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축복과 저주는 하나.

배가번드 2022. 4. 19.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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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저주가 하나라고 하면 사람들은 못 알아듣습니다.

축복과 저주는 분명히 반대되는 개념인데 어떻게 하나일 수 있나 하지요.

그래서 이해를 위한 사례가 필요하며 대표적인 예로 결혼을 들 수 있습니다.

결혼은 분명 축복입니다.

그렇지만 결혼생활을 잘못하게 되면 곧바로 저주로 바뀝니다.

결혼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의 대인관계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사람사이에서만 적용될 것이 아니라 직장생활도 매한가지입니다.

요즘처럼 직장구하기가 어려운 시기에 직장을 구한다면 분명히 축복이지요.

그러나 힘든 업무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 같은 직장상사의 등살에 시달리다보면 저주에 빠졌다는 생각을 절로하게 됩니다.

이럴 경우 어떤 생각이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같은 상황을 축복으로 볼 것인가 저주로 볼 것인가는 타인이나 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지요.

하지만 어떤 이들은 아름다운 순간조차도 저주로 받아들입니다.

연인과의 사랑행위조차 아름다운축복으로 보지 못하고 추하고 경박하게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사랑을 집착으로 해석하는가 하면 오로지 동물적인 행위로만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러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오롯이 본인의 과거 행동에서 기인한 것으로 업장 때문에 생긴 인식 탓입니다.

죄의식으로 인해 사물을 왜곡되게 보는 거지요.

이와 같은 일을 잘 보여주는 책이 있습니다.

죽음이후에 펼쳐지는 세계에 대해 기록한 책으로 “사자의 서”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사람이 죽고 나면 저승사자가 나타나는데 일곱 번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업식(業識)에 따라 단계별로 저승사자를 따라 하늘나라로 올라가는데 마지막으로 몰릴 경우 짐승으로 태어난다고 하지요.

처음부터 부처가 나타난 것이지만 자신의 업식에 따라 무시무시한 야차로 보게 되며 두려움으로 인해 피해 달아나는 겁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의식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상대방과의 교류에서 나타납니다.

이런 이유로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합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부처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도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지라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에는 상대방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있으며 정 이해 못하면 말없이 곁을 떠납니다.

싸우면서 한집에 살기보다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낫다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이 세상에 형편없는 사람이란 없으며 형편없는 인식만이 있으니 사람을 미워하기보다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의 이별이란 헤어짐이 아니라 잠시 멈춤입니다.

 

다른 이는 모르겠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