모 사형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어.
너도 알거야.
지난번 내가 양털이불 장사를 위해 사무실을 차렸을 때 함께 일을 했다던 사형을 우리공장에 사장대리인으로 임명하여 보내게 되었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중국의 식구들에게 공장을 맡겨놓는다는 것은 믿음이 가지 않았거든.
삼중구도로 해놓긴 했지만 서로 합의만 하면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 길밖에 없었어.
결국 그 사형을 보내고 나서야 안심을 할 수 있었지만 그것 또한 일시적인 노력이었을 뿐 그다지 큰 효과가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
이렇게 나름의 단속을 해놓고 사저와 함께 이분들을 거들고 있을 무렵 이번에는 북한에서 손님이 오신거야.
아마도 부사장이신 사저의 오빠가 오랜만에 북한에서 연락이 오자 자랑 삼아 동생이 김치공장을 하고 있다 얘기를 했었던가 보았어.
매출도 없는 공장에 또다시 그분까지 직원으로 채용을 해야 했는데 그야말로 이중고를 겪어야 했던 거지.
어찌 보면 북한주민을 돕는다는 의미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을 듣고 보니 북한에 굶어죽는 이들이 허다하고 헐벗은 사람들이 많다 길래 센터에다 협조를 구하기로 했어.
센터 책임자에게 말씀 드려 헌 옷가지들을 모아주길 부탁 드렸더니 약품과 옷가지들이 산더미처럼 생기더구나.
역시 동수들의 자비심들은 대단한 것 같았지.
이렇게 모인 물품들을 옮기기 위해 우리들이 운반비를 들여야 했는데 그 또한 운반비가 만만치 않았지만 우리가 북한 주민들을 돕는다는 일념으로 힘든 줄도 모르고 운반을 하였던 거야.
이렇게 해서 또다시 중국을 들어가 보니 북한에서 오셨다는 손님이 반갑게 나를 맞이하셨는데 나로서는 반가움만 표현할 수는 없었어.
미리 중국에 들어와 있던 사형으로부터 사정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이미 느낌으로 짐작하는 바가 있었거든.
북한에서 공식적인 루트로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만해도 이미 굶주림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분이 우리공장에 온 목적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거지.
만난 지 이틀만인가 차를 마시면서 아주 냉정하게 말씀을 드렸어.
이번에 한국에서 가져온 옷가지와 약품들은 모두가 한국의 동수들이 북한의 어려움 속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고자 모은 것이지 결코 당신들 개인이 팔거나 개인용도로 쓰도록 준 것이 아니라는 것과 이러한 물품을 판다든지 개인용도로 쓰게 되면 반드시 업장이 따를 거라는 말을 다부지게 해주었지.
그러한 나의 말에 고개를 숙인 체 듣고 계신 손님이 너무나 안돼 보이긴 했지만 그대로 두어서는 그들에게 더욱 좋지 않은 일이 돌아갈 것 같기에 그대로 넘어갈 수가 없었어.
한참을 설법 아닌 설법을 하는 중에 북한의 아들로부터 또다시 전화가 왔는데 돌아올 때 무엇을 사오라는 부탁을 하는 것 같더구나.
나에게 이미 단단히 혼이 나고 있었던 지라 욕을 하며 전화를 끊는 모습에서 그분의 고뇌가 보이고 있었지.
내막을 알 수 없는 북한의 식구들로서야 엄마에게 부탁해서 한 살림 얻어올 것을 기대하고 말했을 것이지만 대꾸조차 할 수 없게 조목조목 따져가며 거지근성을 뿌리부터 뽑아내는 내 말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던 손님은 북한의 아들에게 욕을 하며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어.
어쩌면 너는 나의 이 같은 말에 너무나 잔인하다고 할지 모르겠구나.
그렇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어.
수백만원치의 약품과 헌 옷가지들을 보내주신 동수 분들은 모두가 북한의 헐벗고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보냈을 터, 만에 하나라도 개인적인 일에다 쓰게 되면 그와 같은 업장을 그들이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싶었거든.
물론 업장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아니야.
우리의 마음이 진정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자 해야지 자신들은 먹고 살만하면서 더욱 잘살려는 욕심을 나무랐던 거지.
물품 하나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애를 쓰는 그를 보고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해주었는데 이러한 사람들의 욕심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분께 명상을 가르쳐야지 생각했고 방편입문을 시키게 되었어.
그래도 다행히 명상을 좋아하시더구나.
체험 또한 하신 걸로 아는데 자신이 체험한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와 함께 지내는 동안 너무나도 좋았던지 북한의 식구들에게도 명상을 전해 주겠다기에 견본책자와 스승님 목걸이와 사진 등을 함께 보냈지.
