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지난시간도 말을 하다 말았지만 컴퓨터를 알고부터 내게는 또 다른 삶이 펼쳐지고 있었어.
먼저 불교관련 사이트나 기독교 등의 종교관련 사이트 접속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참으로 다양한 인식들이 존재하고 있었지.
동수들과의 생활만 10 여년을 이어져 오고 있었던지라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다양성을 모르고 있었는데 참으로 많은 인식의 장들을 제공하고 있더구나.
그 같은 일은 나에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신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내인식의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어.
항시 말로서 모든 이들이 신을 향해 나가고 있다 떠들었는데 현장에서 직접 체험을 하게 되었던 거지.
참으로 다양한 목소리의 신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다들 좋은 말들을 하고 있더구나.
그렇게나 많은 이들이 도덕적이고 성인다운 말을 하는 것과는 반비례로 세상이 비도덕적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어.
그러한 가운데 나의 다양한 대리체험들을 통한 인식 넓히기는 이어져가고 있었던 거야.
모든 이들이 각자가 경험하고자 선택한 삶을 진솔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어쩌면 또 다른 희열을 맛보고 있었는지도 몰라.
어쩌다가 한번은 영적인 사이트를 들어가 보았는데 사람들의 궁금해 하는 모습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안돼 보이기도 해서 한마디 거들었다가 혼이 났던 적도 있었어.
자신과의 인식차이를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그들이 자신의 에고가 상처받는 것을 힘들어 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는데 왜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가 하는 결론을 얻게 되더구나.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들이 살아가고 경험하고자 선택한 그들의 삶이 그들에게 그들일 수 있는 만큼의 인식을 허용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거야.
얼마나 다양한 인식계층들이 존재하는가를 절실하게 경험하였고 그러한 일들 모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거지.
그리고 우리단체의 홈피에도 들어가 보게 되었는데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쳤던 내가 우리단체의 홈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발전이었어.
이런저런 생활상의 일들을 홈피 게시판에 올리는 재미에 맛을 들이다보니 나도 모르게 타자실력이 엄청나게 발전이 되더구나.
이렇게 소일거리를 하며 지내던 어느 날 평상시 동생같이 여기던 사형이 찾아오게 되었어.
나와는 오랜 세월을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는데 어떤 사정이 있어서 오게 된 거야.
아마도 누구와 심하게 다툰 모양이었는데 갈 데가 마땅치 않다보니 나에게 도움을 청해 온 거였어.
그런데 참으로 곤란했던 것은 사형과 다툼이 있었던 다른 분 역시 나와는 잘 아는 분이었지.
두 사람의 중간입장에 서야했던 내가 참으로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 거였는데 오겠다는 사람을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오라고는 했지만 그 당시 내가 처해있던 상황을 보자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었어.
그 사람을 먹이는 것조차 수월치 않을 정도로 재정이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거야.
게다가 예민한 사저는 그 사람이 어떠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받아들이지 말 것을 주장했는데 나로서는 그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어.
소위 말하는 마장이 들었다고 할 수 있는 그분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몰랐었지만 사냥꾼도 집으로 찾아드는 산짐승은 사냥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혹 그가 그렇다 해도 뿌리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거든.
도착한 첫날 여러 가지 사정을 내게 말하며 정중하게 부탁을 하더구나.
"동생이라 생각하고 부디 꾸짖어서라도 나를 도와주세요."
이 말은 자신이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으니 그리로 부터 구해달라는 소리인 것 같았는데 함께 지내는 동안 지켜보니 그러한 첫 인사와는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었어.
아들아!
내가 이친구의 일을 말하기에 앞서 양해를 구해야할 사실이 있어.
그것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 어디까지나 내가 생각하는, 인식 속에서 이루어진 일일뿐 그와는 무관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러한 내 인식이 밖으로 나온 것은 바로 내안에 들어앉은 내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아달라는 거야.
