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98)

배가번드 2022. 1. 20.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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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요 며칠은 여행을 다녀왔어.

사실 여행이라 하지만 여행은 아니었고 병문안이었는데 통역하시던 분이 병환이 깊어져 우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에 가게 된 거야.

몇 달 전 밤늦게까지 나와 논쟁을 벌이며 자신의 부인이 명상하는 사실을 따지러 오시기도 한지라 대놓고 도와달라는 소리도 못하고 부인을 통해 이러 저런 얘기를 했던 모양이었어.

벌써부터 우리 도움을 받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분이 명상을 하는 우리들을 그리 고운 시선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기에 애써 모른척하고 있었거든.

요 근래 들어 그분 집안에 우환이 겹치는지라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 거였지.

 2달 전 사위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버리는 일이 발생되었는데 그 일이 있고 나서 딸과 사부인이 너무나 격한 슬픔에 빠져 있는데다가 자신의 병환까지 깊어지는 듯하자 이제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손을 내민 것이었어.

이래서 사람들은 막바지에 접어들어서야 죽음을 생각하게 되고 신을 생각하게 되는가 봐.

알코올 중독을 고쳐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내 손을 뿌리치고 공장을 떠나갔고 결국은 죽음에 문턱에 이르러서야 나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도저히 사람의 힘에 의지해서는 힘이 들것 같았기에 명상을 하시라 권할 수밖에 없더구나.

불교에서 권하는 수행법을 권하고자 하였지만 당사자가 우리의 명상법을 하고 싶은가 보았어.

그도 그럴 것이 우리들의 명상법이 불교에서 말하는 좌선법과 마찬가지였고 자신이 생각해도 우리들의 삶이 스님들의 삶과 전혀 다를 바 없는데다가 도리나 이치에도 틀림이 없다 여긴 것 같았지.

기독교나 천주교의 기도 역시 권하고 싶었지만 이분이 어릴 적 별명이 칠성인데다가 앞서 위독하여 죽음에 이르렀을 때 천상에 올라가 왕모양양(옥황상제의 부인) 을 만나기도 했던 터라 불교 쪽이 이분과 코드가 맞는다고 생각했고 본인 또한 그 쪽보다는 우리가 하는 명상이 좋다고 생각했나 보았어.

그런데 이분의 집에는 이분의 건강만이 문제가 아니라 두 달 전에 돌아간 사위의 영혼문제 역시 겹치고 있었는데 아들을 잃은 부모와 남편을 잃은 부인이 너무나 슬퍼하는 바람에 영혼이 떠나지를 못하고 주변을 맴돌고 있기에 다들 힘들어 하고 있었던 거야.

이와 같은 일 때문에도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이 영혼 부분만큼은 내가 자신이 없더구나.

왜냐고?

첫째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만에 하나라도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닥쳤을 경우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내가 받아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어.

내 눈에는 너무나 명백하게 보이는 사실도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소용이 없으며 그들이 스스로 인정을 했을 때라야 그 같은 우리들의 충고가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거든.

아들아!

이 같은 일이 너에게는 생소할듯하니 네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같은 일을 잘 말해주는 예수님의 기적에 관한 얘기가 있는데 이 자리를 빌려 인용해 보도록 해.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가르침을 펴던 중에 일어난 일이야.

사람들에 둘러 쌓여있던 예수님이 어느 순간 몸을 돌리며 주변을 향해 소리를 쳐.

 

누가 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까?

금방 나의 옷을 만진 사람은 나오시오.

절대 나무라지 않을 테니 모습을 드러내주시오

 

몇 번에 걸친 예수님의 권고말씀에 수줍은 듯 모습을 나타낸 이는 자신이 먼 곳에서 온 환자였다는 사실과 예수님을 보면 병이 낫는다는 소리를 듣고 단 한번이라도 옷자락을 만지기라도 하면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만졌노라 말을 했다는 거야.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되물으셨지.

 

당신의 원하는 바를 이루었습니까?”

 

그러자 그 사람은 자신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이 닿는 순간 거짓말처럼 병이 나았다는 말을 했고 그 말에 몰려든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하셨어.

 

이 사람의 믿음의 힘이 이 사람의 병을 낫게 하였노라

 

아들아!

이 내용은 내가 보병궁의 성약서 라는 책에서 본 내용인데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믿음의 힘이야말로 기적을 일으킨다는 의미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어.

