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150)

배가번드 2022. 5. 7. 04:17
728x90

아들아!

오늘은 말이야.

우리들이 한정된 삶을 영위해 나가기도 하면서 자유의지를 가진 무한한 존재라는 개념을 가지기 위한 시간을 가져보도록 해.

언젠가 우리들은 컴퓨터를 예로 들어 그 같은 개념을 가져보려 노력했지만 오늘은 여러 가지의 각도로 다시 한 번 더 느껴 보자는 거야.

내가 이러한 말을 다시 하게 된 이유가 명절날 방문을 해주신 가루비누 공장의 사장님 부부 때문인데 그분들과의 대화중에 이러한 내용들이 있었거든.

우리들의 인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뭔가 겪어야만 하는 일들은 겪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운명론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무척 많이 있음을 알 수가 있는데 우리들이 흔히 재미삼아 보고 있는 점성학은 그 같은 내말을 뒷받침 해주고 있어.

점성학을 우리는 동양철학이라고도 하는데 이 같은 동양철학에는 뭔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거든.

하지만 실상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아.

이것은 수천 년 전부터 우리들의 조상들이 삶속에서 발견한 지혜의 산물들인데 이것을 이제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게 되었어.

최근 우리 세상의 과학은 인체의 게늄지도를 완성시켰는데 이 같은 유전자 정보를 살펴보면 우리들의 인생에서 어떠한 일을 겪는지를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이야.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어느 정도의 시기에 어떠한 일을 겪는가 하는 것이 기록이 되어 있다는 말인데 이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들은 바야흐로 최첨단의 과학세계로 접어들고 있는 거지.

이 같은 일을 우리들의 조상들이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지 않니?

동양철학에서 말하고 있는 관상, 수상, 족상 등의 점성학들이 실은 과학을 담고 있다는 것이 실질적인 과학의 힘으로 밝혀진 만큼 이제 영적인 일이 과학이라는 사실에 한걸음 가까워진 것이며 영성과 과학이 같은 지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거야.

이것은 샤머니즘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일도 점성학과는 약간 방향이 다르긴 하지만 초과학의 일들을 말한다고 볼 수 있어.

이미 앞서 너와의 대화에서 이 같은 일을 충분하게 말했던 만큼 샤머니즘의 일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동양철학을 집중해서 살펴보기로 해.

흔히들 사람들은 이 같은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점성학들을 미신의 일부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실상을 보게 되면 전혀 그렇지 않을 뿐 아니라 성경의 하나님 말씀과도 일치되고 있음을 볼 수 있거든.

성경에서 사람들의 몸에는 태어나면서 부터 원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 같은 일을 말하는 거야.유전인자에 새겨진 정보들을 원죄라고 표현한 거지.

일찍이 우리들 조상들은 후손들에게 다산의 유익 성을 이렇게 설하셨어.

 

"아이들은 태어날 때 먹을 것을 손에 쥐고 태어난다."

 

이 같은 말을 증명하는 것이 손금들인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이 손바닥에 새겨져 있다는 거지.

그러나 이 같은 일도 약간의 보안해야할 점들이 있어.

만약 손금이 새겨진 데로만 우리들이 살아간다고 하면 피할 수 없는 운명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소린데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많거든.

이렇게만 여기게 되면 우리들의 자유의지는 필요조차 없고 그러한 자유의지가 허용되지 않아야 하겠지만 실생활을 보게 되면 전혀 그렇지가 않아.

이러한 현실을 보게 되면 우리들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게 되는 거야.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 같은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인거지.

이것을 우리들이 조금 더 현실 속에서 느껴보기 위해 내가 보았던 일을 예로 들어볼까?

언젠가 모 방송국 프로 중에 "11시에 만납시다." 라는 코너가 있었어.

그기에 유명한 지관 한분이 나오셨는데 성함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제법 많은 부수가 팔린 "터"라는 책의 저자였던 것 같아.

이분의 직업이 풍수지리를 전문으로 다루는지라 점성학과는 연관이 없을 듯 하지만 이러한 일도 동양철학에 속하기는 마찬가지거든.