이것은 그분들의 명예를 위해서 말을 하는 것이니 부디 양해하길 바라며 이야기를 진전시키기로 해.
이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이분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당사자로부터는 쉴 새 없이 항의성 전화와 메일이 이어졌는데 참으로 심한 독설로 내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어.
차라리 거짓말이라도 해서 없다고 하면 될 것을 거짓말을 하기 싫어서 함께 있다고 했더니 그에게 퍼부어야할 화풀이를 내게 하는 것이었지.
아무리 나를 통해서 나가는 남의 욕이라 해도 듣는 내게도 좋을 리 만무했고 어떨 때는 두 시간 넘게 통화를 해야 할 때도 있었는데 얼마나 큰 피해를 당했으면 저럴까 십분 이해가 가는지라 말없이 들어 주어야만 했던 거야.
그런데 더욱 기가 찬 것은 처음 나에게 꾸짖어 달라던 그 친구의 태도가 갈수록 기고만장해 지고 있는 것이었어.
급한 불을 끄고 나니 마음이 다소 안정이 된 탓인지 내 식구들을 상대로 기도 차지 않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던 거지.
전생에 자신이 왕이었고 나는 자신의 신하였다는 둥, 사업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사업을 하고 있다는 등의 말을 한다는 거야.
모두들 식구들이라 나에게 이런 말을 전해주었는데 그들이 특별히 그와 원수진 일이 없는 바에야 나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 같은 말은 사실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어.
그러나 나 역시 그 친구와 인연이 깊다는 인식은 하고 있었던지라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넘기고 있었지.
그런데 자꾸 그러한 말들이 반복적으로 들리다보니 슬그머니 짜증이 나기 시작하더구나.
설사 내가 자신의 전생 부하였다 하여도 이제는 역할을 바꾸어서 내부하가 되어줘야 마땅한 일이지 그러한 전생을 주장해서 뭘 하자는 건가 말이야.
만약 그가 내 식구들을 거느리고 이 공장 운영을 맡아서 할 자신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넘겨줄 자신이 있어.
언제든지 와서 한다면 당장이라도 넘겨줄 거다 이 말이거든.
돈 한 푼 구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자신이 사장을 맡는다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소리인데 기도차지 않더구나.
자신이 밥값도 못 내고 얹혀살면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 밉살스럽게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가 이곳에 머문 지 6개월이 되어갈 무렵이었어.
도저히 참지 못한 내가 이 친구를 쫒아 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거야.
그런데 그저 쫒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뭔가 핑계를 만들어야겠다 싶은 것이 아니겠니.
그래서 내가 생각해 냈던 것이 냉면장사였어.
뭔가 일을 벌이게 되면 일하기 싫어하는 그가 자신이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 인식을 할 거다 여긴 거지.
아들아!
사실은 말이야.
너에게만 말하지만 내가 이렇게 일을 꾸민 것은 나 자신에게 확인을 시키기 위한 나 자신을 위한 이벤트였어.
무슨 말이냐 하면 내안에 존재하는 내면의 신에게 저 사람은 저래서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고 보고를 하듯이 일을 벌인 것이다 이 말이야.
솔직히 나로서는 이친구나 누구나 특별하게 좋아하는 상대는 없거든.
모든 것을 내면의 신이 시켜서 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대부분은 싫어도 억지로 만나야하고 그들의 좋은 면만 보려고 노력해야만 했어.
그러다 보니 다른 누군가가 이친구의 잘못을 말해도 흘려듣곤 했던 것인데 나 자신이 그가 얼마나 불편하게 행동하는가를 확인하고서야 정말 문제가 있다 여긴 거지.
그런데 이러한 내 인식에도 불구하고 그를 계속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우리들이 모두 한 스승 아래 제자라는 단한가지 이유였던거야.
그가 당장 단체를 떠난 것이 아닌 다음에야 그를 배척할 순 없었고 게다가 우리들의 수행목표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식인 바에야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거든.
그러나 이러한 내면의 의도와는 달리 내 두뇌는 그를 이해하고 감싸 주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던 거지.
