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오늘은 지난 시간 약속한 일들로 이야기를 열어볼까?
지난시간 내가 인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인과 없음을 알 수 있고 인과 없음을 알게 된 후에야 모든 인과가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니?
기억나지?시간이 없어서 건너뛰었는데 이와 같은 일을 말해 보자는 거야.
사실 이 같은 말의 의미를 이미 네게 말을 해주었다만 네가 이해를 못하고 있기에 오늘 다시 한 번 더 반복해서 말하는 거에 불과해.
인과가 없다는 것은 이미 말을 해주었으니 다시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인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인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에 대한 부분만 설명하기로 하자꾸나.
언젠가 내가 네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어.
완전히 없다는 것은 모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이야.
기억나지?
바로 이와 같은 의미인데 이것을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자면 이렇게 불수 있을 것 같아.
지난번 내가 전생에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그러한 인과의 적용을 이 세상에서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니?
이와 같이 우리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적용 받아야할 전생의 인과는 없다는 결론을 지난 시간 얻을 수 있었는데 이것을 지금 이 세상을 사는 동안의 시각에 초점을 갖추게 되면 인과의 적용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야.
그렇다고 한다면 수많은 깨달은 이들이 말하는 인과 없음은 어떻게 된 일인가 하겠지만 그것은 이렇게 볼 수 있어.
누군가 이생에서 사람을 죽였다고 쳐.
그러할 때 우리들은 대부분의 경우 법적용에 따른 일들을 겪게 되거든.
사람을 죽인데 따라 사형을 당하거나 무기징역 등의 금고형을 받게 될 거라는 거지.
이러한 것을 우리들은 행위에 따른 결과 즉, 인과의 적용을 받았다고 볼 수 있어.
하지만 깨달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일로 자신이 사형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우리들처럼 해석하지 않는다 이 말이거든.
죽인 바도 없고 자신이 죽임을 당하지도 감옥에 갇히지 않는다고 인식할 거라는 거야.
죽임을 당하는 것도 몸을 바꾼다고 인식할 것이며 자신이 감옥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갇힌 것으로 볼 거라는 거지.
바로 이러하기에 우리들의 시각으로 보게 되면 인과가 있게 되는 것이며 그들의 시각으로 보면 인과라는 것은 없는 것이 되는 거야.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표면상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보자면 인과의 적용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이 같은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모든 해석이 가능하다는 말이며 그기에 따른 인과가 있게 된다는 말이거든.
이제 이해가 가지?
어떠한 경우를 말하더라도 원인과 결과는 짝이 들어맞을 거라는 거야.
이것이 바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하는 말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거든.
언젠가 말을 해주었지?
다 같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이야.
바로 이와 같이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만이 여러 갈래로 달라질 뿐 표면적인 모든 것들은 있는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거지.
마치 분별 심을 여의고 나면 모든 분별 심을 가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볼 수 있어.
우리들이 처음 수행을 해 나갈 때 다들 분별 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배우게 되는데 이 같은 분별 심을 여의고 나면 거짓말처럼 모든 분별 심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니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말이거든.
이것은 또 이렇게도 볼 수 있어.
각양 각층의 인식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을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 모든 인식들을 인정하게 되는지라 분별이 있게 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거야.
이것이 바로 영적인데 초점이 모아지나 육적인데 초점을 맞추어 지는가에 따른 인식의 차이가 아니겠어?
지난 시간에도 보았듯이 이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인식들이 존재하지 않니?
그렇지?
그러한 가운데 사람들은 신을 알아 가는데 그것을 가지고 왜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가 하거나 너는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면 우스운 일이 아니겠어?
모든 것이 있는 자리에서 완벽하다는 말의 의미는 그 모든 일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며 일어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지 그것은 아니고 이것이 정답이라고 한다면 그는 아직 과정에 있는 거야.
