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이제는 서서히 막을 내려야하는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구나.
모든 일에는 처음과 마지막이 있기 마련이라는 말은 지금 이 순간 진실이고 있어.
그러나 우리들의 인생전체를 놓고 본다면 아직까지 라는 말의 적용대상이 되겠지?
다시 이러한 우리들의 인식을 좀 더 넓혀서 전생과 후생까지를 대입시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또 그 너머에 존재하는 또 다른 여정들은…….
아마도 끝도 시작도 없을 것이 아니겠니?
그렇지만 우리들이 살아있는 동안 반드시 알아야할 상황들이 있어.
그것은 절대 우리들의 지금 인생을 허송세월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우리들이 무엇을 진리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 미래를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 같은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과 육신의 욕구를 인내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거지.
이 같은 말을 하기란 너무나 쉬운데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워.
그래서 말인데 오늘은 우리들 모두가 힘겨워하는 마음과 에고의 작용에 대해 말을 해보자꾸나.
우선 마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우리들을 혼란 속에 빠트리고 있는데 이러한 이유가 바로 신이 우리에게 끝도 없는 자유를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해.
다시 말해서 우리들 안에 신이 있음으로 인해서 어떠한 제한 선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거야.
차라리 선택의 여지조차 없이 한가지의 마음만 있다면 좋을 테지만 아쉽게도 그렇지가 않거든.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힘인 동시에 비애이기도 한거야.
생각을 해보렴.
신이 정해놓은 일만 하게 된다면 이 같은 마음의 혼란을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겠어?
이렇게 된다면 아마도 산다고 할 수조차 없을 거야.
그렇지 않니?
정해져 있는 길을 그대로 가기만 하면 될 경우 어떠한 마음의 변화도 겪지 않아도 될 것이고 마음 또한 움직일 이유가 없어지거든.
한마디로 세상 살맛이 안 난다는 것이고 세상살이 자체가 의미를 상실해 버리고 말 것이며 존재할 이유가 없을 거다 이 말이지.
이렇게 놓고 본다면 마음이 혼란스러운 것만 요령 있게 피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네 하는 답을 얻을 수가 있을 거야.
그렇다면 혼란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까하는 물음 또한 생길 거라 여겨져.
그렇지?
먼저 혼란스러운 마음이 어떻게 들게 되나 이유를 분석해야 이 같은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인 만큼 그 원인 분석을 해보기로 해.
먼저 마음이 혼란스럽게 되는 이유 중에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이 살아나온 환경에 달렸으리라 생각이 들어.
그러한 환경이 전생으로부터 오거나 이생에서 오거나 관계없이 살아나온 환경에 따른 성격형성에 원인이 있을 거라는 거지.
가령 예를 들어 전생에 내가 장군으로서 전쟁터에 참여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한다면 이생에도 그러한 기억들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힘들어 한다는 거야.
이것은 우리들 혼자만의 문제라기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인자에도 영향이 있다고 봐야해.
그런데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내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방향타 역할을 하는데 이러한 과정을 겪는 중에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 같기에 혼란을 겪는 거지.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달마조사(祖師)와 이조 혜가의 대화중에 나오는 대목이거든.
너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한 번 더 그분들의 대화를 더듬어 볼까?
수행을 열심히 하던 혜가는 항상 일어나는 마음의 혼란함으로 인해 더 이상의 진전을 못하고 헤매게 되던 중 달마대사를 찾아가게 되었어.
삼일 주야를 눈을 맞으며 기다려도 제자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신의 팔을 잘라 바치게 되는데 이 같은 극단적인 행동에 감동을 받은 달마대사는 혜가를 제자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지.
그러자 혜가는 자신의 마음에 혼란을 안정 시켜 줄 것을 요청하는데 거기에 대한 달마대사의 답은 그야말로 걸작이었어.
"혼란스러운 네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러면 내가 없애 주리라"
이 유명한 대화는 아직까지도 수행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데 말은 쉬우나 이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는 어려운가 봐.