내가 또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후 손님이 북한으로 돌아갔는데 돌아가는 도중 검문에서 스승님의 목걸이를 뺏기는 일이 있었다는 말을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들을 수 있었어.
고추장에 견본책자와 사진을 파묻어 들여갔던 것은 행여나 있을지 모를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였는데 검문을 당하는 당시 너무나 긴장을 하는 나머지 주머니에 있던 목걸이를 떨어트린 모양이었고 그것을 검문을 하는 군인에게 뺏겼다더구나.
우리나라 같으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도 없는 일이지만 북한은 아직도 종교의 자유가 없다보니 잘못하면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문제였어.
목걸이 속의 사진이 누군가 묻는 검문하는 군인의 말에 얼른 동생이라 둘러대고 목걸이 하나를 뺏기고 나서야 통과를 했다고 들었지.
이 같은 말을 전해 들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크나큰 신의 축복아래 있다는 것을 절감 했는데 수없이 많은 물자들과 종교역시 입맛에 맞는 것으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고를 수도 있으며 심지어 대통령 욕도 하는 사회에 사는 우리들이 얼마나 나눌 줄 모르고 욕심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거야.
우리들은 항시 불경기를 말하고 직업이 없음을 말하고 있지만 스스로의 욕심만 내려놓으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일자리가 풍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해.
모두들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지 3D업종이나 특정 직업들은 아직도 사람들을 못 구해서 난리들이거든.
참으로 우리들은 만족하는 마음을 얻어야 할 것 같아.
그때 내가 북한의 손님에게도 그런 말을 했어.
자신을 가난하다고 여기지 말고 주위에 더욱더 가난한 이들을 생각해 보라고 말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그이에게 한말들은 모두가 내가 들어야 할 말이었고 나에게 필요한 말들이었다는 것을 가끔씩 깨닫곤 하는데 이 같은 말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인 것 같기도 해.
우여곡절 끝에 북한의 손님을 북으로 돌려보내고 또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나에게는 더욱더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어.
가장 큰 문제는 앞서도 말했듯이 사형의 사업 방식이었지.
원래 총판을 하기위해서는 차량구입도 해야 하고 사람들도 모집을 해야 하며 전단지와 같은 선전에 필요한 여러 가지 밑 작업들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투자를 그리 많이 할 수 없다 보니 그야말로 신의 기적에 의지하는 사업형태가 되고 있었던 거야.
이와 같은 사업파트너를 만난 것 또한 나의 복이고 신은 우리들에게 기가 막힌 연극무대를 선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힘이 들고 있었어.
그분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신의 일부분이라 여기고 명상을 통해 모든 이들이 신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고 있었는데 그 같은 생각을 그분 역시 고칠 필요가 있었던 거지.
너와의 대화 중간 중간 몇 번이나 반복하여 말했듯이 스스로가 신의 품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남들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이 선행되어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는 수행자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지경에 빠질 수 있다는 거야.
그분은 항시 모든 것을 신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었는데 앞서 내가 말한 모든 일들은 신이 안배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거든.
솔직히 그분 또한 모르는 것이 아니었어.
다만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신의 안배에 따라 자신을 도와주었으면 했던 거지.
나 역시 그분의 그러한 마음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될 수 있으면 그를 도와주려 했지.
그런데 이러한 내 마음과는 별도로 자꾸만 문제가 되고 있었던 것은 몸으로 돕는 것은 할 수 있었지만 돈이 드는 것들은 어쩔 수가 없더구나.
예를 들어 거래처를 잡기위해 부산을 가야할 경우 부산까지 다녀오기 위해서는 기름 값과 톨게이트 비용이 드는데 그 같은 비용을 그들이 내지 않는다면 내가 움직일 수는 없지 않겠어?
돈을 주는 사람이야 지난번 주었으니 다시 안주어도 될 것이라 여기겠지만 하루만 영업을 하고 말수도 없는 노릇이니 업자들을 만나려면 많이 돌아다녀야 하지 않는가 말이야.
사사건건 따질 수도 없으니 돈이 없으면 그냥 대기를 하고 지낼 수밖에 없었고 기름 값을 줄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
자꾸 돈이 많이 드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총판을 하려고 마음먹었던 만큼 그 같은 부담을 자신들이 질수밖에 없었던 거지.
나로서도 경비도 없이 매일 지내는 것이 마음 편치는 않았고 한시라도 빨리 중국으로 돌아가 공장관리에 신경을 써야 했는데 도무지 내 뜻대로 일이 되지 않고 있었던 거야.
이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가는 도중 주문한 김치가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들어오게 되더구나.