실지로 이 같은 일들을 우리들 조상들은 아주 중요시 여겼음을 우리들 역사 곳곳에서 볼 수가 있는데 이분이 방송에 나와 역사적으로 유명한 풍수지리에 얽힌 일화들을 소개했던 거야.

과거 역대 대통령들과의 일과 그들의 묏자리에 얽힌 일들을 말하면서 묏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그중에서도 우리의 오늘 대화에 적용시킬 한 가지 이야기를 되살려 보도록 해.

이분은 언젠가 관상을 전문으로 보는 분, 수상을 전문으로 보는 분, 족상을 전문으로 보는 분, 이렇게 세분과 내기를 했다더구나.

다들 사람의 운명은 태어나는 순간 이미 결정이 난다고 말하는데 반하여 자신은 조상의 묏자리를 잘 쓰게 되면 후손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거야.

그래서 그들이 그 자리에서 내기를 했는데 때마침 다리를 지나는 중이었고 그 다리 아래 사는 젊은 거지 하나를 보게 되었어.

거지의 행색을 보고 상학을 하시는 분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기를 천생 거지 팔자라고 하였는데 이분이 거지의 팔자를 고쳐줄 수 있다 큰소리를 쳤던 거지.

수상은 물론 관상과 족상까지 거지상인 사람을 팔자를 고쳐줄 수 있다 큰소리친 지관께서는 거지에게 부모의 묘가 있나 물어 보았다는 거야.

거지청년으로부터 아버지의 묘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되자 동의를 얻어 자신이 지정해 주는 장소로 아버지의 묘를 옮겼다더구나.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그 거지가 곱게 생긴 색시와 아들까지 대동하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감사의 인사를 하러 찾아 왔더라고 하였어.

어떻게 된 일인가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묏자리를 옮기고 얼마 후 다리에서 웬 처녀가 자살을 시도 했다는 거야.

물에 빠진 처녀를 거지가 구해주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처녀가 실연의 상처로 자살을 시도한 것이 거지가 살고 있던 다리 아래 이었던 거지.

거지 청년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하게 된 처녀가 이 같은 일을 하늘이 정해준 운명으로 받아들였고 거지 청년을 자신의 배필이라 여기고 함께 살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식을 낳게 되자 그길로 처녀의 집으로 인사를 하러 갔던 거야.

몇 년간 소식도 모른 체 지내던 처녀의 부모가 그동안 딸에게 일어난 일을 듣고서 거지 청년을 사위로 맞아들이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처녀의 아버지는 택시회사 사장님이었고 그길로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 사위를 사업공부를 시키기 시작하였으며 자신의 회사를 물려주었다더구나.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거지에서 택시 회사의 사장님으로 변신하신 이분의 관상이나 수상, 족상이 완전히 바뀌어 있더라는 거야.

한마디로 운명이 바뀌어 버린 거지.

이것이 그날 내가 본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의 기나긴 이야기 중의 일부이거든.

아들아!

어떠니?

이 같은 내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니?

진짜 그렇다면 빨리 묏자리를 옮겨야 하지 않겠냐고?

글쎄?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지는 않고 있거든.

왜냐고?

너도 알다시피 네 할아버지 묘는 없지 않니?옮기고 싶어도 묘가 있어야 말이지.

그렇다면 앞서 말한 묏자리로 성공을 했다는 일은 어떻게 된 일이냐는 물음이 남겠지?

그것은 말이야.

그분에게는 진실이겠지만 모든 이들에게까지 적용될 진실은 아니라고 해야겠구나.

조상들 묘를 잘 쓰게 되면 후손이 잘된다는 말은 그 옛날부터 있어온 말이었지만 그 같은 말도 우리들이 얼마나 사실로 여길 수 있느냐에 따라 진실일수도, 혹은 거짓일수도 있다 생각이 되거든.

왜냐하면 이 같은 사상이 우리들 동양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것을 사실화 시키지 않는 서양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 묘에 대한 애착들이 전혀 없기 때문이야.

게다가 조상 묘가 없는 집안에서는 이 같은 개념들을 전혀 인식을 하지 않고 있는데 불구하고 세상 기준의 출세라는 것을 잘만 하고 있어.