그가 아무리 지식으로 중무장을 하였고 유학생활을 수십 년을 해서 여러 나라의 일들까지 모두 알고 있다 하더라도 산을 오르고 있는 중에 불과하다 이 말이거든.
이것 역시 있는 자리에서 완벽해야 하는 것임은 물론이고…….
다시 말해서 이와 같이 남들을 향해 멀었다고 말을 하는 사람조차 그들의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우리들은 또다시 분별 심을 가져야만 해.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아직까지 사람들은 자유의지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해야겠구나.
사람들은 아직 신 의식에 다다르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인간적인 에고속의 자유의지만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 거야.
그렇기에 신을 인정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인식이야말로 이 세상을 움직여 나가는 힘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거지.
하지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보면 진짜 그렇지 않는가요?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이세상이 이 모양이 되도록 그냥 내버려 두겠냐는 거예요.
분명 하나님은 있지도 않고 우리들의 자유의지만이 존재하는 것이 분명할겁니다.
어찌 보면 네 말이 맞기도 해.
하지만 실상을 바라보면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우리들은 자유의지를 발휘하여야만 신 의식에 도달할 수가 있거든.
신은 우리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어서 신을 알아가도록 만들었다 이 말이야.
이것을 알기 위해 성경을 보면 이해하기가 수월해지니까 잠시 둘러보도록 하자꾸나.
성경에서는 이와 같은 자유의지와 신 의식에 대한 것을 아주 제대로 설명을 해주고 있어.
우선 창세기에 보면 우리들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사람들을 만들어 놓고서 끝도 없는 시련을 주어가며 지켜보는 거지.
이것이 바로 우리들 인간들이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겠어?
너도 조금만 깊이 있게 생각해보면 내말을 이해할거야.
만약 우리들이 하나님이 정해놓은 길만 가는 존재들이었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까지 우리들을 지켜볼 필요가 없었을 것이 분명해.
그렇지 않니?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가야할 길을 똑바로 갈 것이고 목적지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착할 것인데 뭐 하러 간섭을 할 것인가 말이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은 이 같은 내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하나님은 태초에 인간을 만들 때 이미 그와 같은 자유의지를 심어 주셨던 거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처음부터 자유의지를 심어주지 않았더라면 절대 그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도 않을뿐더러 무조건 정해져 있는 일 외에는 결코 하지 않을 것이 아니겠어?
마치 로봇과 다름없지 않겠냐는 거야.
이같이 생각을 해보면 우리들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거든.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절대적인 자유의지를 부여 했다는 거지.
그러했기에 성경속의 여호와는 우리 인간들이 잘못된 길로 접어들까 항상 노심초사하고 살펴봐야 했던 것이 아니겠어?
그런데 이와 같은 우리들의 자유의지만이 우리들 세상을 움직여 가는 진정한 힘이라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여기에는 심각한 모순점이 있어.
왜냐하면 밀이야.
만약 정말 자유의지만으로 인간세상이 만들어진다고 한다면 모든 것이 인간들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야만 하기 때문인데 내가 알기로 그런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거든.
다시 말해서 아무리 크게 깨달은 존재라 할지라도 자신의 육신을 입고 있는 이상 마음먹는 모든 것을 한생에서 모두 이룰 수는 없다는 거지.
물론 이 같은 일이 가능하긴 하지만 우리들의 인식이 우리의 육신에 속해 있다고 여기는 한은 불가능 하다는 거야.
따라서 자유의지라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해야할 일들을 겪도록 만들어 주기 위한 도구일 뿐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한마디로 말해서 신을 알아가는 동안 육신을 가지고 선택의 순간들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육체의 시스템에 불과해.
그러하기에 여호와는 사람들에게 도저히 말도 되지 않을 일들을 겪도록 만들어 가면서 훈련을 시킨 거였어.
아들아!
이 같은 일을 만약 말도 되지 않는 구약의 일이라 치부를 해버린다면 얼마든지 말도 되지 않게 되겠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거든.