김치가 들어오길 눈이 빠지게 기다렸던 것은 내심으로 기대를 하는 곳이 있었기 때문으로 여름이 끝날 무렵 김치 견본 통을 어깨에 메고 각 식품공장을 방문하며 거래처를 잡기위해 애를 쓰고 있을 때 조치원에 자리한 큰 식품회사를 갔을 때의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어.
그 당시 사장님께서 때마침 자리에 계시는 바람에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연세가 높으신 사장님께서 김치 통을 어깨에 메고 들이닥친 내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지.
그 자리에서 직원들을 소집하여 시식회가 벌어졌고 우리 김치가 마음에 든 사장님께서 전무님을 시켜 적극적으로 검토하라 하신 거였어.
사장님께서 약속이 있다고 자리를 떠나신 후 전무님께서는 내가 준비해간 우리공장 사진들을 검토하시더니 김치가 맛이 좋다면 시설투자까지 하실 거라는 말씀을 하시더구나.
이러한 언질이 있었기에 그야말로 나의 기대는 대단한 거였지.
컨테이너가 도착하고 2톤을 견본 삼아 들어가게 되었는데 솔직히 총판의 일보다 나에게는 이일이 더욱 큰일이었어.
처음에는 이 공장과의 계약만큼은 따로 진행시키려다가 총판이 생긴 이상 비밀리에 일을 진행한다는 것은 내성격상 맞지 않는지라 사형에게 이실직고를 했고 모든 일을 오픈 시켰지.
조금이라도 양심에 어긋나거나 걸리는 짓을 하기 싫었거든.
그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행되던 일이 틀어진 것은 김치를 납품한지 일주일쯤 뒤였어.
갑자기 김치에서 모래가 씹힌다는 거였는데 처음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지.
그동안 사람들로부터 간간히 그와 같은 말을 듣기는 했지만 모래가 들어간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기에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자 했었고 거기에 따라 우리들이 다른 이들과 차이를 두기 위해 쓰고 있던 과일이 주된 이유일거라 생각했어.
과일의 씨가 함께 들어가 약간의 사각거리는 느낌을 줄 거라 여긴 거지.
그런데 이곳저곳에서 항의가 들어오기에 안 되겠다 싶어 사저를 시켜 물에다 헹궈보라 했더니 정말 모래가 나오는 것이 아니겠니.
생각지도 않는 결과에 머리가 돌 것 같더구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말이야.
내가 너와의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째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라는 말을 몇 번이나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나에게는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들만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더구나.
어쩌면 그리도 있을 수 없는 일들만 일어나든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결과에 분기탱천한 내가 중국으로 전화를 걸어 조사를 시켰어.
그때는 그야말로 나의 분노가 폭발을 하고 있었는데 그 누구도 나의 불같은 화를 감당할 수 없었지.
보이지만 않았지 내 몸이 불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던 거야.
내가 고춧가루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불과 얼마의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데 가만히 더듬어보니 국적취득을 위해 머물렀던 사형의 고향에서 가져온 고춧가루가 문제가 되었던 것 같아.
훗날에 알았던 사실이었지만 고추를 말리게 되면 바람이 많은 고장일 경우 꼭지로 먼지가 들어가게 되는데 씨를 뺄 경우는 먼지를 제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고춧가루에 먼지가 들어가게 되거든.
그렇다면 씨를 빼고 빻게 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아니냐고?
그래 네 말이 맞긴 해.
그러나 만약 먼지를 제거하기위해 씨를 제거하게 되면 맛이 없어지고 씨가 가지고 있는 영양분과 맛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씨를 제거하지 않고 있어.
우리들이 몰라서 그렇지 모든 과일이나 야채들은 씨에 영양소가 제일 많아.
고추씨를 빼 버리고 나면 사실 영양분이 없는 고춧가루를 먹는 것과 같은 거지.
그런 이유도 있고 또한 무게에 따른 문제도 있어.
씨를 빼버리면 무게가 반 이상 줄어들게 되니 고춧가루 값이 엄청 비싸게 된다 이거야.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무게를 늘리기 위해 모래를 섞기도 한다는데 모래를 섞는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고 모래를 제거하는 작업을 거치지 않고서 고춧가루를 생산한다고 해야 보다 정확할거라 여겨져.
우리역시 그 같은 경우였던 거지.
처음 고추가 공장에 도착하여 마당에 말릴 때 내가 시범으로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 작업을 한다는 것을 직원들에게 보여 주었는데 내가 보고 있을 때는 제대로 하던 사람들이 막상 내가 없고 자기들끼리 작업을 하니까 모자는커녕 신발을 신은 체 들어가 작업을 했고 그나마 기계에 들어갈 때라도 고추를 고르면 될 것을 귀찮으니까 아예 깔아놓은 비닐을 들고 기계에다 부었던 거야.