그 대표적인 예들이 기독교를 믿는 분들로 그들 대다수가 이와 같은 일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이 반대의 경우 또한 있음은 물론인데 교회를 다니는 성직자 중에서도 점집을 다니거나 점성학은 물론 조상의 묏자리까지 살피는 이들이 있기도 해.

이러한 사실을 보더라도 우리들의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거든.

우리들이 이 같은 일을 사실이게도 만들고 거짓으로도 만든다는 거야.

일체 유심조라는 말은 이 세상 어느 것에도 적용될 말이 아니겠어?

이렇게 놓고 본다면 풍수지리조차 사실로도 만들고 거짓되게도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말인데 과연 이 같은 말만으로 충분할까?

세상살이가 우리들 마음먹는 데로 되지 않을 때 과연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초연할 수 있겠냐는 거야.

과거 역대 대통령들이 선거에 떨어지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조상 묘를 옮기는 일이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이 같은 일을 사실화 시키고 있냐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어?

모두들 종교를 달리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묏자리에 신경을 썼다는 것은 그 같은 말을 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고 그들의 애타는 대통령직에 대한 집념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거지.

국민들에게는 화장을 권하는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조상 묘는 초호화판으로 만들어 놓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니?

그들 역시 세상을 나보다 훨씬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더 잘 알거든.

그런데도 왜 그들은 나와 같이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그것이 바로 물질적인 집착 때문인데 그들은 그러한 말을 자신들의 인생에 접목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거야.

이것이 바로 인생사는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지기 때문인 거지.

그들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뭔가 알 수 없는 영역의 일들까지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겠어?

이 같은 일이 작용되도록 만드는 힘이 결국 대대로 이어져 오는 정보의 영향들인데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순간 이것은 더욱더 힘을 발휘하게 되거든.

사실로 받아들이는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있는 이상 그것은 사실로 나타나게 되는 거야.

이 같은 일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임은 물론이지 않겠어?

절대적으로 그와 같은 일은 사실일수 없다는 인식 아래서는 그것은 전혀 힘을 발휘할 수도 없고 작동하지 않는 인식일수밖에 없어.

이러한 인식을 우리들이 하게 되면 한 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거든.

인생사가 손바닥에 새겨져 있다는 말은 우리들이 이미 계획 되어진 삶을 살아간다는 말인데 이것을 우리들의 타고난 운명으로 불수 있는 거야.

하지만 우리들은 자유의지를 이용하여 얼마든지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어?

바로 이러하기에 앞서 말한 대로 일체유심조가 사실이 되는 거지.

그날 대담프로에 나오신 지관께서는 자신이 얼마나 풍수를 잘 보는가를 말씀 하시고자 한 거였지만 나는 그 같은 말씀 중에서 운명을 바꿀 수 있음만을 발췌해서 너에게 말해주고 있어.

결론은 마찬가지라 하더라도 과정에 대한 해석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니겠어?이것을 우리들 관음법문에서는 입력된 유전자 정보를 바꾼다고 표현해.

명상을 통한 빛과 소리로서 세포 하나하나에 입력된 정보를 씻어 내는 거지.

이러하기에 우리들은 수행을 하는 거야.

반드시 내가 하는 명상법이 아니더라도 이 같은 일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거든.

자신이 믿는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의 대상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은 가능하게 되는데 다들 외면에서 찾고자 하기에 힘이 들고 있어.

우리들 각자의 내면의 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영혼을 말하는 것인데 이 영혼을 얼마만큼 크게 느낄 수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들은 인생을 운명적으로도 볼 수 있고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어.

오늘 내가 말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육신에 입력되어 있는 정보를 바꾸어서 물질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겪어야 하는 일들을 바꿀 수 있음을 말한 것이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고 우리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말은 우리들의 내재한 하나님, 즉 우리들 영혼의 선택에 따른 삶을 살아간다는 말이거든.

이것을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들의 인식이 육적인가 영적인가 하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어.

우리들의 입력된 정보를 바꿀 수 있게 허용하는 것 또한 내재한 하나님의 힘이라는 말이기도 한데 우리들의 생각조차도 마음대로 조정하는 하나님을 우리들이 모른다는 것이 우리에게 혼란을 가져다주는 거야.

이러한 사실을 아는 것을 깨닫는다고 하는 거지.