이와 같이 나 역시 그들이 믿지도 않는 상태에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던 거야.

사실 수행을 하는 이들이 하고자 하는 일 또한 이러한 믿음의 힘을 키우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

나를 믿지는 않는다 해도 나에게 의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모른 체 할 수는 없었기에 그들을 만나러 가야만했고 어떻게든 도울 길을 찾아야 했어.

결국 내가 그분에게 알려 드린 것은 옛날 어떤 의사와 황제사이에 있었던 이야기 하나와 몇 가지 식사법, 그리고 간단한 명상법 이었지.

고사가 재미있을 것 같으니 말해보라고?

그래!

그이야기는 참으로 교육적인 면이 많은 얘기이기도 하니 말해주도록 하마.

옛날 중국의 유명한 왕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의사를 불렀다는 거야.

당장 자신이 병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그의 유명세를 익히 들었고 꼭 한번보고 싶어서 불렀더니 의사가 말을 했어.

 

폐하!

지금 폐하의 몸에 병이 달라붙어 있사옵니다.

지금 치료를 하시면 금방 좋아 지시옵니다.

치료를 받으시지요.”

 

이 말에 왕은 금방 치료를 받지 않아도 죽지 않을지 되물었고 그렇다는 의사의 대답을 얻어내고 병을 방치했다는 거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얼마가 지나 또다시 왕이 의사를 불렀을 때 의사는 또다시 말을 해.

 

폐하!

병이 조금 더 깊어졌사오니 지금 치료를 받으소서.

그리하면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완치가 되옵니다.”

 

이렇게 의사가 간곡하게 말을 했으나 왕은 또다시 금방 죽지는 않는다는 의사의 대답을 얻어냈고 주색잡기로 세월을 보냈으며 몇 번에 걸친 의사의 권고를 무시한 어느 날 앓아눕게 되었다는 거야.

그제야 왕이 신하를 보내 병을 치유코자 했으나 그때 의사는 짐을 꾸리고 있었는데 왕의 명을 받은 신하가 이를 만류하였으나 의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떠나버렸어.

 

병이 피부에 왔을 때는 연고나 고약으로 병을 낫게 할 수 있고 병이 혈로 스며들면 침으로 다스리면 되는데 병이 좀 더 깊어지게 되면 병이 내장의 각기관속으로 스며들게 되어 탕제로서 다스려야만 병을 쫒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이 깊어져 골수에 미치게 되면 아무리 명의라 해도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낫도록 할 수 없사옵니다.

그런 연유로 길을 떠나오니 부디 막지 마시오소서.

 

아들아!

이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삶들을 살아가고 있어.

당장 죽음이 찾아오지 않았다고 해서 걱정들을 하지 않고 있다가 마침내 코앞에 다가왔을 때는 이미 때가 늦어버리는 거지.

그나마 이분은 미리 사후세계를 경험을 했기에 뒤늦게나마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우리말을 인식할 수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경우 이 같은 말에 동조할 수가 없거든.

또한 이 세상을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몰라야만 되기도 하고.

몇 가지 간경변증에 좋은 처방을 알려주고 명상을 권유하였지만 단 5분을 앉아 있지도 못하는 그를 보며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더구나.

우리가 신을 만나고자 마음먹는 것도 쉽지가 않지만 이분처럼 마음을 먹고 나서도 앉아 있지 못하는 것을 보면  평상시 생활습관이 우리로 하여금 신과 멀어지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분의 경우 중국에서는 드물게 자수성가하신 분으로 볼 수 있는데 가정 형편상 대학교를 갈수 없는데 불구하고  순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대학을 마치고 공산당에 입당도 하였으며 나름대로 사회적인입지를 확보를 했던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신 분이야.

그러한 과거가 이분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지.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왔으니 지금의 건강문제도 자신의 판단에 따르기로 한 거였어.

간경화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정도는 술을 먹어도 된다는 생각을 했기에 고통만 없다면 한 모금쯤은 된다는 두뇌의 타협에 따라 몇 번이나 배가 불러지고서야 그토록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유혹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포기하더구나.

함께 명상을 하던 중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듯 잠을 자는 그를 보며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할지 걱정이었어.

그런데 이분은 그나마 우리에게 손이라도 내밀고 있었지만 남편을 잃은 슬픔에 잠겨있는 이분의 따님은 그야말로 문제였지.