처음에는 내면으로 메시지를 보냈어.
그가 워낙 신통력이 있다 보니 내 마음을 아주 잘 읽어내고 있었거든.
그래서 몇번 경고를 했던 거야.
"이제 그만 까불어라.
자꾸 그렇게 버릇없이 굴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너를 쫒아낼 수밖에 없어"
이러한 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선을 넘고 있었어.
결국 그러다보니 내가 꺼리를 만들게 된 거지.
아들아!
여기에서 내가 그 친구가 마장에 빠졌다고 표현하는가에 대한 책임 있는 말을 해야겠구나.
그가 마장에 빠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평상시에도 다른 이의 의식 속에 들어가는 행동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밥을 먹다가도 자신이 관심 있는 사람이나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여야겠다 싶으면 그 사람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그러한 일을 당한 상대방은 그의 의도대로 이상한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었지.
바로 이와 같은 일을 내가 목격하였기 때문이었으며 나에게로 올수밖에 없었던 이유역시 이러한 행동으로 인한 사건이 생겼기 때문이었거든.
게다가 더욱 가관이었던 것은 몇 달이 지나자 이제는 나에게 자신이 행하고 있는 수행법까지 알려주겠다는 말도 스스럼없이 하고 있었어.
과거의 수행법을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참으로 어처구니없었지.
물어보면 절대로 다른 수행은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그러한 수행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소리를 하고 있었으니 거짓말까지 하고 있었던 거야.
이뿐만이 아니었어.
직원들에게 전해 들었던 말로는 한국의 누군가와의 통화중에 아예 대놓고 이상한 말을 하더라는 거지.
어떠한 말이었냐고?
자기가 지금까지 남의 집에 일을 해서 잘되는 꼴을 못 봤다면서 우리공장의 일이 잘 될 리가 없다는 말을 하며 깔깔거리며 웃더라는 소리였는데 마치 악마가 웃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치더라는 거야.
도대체 사장님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사람을 집에 데려다 놓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더구나.
이 뿐만도 아니었지만 더 이상 말을 하면 그분의 인격뿐만이 아니라 내 인격에도 손상이 올지도 모르니 그만해야겠구나.
지금까지도 많은 비리를 내놓았는데 무엇을 망설이냐고?
너는 아직도 모르겠니?
그의 잘못된 점들이 모두 내안에 들어앉아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들이었고 그가 나를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내가 그를 더 이상 욕을 보이게 되면 나 역시 똑같이 욕을 얻어먹어야 하기 때문에 이쯤에서 멈추려고 하는 거지.(ㅎㅎㅎ)
수없이 많은 시간을 나 자신의 부정성과 싸움을 벌려야 했어.
사랑으로 포용하고 끝까지 보듬어 줄 것인가?
아니면 박살을 내서 버르장머리를 고칠 것인가?
결국 이러한 상태에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이벤트를 벌려 돌려보내리라 작전을 세운 거였어.
그가 어떠한 수행을 행하였는지가 궁금하다고?
내가 피해가고 싶었는데 네가 기어코 나를 그러한 쪽으로 몰고 가는구나.
어차피 네가 물어온 질문이니 답을 해주마.
그가 했다는 수행이 쿤달리니 행법 인 것 같았어.
자신이 어떻게 기를 돌린다는 것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이러한 수행법이 틀렸다고 말하기보다 이친구의 수행개념이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어떤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떤 이들에게는 문제가 발생되는 것을 보면 이와 같은 내말이 이해가 갈 거야.
왜 이 같은 일이 발생하느냐고?
이것이 바로 전생에 내가 어떠한 짓을 하고 살았나 하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겠니?
이래서 많은 경전에서 수행자들을 방해하거나 욕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거라 생각해.
자신이 수행자들을 괴롭힌 적이 있거나 남들의 수행에 방해를 했다면 이와 같은 마장을 불러들이게 된다는 거지.