이제 이해가 가지?앞서 여러 곳에서 이 같은 일에 대해 설명을 했으니 충분히 이해를 했을 거야.

아들아!

깨닫는 것은 무척이나 쉽게 보이지만 결코 그렇게 쉽지도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지닌 자들조차 한낱 묏자리 하나 문제에서 조차 자유롭지 못하는데 어떻게 깨달음을 논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안다 할 수 있겠니?

그들이 결코 그러한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아는 바를 실천하기에는 우리들의 인식이 보다 육적인데 맞춰져 있기 때문이거든.

물론 이것이 그들이 이 세상을 그들의 역할을 하면서 살도록 만든 그들 내면 영혼의 작용 때문이지만 그들은 결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거지.

누군가는 깨달음을 아주 쉽게 표현해 놓았더라만 과연 그럴지는 살아봐야 하지 않겠어?

지난번에도 잠시 말을 했듯이 우리들 본성을 아는 것이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쉬울 테지만 우리들 삶속에 모든 순간들에 적용 시키는 것은 그야말로 과가 달라도 한참 다른 일이거든.

물론 이것은 깨달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규정짓는데 따라서 달라질 말이긴 하지만 말이야.

모든 순간이 깨달음의 순간이 아닐 수 없고 그 어떤 자각의 순간들이 깨달음이 아닐 수 없겠지만 과연 우리들은 얼마만큼의 깨달음을 원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 같아.

이것은 이렇게도 표현될 수 있어.얼마만큼의 큰 영혼으로 내재한 신을 느끼고자 하는가?

네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을 얼마나 크게 만들고자 하는가?

성전인 네 육신 안에 얼마만한 하나님을 모시려고 하는가?

이 모든 것들은 네 선택에 달렸거든.

이것은 그저 네 삶을 운명으로만 받아들여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야.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같은 일을 사실화 시키는 작업이기도 해.

어떠니?

이생에서 수행을 한다는 것은 밑지는 장사가 아니지?

더 이상 수행을 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인신을 가질 수 없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지 말기 바라.

너도 이제 많이 보았지 않니?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차이를 말이야.

수행을 해서 얼마만큼의 인식을 가지려고 하는가에 따라 네 노력이 엄청 필요할 수도 잇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원수조차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인식을 가지려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스러운 순간조차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자비의 화신이 되기 위해서는 문둥병 환자의 고름조차 입으로 빨아내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나처럼 내가 생각하는 깨달음을 창조 할 수도 있거든.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서 또는 문둥병 환자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신을 만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는 거야.

그 방법은 이미 수없이 말해주었지?

우리는 오늘 운명적인 삶속에서 우리들의 자유의지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말을 했어.

하지만 말이야.

이 같은 일도 신을 알기 전에 일어나는 일이며 내재한 신을 알고 나면 완전하게 신께 복종하는 삶을 살게 되거든.

이전의 대화에서 이미 말을 했듯이 인과 없음을 알게 되고 나서 인과 있음을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 거짓말처럼 운명에 순종하게 되는 거지.

창조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그것은 더욱 사실이 될 수밖에 없는데 우리들이 육신을 가지고 아무리 노력한다 하여도 신이 될 수는 없는 법이거든.

이 같은 설명을 앞서 몇 번 했으니 이제는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거야.

이제 너도 내가 하는 말이 일반적으로 크리스천들이 말하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과 내가 주장하는 하나님이 결론적으로 둘이지는 않겠지만 과정에서 인식하는 것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물론 그들이 약간의 궤도 수정만 하게 된다면 나와 같은 인식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

이것은 온 세상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지난번 말했는데 기억나지?아들아!만약 아직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오늘 잠자리에서 기도를 해보렴.

네 안에 내재한 하나님께 부탁하면 들어줄지도 모르거든.

오늘은 많이 피곤함을 느끼는데 이만 줄여야겠구나.

다음에 또 다른 좋은 주제가 생기면 만나기로 해.

안녕!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아!(152)  (0) 2022.05.11
아들아!(151)  (0) 2022.05.09
아들아!(149)  (0) 2022.05.04
아들아!(148)  (0) 2022.05.02
아들아!(147)  (0) 2022.04.30