평소에도 우리들에 대한 시각이 좋지 않았던 지라 그들이 우리말을 듣지를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영가천도(靈駕薦度)를 위해서는 황이산(관전현에 위치한 절이 있는 곳) 에 가서 스님들께 부탁을 하라고 일러주었던 거야.

그랬더니 막상 스님들 앞에서는 그러겠다던 사람들이 자신들 집에 도착하자 또다시 마음들이 바뀌고 있었어.

처음 내가 우려한대로의 상황이 발생이 되었는데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지.

이래서 내가 평상시 신구의를 깨끗이 해야 한다고 한 것이었고 남들과의 논쟁을 벌이는 시간보다는 자신 안에 내재한 신을 만나는 것이 더욱 유익하다고 하는 거야.

늘 신과 함께하는 스승님조차 밤 시간은 조용하게 내면의 신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는 시간을 갖는다고 하는데 우리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말이지.

우리들이 함께 명상을 해준 뒤로 매일같이 나타나던 남편이 보이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우리들 말을 인정할 만도 한데 그것 또한 쉽지가 않은 것 같더구나.

아들아!

말을 하다 보니 이것은 영혼의 문제가 걸려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한 일인 것 같으니 세밀하게 살펴보도록 해.

우리가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전 남편과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둘 다 제 정신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 그날 저녁 사저가 영혼과 대화를 통해 천도를 하였거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만났을 때는 얼굴이 좋아 보이고 있었어.

그렇게 천도를 해주었기 때문에 별달리 어려움이 없을 듯 했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지.

영혼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듯이 제한된 존재가 아니라는 거야.

게다가 영혼이 움직이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제한적이지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크기가 줄어들 수도 늘어 날수도 있는 것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는 거지.

사저가 천도를 해주었다고 해도 유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상념의 힘이 그를 다시 끌어당길 수도 있기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고 본인들이 그러한 영혼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를 만들고 있었던 거야.

앞서 내가 말을 했듯이 우리 안에는 대우주가 들어있다고 했지 않니?

그렇지?

그것처럼 내 안에도 그가 있고 그들 안에도 죽은 이의 영혼이 있다 이거야.

다시 말하자면 죽은 이의 영혼이 그들 주변을 맴돌고 있던 것을 사저가 불러서 달래고 얼러 좋은 곳으로 인도를 했지만 유가족들 안에 담겨져 있는 영혼이 그들의 생각의 크기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는 거지.

자신들이 죽은 사람을 얼마나 그리워하는가에 따라 그러한 체가 얼마든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데 그 같은 일들이 본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경우는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본인들이 다치게 되거든.

아들아!

나의 이 말이 이해가 가는가 모르겠구나.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으니 영혼에 대한 설명을 다시 한 번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

앞서 내가 많은 말을 해주었는데 불구하고 영혼이 네게 그렇게 인식이 되고 있지 않다면 좀 더 설명을 해주어야겠구나.

그렇지만 아들아!

네가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일이 있어.

지금껏 네가 알고 있던 모든 상식속의 일들을 내려놓고 내말을 따라오기 바라.

그렇게 해야만 내 말이 뜻하는 바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거든.

이 같은 영혼을 설명하기위해  먼저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 탄생부터 살펴보자꾸나.

영혼이 들어오는 시점을 난자와 정자의 접촉으로 보는 이도 있고 그밖에 다른 시각도 많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야.

영혼이 들어오는 것은 그야말로 영혼의 선택에 의한 것인데 우리가 생각하듯이 무조건적으로 죽으면 또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란 거지.

너도 생각을 해보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즐거운 곳이 있다고 했을 때 너 역시 다시 태어나고 싶겠니?

처음 얼마간은 자신의 죽음에 어리둥절하고 정신이 없겠지만 그러한 것도 잠시이고 얼마 후에는 자신이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인가를 알게 되고 그때부터 이곳저곳을 다니게 되거든.

물론 너무나도 많은 죄를 지었다는 스스로의 생각에 의해 심판을 받는 경우는 다르겠지만 말이야.

이렇게 자유로운 것조차 지겨워질 때 또 다른 모험을 하고자 선택하는 영혼들이 인간으로 다시 돌아오길 선택하는데 그 시간이라는 것이 지구의 시간으로 볼 때 수천 년도 더 될 수도 있다는 거야.