왜 그런가 하면 말이야.
성경속의 하나님을 액면 그대로 그 시대의 창조주 하나님으로 본다 해도 절대 우리들이 말도 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을 뿐더러 이시대의 시각으로 본 다해도 그것은 어떠한 해석을 내리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지.
이해가 가니?
너무나 포괄적이라 잘 못 알아듣겠으니 좀 더 상세한 설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은 지금 이 같은 말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만큼 좀 더 쉽게 설명을 해주어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
내가 너무 내 생각만한 것 같구나.
그렇다고 해서 성경을 또다시 여기다 옮겨 놓을 수도 없으니 그저 우리들의 지나간 시간의 말들로 대신해야 할 것 같아.
앞서 우리들의 대화 속에서 몇 번에 걸쳐 말을 했듯이 구시대의 일은 구시대의 인식에서 있어온 일이었기에 지금의 우리 인식으로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내말을 받아들이면 될 것 같거든.
그리고 구약의 말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내용들도 바라보는 우리들이 어떠한 인식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말씀일수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좀 더 부연설명을 하기위해 잠시 성경말씀을 인용한다고 하면 출애굽기를 예로 들수 있을 것 같아.
그곳에 나와 있는 내용을 잠시 보면 이러한 구절들이 몇 번에 걸쳐 나오고 있어.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출9:12)
이 같은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적들을 마주치게 되었을 때도 나오는 말이거든.
이것은 무슨 말이겠니?
달리 보자면 하나님이신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적들의 마음까지도 그렇게 만들었다는 말로 일부러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힌다는 말인 거야.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우상을 섬기는 것이 자신들의 자유의지라기보다 여호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말도 되는 거지.
바로 왕의 마음도 강퍅하게 만든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마음대로 못하겠니?
그렇지?
그러하기에 말도 되지 않는 성경이 아닙니까?
제정신을 가진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바보도 아니고 그러한 짓을 하겠습니까.
자신이 아주 단순하게 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만들어 버리면 아주 간단할 것을 일부러 우상을 숭배하고 여호와인 자신을 거역하도록 만들어서 벌을 주는 이상망측한 일을 하는가 말 이예요.
아들아!
너는 여전히 성급하구나.
내가 앞서 몇 번이나 말을 해주지 않았니?
성경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시대가 너무나 달라져 있고 보다 영적인 해석을 하게 되면 아주 완벽한 수행지침서가 된다고 말이야.
성경에서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들이 내재한 하나님이라 여긴다고 한다면 이 같은 말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내용들이 아주 완벽하게 이해가 되거든.
어째서 그러냐 하는 것을 이제부터 다시 한 번 더 설명 할 테니까 이번에는 정말 귀담아 듣기바래.
우리들은 육적인 존재일 뿐 아니라 영적인 존재라고 앞서 누누이 말해왔지?
우리들의 내면에는 하나님이 거하고 있다고도 했고 말이야.
이처럼 우리들 육신에는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하나님을 성경속의 여호와라 생각해 보자는 거지.
이러했을 때 우리들은 어떠한 사실에 도달할 수가 있는가를 생각 해보렴.
우리들이 하는 그 어떠한 경우의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하지 않는 일이 없으며 우리들은 하나님의 꼭두각시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겠어?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하는 그 어떠한 못된 짓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관 하신다는 말이거든.
비록 내가 말도 되지 않는 짓거리를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내안에 내재한 하나님이 그러한 일을 경험하도록 만들었다는 거지.
왜냐고?
그러한 일을 했을 때 어떠한 일들을 겪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이지 달리 뭐가 있겠어?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뜨거운 것을 알기 위해서 한번쯤은 불에 데여 봐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거든.