실체도 없는 마음이라는 것에 잡혀서 혼란을 겪는 것이니 진정한 네 모습을 찾으라는 달마대사의 말씀을 말로만 들어서는 자신의 실생활에 적용시키는 어려운 법이거든.
그만큼 마음의 혼란스러움에 적용을 받지 않고 살아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이 없냐고?왜 없겠니?
있고말고.
다만 네가 그러한 점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일뿐이지.
네가 진정 마음의 혼란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우선 너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야해.
진정한 너의 모습은 마음이 아니라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는 이 라는 인식이 있어야한다 이 말이야.
다시 말해서 진아(眞我)의 모습을 봄으로서 마음에 집착하는 네가 진짜의 네가 아니라 지켜보는 네가 진정한 너의 모습임을 자각해야한다 이 말이거든.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깨달아야하는 이유라 할 수 있어이것이 바로 모든 수행자들이 얻고자 하는 마음 상태이기도 하고…….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걸어가고 있는 종착점이기도 한거야.
아들아!
내가 처음 태백산에 있는 센터에서 명상을 할 때였어.
부도가 난 일이 항상 나를 괴롭히는 가운데 하루 웬 종일 명상에만 몰두하고 있었지.
명상을 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망상으로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기가 밀려오는 거야.
명상을 하는데 왜 내가 잡념을 따라 가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니.그래서 생각이 일어나도 생각을 따라가지 않고 집중상태를 유지를 해보았어.
지혜안에 집중이 된 채로 하나의 빛을 떠올려서 그 빛에 집중을 하고서 생각을 무시해 버렸던 거지.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생각들이 집중된 내 의식 주위로 둥둥 떠다니는 거야.
내 의식은 집중된 체로 있는 가운데 생각들만이 떠다니는 이 경험은 참으로 내게 많은 것을 선사해 주었어.
어떠한 경험을 했냐고?
무슨 경험이 따로 있겠니?
그저 연극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
다시 말해서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을 철저하게 경험하고자 해서 열심히 연극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야.
이것이 마음의 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왜 상관이 없겠니?
우리들의 본모습은 마음의 혼란으로 괴로워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마음 때문에 괴로워 할 것인가 이 말이거든.
아들아!
이 같은 점을 우리가 느껴보기 위해 다시 한 번 신 의식 속으로 들어가 보자꾸나.
이번에는 신이 어떻게 일을 하는가 하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기로 하자 이거야.
지난번에도 잠시 말을 했지만 신이란 어떠한 한곳에 머무는 형상이 아니라고 했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접근을 해보자는 거지.
만약 내말대로 그와 같은 의식체가 신일경우 신이 이 세상에서 일을 하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뭔가 도구가 있어야겠지?
바로 이것이 우리의 육신이며 두뇌의 작동에 의한 마음이 일으켜지는 거다 이 말이지.
이러한 마음의 혼란스러움 끝에 어떠한 결말을 창출해 내는데 그 같은 결말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우리들은 실망을 하고 분노까지 하거든.
자!
어떠니?
이제 뭔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니?
앞서 너와의 대화에서 말했듯이 결론이 이미 나와 버렸어.
마음의 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어떠한 마음의 결정에 따른 결과가 오더라도 만족을 하는 거라는 것을 말이야.
이것이 거듭되다보면 어떤 일도 결정하는 것이 두렵지가 않고 마음의 혼란스러움에 시달림을 받을 필요도 없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옳다고 싶은 일을 하고 결과를 겸손 되게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거든.
그렇다면 에고는 어떠냐고?
아들아!
에고라는 말은 사실 외래어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 단어조차 잘 모르고 있어.
에고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수행자들인 만큼 이 말의 뜻은 영어본연의 뜻보다는 수행자들이 가지고 있는 아만심(我慢心)이나 분별 심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겠구나.
그렇다고 보면 이러한 에고는 수행을 많이 하신 분들일수록 더욱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이 같은 에고가 생기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
이것을 알기 쉽게 설명을 하자면 너희들의 시각에서 보는 것이 좋을듯하니 너희들 학교 성적으로 비유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
네가 만약 전교 1등을 한다면 엄청나게 자랑스러울 것이 아니겠니?