어떠니?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되었지?

죽은 사람들이 자꾸만 되돌아오기만 한다면 이세상이 벌써 넘쳐 났겠지만 이 세상을 보면 적당하게 유지를 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어.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야.

죽음과 탄생은 물론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우리는 두뇌와 마음에 영향을 받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절대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 알기가 쉽지 않고 가치관도 물질적인데 머무르고 있지만 이 육신을 벗어나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을 한눈에 알 수 있게 된다는 거지.

그때는 그야말로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이 쓸데없는 것이 되거든.

그래서 많은 성인들이 물질이나 지식을 쌓는 것을 멀리하라 한 거야.

 

그렇다면 영혼이 언제 들어오는가요?

 

그것은 말이야.

영혼의 선택에 달려있어.

대부분의 경우 부모의 성적인 결합과 동시에 들어오게 되지만 어떤 이는 다섯 살이나 되어서 들어오는 이도 있으며 어떤 이는 탄생을 거치지 않고서 남의 육신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는 거야.

어떤 이들이 빙의가 된다는 경우가 바로 이러한 경우라고 볼 수 있으리라 여겨져.

이처럼 빙의가 되는 경우역시 자신의 평상시 생활이 건전치 못하거나 전생에 수행을 하는 이들을 괴롭힌 일로 인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고 지난번에 말해주었지 않니?

그렇지?

 

그렇다면 사람들이 태어날 때 영혼이 들어올 때까지 수정된 체로 기다릴 경우 다른 영혼이 침범할 경우는 어떻게 하는지요?

 

그와 같은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들이 모르는 일들이 우주에는 일어나고 있고 네가 이 세상을 오는 것 또한 철저한 보호아래 일어나고 있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가 완벽한 신의 조화 속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 같은 일을 하는 이는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이거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그토록 성토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시는지요?

 

그래.

너라면 그러한 질문을 할 만할 거야.

그렇지만 네가 모르는 것이 있어.

내가 하나님을 믿는 분들을 성토한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타종교를 비방하거나 자신들의 종교를 믿지 않는 분들을 지옥을 보내는 행위를 비난한 거야.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하나님과 내가 말하는 하나님은 범위가 달라.

네가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은 성경에 갇힌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고 내가 말하는 하나님은 전체적인 하나님을 말하는 거지.

물론 내가 아는 범위 내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리고 성경의 하나님도 하나님이긴 하거든.

범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어떻게 하나님이 둘 일수가 있으며 어떻게 우주를 주관하는 하나님과 성경의 하나님이 다를 수가 있으며 그보다 더욱더 높은 하나님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그래?

그렇다면 되물어 보자꾸나.

어떻게 그렇게 되지 않을 수가 있지?

어떻게 지구가 평평하다는 사실이 오늘날 둥글게 바뀔 수 있었지?

 

하나님의 경우는 다르지 않습니까?

 

네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면 다시 한 번 물어보자꾸나.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는 성경의 오류에서 나온 것을 과학자들이 밝혀 놓았는데도 그러한 하나님을 아직도 붙들고 있어야 한단 말이냐?

이 같은 사실을 말하기에는 시간이 없으니 네가 과거 유럽사회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인터넷검색을 통해 알아보기 바라.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성경이 엉터리라고 해서는 곤란해.

성경의 말씀들이 몇 가지 오류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는 사실이며 과거나 지금이나 최고의 하나님 말씀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거든.

몇 가지 오류라는 것도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성경은 나무랄 데 없는 하나님 말씀이여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계신 살아있는 책임에 틀림이 없어.

앞서 내가 성경 속에 갇힌 하나님이라 표현한 것은 사람들이 믿고자 하는 성경속의 하나님을 말한 것이며 내가 말한 것은 성경을 포함한 온 우주에 편재하신 하나님을 말한 거지.

사실 이 같은 말도 내가 미리 말을 주었어.

네가 기억을 못하고 있을 뿐이야.

우리가 하나님을 꽃이라고 한다면 그 아래 장미와 개나리 등의 꽃들이 모두가 꽃인 것과 같은 이치인 거지.

다시 말해서 우리들은 범위를 달리한 신이라는 거지.

 

아니 우리가 어떻게 신일수가 있지요?

우리들은 천지를 창조하신 절대권능을 가지신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

아들아!