우리들은 성경속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외부에서 신을 찾고 자신들의 육적인 욕망을 따르는 삶을 통해 수많은 일들을 겪고 나서 결국은 참된 하나님은 자신 안에 있음을 알게 되는 거야.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이신 하나님은 저 멀리 하늘나라에 있지도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늘 따라 다니면서 우리들을 보살펴 준다는 것을 성경은 말해 주는 거지.
이 같은 말을 왜 하나님은 미리 말을 해주지 않았느냐고 말해서는 곤란해.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 가지의 비유의 말로서 말을 해주었지만 우리들이 그러한 말을 흘려들었기 때문이거든.
좀 더 솔직하게 말을 하자면 네 안에 내재한 하나님이 네가 좀 더 여러 가지 경험을 하기 원해서 그러한 말을 일부러 못 알아듣게 만들었기 때문이지.
이것은 말이야.
보통의 경우 대부분 자신의 에고속의 자유의지로 살아간다고 여기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어.
지금 내가 아무리 너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고 네가 이해를 한다고 해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왜냐 하는 것을 지난시간 말해 주었지?
네가 아직도 이세상의 연극을 끝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말도 되지 않을 짓들을 하기도 하고 당하기도 하는 동안 우리들은 이러한 경험을 통한 이러한 인식과 저러한 경험을 통한 저러한 인식들을 갖게 되며 그러한 상대계의 세상을 경험하는 동안 이원성의 벽을 허물고 빛과 어둠의 통합을 통해 신을 알게 되거든.
그러할 때 신과 인간사이의 장막은 찢어지며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거지.
아들아!
내가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누구나가 모두 하나님을 알고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겠구나.
누군가 이러한 나의 말을 듣고 스스로 신이라고 한다면 심각하게 자신을 들여다 봐야해.
자신이 행한 행동이 정말 하나님이 할 짓이었나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야.
아직까지 마왕이나 다름없는 짓을 했다 스스로 여기고 있다면 시급하게 참회를 해야 하며 좀 더 많은 수행을 해야 하지 않겠어?
이러한 자가 진단법을 지난시간 말해주었지?
아직까지 내 눈에 다른 이들이 신이나 부처로 보이지 않고 있다면 나는 아직까지 멀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이야.
이제는 너도 이골이 났으리라 생각해.
나는 말이야.
과거 수행을 시각하기 직전 까지 이러한 생각을 했었어.
내가 알고 있는 만큼의 범위 내에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열심히 살면 된다.
구태여 골치 아픈 수행 따위는 필요 없다.
이러하던 내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확연하게 드러나 버린 내안에 무엇인가를 보았던 거지.
그렇게 해서 수행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거든.
그러한 세월이 오늘에 이르러 있는 거야.
온갖 분별 심들을 없애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왔어.
그러던 어느 날인가 문득 분별 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 같았는데 이제는 세상의 모든 분별 심들을 모두 갖게 되더구나.
이것도 정답이고 저것도 정답이다 보니 어느 것도 정답이 아니게 되었는데 이러한 가운데 나또한 어떠한 한부분의 인식을 가지길 강요받고 있음을 알게 된 거야.
나 혼자 만의 인식 속에서는 얼마든지 인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나 집단의 인식 속에 섞여 살아야 하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우리들이 공유해야 하는 인과 속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거지.이래서 인과 없음을 알게 되고 나서 인과 있음을 알기 시작하게 된 거다 이 말이거든.
아들아!
오늘 내가 한 이 같은 말이 너에게 어떠한 의미로 와 닿았는지 모르겠지만 이 말만은 하고 싶구나.
우리들의 현실은 언제나 시시각각으로 형태를 달리하여 다가오고 있지만 그 일에 대한 해석만큼은 언제나 우리들의 자유선택에 달려 있어.
그러한 것이 네 인생에 도움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너는 언제든지 해석을 달리하여 네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거든.
부디 너의 이러한 고유의 권한을 사용하여 신과의 합일에 이를 수 있게 되길 바라.
다음시간 우리들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여기에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