그렇지?
이러할 때 네가 조금 자랑을 하게 되면 남들이 너를 보고 에고가 높다고 표현을 할 거다 이거지.
이것처럼 수행자들이 수십 년 동안 철저한 계행의 생활을 해나왔다면 그와 같은 일에 엄청난 의미부여를 하게 되거든.
그러할 때 다른 일반인들이 막행막식을 하는 것이 어떻게 자신과 마찬가지로 볼 수 있겠냐는 거야.
이러한 마음상태를 에고라고 표현을 하는 거지.
하긴 그 같은 수행이 쉽기야 하겠냐만 그렇다고 다른 이들을 하찮게 여기게 된다면 자신의 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든.
한마디로 분별의 벽을 못 넘게 된다 이거야.
너도 생각을 해보렴.
자신이 분별의 벽을 넘었다면 에고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남들의 어떠한 행동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아직도 남들의 막행막식이 눈에 거슬리고 다른 이들보다 자신들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있다면 엄연히 경계의 벽이 있다는 소리지 뭐겠니?
이래서 내가 그들을 아직도 과정에 머물고 있을 뿐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는 거야.
그렇다면 에고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냐고?
그 또한 앞서 말 한거와 마찬가지야.
아들아!
우리들이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 이와 같은 마음이나 에고는 영원히 함께 하게 되어있어.
없애고 싶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같은 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임으로서 우리들이 한 발자국 멀어질 수 있어.
결코 벽이나 나무에 몸을 부딪치고 머리를 부딪쳐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야.
우리들이 알고 있듯이 마음이나 에고를 넘어서야 하는 것 보다는 잘 활용을 하고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들을 극복하는 길이다 이거지.
다들 옛 성현들의 말씀은 달달 외우고 다니면서 활용은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정말 그들이 마음과 에고의 벽을 넘고자 하긴 하는 건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아.
꼴란 고기 몇 점 안 먹는다고, 남녀 간의 성행위를 안 하고 산다고 해서 성불한 것처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해.
지난번에도 말을 했지만 자신이 성불을 했나 아닌가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부처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잣대가 되어야지 스스로 생각할 때 대단하다 여겨서는 마왕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거든.
이것이 바로 마음과 에고의 벽을 못 넘은 이들의 마음상태인거야.
왜 수많은 경전이나 스승들이 하심을 하라고 했겠니?
지금 육신의 스승께서 무엇 때문에 세상 사람들 모두를 3세계 이상 모두 올려놓았다고 하겠는가 말이야.
심지어 스승께선 이런 말도 하시더구나.
"세상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만 유독 내 제자들만이 문제입니다."
언젠가 출가승 한분이 에고 때문에 상당히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서 며칠 동안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어.
그때는 그분이 아주 좋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 같더구나.
한마디로 출가승들은 일반 수행자들과는 다르게 뭔가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는 말씀을 공공연히 하고 계시는데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어.
진정 그들이 그렇게 여긴다면 할 수 없겠지만 자신의 마음과 에고의 장벽은 허물길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거든.
물론 그들의 그러한 생각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야.
평생을 동정으로 출가의 길을 걸으신 분을 비롯해서 수십 년을 하루같이 옆도 돌아보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 하셨는데 왜 그렇지 않겠니?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 그간의 고생이 보람이 있는 것이지 다른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라면 얼마나 억울하겠냐는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내가 그랬거든.
내가 명상을 하루 종일 하는 삶을 살 때는 명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람들 같지 않았으며 철저한 계행을 목숨처럼 여길 때는 막행막식하는 사람들이 짐승들처럼 보일 때도 있었어.
십년을 하루같이 외골수적인 삶을 살다가 나 자신이 어떠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보니 허망하기 이를 데 없었고 이처럼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처럼 힘들게 노력을 했던가 하는 마음 또한 들었거든.
그렇지만 아들아!