일하는 사람들 마음가짐이 이러했으니 어떤 결과물이 나왔겠어?
울어도 시원치 않을 일이었지만 울 수도 없었고 울음조차 나오지 않더구나.
얼굴이 벌게져 할 말을 잃고 있었는데 총판을 하는 사형부부도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결과에 다들 어이없어 하였지.
우리가 실수한 것에 대한 부분은 돈도 받을 수 없었고 그 김치가 우리로서는 마지막이나 다름없었던지라 나로서는 충격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어.
그런데 이 같은 나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 일이 일어났는데 한국에서 이러한 나의 분노가 중국까지 전달이 되지는 않았던지 중국판 원자탄이 내 머리를 강타하더구나.
계속해서 놀다가 문제의 김치를 만들어 한국으로 보내기위해 밤샘작업을 며칠 한 노고로 자신들 스스로 보너스를 지급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던 거야.
“야이 * ** 인간들아!
도대체 너희들이 사람이야.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서 어째?”
내 입에서는 욕이 나오고 있었어.
지면으로는 표현도 못할 쌍욕을 해대기 시작했던 거지.
어떻게 이다지도 내 기대를 철저히 짓밟아 놓을 수 있는가 말이야.
그것도 내가 지적을 해주면서 조심하라 당부한일만 골라가며 저질러 놓은 이들이 뭘 잘했다고 보너스 지급을 받는가 싶은 마음이 내 분노의 감정을 들끓게 만들더구나.
이와 같은 내 분노의 감정에 기름을 붓는 이가 있었는데 바로 사저였어.
특유의 부드럽고도 단호한 말을 내뱉고 있었지.
“넘어졌다고 안 일어날 거야?
남자가 그만한 일로 그리도 흥분을 하고 있어.
어차피 쏟아진 물을 수습을 할 생각을 해야지 화만 내면 뭐 하는가 말이야”
이 말이 나의 분노에 더욱 기름을 던져 넣는 결과가 되었어.
있는 욕 없는 욕을 섞어가며 중국식구들 욕을 하였고 시간이 나고 기억이 날 때마다 욕을 했더니 결국 사저 역시 냉정을 잃고 눈물을 보이고 말더구나.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지만 나를 위로하기 위해 억지로 태연함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인데 내 분노가 극에 달하여 그칠 줄 모르자 자신역시 허물어진 거지.
아!
아들아!
지금도 그 당시의 감정이 되살아나서 머리가 지끈거리는구나.
마지막이라 여겼던 그 일이 박살이 나버린 절망감이 나를 얼마나 몸서리치게 힘들게 하였는지 너는 아마도 상상조차 못할 거야.
나에게 기대를 하고 투자를 하였던 많은 분들과 황금빛 꿈을 꾸며 나와 함께했던 사형부부의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지고 있었지.
누군가는 이 같은 일을 보며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어.
“미리 모든 것을 알아보고 체크를 했어야지 왜 그 모양으로 일을 만들었어요?
준비도 하지 않고 성급하게 일을 처리한 당신에게 책임이 있는 겁니다.”
그분 말씀이 맞긴 하지만 그 또한 사정을 몰라도 한참을 몰라 하는 소리라 여겨져.
만약 그렇게 따진다면 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고춧가루도 내가 빻아야 하고 배추도 내가 절여야 하며 장사역시 내가 해야 한다면 도대체 사람들이 왜 필요한가 말이지.
분명하게 지적해주고 방법까지 알려준 것들 모두 엉뚱하게 행동해 버리는 것을 난들 어쩔 도리가 없었어.
세상 사람들은 어찌 보면 남들 원망을 하기위해 살아가는 것 같아.
대통령 한 사람이 우리나라의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한다고 여긴다면 각부의 장관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
나 역시 최고의 책임자로서 가장 큰 책임은 덕이 모자란 나 자신이라는 점은 인정 하겠지만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내가 알아서 해야 할 것은 아니라는 거지.
아들아!
이것은 결코 내가 지금의 김치공장운영을 잘못한 것에 대한 변명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거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지 왜 이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가를 말해봐야 제 얼굴에 침 뱉기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거야.
만약 세상이 바뀌었으면 한다면 자신부터 바뀌어야 해.
내가 바뀌면 세상이 절로 바뀐다는 아주 평범하고도 소중한 경험을 말하는 것을 끝으로 오늘은 여기서 작별을 하자꾸나.
다음은 이와 같은 일들이 뜻하는 바가 뭐라는 것을 알 수도 있을 것 같으니 기대하도록 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