이것은 말이야.
아주 중요할 수도 있는 말이거든.
자신이 인과를 뛰어 넘었다면 이와 같은 말조차 필요가 없게 되겠지만 이친구의 경우는 아주 심각한 지경에 빠진 것 같았어.
왜냐하면 이친구의 말이 자신이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중에는 속이 후련하더라는 말까지 쏟아놓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이것이 바로 이친구가 인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의 인식에 머물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거야.
만약 이친구가 인과로 부터 자유로웠다면 이러한 말이 나와서는 안 되는 법이거든.
당신이 전생에 내게 한 짓을 지금 내가 갚아주는 것이니 억울해 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말인데 한마디로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인과법을 적용시키고 있었어.
이 같은 그 친구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소리가 아니라 이런 식이 된다면 인과의 굴레에서 헤어날 수가 없음을 말하는 거야.
전생에 네가 나를 때렸으니 이생에서 너를 때리겠다는 말이니 이 어찌 인과를 넘었다고 볼 수 있겠냐는 거지.
그래서 우리들은 원수를 사랑해야만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자유를 위해서 내 철천지원수조차 사랑해야 하는 거지.
이것은 선택의 문제인데 참으로 넘기 힘든 벽이 아닐 수 없어.
나 역시 그 친구가 내게 와서 어떠한 짓을 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6개월을 참고 지냈던 것인데 마지막 순간에는 그 친구와의 인과의벽을 깨트리는 선택을 한거야.
더 이상 그러한 공부가 내게는 필요치 않다는 선언을 한거였어.
결국 이러한 내 선택에 따라 예상된 그 친구의 행동은 이어졌고 나는 그를 쫒아 낼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게 되었던 거야.
어떤 일이 있었냐고?
그것은 말이야.
그 친구의 평상시 수행 관을 알고 있는 내가 그의 약점을 이용한거였어.
워낙 그 친구가 깔끔한 성격인데다가 세상 사람들의 업장이 묻어올까봐 전전긍긍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지내야하는 자리를 마련하여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분별심이 있나 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만들었거든.
먼저 냉면장사를 하기위해 함께 가서 진열을 하도록 만들었는데 꿔다놓은 보리자루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었어.
한마디로 자신이 할일이 아니라는 거였는데 그 당장 쫒아 버리려다가 남들 눈도 있고 해서 참고 있었던 거야.
저녁이 되어서 잠을 자야할 때 그 친구의 이러한 점이 확연하게 드러나더구나.
한방에 6명의 남녀가 자야하는데 도저히 잘 수가 없으니 자신은 택시를 타고 돌아갔던 거지.
우리의 사정상 돈을 절약하기 위해 방을 하나밖에 잡지를 않았는데 한 그릇에 3원을 하는 냉면을 얼마나 팔아야 80위안짜리 택시를 탈수 있는지 상고출신인 그가 모를 리 없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택시를 타고 퇴근을 했고 다음날은 또다시 택시를 타고 출근을 하는 거야.(하루일당20위안)
게다가 한술 더 떠서 택시를 합승 하려다가 함께 탄 합승객이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탔던 택시를 내리기까지 하는 통에 함께 일을 하러 동행했던 사람이 욕을 하기까지 했어.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그렇게나 못 참으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말이었는데 할 말이 없었지.
물론 나 역시 담배를 피우는 승객 때문에 가슴이 따가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그러나 아들아!
자신이 과거에 하루에 담배를 몇 갑이나 피우면서 남을 괴롭혔다는 말을 했던 것은 바로 그 친구 자신이었어.
그러한 과거의 자신이 뿌려놓은 구정물이 자신에게 돌아온 것을 모르고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그렇게나 남을 욕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르는 처사가 아니겠냐는 거야.
이래서 내 육신 스승님께서는 이런 말로 수행자의 분별 심을 경계하고 계셔.
"한마디로 웃기지도 않는군요.