또 다른 시각을 가져보니 그렇지가 않더라는 것이고 그 너머에는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어.
우리들이 어떠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난후 부터가 수행의 시작이었던 거야.
이제는 우리들이 주체가 되어서 삶을 아름답게 꾸며가야 한다는 시각을 가졌고 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자신들이 알던 모르던 그러한 존재임과 동시에 그러한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거지.
특히나 수행을 하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거든.
이것을 특별나게 무엇인가를 한다거나 그러한 사실을 알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거야.
너도 생각을 해보렴.남들처럼 살생을 하지 않고 명상을 통해 우주의 좋은 에너지를 세상에 가져 오는 것이 어떻게 좋은 일이 아닐 수 있겠니?
그렇다고 해서 남들에게 뻐기거나 자랑할 필요도 없으며 남들을 업신여겨서는 더욱 곤란하지 않겠어?
태양이 온 세상을 밝히고 있고 온갖 곡식들과 생명들을 돕고 있지만 그가 언제 자랑을 하거나 뽐을 낸 적이 있냐는 거야.
번개가 땅에 질소비료를 준다고 자랑을 하던가 말이지.
비가 땅을 기름지게 만들고 생명을 탄생시킨다고 뽐낸 적이 없거든.
이것은 세상 사람들을 위한 말이 아니라 마음과 에고의 장벽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수행자들을 위해 하는 말이야.
이 같은 마음과 에고로 부터 자유로워 질수 있는 해결방법은 자신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보다 세상 사람들과 평등해 지는 거라 할 수 있어.
서두에서도 말을 했지만 마음과 에고는 수행자들의 훌륭한 도구일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의 친구이지 결코 없애야할 성질의 것이 아니고 없앨 수도 없는 거야.
만약 이 같은 것들이 없으면 우리들은 존재할 수조차 없음을 알아야해.
그래서 내 육신 스승께서는 마음과 친구가 되라고 말씀하신거지.
아들아!
그렇긴 하지만 네가 알아야할 사실이 있어.
에고라는 것은 자꾸만 내버려둘 경우 분별의 벽이 커져만 가기 때문에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해.
너도 앞에서 보았지 않니?
수행자들이 얼마나 많은 분별 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말이야.
이러한 것들을 내버려두면 수행자들을 마왕으로 만들기 쉽게 되기에 언제나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자신의 마음상태를 살펴야한다 이 말이지.
언제나 마음은 주위환경의 영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들이 어떠한 정보를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마음상태가 시시각각으로 변화를 보이고 있어.
이러한 점을 우리들이 알고서 마음상태를 조절해 나갈 필요가 있는 거야.
언젠가 내가 어린 시절 이세상이 멸망을 해버렸으면 한 적이 있었어.
물론 최근에도 방향을 달리하긴 했지만 그럴 가능성을 보고 있기도 하고…….
이러한 점들이 바로 내가 받아들이고 있는 정보의 영향이고 그 같은 정보를 사실로 인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말이거든.
예전에 내가 한참 돈을 벌 때는 이세상이 모두 내 것인 것만 같았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어.
그러나 하는 일마다 꼬여들고 되는 일이라고는 없게 되자 이처럼 고통스러운 세상이 존재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데 까지 마음이 움직이더구나.
이 같은 점은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봐야해.
멀쩡하게 잘나가던 사람이 단번에 무너지게 되면 곧바로 극단적인 선택들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거야.
조금 즐거울 때면 온 세상이 나를 위해 마련된 것 같고 신의 축복아래 있는 것 같다가도 하는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거나 기대가 무너지게 될 때면 세상이 온통 암흑천지 같은 거지.
그러한 가운데 희망을 보지 못하면 스스로 목숨까지 버리게 되는 것이 아니겠어?
바로 이러한 경우 이 사람에게는 지구가 멸망을 한 것과 같은 거야.
나 역시 이러한 굴곡속의 삶을 살아나왔어.
그렇지만 세상사가 있는 자리에서 완벽하게 보이게 되자 이제는 어떠한 인식도 고정된 것이라고는 없게 되었지.