무척이나 실망스럽구나.

하지만 또한 다행스럽기도 하구나.

내가 실망스럽다는 것은 수없이 반복하여 설명해 준 것들이 아직 너에게 인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행이라는 것은 내가 가고 있고 알고 있는 사실이 너무나도 명백하기 때문이야.

 

어째서 그런지요?

 

내가 말하지 않았니?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절대 인정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이야.

그것이 이 세상을 그들로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도

나 역시 매 순간을 신의식속에 머물러 있지 못할 때가 많은데 그것은 내가 아직 이 세상에서 해야 할일이 있기 때문이고 영혼이 경험해야 하는 것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거든.

지금의 너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훗날에는 이러한 내 말이 느껴질 때가 있을 거야.

지금 당장 네가 너 자신이 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들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전체적인 꽃이라는 무리 속에 특정한 꽃일 수 있다는 인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익함을 가져다준다고 할 수 있어.

사람들이 이러한 인식을 가지게 되면 본인이 어떠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서 귀신도 두렵지가 않고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

자신이 어떠한 존재라는 것을 모르니까 두려운 것이 아니겠어?

어디로 갈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기에 혼란스럽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것이 아닌가 말이지.

아들아!

앞에서도 몇 번이나 말을 했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의미에서 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반드시 있어야 하기도해.

귀신을 불러들이는 것도 자신(自神)이고 그러한 귀신을 쫒는 것도 자신(自神)이며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도 자신(自神)이며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 또한 자신(自神)이라는 거야.

물론 하나님이 어떠한 존재라고 규정하고 범위를 정하는 것 또한 스스로 임은 물론이고

이러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행위를 우리는 수행을 한다고 하며 그 수행의 여러 가지 방법 중에도 우리들이 하고 있는 것은 관음명상법인거지.

결코 수행이란 할 일없는 사람들이 시간이 남아돌아 하는 것이 아니야.

명상으로 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는 에너지의 법칙에 의한 것이기도 한데 우리들의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보고 듣게 되는 우주의 진동들은 때로는 빛으로 때로는 소리로서 오게 되거든.

그러한 것들을 이 세상에 끌어들이게 되면 주위가 그 진동의 영향으로 밝아지고 정화가 되는 거지.

우리가 그 집에서 3일간 머무는 동안도 그 집에서 일어난 일들이 이러한 내 말이 사실임을 뒷받침 하고 있었어.

우선 환자가 변화를 보이고 있었는데 밤마다 꿈에 돌아가신 조상님들이 나타나는 것이 없어졌다고 했으며 잠자리가 편안해졌고 배가 남산만큼 불러있던 것이 가라앉기 시작했으며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던 딸아이 역시 변화를 보였는데 매일같이 나타나던 남편이 나타나지 않더라는 거야.

이 말을 듣고 나 역시 놀라운 명상의 힘을 눈으로 확인을 하였고 신께 감사의 기도를 하였지만 한 가지 우리들이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어.

일단 우리들이 명상으로 그 주변을 맑혀 그들을 좋게 해주었다고 하더라도 그 같은 기운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켜가는 것은 그들 본인들이라는 거야.

이것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경우도 매한가지임은 틀림이 없거든.

그래서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하는 거야.

나 자신을 비천하게도 고귀하게도 만드는 이는 다른 이가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하고 네 안에 존재하며 세상 모든 이들 안에 존재하는 창조주의 힘이라는 거지.

우리가 떠나오고 나서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오는 것은 바로 명상을 하고 있는 그분의 부인인데 이분역시 자신이 체험을 했기에 그토록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진정 체험을 하지 않고서도 신의 힘을 믿고 따를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롭고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구나.

아들아!

우리들은 모두가 신의 자녀들이고 창조력을 갖추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피조물에다가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 중에 어떠한 선택이 우리의 삶을 보다 윤택하고 즐겁게 할까?

이것 역시 우리의 선택이야.

어떠한 선택의 순간도 신은 우리에게 허락을 하고 있어.

그만큼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거지.

네가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이것만은 명심하렴.

어떤 선택이 나를 이롭게 할 것인가?

자신의 죽음이, 또는 내 아들이, 내 배우자가 나를 떠나간다는 슬픔에 빠져 자신의 안위조차 위협 받아야 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하며 오늘은 여기에서 쉬어가도록 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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