이제 겨우 몇 년 고기를 먹지 않고 술, 담배를 하지 않았다고 일반인들 알기를 우습게봅니까?"
이러한 스승님의 가르침이 진정 우리들이 행해야할 지표가 맞는다고 한다면 그 친구의 행동은 스승님 제자가 해야 할 행동거지는 아니었어.
게다가 자신의 말처럼 다른 이들보다 우월감을 가져야할 만큼의 수행등급이 높은 것은 더 더욱 아니었고 말이야.
자신이 부처라도 된 듯이 행동하고 있었지만 인과의 벽조차 넘지 못한 가련한 수행자에 불과하였지.
3박4일간의 냉면장사를 마치고 결산을 해보니 하루 평균 4백 그릇 이상의 냉면을 팔았는데 불구하고 이익금이 1백 위안(한화1만3천원) 이더구나.
예상을 했던 일이어서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내가 목적하고 있던 일만큼은 해야겠다 싶어서 조용하게 그 친구를 불렀어.
이미 내면으로 내 기운을 느끼고 있었던 그가 벌써부터 옷을 태우면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정말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을 하고 있었거든.
그러나 그러한 느낌들을 무시한 채 좀 더 잔인해지는 선택을 내가 했던 거야.
그날 새벽 4시 가까이 조목조목 따져가며 자신의 행동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제공하였지.
참으로 넘기 힘든 산을 넘었던 것 같았어.
남을 쫒아낸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란 것을 그때 또다시 맛보아야 했는데 좋은 말과 좋은 물건을 선물하기는 쉽지만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더구나.
그렇지만 내게 주어진 의무를 해내야만 했어.
내 위대한 영혼이 선택한 자리를 보다 확실하게 하기위해 아주 잔인해지기로 작정을 한거야.
처음 이친구가 내게 왔을 때는 내가 이 친구에게 이렇게 말을 했어.
"나야 사형이 와서 좋지요.
말동무도 되고 사업적인 파트너도 되고, 또 일에 도움받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러던 내가 이렇게 바뀌었지.
"내게 있는 것은 사형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나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요.
잘 생각해서 앞으로 반성하면서 지내겠다 싶으면 머물고 그렇지 못하면 돌아가시오."
이러한 내말을 듣고서 아침까지 갈등하던 그 친구는 결국 한국행을 선택했고 떠나는 날 이런 말을 남기더구나.
"이것이 끝인 줄 알지요.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겁니다."
아들아!
여기까지 들어보니 어떠니?
그가 아주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니?
내가 의도한바가 그 친구가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나를 설명하려고 애를 썼는데 말을 해놓고 보니 그다지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니어서 우습기까지 하구나.
그러나 내가 목적한 것은 따로 있었어.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 말은 그 친구가 말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친구 안에 들어앉아 있는 마왕이 내게 남긴 말이었던 거야.
물론 그 친구가 내게 오기 전 저질렀던 아니, 저질러야만 했던 행동들이 모두 그 친구 속에 들어있는 마왕의 한 짓이었고…….
내가 이친구의 말이 그 친구가 한말이라기보다 마왕이 한말이라 여기는 이유는 그 친구와 밤을 새워 대화를 해본 결과 그 친구가 자신의 말이나 행동조차 모를 때가 많더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어.
그때까지 함께 지내면서 있었던 여러 가지의 일을 말을 해도 도무지 인정을 않는 거야.
삼자대면까지도 고려를 했지만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스스로가 아니라면 아닌 것으로 끝나야지 괜히 일을 확대시킬 필요가 없었고 어차피 쫒아내는 것이 목적인 바에야 그럴 필요가 없었거든.
어찌 되었건 내가 그 친구와의 대화에서 얻은 결론은 그 친구 안에 두 가지의 의식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었어.
한마디로 마왕이 들어있다 생각한거야.
이 말에 네가 어떤 생각을 일으킬 거라는 것은 예상이 되지만 잠시 그 같은 판단을 보류하기 바라.