어떠한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보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들이 어떠한 인식을 가지려고 하는가 하는 물음만이 남게 된 거야.
하지만 아들아!
이와 같이 모든 인식들이 우리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하더라도 거기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겠니?
우리들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지구 앞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할까?
아무렇게나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즐겁게 사는 것도 좋겠지만 보다 신 의식에 가까운 행동을 해야 하지 않겠냐 말이야.
혹 내게 손해가 오더라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득이 된다면 양보할 줄도 알아야 진정한 신으로서의 행동이 아니겠어?
요즘 동수들이 가끔씩 나에게 전화를 해오는데 첫인사가 요즘 하는 일이 잘되는가 하는 말이야.
그래서 나는 그저 그렇게 살고 있으며 물질적으로 어려움이 여전하다고 말을 하거든.
그럴 때면 하나같이 그들이 하는 말이 있어.
자신들은 잘되고 있는데 우리들이 아직까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니 수행이 덜 된 것 같다고 말이야.
웃기지도 않아서 코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철부지 어린아이들의 순진한 발상에서 나온 말이겠거니 하며 속으로 기도를 하곤 해.
"신이시여!
부디 저들의 오만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언젠가 9십이 내일 모레이신 노인께서 말씀을 하시더구나.
어떤 농부하나가 서리가 내린 후 씨를 뿌리기에 이웃사람이 말을 했다는 거야.
"아니!
당신 미쳤나요.
지금 씨를 뿌려서 수확을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쓸데없는 시간 낭비에다 헛고생만 하는 것 아닌가요?"
이 말끝에 농부는 담담하게 대꾸를 하더라는 거지.
"저도 몰라요.
제가 농사일을 어떻게 알겠어요.
그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거라 믿고서 뿌리는 것뿐이랍니다."
그런데 이해 날씨가 이상기후를 보이는 바람에 추수를 하게 되었는데 정상적인 농사보다 월등하게 많은 수확을 하였다는 거야.
동네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했는데 다음해에 또다시 농사를 짓게 되자 이번에는 반응이 달라졌다더구나.
사람들마다 이 사람을 부러워하고 대단하다 칭찬을 하자 자신도 모르게 에고가 발동한거지.
그러다 보니 공공연하게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녔어.
"내가 얼마나 대단한가 보세요.
다른 이들은 생각지도 못할 일을 내가 했지 않았습니까?
올해도 어김없이 농사가 잘 될 겁니다."
이렇게 자신을 하던 이 사람이 그해 농사를 지었더니 웬걸 전혀 아니올시다가 되버린 것이었고 쫄딱 망해버렸다는 거야.
아들아!
이와 같은 일은 이 세상에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해.
우리들 안에 내면의 신이 한다고 여겨야지 절대 우리들이 잘나서 일이 된다고 여겨서는 곤란한거야.
우리들은 신이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어.
몰론 우리자신이 신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신은 깊숙이 내재해서 우리들이 깨워주길 기다리는 존재일 뿐 모두 다 드러난 것은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하거든.
본인이 신처럼 굴어서 안 될 일은 없지만 진정 자신이 신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한다면 모든 이들 또한 신이라는 것을 알아서 결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는 따위의 짓은 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야.
다른 이의 의식 속에 들어가 그를 마음대로 조종을 할 어떠한 짓도 않을 거라는 거지.
이러한 모든 행위가 잘못된 개념의 신을 찾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자신의 에고로 무장된 마음을 따랐기에 일어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어.
내가 사람들의 어떠한 행위들에도 면죄부를 주고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들 자신이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롭고자 선택한 인식이었지 결코 사람들로 하여금 막행막식을 일삼으라는 뜻은 아니거든.
보다 진보된 지구촌의 앞날을 위해서 어떠한 인식과 행동이 도움이 될 것인지는 우리들 각자가 알고 있어.
오늘도 변함없이 너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힘은 너에게 있으며 너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하며 오늘을 마무리하자꾸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