이 같은 일은 비단 그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거든.
다시 말해서 우리들 안에 공히 존재하는 부정성들이 그 친구를 통해서 표출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야.
우리들 모두가 그러한 가능성을 모두 다 가지고 있다는 말이고 나 역시 그와 똑같은 점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생색을 내고자 하는 공치사의 말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사실적인 말이거든.
그와의 대화에서도 보았듯이 내가 그를 쫒아내려는 일련의 행위들이 부정성에 의한 행동들이었지 않니?
그렇지?
내안에 있는 마왕의 품성을 이용하여 그를 쫒아내는데 이용을 했던 만큼 그나 내가 똑같은 품성을 가진 거다 이 말이거든.
물론 같은 마왕의 힘을 어떤 곳에 사용하였나 하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근본적인 성분은 똑같다는 말을 하는 거야.
인식을 어느 위치에 두느냐에 따라 내가한 행동도 마왕의 짓일 수 있는 것이며 실지로 내가 생각해도 마왕의 일을 했다고도 생각해.
그렇기에 내가 처음 말을 할 때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기도 했고 입술이 떨리기도 했던 거지.
사람들은 누구나가 남에게 좋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듣기 싫은 소리를 하기는 싫어하는 법인데 나 역시 그러한 점은 마찬가지였기에 자연스럽지 못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어.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중에는 아주 부드럽게 말을 할 수가 있더구나.
이러한 경험역시 내게는 아주 좋았다고 볼 수 있어.
싫은 것을 싫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연습을 한거였거든.
그 친구는 평상시 내가 어려워하고 있던 부정성 표출의 장을 만들어주는 스승이었고…….
한마디로 역할의 분담으로 볼 수 있다 이 말이지.
그 친구는 그러한 역할을 자청해서 해내야만 했던 부처님이었다는 말이야.
생각을 해보렴.
그 누가 이러한 역할을 맡아서 해줄 수 있겠니?
우리들에게 금쪽같은 교훈을 남겨주기 위해 그와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야.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창으로 찌른 자들이 천국을 갈수밖에 없다고 하는 거지.
이제는 이해가 가지?
그러나 아들아!
우리들이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어.
우리들 모두가 이친구와 같이 마왕의 역할을 할 기회가 주어져 있듯이 부처의 역할을 할 기회역시 동등하게 주어져 있다는 거야.
바꾸어 말하자면 내안에는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긍정을 따를 것이냐 부정을 따를 것이냐 하는 선택이 항시 주어져 있다는 거지.
내 육신 스승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이겨내는 방법까지도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항시 긍정 속에 머무르라는 말씀을 하고 계셔.
그러나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 이유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에 초점을 맞추기 쉬워서 자신에 대한 변명을 일삼게 되는데 그럴 경우 자칫 부정성에 치우칠 수도 있는 거야.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보기보다는 남의 잘못을 보게 되는 이유가 두뇌의 판단에 따르기 때문인데 아무리 좋은 머리로 생각을 해봐야 시각이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져있는 이상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가 없거든.
그러기 때문에 모든 잘못을 내 탓으로 돌려야 마땅하며 다른 이의 잘못까지도 내 잘못으로 인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이 있는 자리에서 완벽하다는 결론을 얻기 위함인 거야.
이것은 수행자라면 정말 중요할 수 있는 문제인데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거든.
"제눈 안에 대들보는 보지 못하지만 남의 눈에 티끌은 잘 본다."
이 말처럼 우리들은 남의 잘못을 보기는 쉬워도 내 잘못은 보기가 어려워.
그래서 남의 잘못이 내 눈에 들어올 때 그 잘못이 내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야.
그러할 때 진정 나 자신의 잘못을 알 수가 있게 되고 진정한 참회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우리들이 경계 없는 동일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 거지.
아들아!
오늘 내가 정말 하기 어려운 말을 용기를 내어서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영혼이 우리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역할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하며 오늘은 여기에서 대화의 날개를 접어야겠구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